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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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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5 11:01:37

 

관람일자 : 2017/2/18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더블캐스팅 : 정재헌,진선규,김종현,홍지희,정선아,서예화,양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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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로에는 유독 쏠림 현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물론 특정 공연의 쏠림 현상은 늘 있어왔지만 요즘은 툭하면 전석매진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 때아닌 예매전으로 녹초가 되지 않으려면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다. 배우 이름값으로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라면 매진으로 취소표 구해야 하는 상황에 그러려니 하겠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작품 인지도로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남은 회차 전석 매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나 하나 부빌 자리 하나 정도는 할인석으로 여유있게 남아있겠지, 하며 뜸들이다 예매할 상황도 아니게 됐다. 관심을 둔 작품이라면 적당히 할인 적용하여 가격인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리부터 잡아두는게 상책이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신작이자 201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우수신작 선정 작품으로 이번에 창작 초연된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도 까딱했다간 자리도 못 구하고 재공연을 기다릴뻔했다. 최근에 인터넷 예매창을 수시로 띄워가며 취소표를 구걸하다 못 구하고 포기한 작품이 많았다. 그것도 다 창작 초연이어서 무슨 검증도 안 됐고 믿어 의심치 않는 스타가 출연하는것도 아닌 창작 초연이 이렇게 입소문의 위력으로 암표라도 나올 분위기인가, 싶어 당황했다. 해당 작품들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와 [어쩌면 해피엔딩]이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재공연도 있었다. 세편 다 나 하나 부빌 자리 하나 구하려고 습관적으로 낮이고 밤이고 새벽이고 예매창을 띄우며 공을 들였지만 낚시에 실패했고 결국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홍광호 나온다는 [미스터 마우스]재공연처럼 순식간에 표가 빠져나가 못 잡은것은 아니었고 어영부영 넘기며 고민하고 재다가 적기를 놓쳐 버린 탓이 컸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 [어쩌면 해피엔딩]은 공연 초중반까지는 언저리 좌석 정도는 할인 받아 구하기 수월했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작년에 예매했을 때 봤어야 했는데 움직이기 귀찮아서 취소수수료까지 물고 취소한게 화근이었다. 특히 공연 중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노른자위 상을 석권한 뒤에는 완벽하게 탄력을 받아 잔여석이 싹 빠져나갔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내가 '팬텀싱어'를 보는것은 아니지만 고훈정 출연회차만 깔끔하게 털렸길래 오기로 고훈정에 전미도를 맞췄고 김재범만은 피해서 예매기준을 까다롭게 두었더니 도무지 원하는 출연회차의 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서두르지 않은게 실수였다. 명동예술극장 공연이 매진이 잘 되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면 조기예매 기간에 미리미리 손을 써두는게 좋은데 이 작품은 관심이 없다가 평이 하도 좋아서 마음이 기울어진것이다.

 

명동예술극장 공연들은 평이 좋으면 좋을수록 출연진이나 제작진과 무관하게 매진으로 이어진다. 일찌감치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선 매진됐다고 예매창을 막아놨고 대행 예매처에서 한 50번 정도 취소표를 구하려고 뒤지다 포기했다. 나는 추가로 돈을 지불하고 인터파크같은데서 예매대기 서비스를 받는것은 선호하지 않아서 취소표 나올 때만 기다리며 하루 일과의 일부로 취소표 잡는데 공을 들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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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신인류의 백분토론]이 전 회차 전석 매진됐다는 기사가 나와서 어라? 싶었다. 또 한편의 급속도로 입소문이 나서 괴력을 발휘하는 창작 초연작이 등장한것이다. 언론의 소식은 뻥이 아니었다. 예매처 접속해보니 진짜로 매진된게 맞았다. 홍보용 가짜 매진작이 아니었다. 미리 선점해서 보길 잘했다. 이번엔 다행이도 예매전에서 좌초됐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나 [어쩌면 해피엔딩]의 예매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았다. 입소문 나기 전에 움직였다. 작품을 보고 나서 입소문이 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고작 100석 조금 넘을 뿐인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을 매진시킬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이 소극장 중에서도 소극장 객석 규모을 갖고 있지만 매진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거기다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소극장 공연 정도는 매진시킬 수 있는 티켓파워의 배우도 출연하지 않는 작품이었다.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자리가 남아 돌았었다. 그래서 애가 탄 기획사는 인터파크과 연동되는 신한올댓에 반값으로 가격을 인하하여 지정석 예매로 추가했다. 2월 11일부터 2월 24일까지의 공연 중에서 2월 10일 개막공연을 포함하여 6회차를 제외한 나머지 회차를 신한올댓에서 반값에 구할 수 있었다.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인터파크 단독판매로 예매가 진행된 작품이다. 그럼 내가 언제 예매했을까. 얼마 안 됐다. 선점 기간이 빨랐던것이 아니다.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2월 10일 개막했고 나는 그 전 날 예매해서 진선규 출연회차로 일정을 조정하여 2월 18일 공연을 본것이다. 개막 전날에는 자리가 조금 빠져 나간 상태이긴 했지만 날짜만 잘 맞추면 맨 앞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서 봤다.

