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라임차한잔
ID/PW 찾기 회원가입
뉴스/특집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인생과 작품세계 (7) - 타이타닉
 
35
  72352
Updated at 2016-08-03 11:46:18
제임스 카메론 특집 마지막 편의 편집을 마감하며

이번 김정대님 글 복원 프로젝터의 책임자이자 실무를 맡은 운영자입니다.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컬럼 복원 요청을 드디어 수용할 수 있어 너무나 기쁜 2016년 7월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편집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한 회 텍스트 분량이 웹상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수준으로 긴 것은 물론, 회당 100장을 넘는 사진을 제 자리에 붙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만 - 사실 핑계고 ^(^ - 편집 중에 글에 빠져 한자 한자 읽으며 허우적대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죽기 전에 어떤 분야에 몰입하여 이런 멋진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참으로 멋진 컬럼이었고 제 손으로 직접 편집을 마무리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번 편은 마지막인 동시에 기존 서버에서 대부분의 이미지가 유실된 관계로 김정대님이 직접 모든 이미지를 HD급으로 새롭게 캡쳐했습니다. 또한 예전 '타이타닉' 특집편은 서문이 '타이타닉 DVD 콜렉터스 에디션 리뷰'에서 이어지는 형식이었는데, 이번에 이 둘을 하나로 합쳐 완전체를 만든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재미있고 유익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 운영자 박진홍 드림

  

글 | 김정대(adoinel21@gmail.com)


0. “Strange Days" - <타이타닉> 프로젝트의 시작


짐 카메론에게 1990년대 초는 ‘도전의 시기’였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트루 라이즈>(1994)를 완성한 뒤 그는 조금의 휴식 기간도 없이 다음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된다. 짐은 이 시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나는 아직도 ‘학생’이었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필름 메이커로서 자신의 능력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늘 무언가에 굶주려 있었다.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 아래 그는 ‘라이트스톰 엔터테인먼트’와 ‘디지털 도메인’이라는 두 명의 ‘자식’을 낳은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조지 루카스가 ILM을 통해 그랬듯) ‘뉴 미디어 혁명’을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었다. 

 

짐의 모토는 늘 이러했다: ‘새롭지 않은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짐의 오랜 파트너였던 스탠 윈스톤은 짐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짐의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자신의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에게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다”


짐 카메론, 바다와 사랑에 빠지다!


1994년 초, 짐의 관심은 온통 <스파이더맨>의 영화화에 집중돼 있었다. 마블 코믹스 캐릭터들의 열혈 팬이었던 소년 시절부터 그때까지, <스파이더맨>의 영화화는 짐에게는 일생일대의 ‘숙제’인 것처럼 여겨졌다. 짐은 이 계획의 현실화를 위해, 1991년 오랜 우상이었던 ‘스파이더맨의 창조자’ 스탠 리를 직접 만난 바 있다. 당시 스탠 리는 짐의 열정과 영화적 상상력에 완전히 매료돼버렸다. 짐과의 만남을 가진 뒤, 스탠 리는 이렇게 공언하기까지 했다. “나는 진정으로 그가 <스파이더맨>의 영화 버전을 만들기를 원했다. 지구상에서 <스파이더맨>을 가장 완벽하게 영화화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짐 카메론이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의 영화화의 길은 (문자 그대로) 멀고도 험난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판권이었다. 짐이 스탠 리를 만날 당시,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을 둘러싸고 여러 회사와 개인들이 법정 공방전을 벌일 판이었는데, 짐의 계산으로는 ‘최소한 5년 내’에는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1994년 초에 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짐은 (드디어) 언론 매체를 통해 그해 말부터 <스파이더맨>의 촬영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닥이 집힌 듯 보이던 판권 문제는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지고 말았고, 이에 크게 실망한 짐은 곧장 ‘다음 프로젝트’로 발길을 돌렸다. 바로 <타이타닉>이었다.

 

Good-Bye, Spider-Man!

 

사실, 짐은 어린 시절부터 ‘열혈 타이타닉 마니아’는 아니었다. 그가 <타이타닉>과 실질적인 인연을 맺은 때는 바로 <어비스>(1989)를 제작하던 중이었다. ‘심연’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그때, 짐은 로버트 발라드와 그의 탐사 팀에 관한 자료들을 접하게 된다. 로버트 발라드는 1985년 대서양 바다 밑에서 두 조각 난 타이타닉 호의 선체를 발견하여 ‘현대사의 전설’이 되어버린 인물이다. 

 

짐은 (영광스럽게도) 로버트 발라드와 직접 만날 기회를 가졌고, 그의 체험담을 듣고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이 순간, 이미 짐의 ‘향후 운명’은 결정돼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향후 10년이 넘도록 바다 속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짐이 ‘야속하다’고 생각하신 분이 계시다면 로버트 발라드를 탓하시길!) 그는 이 때부터 ‘타이타닉’에 관한 책을 미친 듯이 수집하여 섭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1912년 4월에 있었던 믿기지 않는 사건을 거대한 스크린 위에 재현시키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로버트 발라드 (날 욕하지 마세요! 난 그냥 짐에게 내 열정을 전달해줬을 뿐이라고요!)


<스파이더맨> 프로젝트의 중단으로 ‘때’는 예상보다 일찍 찾아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짐은 그때야말로 ‘타이타닉 이야기’를 영화화 할 최적기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그보다 더 이후에 만들어진다면, ‘시의성’과 ‘현실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타이타닉 호 침몰 당시 목숨을 건진 이들이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생존해 있었으며, 영화를 위해 증언을 해 줄 수도 있었다. 관객이 영화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 부분은 매우 중요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영화의 주인공은 ‘로즈’이며, ‘현재 시점’에서 그녀는 100살이 넘은 노인이다.) 만일 <타이타닉> 프로젝트를 더 지체한다면, 침몰 당시의 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한 이후에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그리고 주인공 로즈의 ‘현재’ 나이를 ‘기네스북 감’의 초고령으로 설정해야 하는) ‘초난감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1. “I'm Flying!" - Building the Style


짐이 구상한 <타이타닉>의 플롯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그는 처음부터 <타이타닉>의 중심 플롯을 할리우드 고전 멜로드라마 스타일로 풀어 나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즉, 사회 상류 계층에 속한 소녀와 하류 계층에 속한 소년 간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에 실제 타이타닉 호의 침몰 일화를 접목시키는 것이다. 짐은 ‘이미 적지 않은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타이타닉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내가 다시 그 전철을 밟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관객이 타이타닉 호를 몸소 체험하게 하는 것!” 

