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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대]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인생과 작품세계 (2) - 터미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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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08-03 11:41:45



글 | 김정대(adoinel21@gmail.com)


DP에서는 김정대님의 '제임스 카메론 특집' 시리즈의 복원을 기념하여 복원 순서대로 10여년 전의 글을 다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읽는 재미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이미 김정대님의 글을 읽은 분들은 물론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 일독을 강력 추천합니다. 시리즈의 첫번째 글을 아직 못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 운영자 드림
http://dvdprime.donga.com/g2/bbs/board.php?bo_table=dpinfo&wr_id=12708

 



0. "A New Hope" -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의 시작


<피라냐 2>의 실패 후, 짐 카메론의 영화인생은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던 청년 짐은 <피라냐 2>의 제작과정에서 이상과는 다른 ‘충격적인 현실’을 몸소 체험한 뒤 한 동안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샤론과 짐의 경제 상황은 점점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보다 짐을 더 괴롭힌 것은, ‘앞으로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1. (그나마) 짐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로저 코만의 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즉, 뉴월드 픽쳐스에서 특수효과맨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여, 싸구려 영화를 감독할 기회를 틈틈이 노리는 것이다. (적어도 샤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만큼 ‘안전한’ 선택은 없었다.)


2. 일생일대의 도박을 감행하는 것이다. 즉, 남 밑에서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받아서 <피라냐 2>와 같은 싸구려 영화를 만드는 대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짐의 선택은 당연하게도 후자였다. 짐은 만일 뉴월드 픽쳐스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남은 영화인생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C급 영화 감독 혹은 스탭으로 끝나고 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짐이 후자의 도박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신만의 이야기’였다. 뉴월드 픽쳐스 밖에서는 완전히 무명인 데다가, <피라냐 2>라는 ‘핵폭탄’까지 맞은 짐에게 선뜻 ‘괜찮은 영화’의 감독을 맡길 영화 제작사는 있을 리 만무했다. 


짐의 계획은 간단했다: 기막힌 이야기를 만들어 제작사를 ‘현혹’시킨 다음, 그 이야기를 직접 영화화하겠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모든 제작사가 군침을 흘릴 만 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단,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짐의 장기(‘특수효과맨’으로 맹활약했던)를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이야기에 필수적인 요소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짐의 뇌리에는 문뜩 로마에서 꾸었던 ‘악몽’을 기록한 메모가 떠올랐다. (연재 글 1편의 ‘에필로그’ 부분 참조) ‘궁극적인 로봇 이야기(Definitive Robot Story)라! 갑자기 짐의 체내에는 엔돌핀이 무스타파 행성의 용암처럼 마구마구 샘솟기 시작했다.


Rise, Terminator!


짐은 자신이 꾼 ‘악몽’의 내용과 어린 시절 보았던 TV용 SF 시리즈물, 코믹북에 실린 SF 만화들 등의 아이디어를 적절히 뒤섞은 뒤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해 근사한 SF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가 만든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미래로부터 안드로이드 ‘자객’ 하나가 급파된다. 안드로이드의 임무는 ‘장차 인류를 구원할 전사’를 잉태할 여자를 ‘제거(Terminate)’하는 것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미래로부터 한 명의 인간 전사가 안드로이드의 뒤를 따라 현재로 오게 된다. 짐은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의 이야기 중 하이라이트 부분은, 바로 하반신이 잘려 나간 안드로이드가 부상을 당한 여자를 뒤쫓아 ‘기어가는’ 장면이었다.


저 식칼은 혹시 <할로윈>의 마이클에게서 빌려온 것?


짐이 작성한 이야기는 약 45페이지 분량이었다. 짐은 이것을 절친한 동료 윌리엄 위셔에게 보여주었다. 위셔는 순간, 그것이 ‘대박 영화’가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위셔는 1991년 스타로그(Starlog)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짐은 언제나 ‘장르 영화 이상의 장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만일 짐이 그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면, 그것은 짐이 꿈꾼 바로 그런 영화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위셔의 격려에 고무된 짐은 이야기를 더욱 깔끔하게 다듬은 뒤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야심 찬 차기 프로젝트’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짐의 기대와는 달리 에이전트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야기를 읽은 뒤 에이전트는 이렇게 외쳤다. “아냐, 아냐! 이건 형편없는 아이디어일세!” 그 말을 듣고 ‘살짝’ 뚜껑이 열린 짐은, 에이전트를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자네는 해고야!


 

1. "Pain Can Be Controlled!" - 신화의 시작


‘레퍼런스급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직감한 짐에게 다음 단계는 그것을 완전한 형태의 각본으로 다듬는 일이었다. 그러나 짐에게는 그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궁핍한 재정 상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다시 뉴월드 픽쳐스의 대문을 노크했다. 짐은 한 때 동료였던 아론 립스타드가 연출할 저예산 SF 영화 <안드로이드 Android>(1982)의 디자인 컨설턴트 직을 맡게 됐다. 약 2주 동안, 그는 프로덕션 디자인 팀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 생긴 약간의 돈으로 그는 본격적인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 


짐은 각본 작업 시 음악을 트는 습관이 있는데, 그가 ‘작업용 배경 음악’으로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바흐와 홀스트(짐의 성향을 보면 대충 짐작 가시겠지만, 홀스트의 작품 중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물론 ‘행성’이었다)의 작품들이었다. 이 시기, 짐에게는 두 명의 조력자가 있었다. 한 명은 앞서 언급한 윌리엄 위셔였다. ‘초짜 각본가’였던 짐에게 위셔는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다른 한 명은 바로 뉴월드 픽쳐스 시절에 인연을 맺은 바 있는 게일 앤 허드였다.


게일 앤 허드


샤론과는 달리 게일 앤 허드는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인텔리 여성이었으며, 무엇보다 ‘업무’에 있어 짐과 호흡이 착착 맞았다. 그녀는 1982년 독립 제작사인 ‘퍼시픽 웨스턴 프로덕션 Pacific Western Productions을 설립하고 <터미네이터>의 제작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짐과 그녀는 ‘업무상’ 만나는 것이었으나,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들 사이에는 ‘업무를 넘어선 유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이미 뉴월드 픽쳐스 시절에 첫 대면했을 때부터 ‘눈이 맞았던’ 것이다. 게일 앤 허드는 짐의 <터미네이터> 초고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리고 각본 작업에 여념 없는 짐의 어깨를 수시로 두드리며 동료로서 - 그리고 ‘여자’로서 -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내주곤 했다.


한편, 여전히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던 짐은 부업으로, 극장 개봉 없이 곧장 비디오로 출시되는 싸구려 영화 비디오테이프의 포스터를 그려주는 일을 맡기도 했다. (짐의 그림 그리는 재주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짐이 포스터를 그려준 영화가 어떤 것이었냐고? 한마디로 ‘끔찍한(Terrible) 영화’들이었다. 아마도 ‘비디오 키드’ 세대들이라면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의 자켓에 그려진 현란한 포스터만 보고 완전히 생소한 제목의 싸구려 영화를 빌려보았던 경험이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포스터에 그려진 장면이 영화 속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짐은 바로 그런 형편없는 영화들의 비디오테이프 케이스용 포스터를 그려주고 있었다. 영화를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포스터를 그리곤 했으니, 짐이 그린 포스터의 장면이 영화 속에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터미네이터> 국내 개봉 당시 포스터. ‘끝내주는 문구’가 여럿 보인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푸레미아 로드쑈’!