 

원래 1월에 예매하려고 자리를 알아보다가 신한올댓에서 30프로 할인해주던 기간을 놓쳐서 할인률이 추가되길 기다렸다가 반값 할인률이 적용되길래 자리를 잡은것이다. 신한올댓에서 30프로 할인되던걸 날리자 딱히 할인을 받을만한 경로가 없었다. 할인률이 추가될거라고 예상을 했던게 2월 초까지만 해도 무분별한 초대권 공연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을만큼 잔여석이 남아 돌았었다. 근데 개막 후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됐다. 객석에 있을 땐 입소문으로 매진됐는줄도 몰랐다. 현장에서 자리가 꽉 찬것을 보고 또 초대권 오지게 뿌렸나 보다, 하고 넘겨 버렸는데 그게 초대권이 아니라 매진사태로 몰린 자발적인 유료관객들이었다니. 알려진 배우라곤 진선규 정도만이 출연하고 있지만 작품의 내공과 재미가 야무지게 여물져 있어서 급속도로 퍼진 입소문으로 자리를 구걸해야 하는 상황에 수긍이 간다. 기대이상의 완성도와 재미에 흡족했기 때문에 작품의 진가가 유료예매로 증명된것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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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예매를 했고 관람 전까지 굉장히 불안했던 작품이었다. 창작 초연인데다 주제가 명확하게 답을 낼 수 없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이다. 인류의 시작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근데 인류의 시작과 함께 종교도 발전했다. 종교적인 시각에서 인류의 기원을 풀어내려는 시각 역시도 지금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학교에서는 진화론으로 인류의 기원을 밝혀내고 있지만 창조론을 믿는 이들에겐 그저 편의상 구분된 학문의 일종으로 구분된 오류로써 치부하면 그만인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각 계의 입장표명과 신경전은 남자의 군대와 여자의 출산을 비교하는것만큼이나 설전으로만 얼룩질 사안이기 때문에 주제 선정만으로도 아득했다. 너무 주제가 거대했고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주제 자체는 좋았다. 근데 워낙에 민감하고 책잡히기 딱 좋은 소재라서 과연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을 텔리비전 공개 토론 형식을 빌려 그리는 극의 취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어줍잖게 변죽만 울리다 그칠까봐 우려가 됐던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궁금했던건 우려한대로 어줍잖더라도 주제 선정에 대한 도전 정신이 보여 흥미로웠고 얄팍한 먹물 근성으로 변죽만 울리다 그치는것이다 하더라도 한번쯤 진지하게 거론할만한 소재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텔레비전 '100분 토론'의 형식을 빌려온 발상도 괜찮았다. 그리고 2016 창작산실 기획력이 준수한 편이라 기획력의 연장선격인 흐름에서 안심이 됐으며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에 대한 신뢰도 작용했다. 압도적인 작품을 내놓는다거나 강력한 뚝심을 박아 넣는건 아니지만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그동안 꾸준히 선보였던 소박한 소품의 정서와 따뜻함, 안정적인 흐름은 어느새 견고한 믿음으로 생성되어 작품 선택의 근거지를 마련해주고 있다.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신작인 [신인류의 백분토론]을 보자 다음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신작은 기획사 이름만 믿고도 의심하지 않고 선택하게 될것같다. 이거 보통 내공으로 완성된 작품이 아니다. 희곡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탄탄한 구성, 언어유희, 주제에 걸맞는 풍부한 인용과 해석의 노련함으로 객석을 쥐락펴락 흔든다. 감당하기 힘든 주제를 거뜬히 휘어잡는 서사의 힘과 책임감이 극의 밀도를 높였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민준호가 학창시절부터 준비했던 작품이라는데 현재의 완성본을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연구했다는것이 엄청난 대사량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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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흥분하고 막말하며 대립하는 공개방송 토론회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6명의 토론 참가자들의 히스테리에는 실제 역사에서 오랜 기간 연구되고 발전된 학문의 결과를 토대로 도출된 증거사례로 가득하다. 쉴틈없이 쏟아지는 대사에 압축된 진화론과 창조론에 입각한 각 주장들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가 방대한 범위로 꼼꼼하게 예습하고 복습해서 대사 한 줄을 지어내기 위해 공을 들인 노고가 느껴진다. 극의 상황은 충분히 흥분돼 있고 복날 장바닥의 열기가 따로 없지만 배우들이 즉홍연기를 펼칠 수 없는 구성이다. 그만큼 각자 뚜렷한 개성을 보유한 토론 참여자들이 거만한 태도로 상대방의 약점을 들쑤셔내며 자신의 주장에 취해 있는 모습에는 정확한 배경의 이해와 축적된 지식의 여유가 함유되어 있어서 정확한 역할 범위를 지정해주고 있다.