 

짐은 관객들을 거의 1세기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배의 내부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영화는 초장부터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관객의 ‘영혼’을 배 안으로 이끌 ‘심리적 유도자’가 필요했는데, 잭과 로즈가 바로 그들이었다. 짐이 굳이 멜로드라마 형식을 고집한 것은 바로 이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멜로드라마는 국경을 초월하여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영화 형식’이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 ‘친숙한 형식’을 매개물로 하여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낯선 배에서 있었던 과거의 사건에 감정몰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이 영화의 ‘태생적 한계’가 될 수도 있다. 구태의연한 멜로드라마 형식에 본능적 거부감을 보이는 진보적 성향의 평론가나 관객들에게 이런 방식의 플롯 전개는 참신성이 결여된, 따분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천하의 짐’이 언제 이 양반들 눈치를 본 적이 있는가? 그는 자신의 선택이 정당했음을 처음부터 확신했고, 그 확신에 입각해 자신만의 <타이타닉> 세계를 구축해갔다.

 

국경을 초월하여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영화장르는?


<트루 라이즈>에 이어 짐 카메론의 ‘물주’가 될 폭스 사의 간부들은 <타이타닉>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대략 이렇다. 첫째, <타이타닉>은 ‘시대물’이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시대물은 흥행에 있어서 ‘레퍼런스급 쥐약’으로 인식됐다. 폭스 사의 간부들은 (특히) 신세대 관객들이 100여 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 <타이타닉>은 ‘그냥 시대물’이 아니라 ‘엄청난 분량의 특수효과 신으로 중무장한’ 시대물이다. 짐의 구상을 듣고 폭스 사의 간부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제작비가 <트루 라이즈>의 제작비인 1억 1천만 불을 ‘가볍게’ 넘어설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셋째, 짐은 폭스 사의 간부들에게 영화의 상영시간이 ‘세 시간’에 이를 것임을 일찌감치 못 박았다. 이미 <에이리언 2>, <어비스> 제작 당시 상영시간을 놓고 폭스 사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던 짐은 초장부터 이와 같은 분쟁의 여지를 완전히 봉쇄해버리려 한 것이다. 폭스 사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짐의 재능을 보아하니 <타이타닉>은 놓치기 아까운 프로젝트이고, 그렇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투자를 하자니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짐을 곤란하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시 영화계에 퍼져 있던 짐에 대한 ‘평판’이었다. 당시 짐은 ‘황금알을 낳는 흥행 감독’이기에 앞서 ‘SF-액션물 전문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폭스 사 간부들의 평가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짐이 ‘금지된 사랑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했을 때, 폭스 사 간부들의 반응은 대략 이랬다. 

 

으흐흐


우하하


푸하하


‘로미오와 줄리엣’과 짐 카메론이라니! 세상에 이런 부조화가 또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위의 반응은 약간 과장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폭스 사 간부들의 반응은 ‘완전 부정’이라기보다는 ‘반신반의’에 가까웠다. 일단, 그들은 짐이 쓴 <타이타닉>의 각본 초고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에이리언 2>, <터미네이터>의 창조자가 과연 멜로드라마를 매끈하게 연출할 수 있겠느냐”였다. 하지만 짐은 초장부터 ‘레퍼런스급’의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폭스 사 간부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이 작품은 세 시간짜리 에픽이 될 것이며, 1억불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될 겁니다. 그리고 단 한명의 ‘스타 배우’도 출연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때요? 한번 ‘도박’을 해 보지 않겠소?” 폭스는 결국 짐의 막강한 포스 앞에 다시 한번 굴복했다. 그러나 폭스는 이미 <어비스>와 <트루라이즈> 때 제작비 문제로 ‘악몽’을 경험했던 터라, 이번에는 ‘확실한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상대가 누구인가? ‘제작비 신기록 제조기’ 짐 카메론이 아닌가?!) 

 

결국 폭스는 ‘위험’을 분담하기 위해 파라마운트 사를 <타이타닉> 프로젝트에 끌어들였다. 두 회사가 맺은 계약 내용은 이러했다: “두 회사가 1억 2천만 불의 제작비를 각각 절반씩 부담하되 폭스가 <타이타닉>의 해외 배급권을, 파라마운트가 북미 배급권을 가진다” (미국에서 <타이타닉> DVD가 폭스가 아닌 파라마운트에서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가장 난관이었던 제작비 문제가 해결되자, <타이타닉> 프로젝트는 (드디어) 본 궤도 위에 올랐다. 

 

촬영은 1996년 7월부터 개시될 것이며, 영화의 개봉일은 1997년 7월로 잡혔다. 이 발표가 있은 직후, 짐은 ‘특수 효과의 새 장을 열’ 실험적 프로젝트를 먼저 실행에 옮겼다. 바로 <T2-3D: Battle Across Time>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인생과 작품 세계”의 “<터미네이터 2>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도메인의 역량과 차세대 특수효과의 잠재력을 재확인한 그는 곧장 <타이타닉>의 사전 제작 과정에 돌입했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짐 카메론?

 

짐은 밤을 꼬박 새가며 ‘1912년 4월’에 있었던 비극을 다룬 자료들을 검토해 나갔다. 관련자들의 증언을 담은 서적에서부터 ‘타이타닉 호 침몰사건’을 다룬 영화들,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모든 것들을 말이다. (‘타이타닉 호 사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국내 고전영화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타이타닉 호의 비극 A Night to Remember>(1958)나 1953년 판 <타이타닉>(클리프톤 웹, 바바라 스텐윅 주연) 같은 작품을 제외하고도 이 사건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대단히 많다. 이미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해인 1912에 무성 영화 <Saved From the Titanic>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밤과 얼음 Night and Ice>(1912), <아틀란티스 Atlantis>(1913), <아틀란틱 Atlantic>(1929), <카발케이드 Cavalcade>(1933), <타이타닉 Titanic>(1943, 독일영화) 등 수많은 작품들에서 ‘타이타닉 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바 있다)


 <타이타닉>(1953) 중 한 장면


<타이타닉 호의 비극>(1958)중 한 장면

    

그러나 짐 카메론의 <타이타닉>은 이전에 나온 영화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강점’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바로 ‘1985년 타이타닉 호의 선체 발견 사건’ 이후에 제작된 영화라는 점이다. 1985년 이전까지만 해도, 타이타닉 호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존자들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증언을 과장/왜곡한 ‘추측성(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소설성’)’ 사건 기술이 범람했다. 게다가 생존자들의 증언 역시 상반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여서 - 가장 대표적인 예가 침몰 당시 과연 배가 두 조각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관한 엇갈린 진술이었다 - 정확한 사건 고증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1985년에 ‘두 조각이 난’ 타이타닉 호의 선체가 발견되면서 그간 논란이 되어온 많은 부분에 대한 실마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짐의 영화 속에 묘사된 사건은 이런 구체적인 증거가 뒷받침 된 ‘가장 신빙성 있는’ 추론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혹자는 ‘짐과 로즈의 로맨스’ 자체가 허구가 아니냐고 반문 하실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가공의 사건은 ‘(허구의) 두 주인공의 로맨스 관계’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의 눈에 비쳐지는 사건들, 예컨대 갑판 위에서 팽이를 돌리는 아이에서부터 빙산 조각을 가지고 축구를 하는 삼등석 승객들, (잭과 로즈가) 탈출 시 배의 기물을 부순 것에 대해 항의를 하는 승무원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은 실제 자료 및 생존자들의 증언에 철저히 기초한 것들이다. 