<터미네이터>의 1차 각본을 완성한 짐은 그것이 제작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제작사도 ‘시한폭탄 초짜감독’ 짐에게 <터미네이터>의 감독을 맡길 리 없다는 것이었다. 짐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혼으로부터 의지하던’ 동료 게일 앤 허드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터미네이터>의 모든 권리를 게일 앤 허드에게 ‘단돈 1달러’만 받고 넘긴 것이다! 대가는? 물론 짐 자신이 <터미네이터>의 감독을 맡는다는 것이었다. 짐과 게일의 ‘1달러 계약’은 명목으로는 ‘사업 상 계약’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에 관한 한 두 사람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피의 맹세’나 마찬가지였다. ‘1달러 계약’을 체결한 직후, <터미네이터>의 제작자로서 게일 앤 허드는 짐과 함께 영화의 제작을 맡을 스튜디오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짐의 예상대로, 적지 않은 스튜디오의 간부들이 <터미네이터>의 각본을 읽은 뒤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짐과 게일이 내건 ‘조건’이었다: 그들은 <터미네이터> 프로젝트를 ‘3종 박스 세트’(각본 - 제작자 게일 앤 허드 - 감독 짐 카메론)로만 팔고, ‘낱개 타이틀(각본)’로는 팔지 않겠다고 고집한 것이다. 스튜디오 입장에서 무명 여류 제작자와 초짜 감독에게 수백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자한다는 것은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대다수의 스튜디오는 ‘각본만 팔지 않으면, 프로젝트에 돈을 댈 수 없다’며 <터미네이터> 프로젝트를 단호히 거절해버렸다. 각본을 본 뒤 충분한 가능성을 엿본 일부 스튜디오의 간부들은 어떻게든 짐과 게일을 ‘박스 세트’에서 떼어놓으려고 ‘이간질 정책’을 펴기도 했다. 어떤 간부는 짐에게 게일을 떼어놓고 자기들끼리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고, 다른 이는 게일에게 ‘만일 짐 대신 다른 이에게 감독을 맡길 것을 허락한다면 제작비로 1백만 불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유혹하기도 했다. 물론 짐과 게일은 이런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들은 ‘3종 박스 세트’를 구입할 스튜디오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야심만만하게 출발한 <터미네이터> 프로젝트는 제 값에 풀리기도 전에 ‘염가 할인 판매’로 돌아서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1달러 팀’은 용감했다


그러나 스튜디오들의 거절이 거듭될수록, 그들은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의 가치를 더욱 확신하게 됐다. 영화를 제작할 대규모 스튜디오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1달러 팀’은 다음 단계로, 중소 규모의 제작사 문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3종 세트’에 관심을 가진 이를 찾아냈다. 바로 헴데일 영화사(Hemdale Pictures)의 운영자였던 존 데일리였다. 다른 제작자와는 달리 진취적이고 모험심 강했던 데일리는 <터미네이터>의 줄거리를 들은 후 짐과 게일에게 직접 만나 프로젝트에 대해 의논할 것을 요청했다. 데일리에게 잘만 보이면 영화 제작이 가시화되리라고 믿은 짐은 한 가지 ‘계략’을 떠올렸다. 짐은 곧장 <피라냐 2>의 촬영장에서 인연을 맺은 배우 랜스 헨릭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랜스 헨릭슨 버전 터미네이터


짐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랜스 헨릭슨을 ‘터미네이터’로 분장시키는 일이었다. 짐은 담배갑에서 뽑은 금박지로 랜스 헨릭슨의 이를 감싸고, 머리를 ‘로봇 형’으로 다듬었으며, 찢어진 펑크 록 스타일의 티셔츠를 그에게 입혔다. 랜스 헨릭슨은 데일리와 짐의 약속일, 짐이 도착하기 30분전에 데일리의 사무실에 먼저 도착했다. 그는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와 데일리의 책상 앞에 ‘포즈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근 3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데일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무실의 여비서는 황당한 사태에 어쩔 줄을 몰라 구석에서 조각상처럼 굳어져 있었고, 겁에 질린 데일리는 곧 창문으로 뛰어내릴 태세였다. 


데일리가 경찰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 찰나, 그날의 주인공 짐이 등장했다. 짐의 ‘해명’을 들은 데일리는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에 더욱 열성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짐이 꾸민 ‘작은 쇼’는 멋들어지게 성공했던 것이다. 결국 데일리는 <터미네이터>의 제작비로 4백만 불을 내놓겠다고 제안했다. 짐은 <터미네이터>를 제대로 제작하려면 최소한 8백만 불의 제작비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대안이 없었다. 결국 ‘3종 박스 셋’은 존 데일리-헴데일 영화사에 낙찰됐다.



2. "Trust Me" - 미스터 터미네이터


영화 제작에 청신호가 켜진 뒤, ‘1달러 팀’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기계 인간’과 카일 리스 역을 맡을 배우를 고르는 일이었다. 최초에 짐이 생각한 ‘터미네이터’는, 우리가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근육질의 거인’이 아니라 ‘약간의 안면 카리스마가 있는’ 보통 체구의 남자였다. <터미네이터 2>의 T-1000(로버트 패트릭)을 생각하시면 대략 맞다. 한때 짐은 헴데일 영화사에서 멋진 ‘쇼’를 연출한 랜스 헨릭슨을 터미네이터 역으로 고려하기도 했다. 또한 초기에 그는 <특전 유보트 Das Boot>(1981)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유르겐 프록나우를 터미네이터의 강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그러나 유르겐 프록나우는 ‘대사가 너무 없다’는 이유로 터미네이터 역을 거절했다!) 


그런데, 캐스팅 과정에 변수가 생겼다. 헴데일 사와 <터미네이터>의 배급 계약을 맺은 오라이언 픽쳐스의 제작 부장인 마이크 메다보이가 끼어든 것이다. 그는 짐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 : “‘터미네이터’ 역을 풋볼 스타 출신인 O.J. 심슨에게, 그리고 카일 리스 역을 근육질 배우인 아놀드 슈왈츠네거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나?”


Hey, Mr. Terminator!


