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익명으로 쓰는 이유는 혹시라도 이 글이 문제를 일으켜서 논란이 되면 자유롭지 않을 수 있는 공무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부 공무원으로 이번 정부에서 외교부에서 일을 해 봤습니다.
오늘 사퇴 소식을 접하면서 반기문씨, 그리고 우리나라 외교부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왔던 것을 풀어봅니다. 어쩌면 이 글이 지목하는 대상은 반씨보다는 외교부에 가까울 겁니다. 물론 외교부 분들 열심히 일합니다. 새벽 한시에 외교부 앞에 가면 택시를 기다리는 외교부 직원들이 여럿 있습니다. (아예 택시기사분들 사이에 한시 넘어 손님 찾기 쉬운 곳으로 외교부가 알려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 개인의 노력과는 별개로 우리나라 외교부 시스템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1. 우석진 교수(잘 아시는 우석훈씨의 형입니다. 같은 경제학자)의 페북 글이 촌철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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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영수증 처리를 아무도 안해줘서 접는다. 다 니들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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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반기문씨는 기자들과 만나서 술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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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예전에는 정부에서 차와 사무실을 지원해줬다”며 “이제는 차도 두 대나 사고 운전수와 비서도 고용하고 사무실도 내 돈으로 직접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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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에서 근무해본 저로서는 충분히 나올법한 발언이라고 봅니다.
이해하려면 우선 외교관이 어떤 일을 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외교부에 들어가는 길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무고시 (지금은 국립외교원 입학시험)
다른 하나는 외무영사직 시험 (타 기관의 7급입니다)
마지막으로 타 부처나 민간에서 전입해오는 길입니다.
사실 다른 정부부처도 들어가는 경로는 비슷합니다. 5급 행정고시, 7급이나 9급, 민간경력자 채용...
그런데 외교부가 다른 부처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다른 부처는 5급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7급에서 5급, 4급 승진하면 5급 행정고시 출신이나 같은 일을 맡습니다.
그런데 외교부는 한 번 외무고시로 들어오면 흔히 생각하시는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되고
외무영사직으로 들어오면 아무리 승진해도 영사업무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영사업무란...여러분이 잘 아시는 그거, 재외국민 보호, 외국인에 대한 한국비자 발급 등 보통 궂은 일이죠.
여기에 6~7급 때에는 보통 외국에 나가면 대사관이나 영사관 관리업무도 이 사람 몫입니다. 즉 대사 집(집무공간이라 공식적으로 지원이 됩니다) 얻어주고, 차량 구입하고, 대사관 관리하고, 각종 비용처리하고 하는 잡무들이 전부 영사직 업무이죠.
왜 우리나라 외교공관들이 자주 외국에서 자국민 보호하는 영사업무에 소흘하다고 욕을 먹냐 하면...
저는 이 성골-진골 구조가 결정적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영사업무 잘해봐야 외교관이 되기는 난망이니 영사업무에 동기부여도 잘 되지 않고
(일본도 비슷합니다만, 여기는 아시다시피 대단한 직업소명 의식이 있습니다. 즉 영사직에 머무는 걸 천직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죠. 서양에서는 아예 직업분류제라 영사직에 평생 종사하는 걸 당연시 하구요)
영사직에 더불어 온갖 잡무를 떠맡기 때문에 자국민 보호에 소흘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외무고시로 들어온 이들은 일단 대사관에 파견되면 처음부터 "우아한" 외교업무에만 종사하고, 각종 골치아픈 의전이나 뒷바라지는 영사직들이 알아서 해주는 구조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이걸 수십년간 겪고 나면...
거의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군 장성과 비슷한데, 장성보다도 심한게 처음부터 우아하게 공관생활을 하거든요)
혼자서 뭔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 거란 이야깁니다.
2.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외교부 특유의 과도한 의전입니다.
외교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됩니다. Protocol 과 Substance이죠. 의전과 실질이라고 번역되는데 전자는 외국의 정상 등 귀빈이나 외교관에 대해 갖추는 예우이고, 후자는 실제로 외교의제로 논의되는 것들입니다.
외교상 어느 하나도 소흘히 해서는 안되는 것 맞습니다. 따라서 외교관들은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하게 되지요.
근데 문제는...
우선 실질에 있어서는 외교부는 자국을 대표할 뿐, 실질적인 내용은 각 부처에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국제정치에 속하는 정치적 부분을 빼면 나머지 경제니 문화니 통상이니 하는 실제 교류는 각 부처에서 나온 이들이 만든 걸 그냥 영어로 바꿔서 전달하고 협상안을 다시 우리쪽에 전달하는 역할밖에는 못하죠.
그럼 외교부의 가장 큰 특기(specialty)는 의전이 됩니다. 그런데 이쪽의 문제는...
남에게 해야 할 의전을 자신들, 특히 자기 상사들에게도 적용합니다.