이 장면도 실제 있었던 일화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 시기, 짐이 특히 매료된 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Titanic: An Illustrated History'였다. 이 책은 열혈 타이타닉 마니아들인 돈 린치와 켄 마샬의 저서로 매혹적인 그림을 무더기로 담고 있었다. 짐은 이 책이 장차 자신이 만들 영화의 ‘청사진’이 될 것이라 믿고, 저자인 돈 린치와 켄 마샬을 만나 영화를 위한 조언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실 켄 마샬은 이미 이전에 짐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터미네이터> 제작 당시 매트 페인팅을 맡았던 인물이 바로 켄 마샬이었다. 짐은 두 사람에게 자신이 쓴 스크립트를 보여주며 정밀한 고증을 의뢰했다. 두 사람은 고증에 있어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짐의 열정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타이타닉>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여 짐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했다. 참고로 돈 린치와 켄 마샬은 이번에 나온 <타이타닉> CE DVD의 세 번째 음성해설 트랙(역사 고증 관련)에 참여했다. 


 

 

'Titanic: An Illustrated History'중. 짐의 영화가 이 그림들의 영향을 얼마나 크게 받았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짐의 ‘사실에의 집착’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타이타닉 호’의 건조 회사였던 '할랜드 앤 울프(Harland & Wolff)'에 의뢰하여 실제 타이타닉 호의 설계도를 입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타이타닉 호의 모형을 만들기로 했다. 또, 타이타닉 호의 연회장과 식당을 장식했던 융단의 제작을 맡았던 업체 BMK Stoddard도 짐에게 ‘기술지원’을 해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 타이타닉 호의 대빗(보트/닻을 달아 올리는 기둥)의 제작을 맡은 웰랜 대빗 컴패니(Wellan Davit Company)도 영화 제작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거국적 규모’의 고증과 협동 작업은 (물론)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폭스 사의 간부들은 눈 덩이처럼 불어 가는 영화의 제작 규모에 갈수록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확실한 흥행을 보장해 줄’ 안전장치를 애타게 갈구하고 있었다. 짐이 영화에 스타를 한 명도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하자, 폭스 사는 조심스레 짐에게 ‘그래도 한 명 정도의 스타배우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대한 짐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요! 열아홉이나 스무 살 쯤 된 청춘스타들 중에 나의 (지독한) 요구를 군말 없이 따를 ‘애’들이 있을 것 같소?” 폭스 사의 간부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짐이 감독을 맡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타이타닉>에 출연하기를 간절히 원한 스타 배우도 있었다. 제작 초기 단계에 톰 크루즈가 에이전트를 통해 ‘잭 도슨’ 역을 맡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짐은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잭의 역을 맡기에 톰 크루즈는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둘째, 만일 톰 크루즈가 잭의 역을 맡게 된다면 영화는 <타이타닉>이 아닌 <톰 크루즈의 타이타닉>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짐은 (각본에서 시작해) 모든 것을 변경해야만 했다. 


미안하네! 잭 역을 맡기에 자네는 너무 늙었네!

  

‘잭과 로즈’를 제외한 <타이타닉>의 배역 중에는 실존 인물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었다. 이 배역을 맡을 배우들을 캐스팅함에 있어, 짐은 이전과는 약간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 바로 ‘외모’를 보고 배우들을 선발한다는 것. 물론 이것은 짐의 ‘사실에의 집착’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었다. 아래 사진들을 참조하시길


토마스 앤드류스 역을 맡은 유인촌, 아니 빅터 가버


에드워드 J. 스미스 선장 역을 맡은 세오덴 왕, 아니 버나드 힐


부루스 이스메이 역을 맡은 조나단 하이드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인 ‘몰리 브라운’ 역은 본래 레바 멕켄타이어가 맡기로 돼 있었다. 유명한 컨츄리 가수이기도 한 그녀는 이미 <불가사리 Tremors>(1989) 등 몇 편의 영화에서 배우로서의 재능을 과시한 바 있다. 그녀는 너무나도 <타이타닉>에 출연하고 싶었기에, 짐에게 거의 ‘애걸’을 하다시피 했다. 다행히 오디션의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짐은 약간의 분장만 한다면 그녀가 실제 몰리 브라운과 유사해 보일 것으로 판단했다. 몰리 브라운 역에 발탁된 사실을 알고 그녀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그녀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영화의 촬영 기간이 6개월 이상 될 것이라는 ‘불행한’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녀는 이에 앞서 콘서트 튜어를 예정해 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촬영일정은 이것과 겹치게 됐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타이타닉> 프로젝트에서 이탈해야 했다. 몰리 브라운의 역은 최종적으로 <미저리>의 스타 케시 베이츠에게 낙찰됐다.

 

한편, 짐은 자신의 영화에 단골로 출연했던 배우들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에이리언 2>의 촬영 후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 제넷 골드스타인, 그리고 뉴월드 픽쳐스 시절부터 함께 해온 오랜 동료 빌 팩스톤이 ‘타이타닉 호’에 동승하게 됐다. 그러나 캐스팅 단계에서 짐을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물론 영화의 주인공들인 ‘잭과 로즈’ 역이었다. (짐의 작품답게) 잭과 로즈의 캐스팅 과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2. JACK AND ROSE


<타이타닉>에서 잭과 로스는 관객을 타이타닉 호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매개물 역할을 맡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들은 영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배역이었다. 따라서 짐 카메론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혈을 기울여 이들의 캐스팅 작업을 ‘감독’해야 했다. 짐이 쓴 각본에 묘사된 잭과 로스의 면모는 다음과 같았다. 

잭 도슨 Jack Dawson: 20세의 미국 청년. (당시의 기준으로는) 머리가 약간 긴, 호리호리한 체구의 부랑자다. 면도는 하지 않았고, 옷은 (입은 채로 잤기 때문에) 구겨져 있다. 잭은 화가이며, 15살 이후 혼자 살아오고 있다. 그는 매우 침착하고 흔들림이 없는 인물이다.