말이 제안이지, 이건 사실상 ‘지시’나 다름없었다. 다행히도 이 중 O.J. 심슨 건은 본격적으로 검토되기도 전에 ‘예선 탈락’ 됐다. O.J. 심슨이 ‘너무 착하게’ 생겨서 못된 로봇 역을 하기에는 부적당하다는 게 이유였다. 문제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였다. 짐은 아놀드가 최근에 <코난: 바바리안>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전에 <뉴욕의 헤라클레스> 등에서 형편없는 역을 맡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놀드가 카일 리스의 역을 맡는다는 것은 짐에게는 정말 끔찍한(Terrible) 아이디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카일 리스가 ‘주인공급’ 캐릭터이긴 하지만, 덩치가 산만한 아놀드가 그 역을 맡을 경우 자칫 ‘보통 체구’의 터미네이터가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위험성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짐의 눈에 아놀드는 ‘연기를 하는 배우’로 보이지 않았다. 아놀드의 투박한 오스트리아식 악센트도 큰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사실상 그의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뉴욕의 헤라클레스>에부터 성우가 그의 목소리를 새로 더빙했겠는가? 더구나 카일 리스는 <터미네이터>에서 영화의 배경을 모조리 설명해주는 내레이터 역할까지 해야 하는 ‘말 많은’ 캐릭터였다. 여러모로 아놀드에게 카일 리스의 역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짐에게는 오라이언 픽쳐스 제작부장의 지시를 일언지하에 거절할만한 파워가 없었다. 짐은 결국 아놀드와 점심 약속을 잡고, 그를 ‘스스로’ 프로젝트에서 물러나도록 만든다는 계략을 세웠다. 즉, 점심 식사를 하면서 그에게 시비를 걸어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에서 정나미가 떨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선 오라이언과 헴데일 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아놀드는 정말 형편없는 배우더군요!”라고 외칠 예정이었다. 짐은 대략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아놀드와의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안녕, 아놀드?


그러나 막상 아놀드와 대면한 짐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신의 ‘계략’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첫째, 막상 실제로 보니 아놀드의 체구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자칫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짐의 몸은 ‘한방에’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둘째, 짐을 대하는 아놀드의 태도가 너무나도 ‘젠틀’했기 때문에 짐은 애초의 계략 따위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게 됐다. 짐은 어느덧 - 계획과는 달리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놀드와 함께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아놀드는 이미 짐과의 첫 만남을 가지기 이전에 에이전트로부터 <터미네이터>의 각본 초고를 건내받아 ‘숙독’을 한 상태였다. 이 자리에서, 아놀드는 <터미네이터>에 관한 자신의 의견들을 진지하게 내놓았다. 짐은 시간이 갈수록 이 거구의 배우가 발산하는 묘한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됐다.


짐은 <터미네이터 2>의 제작 직후 US 위클리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이 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아놀드)은 정말 특이한 얼굴을 가졌군!’ 나는 하마터면, ‘어이 아놀드 씨,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가만히 좀 있어 보시지요? 관찰 좀 합시다!’하고 외칠 뻔 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이 터미네이터 역을 맡으면 끝내주겠군! 그런데 아마 맡으려 하지 않겠지?’”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날 아놀드는 정작 자신에게 제안된 역인 카일 리스보다 터미네이터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매력적인(Charming) 캐릭터라면서 말이다. 아놀드의 이런 태도로 인해 짐의 ‘확신’은 더욱 굳어져갔다. 헴데일 사의 사무실로 돌아온 짐은 존 데일리에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함께 전했다. “데일리 씨, 아놀드는 카일 리스 역을 맡을 인물이 아닙니다. 그건 잊어버리시죠! 대신 그에게 터미네이터 역을 맡깁시다!” 어리둥절한 데일리는 짐의 주장대로, 아놀드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어 터미네이터의 역을 제안했다.


이야, 이거 멋진걸!


기실, 짐은 아놀드가 터미네이터의 역에 매력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쉽게 그 역을 수락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비록 ‘주인공급’ 이긴 하지만 터미네이터는 명백히 ‘악역’이었다. 둘째, 대사가 너무 적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터미네이터가 내뱉는 대사의 양은 ‘단어의 수’로 따지면 총 74개(!)에 불과하며 ‘문장의 수’로 따지면 고작 17개(!)이다! 영화 속에서 터미네이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가 총 27명에 달하니, 아놀드가 소화할 ‘문장’의 수는 이 희생자의 수보다도 더 적은 것이었다. 


그나마 그 몇 안 되는 대사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더빙(터미네이터의 ‘음성 변조 기능’에 의해)되어야 하는 것과, 다른 배우의 대사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영리한’ 짐은 아놀드를 설득하기 위해 또 하나의 묘안을 짜내게 된다. 그날, 아놀드에게는 짐이 그린 그림 한 장이 배달됐다. 그림에는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다.


어때요, 아놀드 씨? 멋지지 않나요?


이 그림을 본 아놀드는 곧장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어 터미네이터 역을 맡겠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놀드의 캐스팅 계약은 정식으로 체결됐다.


아놀드가 터미네이터 역으로 확정되자, 영화의 분위기는 당초 짐이 구상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것으로 변했다. 본래 짐이 꿈꾼 <터미네이터>의 분위기는 느와르 풍의 ‘극 리얼리즘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거대한 체구’의 아놀드가 터미네이터 역을 맡게 되자, 영화의 분위기는 본래의 의도보다 한층 과장된 ‘다크 판타지’에 가까운 것으로 돌변했다. 이제, 연출에 있어서 짐이 포커스를 맞출 부분은 ‘황당무계한 느낌을 효과적으로 줄여서 최대한 현실성 넘치는 SF-판타지극’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터미네이터 역이 정해지자, 짐의 다음 고민거리는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의 역으로 옮겨갔다. 터미네이터 역을 ‘헤라클레스’ 급의 배우가 맡게 되자, 영화의 실질적 히어로인 카일 리스의 역은 ‘비교적 평범한 타입의’ 배우가 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됐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거구의 ‘살인 로봇’ 과는 달리, 남자 주인공 카일 리스는 ‘모성애를 유발할 정도로’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졌지만, 의지와 사명감만은 ‘레퍼런스급’인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남자 캐릭터의 체격이 심할 정도로 대비되는 것은 영화의 플롯에 묘한 긴장감을 심어주는 역할도 할 것이라는 게 짐의 계산이었다. 짐은 결국 뉴월드 픽쳐스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배우 마이클 빈에게 카일 리스의 역을 맡겼다.


마이클 빈과 짐 카메론


사라 코너 역을 맡을 여배우를 고르는 것도 짐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다. 각본에 의하면, 사라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지극히 평범한 여성인 동시에, 후에 ‘인류의 지도자가 될’ 아들을 길러낼 강인한 여성으로서의 기질도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따라서 상당한 연기력과 ‘안면 카리스마’가 요구되는 배역이었는데, 문제는 비교적 - 몸값이 싼 - 무명인 여배우 중에서 이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해 낼 이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선택은 몇 편의 B급 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배우 ‘린다 해밀턴’이었다. 짐은 린다 해밀턴을 보는 순간, 자신이 원하는 ‘유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진 여성 이미지’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직감했던 것이다. 짐은 또한, 적지 않은 신세를 졌던 배우 랜스 헨릭슨도 비록 단역이긴 하지만 캐스팅 명단에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짐은 한때 터미네이터 역으로 ‘낙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랜스 헨릭슨이 이번에는 단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헨릭슨은 짐의 사정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었고, 흔쾌히 영화에 출연할 의사를 밝혔다. 짐은 자신의 다음 작품에서 헨릭슨에게 ‘보은’을 하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짐의 다음 작품인 <에이리언 2>에서 헨릭슨은 비중이 상당히 큰 인조인간 ‘비숍’의 역을 맡게 된다)


사라 코너의 청춘 시절


캐스팅 과정이 대략 마무리됨과 동시에 영화의 촬영 스케줄도 잡혔다. 1983년 여름부터 캐나다 토론토에서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아놀드의 전작 <코난: 바바리안>의 제작자 디노 드 로렌티스가 제동을 걸어온 것이다. 로렌티스에 의하면, 아놀드는 앞선 계약에 따라 <터미네이터>가 아닌 <코난 2: 디스트로이어>(<코난 바바리안>의 실질적 속편)의 촬영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짐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디노 드 로렌티스가 제작하는 영화는 제작 준비 기간이 살인적으로 긴(물론 그 근본적인 원인은 로렌티스가 직접 관여하는 각본 수정 작업 때문이었다) 것으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물론, 짐과 헴데일 영화사는 비교적 ‘거물급’ 제작자였던 로렌티스에게 맞설만한 힘이 없었다. 짐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다: 

1. 아놀드 대신 다른 배우를 터미네이터 역으로 캐스팅한다. 