주한대사였던 리퍼트가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를 많이 보여줬습니다. 야구복 입고 개 끌고 광화문 산책도 하고 , 야구장도 가고, 사람들과 격식없이 어울리기도 했죠.
그런데 우리나라 직업 외교관들은 이게 안됩니다. 여름에 타 부처 사람들이 반팔 와이셔츠로 출근해도 외교부 사람들은 상당수가 긴팔셔츠에 타이를 매고 나오죠. 외교공관에 있을 때부터 격식차리고 행동하는 의전행태가 몸에 배어서 그렇습니다.
앞에서 나왔지만, 반기문같은 외시 출신들은 국내에서 과장 정도 할 때부터 외국에 나가면 거의 모든 것을 영사직들이 알아서 챙겨주는 의전문화에 푹 젖어 있습니다.
이번 반기문 해프닝의 출발점이자, 제가 이 분 어렵겠다고 생각했던 사건은...다른 분들보다 좀 더 빨랐습니다. 바로 귀국 하루전에 있었던 인천공항 의전실 요구 건이죠.
반기문 캠프에도 정치쪽에서 들어간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이런 외교관 출신의 약점을 훤히 꿰고 있었기 때문에 귀국할 때 서민행보로 지하철로 귀가하는 방안을 제시했겠죠. 그리고 그게 받아들여졌구요.
그런데 불협화음이 터져나옵니다. 같은 캠프에서 인천공항에 전화를 해서 총장님 들어오시니 귀빈실을 확보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거의 100% 확신컨데 외교쪽 캠프 사람들이 했을 겁니다.
이를 인천공항에서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난감해 하고, 요즈음 박근혜가 보이는 의전 행태에 신물이 난 어느 직원이 내부고발을 해서 언론에 나게 되었을 겁니다.
이분들에게는 전직 장관님이자 국빈급인 유엔사무총장님이 귀국하는데 귀빈실을 예약하는 것은 숨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protocol 의전 매뉴얼이었던 거죠. 그게 어떻게 보일지는 전혀 고려대상이 안됩니다.
*박근혜가 가는데마다 변기를 교체하는 등 과도한 의전으로 많은 기행을 일삼았는데... 사실 본인도 70년대 아빠나 본인이 받던 왕같은 의전에 익숙한 탓도 있지만, 그걸 조금도 지금 시대에 맞게 조정하기는 커녕, 알아서 부추킨 전직 의전비서관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외교부 내부에서조차 이 사람의 과도한 심기의전은 분노와 경멸의 대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3. 마지막입니다. 평생을 좁은 외교부 커뮤니티 속에서 부대끼다 보면 그들만의 가치기준이 만들어지고 외부의 시각을 못 받아들이게 됩니다.
직장생활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리고 공무원들이 이런 경향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반 부처나 지방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대민 업무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타 기관으로 옮기면서 보다 보편적인 사고에 익숙해지고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어느정도 자유스러울 수 있는 반면,
외교부 분들은 보통 20대 중반 정도에 입부해서 30년 이상을 내부에서 지내며, 외교공관과 외교부를 돌면서 폐쇄적인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대민 업무도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영사직에게 주로 맡기고, 타 부처 경험도 없고, 친구들 만나는 것도 아무래도 공관을 오래 돌다 보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국 외교부 사람들 끼리만 어울려 밥먹고 수다떨고... 이러다 보면 그 내부의 가치관이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페북에서 아는 분 중에 외교관을 하다가 그만두고 음식점을 차려 나름 성공하신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원래도 야당에 비판적이긴 했지만 이번 반기문총장 입국 얼마전부터 열렬한 반기문빠로 모든 반기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에 대해 반박하는 포스팅을 꾸준히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 유명한 "에비앙 생수 사들었다가 보좌관이 국산생수로 바꾼" 사건에 대해 반박하는 포스팅은 이런 논리입니다.
"외교관으로 생활하다 보면 어디 가나 에비앙을 집어들게 되어 있다. 후진국에 가서 근무하면서 해당국가 물 잘못 마셔서 고생한 경험이 없는 외교관이 거의 없고 그래서 잘 알려진 물을 집어들기 마련인데 그걸 트집잡는게 말이 되나?"
앞에서 짚은 전형적인, 외교부 내부에서는 상식인, 그러나 밖에서 정치인으로서는 1그램도 설득력이 없는 논리이죠. 제가 놀란 건 이미 이 분이 외교부를 나와서 민간에서 장사를 하면서 수많은 이들과 부대낀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철저하게 외교부 사람의 가치기준으로 사안을 보고 있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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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맨 마지막 이야기는 꼭 외교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치인 중에서도 저런 이들이 많죠. 평생 자기가 속한 집단과만 교류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상식으로 여기고 상식과 어긋나게 판단하는. 꼭 보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저는 진보건 보수건 저렇게 집단논리에 매몰된 이들이 제일 위험하다고 봅니다.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