[RPM] [성지수행]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 주행기
안녕하세요.
약 2주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보통 출장을 가게 되면 주말에는 쉬거나 놀러 나갑니다만, 이번 출장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놀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업무가 별 문제 없이 술술 풀리는 바람에 주말에 시간이 꽤 남게 되더군요.
주말 중 일요일을 할애하여 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의 성지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을 다녀왔습니다. 뉘르부르크링은 뉘르부르크(Nurburg)라는 도시에 있는 환상 도로(ringstraße)라는 뜻입니다. 크게 노르드슐라이페(Nordschleife)와 그랑프리 써킷(GP-Streck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자동차 테스트 관련 기사에 흔히 등장하는 뉘르부르크링은 보통 노르드슐라이페를 이야기합니다.
두 트랙 모두 일반인이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주행해 볼 수 있습니다만 가기 전에 뉘르부르크링 홈페이지에서 일정표를 잘 확인하고 가야 합니다. 아예 열지 않는 날도 있고, 특정 시간에만 여는 날도 있습니다. 마침 제가 가려던 일요일은 노르드슐라이페를 9시부터 19시까지 여는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http://www.nuerburgring.de/en/angebote/driving-experiences/tourist-rides-nordschleife.html
출발하기 전에 먼저 주유소에 들러 가득 주유합니다.
독일 주유소는 거의 셀프 주유소이며(넣어주는 곳도 있습니다만 서비스 요금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셀프 주유소와는 좀 방식이 다른데요, 차에 주유기를 삽입하고 레버를 당기면 바로 주유가 됩니다. 넣고 싶은 만큼 주유를 한 다음, 주유소 건물의 카운터에 들어가서 주유기 번호를 말하고 계산하면 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뉘르부르크 방향으로 가는 고속도로(아우토반)입니다.
독일의 고속도로는 속도 무제한으로 유명하죠. 전 구간이 무제한인 것은 아니며, 도시 부근에는 80 ~ 120km/h로 제한 속도가 있습니다. 속도 제한 표시는 빨간 동그라미 안에 제한 속도가 표시되어 있어 쉽게 알 수 있고, 속도 무제한 구간은 아래와 같은 표지판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고속도로 문화가 나아갈 길을 확인했습니다. 1차선은 철저하게 고속, 추월 차선으로만 이용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차가 하위 차선의 차보다 느리다면 바로 하위 차선으로 비켜 줍니다. 심지어 뒷 차가 추월을 하기 위해 좌측 방향 지시등을 켜고 상위 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기도 전에 앞 차가 하위 차선으로 비켜 주더군요. 소위 말하는 '1차선 김여사/김사장'은 출장 기간 내내 단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도 1차선으로 한번 달려보았습니다. 리미트가 걸려 있어서 그런지 내비게이션 속도로 200km/h 이상은 안 올라가더군요. 차도 없고 해서 계속 200km/h로 달리고 있는데 뒤통수가 간질간질해서 거울을 보면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점으로 보이던 뒷 차가 제 차 꽁무니에 붙어 있습니다. 신속하게 2차선으로 비켰더니 손 인사를 하면서 빛의 속도로 사라졌습니다. 1차선으로 지나가는 차들은 대부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BMW 7 시리즈, 아우디 A8과 같은 고배기량 세단 또는 메르세데스-벤츠 AMG, BMW M, 포르쉐 등의 스포츠카들입니다. 운전자들은 대부분 중년이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이 보이더군요.
맨 오른쪽 차선은 한국 고속도로랑 비슷하게 80 ~ 120km/h 정도로 주행합니다. 마침 휴가철이라 뒤에 캐러밴을 매달고 저속으로 주행하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가는 내내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대부분 느긋하게 저속 차선에서 흐름을 따라가며 달렸습니다.
뉘르부르크링에 도착해서 처음에 좀 헤맸는데요, 내비게이션에 뉘르부르크링을 검색하면 십중팔구 뉘르부르크링 인포센터(info°center)로 안내합니다. 인포센터가 뉘르부르크링의 중심인 것은 맞습니다만, 그랑프리 써킷을 구경하러 온 사람, 카트를 타러 온 사람 등, 관람객들을 위한 안내 센터입니다. 노르드슐라이페 입구와는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걸어서 못 가는 거리입니다.) 아래 지도에서 Tourist Entry로 표시된 부분이 노르드슐라이페 입구입니다.
http://maps.google.com/maps/ms?msid=211442181647728225422.00043496bf01b7be201c3&msa=0
드디어 뉘르부르크링 노르드슐라이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의 정면에 보이는 길이 노르드슐라이페의 나오는 길, 들어가는 길입니다. 아직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일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둘러봅니다.
먼저 포르쉐 911 GT2가 보이는군요. 괴물같은 차들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차들이 많습니다. 제가 몰고 간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는 저기 깃발 옆에 얌전히 있네요.
주차장 입구 오른쪽에는 BMW 링 택시 부스가 보입니다.