2. 아놀드가 <코난 디스트로이어>의 촬영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제작 기간이 (이런 이유로) 길어진다는 것은 짐에게나 헴데일 영화사에게나 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짐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이미 짐에게 ‘아놀드 없는 <터미네이터>’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존 데일리 역시 <터미네이터>의 승패가 아놀드의 캐스팅 여부에 달려있다는 짐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3. "The Art of Tech Noir" - The Making of the Terminator



짐은 1년이 넘을지도 모르는 제작 중단 기간을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하기로 했다. 우선, 그는 이 기간을 활용해 <터미네이터>의 각본을 더욱 세련된 것으로 다듬었다. 또한 중요한 장면의 스토리보드를 수도 없이 그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촬영에 철저하게 대비했다. 한편, <터미네이터> 각본은 짐에게 또 다른 ‘경제적 메리트’를 제공했다. 


<터미네이터>의 각본을 보고 흥미를 느낀 제작자들이 짐에게 다른 영화의 각본을 써 줄 것을 의뢰한 것이다. 물론 짐은 자신이 ‘각본가가 아닌 감독’이라는 사실을 늘 주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곤 했다. (또 한명의 ‘테크놀로지 전사’ 조지 루카스가 그러했듯, 짐에게도 각본 쓰는 일은 영화 제작 과정 전체를 통틀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당시의 짐에게는 이 의뢰를 거절할만한 여력이 없었다. 이 시기, 그는 두 편의 속편 영화의 각본 작업을 의뢰받았는데, 그 영화들은 다음과 같았다.



사실, 짐에게 <람보 2>의 각본 작업 조건은 썩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6. 에필로그 항목 참조) 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은 ‘최종 각본을 자신이 직접 손본다’는 조건으로 <람보 2>의 주연을 맡는 것을 수락한 바 있다. 따라서 짐은 자신이 아무리 훌륭한 각본을 쓴다고 해도 그것이 종국에는 스텔론의 손을 거쳐 대폭 수정되리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는 <터미네이터>의 촬영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기에,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각본을 써야만 했다. 한편, <에이리언> 시리즈의 제작자인 월터 힐과 데이빗 가일러는 <터미네이터>의 각본을 읽은 뒤 짐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에이리언> 속편의 각본을 의뢰하게 되는데,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리플리와 군인’이 포함된 이야기를 만들 것.” 결국 짐은 이 시기에 무려 세 편(<터미네이터>, <에이리언 2>, <람보 2>)의 각본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던 셈이다.


짐은 각본 작업과 더불어 <터미네이터>의 프리 프로덕션 작업도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그는 본래 로케이션 장소로 예정됐던 캐나다 토론토보다는 LA가 촬영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 촬영지를 변경했다. 또, 그는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특수효과’를 맡을 적임자도 물색하기 시작했다. 짐과 게일 앤 허드가 처음 지목한 사람은 할리우드 특수 분장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딕 스미스(<대부>, <엑소시스트>를 비롯한 숱한 걸작에서 분장을 담당)였다. 그러나 딕 스미스는 <터미네이터>의 각본을 읽어본 뒤 자신이 맡을만한 영화가 아니라면서 ‘적임자’를 추천해주었는데, 바로 스탠 윈스톤이었다.


스탠 윈스톤


당시 스탠 윈스톤은 몇 편의 B급 영화에서만 활약한 바 있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짐은 윈스톤을 만난 뒤 그의 열정에 매료됐고, 윈스톤 역시 짐이 그린 ‘터미네이터’ 스케치를 본 뒤 크게 놀랐다. 사실 짐 밑에서 특수효과맨으로 일한다는 것은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짐 자신이 특수효과맨 출신이며, 특수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스탠 윈스톤은 자신이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모델을 만들곤 했는데, <터미네이터>의 작업에서는 이례적으로 짐이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살인 기계’의 모델을 만들었다. 짐은 터미네이터의 골격 하나하나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메카닉들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모든 것들’을 놀랍도록 정교하고 세밀하게 그려서 스탠 윈스톤과 특수효과 팀에게 넘겼는데, 그의 스케치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짐이 그린 스케치들


영화의 촬영을 시작하기 전, 짐은 또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개인적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샤론과의 관계 청산’이었다. <터미네이터> 프로젝트에 착수한 직후 짐은 이미 게일 앤 허드와 LA에서 동거 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법적으로는’ 아직 샤론과 결혼한 상태였다. 샤론은 짐이 언젠가는 자신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에, 한동안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짐은 1986년 LA 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샤론은 내가 가진 영화에 대한 열정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일 자체가 우리의 결혼 생활을 망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샤론에게 나의 ‘영화 인생’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그녀는 결코 그 세상과 융합될 수 없었다” 결국 샤론은 짐이 ‘다른 세상사람’임을 인정하고 이혼에 합의를 하게 된다. 이 때 그녀가 요구한 위자료는 고작 1천 200불에 불과했다.


한편, <코난 2: 디스트로이어>의 촬영을 마치고 <터미네이터> 제작에 합류한 아놀드는 촬영에 앞서 총기 다루는 법을 먼저 익혀야 했다. 그가 ‘총기의 달인’이 되어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 ‘터미네이터’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였기 때문. 만일 영화 속에서 터미네이터가 총기를 어색하게 다룬다면 관객의 몰입도는 급강하 할 것이 뻔했다. 결과적으로 아놀드는 이 때 익힌 총기 사용 노하우를 근 20년이 넘도록 ‘써먹게’ 됐다.


‘총기의 달인’으로 불러주오!


촬영이 개시되기 3주일 전, 또 하나의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린다 해밀턴이 몸을 다듬는 도중 심각한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다급해진 스튜디오 간부들은 사라 코너 역을 다른 배우로 대치하려 했다. 그러나 짐은 ‘이미 머리 속에 다 그려 놓은 지도’를 변경할 수는 없다며 린다 해밀턴을 계속 고집했다. 다행스럽게도, <터미네이터>의 촬영이 시작된 1984년 3월 19일에 이르러 그녀는 겨우 걸을 수 있게 됐다.


촬영이 거듭되면서 ‘촬영장의 폭군’으로서의 짐의 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우와 스텝들 사이에서는 이미 짐의 과격한 언행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었고, 짐 역시 ‘이번에는 <피라냐 2>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자신에게 가하는 채찍질의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역을 맡은 아놀드는 짐의 능력에 차차 매료되어가고 있었다. 아놀드는 짐의 ‘백과사전적인’ 영화 제작 지식에 놀랐으며, 그의 철저한 사전 제작 준비에, 그리고 준비한 바를 거의 정확하게 영상으로 옮기는 그의 천재성에 다시 한 번 탄복했다. 아놀드는 또한 짐의 거친 행동이 ‘구상한 바를 오차 없이 영상화하려는’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것임을 누구보다 먼저 이해하게 됐다. 