짐은 소설가 잭 런던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잭 도슨’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잭 런던은 <황야의 절규 Call of the Wind>, <바다의 이리 The Sea Wolf>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늑대 개 White Fang>(1991)의 원작도 잭 런던의 작품이다). 잭 런던은 (<타이타닉>의 잭 도슨처럼) 15세에 집을 나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갖은 막일을 했다. 그는 19세에 고등학교를 마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훗날 유명한 소설가가 됐다. 짐은 (잭 런던의 예처럼) <타이타닉>의 배경이 된 당시에 잭 도슨과 같은 방랑생활을 했던 젊은이가 적지 않았음을 특히 강조했다. 즉, (짐의 작품 속의 캐릭터가 늘 그랬듯) 잭 도슨은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허구의 캐릭터인 셈이다. 


로즈 드윗 버케이터 Rose Dewitt Buckater: 17세의 아름답고 당찬 소녀. 그녀는 필라델피아의 명문가 출신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귀족집안 처녀’ 스타일과는 좀 거리가 멀다. 타이타닉 호에 승선할 무렵, 그녀는 백만장자인 칼과 약혼한 상태였다. 그녀의 어머니 루스(미망인임)는 자신의 딸과 칼의 결혼이 집안의 심각한 재정난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로즈에게 이 결혼으로 가는 여정인 ‘타이타닉 호 승선’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로즈(Rose)'는 짐의 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연재 글 1편 짐의 성장기 참조) 짐은 관객이 초장부터 로즈의 성격을 알아채기를 원했다. 다른 승객들이 타이타닉 호의 압도적인 크기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모리타니아 호(‘올림픽’과 ‘타이타닉’이 나오기 전까지 최대급이었던 커나드사의 호화 여객선) 보다도 별로 크지 않네 뭐!’라고 시큰둥하게 말한다. 곧 이어 올드 로즈(글로리아 스튜어트)의 독백을 통해 그녀가 시니컬해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간단하게 소개된다.


로즈의 역으로 (당시 나이 스물 두 살이었던) 케이트 윈슬렛이 거론됐을 때, 짐은 (의외로) 이를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짐은 윈슬렛이 <천상의 피조물 Heavenly Creatures>(1994)과 <센스 앤 센서빌리티 Sense and Sensibility>(1995)에 출연한 배우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특히, 그녀가 최근에 출연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경우는 <타이타닉>과 같은 ‘시대물’이었다. 짐에게는 이 점이 특히 걸림돌이었다. 관객들이 이전 작품에서의 그녀의 이미지를 <타이타닉>의 주인공 로즈에게 투영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짐이 이 부분에 특히 집작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스케일에 대한 야심’ 때문이었다. 짐은 처음부터 <타이타닉>을 오랫동안 명맥이 끊겼던 ‘초대형 스펙터클 서사극’ - <닥터 지바고>나 <아라비아 로렌스>와 같은 -으로 기획한 바 있다. 따라서 그는 관객들이 <타이타닉>을 ‘급 자체가 다른’ 소형 시대극에 오버랩하는 따위의 일을 처음부터 봉쇄하고 싶었다). 그가 로즈 역으로 ‘신인급’의 여배우를 원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윈슬렛의 오디션 장면을 본 뒤, 그의 마음은 180도 바뀌었다. 짐의 동물적 직감이 그녀의 천부적인 연기력을 대번에 포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로즈의 역은 윈슬렛에게 돌아갔다.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 중 한 장면. 짐은 오디션 장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연기를 본 순간 “또래의 여배우들 중 가장 출중한 연기력을 지닌 이”임을 직감했다고 회고했다.


잭 도슨 역은 - 매튜 맥커너히, 브래드 피트 등의 쟁쟁한 후보자들을 제치고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돌아갔다. 사실, 디카프리오의 출연작들 중 짐이 본 것은 <길버트 그레이프 What's Eating Gilbert Grape>(1993) 단 한 편뿐이었다.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에서 ‘어니’역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짐은 이 영화 단 한편으로 디카프리오의 재능을 알아봤지만, 그가 과연 부랑자 잭 역으로 적역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디션 장에서 그를 직접 만나 본 후, 마음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짐이 감명(?)을 받은 것은 그의 ‘분위기 장악 능력’이었다. 오디션 장에는 ‘촬영장의 패튼 장군’이라 불리는 짐이 버티고 있었지만, 막상 디카프리오가 들어와서 연기를 하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집중되는 듯했다. 짐은 이런 강력한 '포스'를 지닌 젊은이를 이전에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디카프리오가 발산하는 '포스'는 짐이 각본에 묘사한 잭 도슨의 그것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The force is strong with him!


짐은 오디션의 최종 단계로, 윈슬렛과 디카프리오를 함께 무대 위에 올려 대사를 읽게 했다. 헌데, 이 단계에서 짐은 디카프리오의 ‘심상치 않은 행동’을 목격했다. 짐은 연기에 앞서 대기하고 있던 그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왠지 그의 행동은 ‘할리우드 역사상 최대 규모가 될지도 모르는 스펙터클 역사극’의 주인공 역을 따내려는 배우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태연자약하게 앉아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긴장한 빛이 전혀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귀차니즘’마저 느껴졌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디카프리오는 짐에게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오디션 장면을 녹화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이다. (물론 그가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는 얼마 후에 밝혀졌다). 디카프리오의 괴이한 행동에 짐은 적잖게 마음이 상했지만, ‘영화를 위해’ 그 모든 것을 용납하기로 했다. 두 배우의 앙상블은 (예상대로)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러나 디카프리오가 오디션 장면의 녹화를 거부했기 때문에, 짐은 (연기 장면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구두’로 폭스의 간부들을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폭스의 간부들은 처음부터 디카프리오의 캐스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디카프리오는 당시까지만 해도 ‘스타급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이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는 영화’인 만큼, 폭스의 간부들은 ‘어느 정도의 확실한 흥행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스타급 배우를 잭의 역으로 기용하기를 원했다. 디카프리오는 이 관점에서 봤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자격 미달’이었다. 그러나 짐의 생각은 달랐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타이타닉> CE DVD 리뷰의 영화소개 부분에서 이미 다룬 바 있으니 생략하도록 한다). 결국 폭스의 간부들은 (언제나 그랬듯) 짐의 고집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짐이 “기뻐하게나! 결국 자네가 잭 도슨의 역으로 낙찰됐네!”라고 알리려는 순간, 디카프리오는 어이없는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잭 도슨의 역을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맙소사! 기껏 밥상을 차려줬더니 그걸 걷어차?


디카프리오가 잭 도슨의 역을 거절한 이유는 간단했다. (짐 못지않게 ‘모험’을 즐기는 성향의) 그는 ‘보다 모험적인 역할’을 연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판단하기에, <타이타닉>의 잭 도슨은 ‘그다지 튀는 역’이 아니었다. 짐은 ‘젠장 Shit!'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디카프리오가 ‘잭 역을 완벽하게 소화할 유일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짐은 이번만은 (‘영화를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는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디카프리오 설득 작전’에 나섰다. 