 

작가는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진 인류 기원의 역사에서 떠올려 봄직한 모든 사안을 다 펼쳐내어 공감대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과학, 수학, 물리학, 각종 인문학적 사례와 연구결과들이 배우들의 대사와 자료화면까지 더하여 총동원되는데 온갖 지식의 푹주에 보고 듣다 보면 얼떨떨할 지경이다. 텔레비전 '100토론'의 형식을 근사하게 옮겨 관객을 100분의 상연시간 동안 녹화방송 방청객으로 만들어내는 이 작품은 흔히 볼 수 있는 t.v토론회의 특징을 재치있게 끄집어 내어 관객의 공감대 형성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t.v토론회의 세트를 그대로 재현한 세련된 무대구성과 그 안에서 관객이 아닌 방청객 역을 하게 되는 객석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입체적인 효과는 무대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다. 같은 구성으로 [신인류의 백분토론]같은 형식의 작품이 매체 변환이 된다면 현재와 같은 체험효과는 일으킬 수 없을것이다.

 

배우들이 공연 전과 극 전개상의 중간 휴식시간을 활용하여 녹화방송 과정의 생동감도 재현해서 녹화방송 체계를 응용한 방식도 신선했다. 전문적인 지식이 포함돼서 암기하기 까다로운 대사들을 능청스럽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재능도 극의 몰입도를 돕고 있다. 등장한 뒤 한번도 무대 밖을 벗어나지 않는 7명의 배우들은 각자에게 부여된 개성을 온전하게 통제하며 주제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구성을 유쾌하게 즐기고 있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을 풍자정신으로 살려낸 극의 기운에 힘입은 배우들의 연기는 앙상블 효과에도 성공하며 극을 더욱 매력있게 빛내주었다. 특히 못 웃기는 개그맨 출신으로 허풍과 입담을 드러내는 김종현을 주목할것. 외모와 표정에 다양한 얼굴이 숨어 있는 배우로 차기작이 기대된다. 종교인으로 창조론에 취하여 자신의 개인사를 밟히다가 감정에 빠져서는 울먹이는 다혈질 박사의 정선아 연기는 압권이었다. 배우들이 심각한 연기를 할수록 객석은 뒤집어 지는데 이성혜가 눈물을 보이며 상황을 과장시키는 극의 절정에 이를 때 객석 여기저기에서 극의 상황이 웃기면서 공감이 가니까 키득거리고 일부는 너무 웃겨서 눈물을 빼면서 보기도 했다.

 

막판에 반전이 있는데 사회자 이름이 신석기이고 제목에 '신인류'가 들어있다는게 반전에 대한 암시이다. 그러나 반전의 묘미로 극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리 놀라운 반전도 아니고 심각하게 여길만한 전환 방식도 아니다. 극의 전반을 완전히 뒤집는 파격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지만 액면 그대로의 반전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형식상의 묘미로 이해했기 때문에 반전이 그 전의 구성을 부정하는것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아무리 t.v토론회의 구성을 빌렸다지만 전체 구성을 t.v토론회의 재현만으로는 지탱할 순 없는것이다. 그래서 보다 이야기답게 마무리 짓기 위하여 결말을 위한 결말로써 고안해낸게 현재와 같은 애교스러운 반전 구성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의 SF적인 설정의 반전 처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가벼운 SF콩트의 반전을 봤을 때처럼 부담이 없으며 해학적인 방식으로 읽힌다.

 

 - 진선규가 삭발을 하고 나왔길래 처음엔 도올 김용옥을 풍자했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영화 [범죄도시]의 촬영 때문에 머리를 민것이었다.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출신의 조직폭력배 역할의 사실성을 높이려고 삭발을 감행했다고 한다. 사회자 역의 정재헌은 음색이나 외모나 연기가 김석훈과 똑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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