나이젤 앤드류스가 쓴 전기 ‘True Myths: The Life and Times of Arnold Schwarzenegger'에서 아놀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짐은 자신이 구상한 것에서 한 치라도 벗어난 촬영분이 나왔을 때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그러나 촬영장의 스텝 중 누구도 이 괴팍한 성격의 젊은이에게 큰 목소리로 불만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촬영장에서 ‘몸을 던지다시피 하며’ 솔선수범했던 것이 바로 짐이었기 때문이다. 


나이젤 앤드류스의 전기에서 아놀드는 이런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는 <터미네이터>의 스턴트 신을 찍고 있었다. 짐은 배우들이 보는 앞에서 스턴트 신이 어떻게 연출될지를 직접 ‘실연’했다.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말이다! 순간 나는 그가 미쳤다고까지 생각했다!”


좀 더 세게 껴안으란 말이야!


짐의 열성과 재능에 반한 아놀드는 그의 까다로운 요구를 불만 없이 수용하기로 했다. 사실, 배우의 입장에서 짐은 결코 함께 하고 싶지 않은 부류의 감독이었다. 짐은 배우를 마치 마네킹 다루듯 하는, ‘스탠리 큐브릭 형’의 감독이었다. 즉, 그는 배우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계산하여 배우가 자신이 주문한 대로만 움직여주길 요구하는, 그런 까다로운 감독이었던 것이다. 


랜스 헨릭슨은 <터미네이터> 촬영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아놀드는 자신의 에고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영화 중에는 카일 리스가 쏜 총에 맞은 터미네이터가 창문을 깨고 밖으로 튕겨나가 쓰러지는 신이 있었다. 이 신에서 짐은 아놀드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아놀드 씨, 여기에 누우시죠. 그리고 제가 신호하면 머리부터 조금씩 드는 겁니다. 그 다음 어깨를 들고, 천천히 일어나는 겁니다’” 


사실, 짐에게는 아놀드의 연기를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지도’하는 데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터미네이터>를 만들 때, 아놀드는 일종의 ‘배우 수업’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가 ‘감독인’ 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잘 좀 일어나 봐요!


촬영장에서 짐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의 ‘기행(奇行)’을 변호했던 이는 랜스 헨릭슨이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 조차도 배우와 스텝들에게 ‘한계치 이상의 능력’을 요구하는 짐에게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헨릭슨은 터미네이터가 경찰서를 습격하는 신(그 유명한 ‘Ill be back신, 경찰로 분한 헨릭슨은 이 장면에서 터미네이터에게 죽임을 당한다)을 찍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촬영장에서는 수 백 개의 폭죽이 한꺼번에 터졌다. 터미네이터의 희생양에 될 엑스트라 배우들은 옷 속에 화약과 피주머니를 감추고 넣고 있었는데, 감독이 ’액션‘ 신호를 날리면 그것들은 실감나게 터질 예정이었다. 짐은 실감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성능이 좋은 - 다시 말해 ‘위험한!’ - 화약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배우들은 실제로 촬영 도중 화상을 입기도 했다”


“내가 돌아온다고 했지?”


짐의 ‘사람 다루는 방식’은 여러 배우들을 피곤하게 했다. 사라 코너 역을 맡은 린다 해밀턴도 그 중 하나였다. 린다 해밀턴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짐은 철저할 정도로 엄격하고 고집 센 감독이었다. 그는 나의 연기 장면을 찍은 뒤, 촬영분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도 거부했다. 연기를 한 배우의 의견이야 어떻든, 촬영분이 그의 마음에 들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에게서는 ‘배우들을 고려할 정도의 여유’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짐에 대한 별로 안 좋은 평판 - 짐이 그다지 사람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사실 - 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짐의 회고담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는 1991년 US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녀를 ‘압박’하는 것보다 그녀는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다. 우리가 촬영 내내불화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늘어가는 ‘불평’과는 별도로, 촬영이 거듭될수록 스텝들 사이에서는 짐이 뭔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리라는 기대감 또한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들은 한정된 예산과 촬영 스케줄 속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스토리보드와 각본의 내용들을 거의 완벽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는 짐의 능력을 점차 경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 스케줄이 워낙 빡빡했기 때문에, <터미네이터>의 특수효과 팀은 촬영이 진행되는 와중에 대부분의 중요한 장면들을 모두 완성시켜야 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트럭의 폭발 신과, 이어지는 엔도스켈렉튼(피부(Living Tissue)가 벗겨진 내골격 상태의 터미네이터)의 공격 신이었다. CG 기술이 절정에 달한 지금이야, 엔도스켈렉튼의 공격을 만드는 것은 문제도 아니겠지만 당시에는 사정이 달랐다.


이런 식으로 찍었다우!


이 장면은 스탠 윈스톤이 만든 1:1 사이즈의 로봇 모형을 찍은 촬영분과 미니어처 모델을 활용해 찍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장면을 교묘히 편집해 완성됐다. 즉, 터미네이터의 클로즈업과 상반신이 보이는 장면은 실제 사이즈의 로봇 모형을, 그리고 ‘전체적인 움직임’이 보이는 부분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찍은 것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장면은 아무래도 움직임이 어색할 수밖에 없는데, 짐은 이로 인해 영화에 대한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어색한 움직임을 보완할 수 있는 실사 장면을 교묘히 삽입했다. 이 장면이 우스꽝스럽지 않은,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촬영 감독 아담 그린버그의 지능적인 조명 활용 덕분이었다. 아담 그린버그는 이 장면에서 왜곡된 조명과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하고 관객의 공포감을 최대한 조장하도록 카메라 앵글을 설정해 터미네이터의 모형이 마치 ‘악마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한편, 유조트럭이 폭발하는 장면은 특수촬영 팀에게 또 하나의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장면은 미니어처 모형을 활용해 촬영한 신이지만,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다) 이 신의 촬영을 위해 특수효과 스텝들은 석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트럭의 모형과 거리의 세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액션!’ 신호가 나가고, 카메라가 돌아가자 (화염에 휩싸이기도 전에) 트럭의 앞바퀴가 떨어져 나가는 등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아뿔싸! 이런 사태가!


짐은 결국 촬영분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재촬영을 지시했다. 특수효과 팀에게 부여된 시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 짐의 살인적인 독촉에 따라, 특수효과 팀은 ‘군인 정신’을 발휘해 단 일주일 만에 ‘석 달 치 분량의 세트’를 다시 만들어냈고, (다행스럽게도) 재촬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터미네이터>의 공식적인 촬영은 1984년 7월에 모두 마무리됐고, 짐은 곧장 후반 제작 과정에 돌입했다. 물론 후반 제작 과정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광속’으로 진행됐다.