 

그는 “자네가 캐릭터를 잘못 읽었네. 잭 도슨은 절대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네. 잭은 마치 지미 스튜어트(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의 애칭)와도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인물일세”라는 식으로 잭 도슨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들려주며 디카프리오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했다. 짐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디카프리오는 짐의 설명을 듣고는, 잭 도슨의 역이 지금껏 자신이 맡았던 어떤 역 보다도 소화해내기 힘든 ‘모험적인’ 것임에 적극 동의하게 됐다. 결국 ‘Feel'이 꽂힌 디카프리오는 즉각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 잭 도슨은 여러 면에서 짐의 자아가 투영된 캐릭터다. 짐은 또한, 디카프리오에게서 ‘고집 센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것은 그가 디카프리오를 잭 역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국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는 짐의 자아를 구체화하는 ‘창’ 역할을 한 셈이다. 


짐은 캐스팅에 있어 - 이전 연재 글에서 언급했던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 반드시 ‘오디션’을 거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는 감독이다. 소위 ‘전설’로 일컬어지는 과거의 명배우를 캐스팅함에도, 이 원칙은 철저히 준수됐다. 각본 상 101세였던 ‘나이 든 로즈’(앞으로 ‘올드 로즈’로 표기)의 역은 처음부터 ‘연기력을 검증받은 노배우’에게 맡겨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짐은 캐서린 햅번처럼 ‘지나칠 정도의 스타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는 일단 후보 명단에서 제외했다. 햅번과 같은 배우는 워낙 젊은 시절부터 은막을 ‘지배’해왔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녀의 젊은 시절 모습이 케이트 윈슬렛(‘젊은 시절’의 로즈)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따라서 ‘올드 로즈’의 후보는 ‘적당한 정도의 스타파워를 갖춘 노배우’로 압축됐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걸림돌은 짐이 끝까지 ‘오디션’을 거쳐 올드 로즈 역을 선발하겠다고 고집했다는 점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연기력이 완전히 검증된’ 과거 스타에 대한 예우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한 때, 올드 로즈 역을 제안 받았던 페이 레이(<킹콩 King Kong>(1933)의 그 유명한 스크림 퀸!)는 - 항간에 알려진 소문과는 달리 - 사실은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불쾌하게 여겨 <타이타닉>에의 출연을 거부했다. (페이 레이는 ‘과거 출연작들이 나의 연기력을 다 말해주는데 무슨 (얼어 죽을) 오디션이냐’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결국 올드 로즈의 역은 짐의 오디션을 아무런 조건 없이 흔쾌히 수락한 글로리아 스튜어트에게 돌아갔다. 글로리아 스튜어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막에서 은퇴한 뒤, 몇 편의 TV 시리즈에만 출연하고 있었기에 ‘올드 로즈’ 역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비록 나이가 걸림돌이긴 했지만 - 각본 상 올드 로즈의 나이는 101세였지만, 캐스팅 당시 스튜어트의 나이는 86세에 불과(?) 했다 - 이것은 (나이가 좀 더 들어보이게 하는) 분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올드 로즈’ 역의 글로리아 스튜어트. 짐은 실존 인물인 베이트리스 우드의 일생에서 영감을 받아 ‘올드 로즈’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짐은 자신의 이야기에 사실성을 불어넣기 위해 베아트리스 우드와 실제로 만나기까지 했다). 베아트리스 우드는 17세에 (자신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간섭했던) 어머니의 품에서 탈출하여 독립했고, 이후 유명한 도예 작가가 됐다. 이 장면에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올드 로즈의 이미지는 물론 베아트리스 우드의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 (우드는 102세가 된 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105세로 접어든 1998년 - <타이타닉>이 개봉한 이듬해 - 에 사망했다). 따라서 ‘타이타닉 호 참사’의 생존자인 로즈가 101세 때까지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다는 컨셉은 결코 허황된 것은 아니다. 짐은 <타이타닉>을 찍으며 글로리아 스튜어트와 매우 가까워졌고, 그녀를 친 할머니처럼 따랐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타이타닉>의 캐스팅 작업은 짐의 작품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슬로우 페이스’로 진행됐다. 물론 이것은 짐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었다. 앞선 <타이타닉> CE DVD 리뷰 글에서 언급했듯, 짐은 (잭과 로즈와 같은 ‘허구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실제 인물’에 가까운 외모를 지닌 배우들을 캐스팅하려고 노력했다. 즉, 그는 ‘타이타닉 호의 참사’를 다룬 이전의 영화들에서처럼 - 특히 1953년 작 <타이타닉>에서와 같이 - ‘영웅성을 강조한 인위적 성격의 인물들’이 배치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 것이다. 짐은 지금까지도 이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백만장자 칼 역은 쾌남형 배우인 빌리 제인이 맡게 됐다. 짐이 쓴 각본에 의하면 칼(칼든 하클리 Calden Hockley)은 30세이며 명문 하클리 가의 장남이다. 그는 타이타닉 호에 승선한 인물 중 존 제이콥 애스터 4세(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던 실존인물로 맨해튼의 백만장자) 다음 가는 부자다. 따라서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세상의 무엇이든 사서 바칠 수 있다는’ 자신감(혹은 거만함)이 있었다. 칼의 거만함은 - 상징적으로는 - ‘타이타닉 호의 거만함’과도 비견되는 것이다. ‘경이의 시대’의 거만함의 상징이었던 타이타닉 호는 ‘가라앉을 수 없는 배 Unsinkable ship'이라는 자랑스러운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과 함께 칼의 거만함도 종말을 고한다. (로즈의 독백을 통해 칼이 훗날 권총자살 했음이 밝혀진다). 짐은 각본의 초반부에 이미 이와 관련된 모티프를 대사를 통해 제시한다. 위의 장면에서 칼은 로즈의 어머니 루스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건낸다. “이 배(타이타닉 호)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신(God)조차도 이 배를 가라앉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보물 사냥꾼 브록 러벳 역은 짐의 오랜 파트너 빌 팩스톤이 맡았다. 짐은 유명한 보물 사냥꾼 멜 피셔의 인생에서 영감을 받아 브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멜 피셔는 보물을 가득 실은 채 침몰했다는 스페인의 범선 아토차 호를 찾는 데 무려 15년 이상의 세월을 투자한 인물이다. 그는 이 배를 찾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고, 심지어 탐사 과정에서 아들을 잃기도 했다. (영화에서 삭제된 신 중에는 브록이 “나는 ‘대양의 심장’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 대사는 멜 피셔의 일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본래 브록은 영화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탐욕적이고 거친 캐릭터였다. 하지만 빌 팩스톤이 이 인물을 연기하면서 점차 ‘부드럽고 사려 깊은’ 인물로 변해갔다. 흥미롭게도, 팩스톤은 ‘짐 카메론’을 염두에 두고 브록을 연기했다고 한다. 짐 역시 (팩스톤이 연기한) 브록의 사람 다루는 방식이나 대화 습성 등이 자신과 매우 닮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짐은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들이 실제로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던 인물들과 적절히 ‘어우러지도록’ 플롯을 구성했다. 말하자면, 잭과 로즈 등 짐이 만든 인물들은 타이타닉 호에 탔던 실제 인물들을 한 줄로 엮어 보여주기 위한 ‘창(窓)’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때로 실존 인물들은 가상의 캐릭터를 위해 중요한(?) 행위를 제공하기도 한다. 위의 장면이 바로 그 예다. 타이타닉 호 참사의 생존자들 중 가장 유명한 몰리 브라운 여사(케시 베이츠 분)는 허구의 인물 잭에게 의상을 제공해 그를 돋보이게 해준다. 하지만 (물론) 이런 ‘가상적’ 행동들이 실존 인물들이 잠시 후 배가 침몰할 때 겪을 ‘실제 사건’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짐은 특히 이 점에 신경을 써서 플롯을 만들었다.  