BMW의 프로 드라이버들이 M3 또는 M5로 택시 드라이브를 시켜줍니다. 직접 타 본 사람 말로는 정말 재미있다고 하는데 가격도 비싸고 택시 드라이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알아보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예약이 꽉 차 있다고 하네요.
메르세데스-벤츠 C63 AMG, 포르쉐 911 GT3, BMW M3등이 보입니다. 많은 차가 뉘르부르크링 스티커를 붙이고 있던데 아마 자주 오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파란색 스즈키 스위프트는 뉘르부르크링 전용 렌터카 업체의 자동차입니다. 롤 케이지, 4점 벨트가 달린 버킷 시트 등으로 튜닝이 잔뜩 되어있습니다. 저렇게 뉘르부르크링 전용 렌터카 업체의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저도 혹해서 가격을 알아봤는데 엄청 비싸더군요. 포르쉐 911 GT3가 4바퀴 도는데 1299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200만원 정도였습니다.)
동호회에서 왔는지 애스턴 마틴 밴티지 몇대가 보입니다. 트랙에 들어가서도 꽤 많이 보였습니다.
BMW M3, Z4, 아우디 A6 Avant가 트랙 입구로 들어가려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입구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저기에서 친구들이나 가족의 차가 들어갈 때 박수와 함께 환호해주더군요. (제가 들어갈 때도 언니 몇 명이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뚱땡이 B-클래스로 들어가는 게 신기했나 봅니다.) 사진에 보이는 형광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진행 요원들인데요, 진행 요원들의 수신호를 잘 보고 들어가면 됩니다.
이제 그만 구경하고 티켓을 사러 갑니다. 티켓 오피스는 사진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흰색 건물입니다.
티켓 오피스에 도착했습니다.
오른쪽 창구에서 돈을 내고 돌고 싶은 랩 수를 말하면 링 카드에 충전을 해서 내어 줍니다. 제가 갔을 때는 1랩에 26유로였습니다. (4, 9, 25랩은 할인이 되고, 연간 티켓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저는 딱 봐도 외국인처럼 보이고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하는데도, 티켓을 살 때 여권은 커녕 운전면허증 조차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잘 하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저녁때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야 하는 관계로 2랩만 돌아 보기로 합니다.
링 카드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티켓 오피스 벽에는 운전 수칙이 독일어와 영어로 적혀 있습니다.
꼭 한번은 읽어 보고 들어가야 합니다. 중요한 것 중 한가지는, 아우토반과 마찬가지로 항상 오른쪽으로만 주행해야 하며, 추월은 왼쪽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운전 수칙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nuerburgring.de/fileadmin/Touristenfahrten/Driving-Regulations-2012.pdf
이제 차를 몰고 트랙 입구로 갑니다.
트랙 입구에는 사진과 같은 차단기가 있고, 진행 요원이 독일어로 설명을 해 줍니다. 별건 없고요, 사진 오른쪽 BMW 1M과 같이 차단기 앞에 차를 대고, 아까 구입한 링 카드를 왼쪽의 기계에 부착된 리더기에 가져다 대면 차단기가 열립니다.
왼쪽의 M3는 트랙에서 나오자 마자 다시 트랙에 들어가는 차량입니다. 노르드슐라이페 구조가 연속해서 트랙을 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즉, 트랙 1랩을 돌고 나서는 무조건 빠져나와서 다시 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합니다. 흔히들 써킷에서 하는 롤링 스타트가 불가능하죠. 아마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차단기를 지나 왼쪽으로 휘어 있는 길을 따라가면 트랙으로 입장하게 됩니다. 트랙 입구에는 운전자로 하여금 속도를 줄여서 시작하도록 형광색 러버 콘으로 구불구불하게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 트랙에 들어왔습니다. 뒤에 차가 없어서 잽싸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부터는 제가 찍은 트랙 내의 사진이 없습니다. 운전 수칙에서 본 대로 오른쪽에서 주행을 하게 되고요, 코너에서는 뒤에서 추월하려는 차가 없는 경우 아웃-인-아웃을 할 수 있습니다.
트랙은 정말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평지 구간, 직선 구간이 거의 없어서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심장이 덜컹하는 구간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트랙 전체가 산 속에 파뭍혀 있어서 지금 주행하고 있는 구간 외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속도를 올려 언덕길을 올라가면 시야가 트이자 마자 바로 심한 S자 코너가 나오는 등) 사고도 많이 나고 죽은 사람도 많다던데 그게 실감이 가더군요.
제가 2랩을 도는 동안 사고난 차를 2대나 봤습니다. 한대는 총알처럼 저를 추월했던 튜닝된 르노 클리오였는데 언덕을 지나 내려가다 보니 코너를 돌지 못하고 벽에 처박혀 있더군요. 본넷이 아예 안 보이던데 운전자는 어떻게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또 한대는 폭스바겐 골프 R32였는데 엔진에 문제가 생겼는지 본넷에서 흰 연기를 뿜으면서 가장자리로 차를 대고 있었습니다.