4. Aftermath - 환희와 절망


오라이언사는 <터미네이터>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터미네이터>에 기대하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라이언 사가 짐에게 제안한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 카일을 수행할 로봇을 하나 더 등장시키라는 것이었다. (물론, 짐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둘째, 사라와 카일의 로맨스 관계를 좀 더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짐은 이 제안은 받아들였다. ‘진한 러브신’이 하나 정도 있다면 관객 동원에 있어서도 분명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짐이 편집본을 거의 완성할 무렵, 편집실을 방문한 헴데일 사의 존 데일리가 뜬금없는 요구를 해왔다. 유조 트럭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야 한다며, 그 이후에 펼쳐지는 엔도스켈렉튼과 사라, 카일의 혈투 장면을 잘라 버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제안이라기보다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이 말을 들은 짐은 불같이 화를 내며 ‘엿이나 드시오!(F*** You!)’라고 외치고는 그를 편집실에서 끌어내버렸다. 

 

결국, 짐은 자신이 최초에 구상했던 것과 거의 차이가 없는 108분짜리 최종 편집본을 만들어 냈다. 놀랍게도 최종 편집본에서 잘려 나간 촬영분은 불과 몇 분 분량에 불과했다. 짐의 필모를 통틀어 이렇게 ‘경제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없었다. 이는 또한, 그가 사전 제작 과정에서 얼마나 철저한 대비를 했는지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짐은 이 최종 편집본에 만족을 표시했다.


무섭지?


그러나 짐은 배급을 맡은 오라이언 사의 성의 없는 태도에 또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오라이언 사는 <터미네이터>의 홍보와 관련해 짐에게 이런 입장을 통보해왔다. “<터미네이터> 같은 싸구려 액션 영화는 기껏해야 3주 정도 상영한 뒤 극장에서 철수하기 마련이다.” 즉, 오라이언 사는 <터미네이터> ‘따위’의 영화에 많은 홍보비용을 지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라이언 사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터미네이터>가 개봉하기 바로 전 주에야 소규모의 홍보 활동을 진행했다. 짐을 더 분노케 한 것은 어이없는 홍보 전략이었다. 오라이언 사는 ‘가슴을 드러낸’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 - 영화의 내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 를 홍보용으로 활용한 것이다. 물론 ‘여성 관객을 자극해’ 한 푼이라도 더 끌어 모으겠다는 속셈이었다.


1984년 10월 26일, 드디어 <터미네이터>가 개봉했다. 영화는 그 주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각종 언론 매체로부터 액션 영화로는 유례없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관객과 평론가들이 <터미네이터>에 보여준 반응은 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오라이언 사의 ‘예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터미네이터>는 3주 동안이나 박스 오피스 1위를 굳건하게 지켰고 관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어느 새 ‘대중 컬트 액션 영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짐은 오라이언 사가 당초 계획을 접고, 본격적으로 <터미네이터>를 다시 홍보해 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했다. 그러나 ‘개념이 단체로 외박 나간’ 오라이언 사의 간부들은 이런 뜨거운 호응에도 불구하고 추가 홍보비용을 단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았다.



5. "Soldier" - 새로운 도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미네이터>는 박스 오피스에서 연일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짐은 <터미네이터>의 열기가 12월에 되면 급작스럽게 냉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2월에는 (그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혔던) <사구 Dune>와 <2010>이 개봉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두 작품 중 어느 것도 <터미네이터>와 같은 열광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짐이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무렵,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SF 작가 할란 엘리슨이 ‘짐이 자신의 작품들을 표절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소설가이자 방송 작가인 할란 엘리슨은 195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해온 베테랑급 작가다. 할란 엘리슨은 1963년부터 방영된 흑백 TV 시리즈물 <아우터 리미츠 The Outer Limits>의 몇몇 에피소드들의 각본을 쓴 적이 있다. 엘리슨에 의하면, 짐은 이 TV 시리즈의 시즌 2에 포함된 두 편의 에피소드 <솔저 Soldier>와 <유리 손을 가진 악마 Demon With a Glass Hand>의 플롯을 도용해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엘리슨은 <터미네이터>를 처음 봤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그 영화에 완전히 매료됐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엘리슨은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는 <솔저>와 <유리 손을 가진 악마>의 플롯을 짬뽕한 것이며 ‘스카이넷’이라는 개념은 내가 쓴 단편 <나는 입이 없지만 비명을 질러야 한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에서 빌려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엘리슨은 심지어 “<터미네이터>의 시작부분은 <솔저>의 시작부분을 그대로 흉내 낸 것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자, 과연 진실은? 이 글은 읽는 분들 중에는 <아우터 리미츠> 중의 ‘문제의 두 에피소드’를 못 보신 분들이 많을 테니, 일단 그것들의 내용을 먼저 소개하도록 한다. 두 에피소드는 모두 <터미네이터>처럼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다. 우선, <솔저>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먼 미래, 지구는 거듭된 전쟁으로 황폐화된 상태다. 미래의 정부는 인공수정을 통해 ‘로봇에 가까운’ 병사들을 길러낸다. 이 병사들은 일체의 사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이 금지돼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적을 죽이는 것’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길러졌다. 


어느 날 ‘콸로’라는 병사는 자신의 적과 함께 우연히 현재의 세계로 오게 된다. 두 병사 중 먼저 온 콸로는 경찰에게 체포되어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다. 언어학자인 톰 케이건은 그가 미래에서 온 병사라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경찰에 알리지만, 경찰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전투’ 밖에 모르던 콸로는 케이건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문명화’ 되어간다. 한편, 뒤늦게 도착한 또 한명의 병사(콸로의 적)는 콸로를 찾아 (죽이기 위해) 나선다. 우선, 에피소드의 분위기 자체가 <터미네이터>와 유사한 면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엘리슨이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오프닝 장면은 아래와 같다.


미래의 황폐화된 지구. 레이저 광선이 쏟아지는 등 분위기가 <터미네이터>의 2029년 상황과 유사하다


병사가 시간을 가로질러 ‘현재’에 도착하는 장면. <터미네이터>의 오프닝 장면에서처럼, ‘번개’(?)와 함께 등장한다.


<유리 손을 가진 악마>의 줄거리는 이렇다: 미래에서 ‘트렌트’라는 남자가 현재로 온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괴한이 그를 끊임없이 뒤 쫓아와 죽이려고 한다. 누군가가 그의 기억을 지워버렸는지, 그는 자신이 왜 현재로 왔는지, 왜 쫓기는지 알 길이 없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은 그의 ‘왼손’ 뿐이다. 놀랍게도 그의 왼손은 ‘말하는 기계’였다. 왼손은 트렌트가 ‘인류의 미래’를 쥐고 있다며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트렌트가 왜 쫓기는지, 그리고 그를 쫓는 이들이 누군지가 점차 밝혀진다. (결말에는 쇼킹한 반전이 있는데, 그것은 이 글에서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므로 생략하도록 한다) 


이야기에서 보듯, ‘트렌트’와 관련된 설정들은 <터미네이터>에서 존 코너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또한 에피소드의 중반부에는 트랜트가 한 여성과 함께 ‘암살자’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이 있는데, 이것은 사라와 카일이 ‘터미네이터’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부분을 연상케 한다. 이 외에도 ‘분위기 상’ 유사한 부분은 몇 가지 더 지적될 수 있다.