몰리 브라운의 소개로 잭은 존 제이콥 애스터-매들린 애스터 부부와 인사를 나눈다. 타이타닉 호 승선 당시 매들린 애스터는 로즈와 거의 비슷한 나이였으며,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임신을 한 상태였다. 존 제이콥 애스터는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고 있을 때, 2등 항해사 라이톨러를 설득하여 매들린과 함께 구명보트에 타려 했으나 항해사는 ‘여자와 아이들 먼저’라는 규칙을 언급하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그는 구명보트 승선을 깨끗이 포기하고 매들린에게 장갑을 건내준 뒤 배에 남아 최후를 맞이했다. 타이타닉 호의 참사 후 살아남은 매들린은 넉 달 후, 아들(존 제이콥 애스터 5세)을 낳게 된다. 영화에서 존 제이콥 애스터 역은 에릭 브래든이, 매들린 애스터 역은 샬롯 채튼이 각각 맡았다.


실존 인물인 백만장자 벤자민 구겐하임과 그의 정부 마담 오베르. 구겐하임은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정장을 입고 신사다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구명조끼를 입기를 거부한 인물이다. 짐 카메론의 <타이타닉>에서도 그의 일화는 ‘사실 그대로’ 묘사된다. 영화에서 구겐하임 역은 마이클 엔자인이 맡았다. 


 

3. INTO THE DEEP


<타이타닉>의 제작 준비 기간은 장장 8개월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짐이 해야 할 일은 실로 엄청난 분량이었다. 우선 그는 영화의 촬영에 적합하도록 각본을 다듬어야 했으며, 타이타닉 호 참사 당시의 여러 정황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병행해야 했다. 리얼리티에 관한 그의 ‘전설적 집착’을 생각한다면, 그가 이 기간동안 어느 정도의 사전 조사를 진행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문자 그대로, 그는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모조리 ‘타이타닉을 위한 조사’에 투자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영화의 촬영을 진행할 적합한 장소를 찾아내야 했다. 짐의 로케이션 팀은 제작 준비 기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초대형 재난영화’를 찍을 장소를 물색했으나 별 소득 없이 복귀하고 말았다. 말타나 폴란드, 영국 등 ‘언뜻 보기에’ 영화를 찍을 만한 장소로 보였던 곳들도 막상 가서 확인해 보니 <타이타닉> 정도 규모의 영화를 찍을 만한 곳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결국 짐은 폭스 사의 입장에서 ‘최악’이라고 판단할 용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타이타닉> 촬영 전용 스튜디오를 만들어버린다는 것! (2번 항목 참조)


“영화 찍을 데가 없다고요? 그럼 하나 만들어버리죠 뭐!”


한편, 짐은 이 기간에 ‘보안’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짐은 이미 <어비스> 제작 당시 두 편의 저예산 영화에게 차례로 ‘스트레이트 펀치’를 맞은 바 있다. (연재 글 4편 참조). (<스파이더맨> 프로젝트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에서) 짐의 ‘일생일대의 프로젝트’였던 <타이타닉>마저 그 전철을 밟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짐은 초장부터 영화의 정보가 새 나가지 않도록 철통같은 감시체제를 구축했고, 프로젝트의 명칭까지도 ‘플레넷 아이스 Planet Ice'라는 엉뚱한(?) 것으로 붙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짐은 굳이 이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타이타닉>은 소규모 제작사가 모방하기에는 너무나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타이타닉>을 1/10 정도의 스케일로 축소한 저예산 영화는 아무도 보러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바보가 아닌 한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1995년 가을이 되자 짐이 조사한 정보는 엄청난 분량으로 불어났다. 이미 이 시점에 이르러 짐은 ‘타이타닉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대로는 촬영을 시작할 수 없다’는 모종의 불안감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를 제대로 찍기 위해서는, 자신이 ‘비극의 현장’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영화적 욕심’을 넘어선 짐 자신의 ‘마니아적 탐구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바다와 다이빙을 미칠 듯 사랑했던 그의 성향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결국 그는 폭스 측에 ‘다소 당황스러운 통보’를 했다. ‘(대서양 밑바닥에서 잠자고 있는) 실제 타이타닉 호의 모습을 꼭 찍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는 만일 폭스가 이것을 허락지 않는다면, 영화 제작 자체를 포기하겠다고 까지 선언했다. 물론, 폭스가 짐의 고집을 이겨낼 재간은 (애당초) 없었다. 결국 폭스의 허락 하에 약 200만 달러의 예산을 확보한 짐은 ‘룰루랄라~♬’하는 심정으로 실제 타이타닉 호의 촬영 계획을 추진했다.  


카메론 팀이 실제 타이타닉 호 촬영 당시 사용한 러시아의 해양 탐사선 아카데믹 모스티슬라프 켈디쉬 호. 이 배는 당시까지 존재했던 가장 큰 해양 탐사선 중 하나였다. 

 

짐은 실제 타이타닉 호의 모습을 영화의 첫 부분에 삽입할 예정이었다. 말하자면, 짐은 이 ‘특별한 삽입’을 통해, 자신의 <타이타닉> 버전에 이전에 만들어진 타이타닉 소재의 영화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리얼리티를 부여하려 한 것이다. 짐은 이 짧은 삽입장면이 ‘허구와 현실 간의 경계벽’을 허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 타이타닉 호의 탐사를 위해, 짐은 러시아의 대형 해양 탐사선 아카데믹 모스티슬라프 켈디쉬 호(이하 ‘켈디쉬 호’로 표기)를 대여하기로 했다. 켈디쉬 호는 심해 촬영에 적합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 무엇보다도 - 짐이 꼭 필요로 했던 미니 잠수정 두 정(미르 1호와 미르 2호)도 보유하고 있었다. 짐 팀은 이 미니 잠수정을 타고 1만 2천 피트(약 3천 700미터) 이상의 심해로 들어가 타이타닉 호의 선체를 촬영할 계획이었다. 헌데, 촬영에 앞서 짐은 또 한 가지 장비를 준비해야 했다. 바로 ‘심해 촬영용 도구들’이다. 