트랙 내에서는 패트롤카가 상시 주행을 하며, 사고난 차나 운전 수칙을 지키지 않는 차들을 통제합니다. 비교적 큰 사고가 나는 경우 보통 10분에서 20분 정도 트랙을 닫고 정리한 다름 다시 여는데 아주 큰 사고가 나는 경우에는 아예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링 카드에 충전한 금액은 환불이 안 되고 다음에 와서 사용하는 수 밖에는 없다고 하네요.
가장 재미있었던 구간은 아래 구간입니다. 노르드슐라이페에서 가장 유명한 Karussel 코너입니다. 외부 이미지로 대신 보여드립니다.
사진 출처: http://www.ausringers.com/images/heidfeld-F106-05.jpg
엄청난 헤어핀이죠. 코너 안쪽에 네모난 모양으로 이루어진 부분은 시멘트 같은 걸로 된 블록들인데 코너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안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덜컹덜컹하면서 저길 돌아서 나오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
사진 출처: http://i717.photobucket.com/albums/ww171/DaOtherOneV2/2009-05-13%20Nurburgring/IMG_1521o.jpg
트랙에 그려져 있는 것은 밤에 사람들이 몰래 들어와서 한 낙서라고 합니다. 아무리 지워도 다시 생기고는 해서 그냥 내버려 둔다네요. 업체 광고도 있고, 응원하는 팀 이름도 있고, 트랙을 돌다가 죽은 사람들 이름도 써 있습니다. 여기서 누군가가 운전하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죠.
위 사진처럼 구경하러 놀러 온 사람도 상당히 많았는데요, 대포같이 큰 망원렌즈를 끼우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댑니다. 제 차가 코너링 할 때도 찍어주던데 왠지 갤러리를 몰고 다니는 레이서가 된 기분이 들어서 으쓱합니다. 하하하!
나름대로 안전하게, 천천히 운전을 하자 다짐했습니다만, 첫 랩을 돌고 나서는 '아 이런거구나' 하는 감이 와서 자신감이 조금 생겼는지 두번째 랩에서는 신나게 달렸습니다. 왼쪽으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슈퍼카들 덕분인지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어 저도 모르게 액셀러레이터를 밟게 되더군요. 두번째 랩에서 좀 무서운 경험을 했는데 초반 코너에서 한국에서 제가 타고 다니던 미니 쿠퍼 생각을 하고 자신있게 코너를 돌다가 오른쪽 바퀴가 약간 들렸다 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왼쪽으로 구를 뻔 한거죠. 완전 쫄아서 그 다음부터는 충분히 속도를 줄인 다음 코너에 진입했습니다.
빠른 차들은 정말 무슨 차인지 확인도 안 될 정도로 총알처럼 지나갑니다. 제가 해 본 유일한 추월은, 딱 봐도 저처럼 초보로 보이는 포르쉐 911 카레라, 폭스바겐 골프 GTI 두 대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차들은 따라가기도 버겁더군요.
체감상으로는 한 5분? 달렸나 싶은데 벌써 나가는 출구가 보입니다. 재미있어서 그런지 시간 가는지 모르겠더군요. 대충 차에 달린 시계로 한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렸나 재 봤는데 10 ~ 15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빠른 차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서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테스트하는 슈퍼카들은 7 ~ 8분에 돈다고 하니 얼마나 빠른지 감이 오나요?
트랙을 나와서는 쿵쾅대는 심장을 누르고 다시 주차장에 차를 세웠습니다. 저기 기념품점이 보이네요.
각종 기념품을 팔고 있습니다. 티셔츠, 타월부터 시작해서 별걸 다 팔고 있는데요, 간단하게 기분만 낼 겸 뉘르부르크링 순정(?) 흰색 스티커를 샀습니다. 한국에서 파는거랑 비슷한데 로고 폰트가 약간 다르더군요. 가격은 비쌉니다. 5유로인가 6유로 줬던 것 같네요.
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는 관계로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향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이미 써킷에 익숙하신 분들께는 어떻게 다가갈 지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트랙을 이렇게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단지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주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온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트랙을 즐기는 사람은 대부분 20 ~ 40대의 남자였지만 여성 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포르쉐 911 카레라를 타고 온 노부부도 보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둘다 헬맷을 쓰고 계셨던 걸로 보아 두 분이 같이 트랙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정말 멋있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놀러온 사람도 많이 보였습니다. 모터 스포츠가 정착되어 있음을 잘 알 수 있더군요. 노르드슐라이페에는 식당이랑 카페테리아밖에는 없습니다만, 아까 설명드린 인포 센터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놀거리가 꽤 있습니다. 마침 제가 갔던 날은 그랑프리 써킷에서 바이크 경기가 열리고 있어서 관람객들이 많았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가족이 구경하러 온 모습이 참 보기 좋더군요.
독일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은 일정 한번 체크해 보시고 꼭 한번 들러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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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의미없는 내용을 교육하고 라이센스 내주는 국내랑은 꽤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