<유리 손을 가진 악마> 중 한 장면


과연 짐은 엘리슨의 이야기를 표절한 것인가? 일단 짐이 <솔저>와 <유리 손을 가진 악마>를 본 것만은 거의 분명하다. 그러나 단지 이 정도의 증거만으로 <터미네이터>를 표절작으로 단정 짓기는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 짐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접한 여러 가지 소스들의 요소를 복합해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엘리슨의 작품들은 그 ‘여러 요소’ 중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 짐은 엘리슨의 주장에 대해 “‘시간여행’이나 ‘암살자’라는 테마는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지극히 흔한 소재이며, 단지 그런 요소가 있다는 것만으로 <터미네이터>를 표절작이라 할 수는 없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엘리슨의 태도는 완고했다. 엘리슨은 헴데일 사와 오라이언 사에 자신의 ‘굳은 의지’를 밝혔고, 두 회사는 난감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두 회사는 ‘이 사건이 법정으로 간다면 짐을 지지해줄 용의는 있으나, 만일 패소하게 될 경우는 모든 책임을 짐이 져야 한다’고 통보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짐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터미네이터>의 성공으로 얻은 모든 것을 잃을 판이었기 때문이다. 


짐은 결국 ‘40만 불을 엘리슨에게 지급하고,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추가한다’는 조건으로 법정 외 화해를 하게 된다. <터미네이터>의 크레딧에 할란 엘리슨의 이름이 뜬 것(아래 사진 참조)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슨과의 전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터미네이터 2> 편에서 이어진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삽입된 ‘그 사람’의 이름



6. 에필로그



짐의 손을 떠난 <람보 2>의 각본은 ‘예정대로’ 실베스타 스텔론에 의해 수정됐다. 본래 짐이 쓴 각본에는 존 람보 외에 그와 비중이 거의 대등한 파트너(포로)가 한 명 등장했으며, 이 파트너의 입을 통해 온갖 재치 넘치는 대사들이 쏟아지게 되어 있었다. 만일 짐의 각본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람보 2>는 - 영웅 액션 극의 요소는 줄어들지 몰라도 - 보다 입체성을 띠는 ‘버디 무비’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텔론은 각본 수정 과정에서 존 람보의 파트너 역을 제거해버리고 액션과 서스펜스를 더욱 부각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1인 영웅 활극’이 되었다. 1985년 여름, <람보 2>가 개봉하자 짐은 자신의 각본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게일 앤 허드와 함께 극장문을 노크했다. 짐의 예상대로 스텔론은 자신의 각본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짐은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화 상영이 끝난 뒤에 짐과 게일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 영화 돈은 엄청나게 많이 벌겠군!”


- 다음에는 <에이리언 2> 특집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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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5-11-16 17:20:22

엘리슨 거참 -_-;;

2005-11-16 18:11:36

오우... 많이 기다렸습니다!!

2005-11-16 18:27:31

김정대님 두번째 글을 읽으니 [터미네이터]를 꺼내 보고 싶어집니다 ^^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005-11-16 18:47:44

야..정말 대단합니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국내에 터미네이터 익스트림 에디션이 발매된다면 꼭 서플먼트에 추가하고픈 설명입니다. 할말을 잃었습니다.

2005-11-16 19:09:44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

2005-11-16 19:16:17

영양가 만점의 글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2005-11-16 20:46:04

정말 재미있게 잘 봤읍니다
수고하셨어요

2005-11-16 21:49:24

오오!!! 이건 완전 뽐뿌가 아닌가...? 내가 왜 1편을 구입 안 했는지 후회막급합니다...

2005-11-17 15:44:00

서플에 한글 자막이 없는 것이 참 아쉽죠.

2005-11-16 21:57:09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5-11-16 22:00:43

일주일은 너무 길어요 ㅠ

2005-11-16 22:01:18

" 비껴..!! 내 앞을 가로막지마..!! "

2005-11-16 22:08:11

크크크, 오랜만에 1탄을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2005-11-16 22:38:10

오옷...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편까지 언제 기다리나...

2005-11-16 22:55:18

오늘의 교훈

"아놀드의 태도가 너무나도 ‘젠틀’했기 때문에 " - 여러분 우리 젠틀해집시다.

2005-11-16 22:56:07

터미네이터 1 낼 사러 갈 예정 입니다 ....
지출 넘 많아지네 .

2005-11-16 23:00:01

엄청 기다렸던 글입니다. 다음글은 대망의 에이리언2~ 너무나 기대가 됩니다 ^^

2005-11-16 23:16:30

아놀드의 몸집이 크다곤 하나, 키는 작죠. 저 위 사진에도 보듯이 카메론보다 작습니다. 키가 180cm도 안됩니다. 키높이 구두의 위력! 배트맨과 로빈에서도 감옥에 갇혔을 때 맨발의 그가 나오는데, 옆의 두 간수보다 머리 절반크기만큼 작더군요. 이 사람 키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카메라맨 죽어났을 겁니다.

2005-11-16 23:24:54

너무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어떻게 이런얘기를 아셔서 올려주시는거죠?^^
정말 제임스 카메론 최고! 글올려주시는 dp최고!

2005-11-16 23:51:05

이야아~~~~!!!! 정말이지 마지막까지 숨한번 제대로 안쉬고 (사실 못쉬고) 읽어내려갔습니다.
명작 터미네이터에 꼭 맞는 명작 입니다. 그야말로...

좋은 글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다음 에이리언2 편 목 빠지게 기다리겠습니다.
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소오소~~*^^

2005-11-17 00:22:09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정대님 만세!

2005-11-17 00:57:52

또 리플 답니다.

스탤론과 아놀드는 정말 근육만 있는 배우가 아니라는걸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김정대님 너무 재미있습니다. 다음편 빨리 올려주실거죠^^

2005-11-17 01:17:15

책 읽는 느낌입니다. 한참을 읽었네요. 인터넷에서 정독 잘 안하는 편인데..

2005-11-17 01:22:40

이 글을 보기 위해 (11월 1일부터-이 글이 첫 연재된) 얼마나 많이 dp를 들락날락 거렸는지 모릅니다~ (너무 오래기다렸어요~ ㅜ.ㅜ)
기대가 너무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이 글만큼은 그걸 배신하는군요~ 이번글 역시 곳곳에 명 표현들이 득실대는군요~
이번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박스세트'('염가 할인 판매' 포함)~ !! ㅋㅋ 또 '졸도' 해버렸습니다~ ^^*
그리고 연이은 '푸레미아 쇼' , '1달러 팀은 용감했다'.... 그냥 혼절해 버림...

2005-11-17 02:05:36

전혀 몰랐던 사실들 뿐이군요.빨리 다음편을!

2005-11-17 04:34:07

이 글... 잘 쓴 글이긴 하지만 별로 마음에 안듭니다.

.................... '터미네이터' DVD도 지르고 싶게 만들잖습니까!!!

농담이었고요. 하이텔 시절부터 쓰시던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건필하시길!

2005-11-17 05:18:07

자야는데 시간는줄 모르고 봤네요.최고!