 

짐이 만든 첫 번째 도구는 ROV(Remotely Operated Vehicle, 무인 해저 탐색 잠수정)였다.  짐은 <어비스> 제작 때도 비슷한 ROV를 제작해 활용한 바 있으나, 이번에 사용될 것은 ‘실제 심해’에서 엄청난 수압을 버텨내야 했으므로 보다 견고한 설계가 요구됐다. (<어비스>때 쓰인 ROV들은 실제 심해가 아닌 ‘인공 물탱크’속을 유영한 바 있다. 연재 글 4편 참조). 이 ROV는 카메라를 탑재한 채 심해 구석구석을 누빌 터였고, 이 과정은 ‘그대로’ 영화에도 담길 예정이었다. 

 

짐이 만든 두 번째 장비는 바로 ‘심해 촬영용 특수 카메라’였다. (심해에서는 필름 재장전이 불가능했으므로, 한번의 장전으로 지상에서보다 두 배 이상 길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는 특수 카메라가 필요했다). 이 카메라는 미르 1호(촬영을 담당했던 잠수정)의 외부에 부착되어 심해의 광경을 찍을 예정이었다. 이 특수 심해장비들은 <어비스>에서 맹활약했던 엔지니어 마이크 카메론(짐의 동생이다. 연재 글 4편 참조)이 이끄는 R&D 팀에 의해 개발됐다. 


카메론 팀이 미니 잠수정을 타고 심해 촬영을 진행하기 직전의 광경. 마이크 카메론이 개발한 심해 촬영용 카메라 장비는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것이었지만, 한 번의 다이빙에 고작 12분 정도밖에 찍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원하는 만큼의 촬영분을 얻기 위해 짐은 수없이 많은 다이빙을 시도해야 했다.


영화 초반부의 미니 잠수정 등장장면. 이 부분은 사실은 ‘실제 촬영분’이 아니라 세트에서 모형을 이용해 드라이 포 웻 방식(연재 글 4편 참조)으로 찍은 ‘가짜 촬영분’이다. 브록 로벳(빌 팩스톤) 일행이 타이타닉 호의 선체를 탐사하는 장면은 짐이 찍은 실제 촬영분과 모형 촬영분이 교묘하게 결합돼 완성됐다. 후반 제작 과정에서 화면의 질감조차 디지털로 ‘똑같이’ 보정됐기 때문에 육안으로 어떤 장면이 실제 촬영분이고, 어떤 장면이 가짜인지를 구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실제 촬영분과 가짜 촬영분을 구분할 수 있다. 공식은 간단하다: 미르 1호는 촬영용으로 쓰였으므로, 영화에는 등장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장면 중 ‘잠수정 두 대’가 한 화면에 나오는 부분은 무조건 ‘가짜(모형) 촬영분’이라고 보면 된다.


짐의 타이타닉 호 촬영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역사적인’ 것이었다.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그 정도 깊이까지 카메라를 들고 잠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짐에게 이 프로젝트는 ‘<어비스> 꿈의 현실화’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미르 1호의 외부에 설치된 카메라는 엄청난 수압을 버텨냄과 동시에 자유자재로 팬-틸트 촬영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이 카메라 장비에는 또한, 원격 조종되는 조명 시스템도 탑재되어 심연의 어둠 속에서도 촬영에 적합한 조명의 제공이 가능했다. 촬영 작업은 짐이 기획 당시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까다로운 것이었다. (짐 팀은 매일 16시간에 걸친 심해 촬영을 진행했지만, 한 번 잠수 할 때마다 얻어지는 촬영분은 고작 12분에 불과했다). 계산 상, 한 번 잠수 할 때 마다 수 만 불의 예산이 ‘심해로 가라앉게’ 되어 있었으므로, 짐은 잠수에 앞서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했다. 짐은 켈디쉬 호를 타고 타이타닉 호의 침몰 현장으로 가는 내내, 스텝들을 모아서 각종 모형 장비로 ‘예행연습’을 했다. 영화로 치면, 이것은 ‘사전 시각화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995년 9월 7일, 켈디쉬 호는 마침내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역사적인 재난의 현장’에 자신이 와 있다는 생각에, 짐은 완전히 ‘흥분 모드’였다. 하루 동안 장비를 점검하고 잠수 준비를 갖춘 촬영팀은 이튿날에 드디어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짐과 러시아 조종사, 엔지니어들이 탄 미르 1호는 11:25분 경에 물 속으로 던져졌고, 약 두 시간 반 뒤에 바닥에 도달했다. 다른 스텝들이 탄 미르 2호도 그 뒤를 따랐다. 잠수정이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짐의 ‘흥분지수’는 더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막상 잠수정이 바닥에 도착하고, 촬영을 시작하려는 찰나 황당한 일이 생겼다. 

 

잠수함을 조종하던 러시아인이 “허걱?! 이 고지가 맞나?”라는 식의 ‘-_-;;;’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수 백 번이나 잠수를 해보았다는) 이 조종사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이 러시아인은 수중 음파 탐지기도 제대로 읽지 못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짐은 음파 탐지기의 매뉴얼을 집어 들고 직접 탐지기를 읽었다. 그리고 당황한 러시아 조종사들에게 직접 ‘타이타닉 호의 위치’를 일러주며 그 쪽으로 잠수정을 움직일 것을 명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고 잠수정은 계속 움직였지만, ‘당연히 나타나야 할 거대한 배의 형체’는 보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헌데, 잠시 후 정말 ‘아찔한 광경’이 펼쳐졌다. 짐 팀의 시야에 갑자기 ‘유령선 같은 거대한 형체’가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미르 1호는 하마터면 이 거대한 형체와 정면으로 충돌할 뻔 했다. 만일 조종이 조금만 서툴렀다면, 다음 날 전 세계의 조간신문에는 이런 특종 기사가 날 뻔 했다. “제임스 카메론,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은 배를 찍으려다 그 배와 충돌해 사망하다!”


타이타닉 호 잔해의 모습 역시 실제 촬영분과 (모형을 이용한) 가짜 촬영분이 적절히 혼합/편집됐다. 여기에 사용된 모형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언급하도록 한다. 