2005-11-17 08:30:14

에어리언이 더 기대!~!~ 잘 읽었습니다

2005-11-17 09:51:28

다음 토픽까지 열심히 기다리겠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2005-11-17 10:04:58

김정대 님이 하이텔 시천에 올리셨던 와 에 관한 글,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10년 전에 이미 레퍼런스급이었죠. ^^

2005-11-17 10:28:39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도 역시 기대되네요

2005-11-17 10:39:27

이야~!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계속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2005-11-17 11:30:25

허.. 이런.. 결국 터미네이터 1을 구입해야 겠네요...
DVD제작사에 이런식을 글로 뽐뿌를 하면 많이 구입을 하지 않을 까요..
왠지.. 영화 보고 싶어지잖아요.. ^^;;;;;;;;;;;;

2005-11-17 12:22:15

어비스도 다뤄주실래나...제가 젤 좋아하는 작품인데요..

2005-11-17 12:41:02

너무너무 기다렸던 특집입니다! 정말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다음엔 Aliens라니 (Alien 중 가장 좋아합니다.^^) 기대가 와방 입니다. ^^b

2005-11-17 12:49:45

"저 식칼은 혹시 의 마이클에게서 빌려온 것?" --->어쩐지 주방에 칼이 없던데...

정말 좋은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다음편 마구 기대 합니다.

2005-11-17 12:51:55

저도 이렇게 정독하기는 처음이네요.. 어디 강추 클릭 할 때 없나요..

2005-11-17 14:24:11

1주일 동안 2편이 언제 나오나 DP 대문을 주시했습니다.
영화만큼 재미있는 글입니다.^^

2005-11-17 14:31:51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2005-11-17 15:44:58

지난 번에 이어서 잘 읽었습니다.

2005-11-17 18:48:46

터미네이터 시리즈 전반에 대한 뽐뿌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글이군요!!!!

2005-11-17 22:00:34

좋은글 너무 감사합니다. ^^

2005-11-17 23:54:23

정말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명문이네요^^ 다음편도 기대됩니다!

2005-11-18 00:29:23

끝내주는 자 "터미네이터"

2005-11-18 09:20:28

터미네이터1 너무도 좋아하는 영화인데..
몰랐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네요..
에어리언2도 기대하겠습니다~

2005-11-18 09:30:49

읽고나니 터미네이터가 다르게 보이는군요.
글쓰신 분의 이름을 다시한번 살펴보게됩니다. 감사!

2005-11-18 10:28:40

터미네이터 개봉당시 단성사에서 본기억이 납니다. 성룡의 용등호약과 동시개봉을 했었지요 그때 암표를 사서 봤습니다. 가위질을 하도많이 해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것 같은데 정말 지금 봐도 대단한 영화였던것 같습니다. 그때에는 정말 충격적이였죠 어린나이에 에이리언2도 단성사에서 봤는데 이런 슈퍼가위질 쩝 아무튼 대단한 감독이고 확실히 색깔이 있는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터미네이터 3도 만들어 줬으면 했는데 맛이갔죠 터미네이터 4편을 만든다는 소문이 있긴한데 차기작도 정말 대작을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요즘 사실 대작이 없잖아요...

2005-11-18 11:05:05

시고니위버의 왕팬이라, 에 관한 글은, 대왕 기대됩니다.

2005-11-18 12:11:33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2005-11-18 13:27:05

흐음...터미네이터 다시꺼내 보고 싶게 만드는군요.
흐흐흐... 드디어 19금에이어 특집에도 기다림의 미학이 시작되었다.^^

2005-11-18 15:41:51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2005-11-19 11:51:40

스톱모션 촬영기법은 어찌보면 어색하기 이를데 없어보이는 움직임이긴 하지만
'터미네이터'에서의 그것은 오히려 그런 움직임이 더욱 공포스럽게 보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카메론감독은 스필버그나 루카스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머리와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할줄 아는 재능을 동시에 가진 몇안되는 연출자라고 개인적으론 생각합니다 게다가 노력가이죠

2005-11-21 15:32:19

제가 디피에 가입한 후 최고의 리뷰어이신분이 김정대님이란걸 느끼게하는 재미있고 지식이 가득한 귀한글이였습니다...고맙습니다...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2005-11-22 11:33:29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멋지네요!!
에이리언2도 기대하겠습니다.
글구 글 정말 잘 쓰시네요..

2005-11-26 17:33:54

김정대님의 기가막힌 연륜과 지식에 의한 리뷰 잘보고 있습니다. 이글보니 터미네이터 씨리즈가 왜이렇게 갑자기 보고 싶은지..(특히 1편)
저도 에일리언 얘기도 기대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 영화라 기대기대~

그리고 아놀드 키 얘기가 나왔는데, 프로필에는 188센티던데, 이게 아마 거의 맞을겁니다. 최근 부시대통령이나 클린트이스트우드등과 공식석상에 같이 있는 모습을 봐도 그렇고, 영화속에서 아놀드보다 키가 크게 보이는 배우가 가끔 나와서 imdb서 정보를 보면 어김없이 190센티가 훌쩍넘어가는 거한들이더군요. 키높이 구두를 쓴다해도 아놀드만 쓴다는것도 말도안되고... 저위에 84년 당시 메이킹필름속에서 제임스카메룬과 거의 같은키로 보이는데, 카메론도 역시 188이죠. 게다가 아놀드는 미스터올림피아 연속제패할때 팔뚝둘레가 무려 24인치에 달했다는 기억이 남아있네요. 앞에서 본다면 앞도당할정도 크기의 거한이죠. 지금에야 60살먹고, 심장병수술받고해서 이미지가 좀 줄기는 했어도...

2005-11-28 21:37:07

너무 재미있습니다 지난편도 재미있었는데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 그리고 오라이언사의 간부들을 대상으로 ‘개념이 단체로 외박 나간’ 표현 정말 좋았습니다 재미있네요 ㅎㅎ

2006-01-09 21:39:02

이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재밌습니다.
정말 그 어디서도 읽을 수 없는 흥미진진하고 알찬 이야기들입니다.
글솜씨 역시 달변이십니다. 멋진 이야기 고맙습니다.

2011-05-29 14:33:40

주일 오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글을 읽어내려가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2016-07-06 15:43:52

워킹데드 보면 익숙한 제작자도 나오네요

2016-07-06 16:36:10

성지순례 하고 갑니다

2016-07-06 17:33:32

 예전에 보고 오늘 또 보네요.

정리를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2016-07-06 19:20:53

다시 읽어봐도 흥미진진하네요 !!

2016-07-06 20:36:44

 이상하네요. 그때 리플을 달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없지.. ^^

 댓글 중에 장고님도 계시고 추억 돋습니다.

2016-07-06 21:40:26

선추천 후감상 들어갑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16-07-06 21:44:58

 와~ 김정대님의 카메론 감독 컬럼 부활!! 너무 반갑네요!

Updated at 2016-07-06 23:40:11

졸라 재밌네요 ㅎ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2016-07-07 00:32:09

다시 봐도 꿀잼! 다음편을 고대합니다~

2016-07-07 03:37:11

 김정대님 감사합니다.!!!

2016-07-07 06:23:40

멋집니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네요.

2016-07-07 13:50:4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16-07-07 14:12:52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면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지 않을까 싶네요. 주말에 다시 한번 보도록 시도해봐야겠습니다.

2016-07-08 00:48:58

빨리 다음 글 올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욧~!! 

2016-07-10 10:18:00

항상 오류난 내용이 무척 아쉬웠는데 대박 입니다. 다시 봐도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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