짐은 수 백 만 개의 리벳이 박혀있는 그 거대한 형체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멎을 것 같은 전율감을 느꼈다. 이 순간은, 짐의 일생에서 ‘아드레날린이 가장 많이 분비된’ 순간 중 하나였다. 짐은 즉각 마음을 다잡고 촬영을 진행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토록 기대했던’ 첫 날의 촬영의 결과는 한 마디로 ‘재앙’이었다. 심해에서의 시계(視界)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좁았고, 조명도 제대로 비춰지지 못했으며 ROV 역시 당초 계산된 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카오스 상황’에서 제대로 된 촬영분이 나왔을 리는 (물론) 만무했다. 결국 짐은 이 날의 촬영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물 위로 복귀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일 뒤, 2차 촬영 시도가 이어졌다. 짐은 전날의 '실패‘를 교훈삼아, 이번에는 더욱 철저한 사전준비를 했다. 장비를 일일이 다시 체크하고, 조명 계획도 새롭게 수립했다. 그 결과 짐은 1차 촬영 때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날, 촬영을 마치고 물 위로 올라온 짐은 장비를 재점검하고 촬영분을 체크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짐이 ‘작업 모드’에서 해방된 바로 그 순간, 그의 뇌리에는 타이타닉 호의 잔해, 그리고 그 배가 겪었을 끔찍한 재앙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짐은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타이타닉을 위해 울었다” 짐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 날 자신이 경험한 특별한 페이소스에 대해 밝혔다. 이미 이 순간부터 ‘멋진 스펙터클 서사극을 만들겠다’는 그의 오만함은 깨끗이 사라졌다. 대신, 그의 뇌리에는 ‘타이타닉 호의 영혼을 영상 서사시를 통해 달래겠다’는 모종의 의무감이 자리 잡았다. 이 때부터 그의 목적은 ‘타이타닉 호의 영혼을 체화하여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됐다. 


“나는 타이타닉을 위해 울었다” - 짐 카메론


‘타이타닉 호의 영혼’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짐은 촬영 기간 중 대부분의 중요한 일과 - 점심식사와 티 타임 등을 포함한 -를 타이타닉 호 부근의 심해에서 보내기로 했다. (짐에게 이것은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일이었지만, 다른 스텝들에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짐은 잠수가 진행되는 내내 타이타닉 호의 잔해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곤 했다. 물론 그의 머리 속에는 1912년 4월 15일 새벽에 있었던 ‘드라마’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짐은 ‘촬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배가 침몰했던 때의 정황과 수장된 사람들의 심경을 자신의 가슴에 담는 것’이라고 여겼다. 

 

짐의 이후 잠수 일정은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이 촬영 작업은 거의 한 달에 걸쳐 진행됐다!) 어떤 날은 허리케인이 탐사 지역 주위를 휩쓸고 지나가는 ‘긴급사태’가 발생해 짐이 탄 잠수정이 수중에 고립될 뻔 했으며, 또 어떤 날은 잠수정이 해류에 휩쓸려 (잠수 첫 날처럼) 타이타닉 호 선체와 충돌할 뻔하기도 했다. 예컨대, 9월 19일의 ‘사건’은 스텝들에게는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날도 짐은 미르 1호를 타고 타이타닉 호로 접근하고 있었다. 헌데, 잠수정이 바닥에 가까워지면서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졌다. 짐을 비롯하여 잠수정에 탄 스텝들은 육안으로는 타이타닉 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기에 오직 수중 음파 탐지기에 자신들의 ‘목숨’을 의지하고 있었다. 음파 탐지기 상의 타이타닉 호의 위치가 급작스럽게 가까워지자, 짐은 처음에는 ‘탐지기가 고장났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것이 ‘실제 상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속도를 늦춰요! 잘못하면 배와 충돌하겠어요!”라고 외쳤다. 잠수정의 조종사는 서둘러서 속도를 늦췄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미르 1호는 ‘쿵’ 소리를 내며 타이타닉 호의 선체와 충돌했고, 잠수정 안의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꼬꾸라졌다. 

 

하지만 - 뒤늦게라도 속도를 늦춘 탓에 - 잠수정에 달린 카메라는 ‘기적적으로’ 무사했다. 짐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날의 잠수 일정을 취소하고 물 위로 올라갈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잠수정의 배터리가 갑자기 ‘맛이 간’ 것이다. 짐 일행은 꼼짝없이 수심 3천 700미터의 해저에 갇힌 신세가 됐다! 그 뒤로 두 시간 동안 짐과 스텝들은 배터리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잠시 동안 배터리는 작동하는 듯 했으나, 이내 다시 죽어버렸다. “순간 나는 ‘이제 망했다. 이대로 우리는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훗날 짐은 이 때의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라고 생각한 잠수정의 조종사는 필사적으로 배터리를 되살리려고 발버둥쳤으며, 결국은 마지막 순간에 배터리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네 시간 후, 미르 1호는 극적으로 수면 위에 도달했고 짐과 스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분이 영화에서 본 장면들은 사실상 ‘짐 일행이 목숨을 걸고 찍은 영상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95년 9월 27일, 짐은 ‘실제 타이타닉 호의 촬영’을 위한 마지막 잠수를 실시했다. 짐은 마지막 두 번의 잠수에서 이전까지 시도되지 못했던 ‘실험’을 하나 해보기로 했다. ROV ‘스눕독’을 타이타닉 호 내부로 ‘침투’시켜 선체의 곳곳을 촬영하도록 하는 것. (이것은 당초 계획에는 없던 것이었다). 일찍이 로버트 발라드(<타이타닉> CE DVD 리뷰의 영화 소개부분 참조)가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은 있었지만, 그가 내려 보낸 ROV는 계단통까지밖에 진입하지 못했다. 짐은 결국 ROV를 통해 이전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경이로운 장면들을 찍을 수 있었다. 발라드는 자신의 탐사를 마친 후 ‘타이타닉 호의 선체 중 나무로 만든 부분은 (나무를 먹는 수중 미생물 때문에) 모두 없어졌다’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짐은 이 촬영을 통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다. 놀랍게도, 많은 목조 공예물들이 1912년 모습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ROV가 찍은 타이타닉 호 내부의 모습


 

4. PLANET ICE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하기에 앞서, 짐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바로 영화의 주인공(?)인 타이타닉 호를 어떤 식으로 찍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짐의 성향을 고려한다면) 물론 가장 바람직한 선택은 바로 타이타닉 호의 완벽한 ‘복제품’을 만들어 대서양에 띄운 뒤, 그것을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짐의 스텝들은 약 2500만 불 정도의 예산을 들이면 영화 제작에 적합한 타이타닉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짐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시킬 정도의 디테일을 갖춘 타이타닉의 복제품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2년~2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문제점 때문에, 이 계획은 일찌감치 ‘쓰레기통 행’이 됐다. 

 

짐이 다음으로 고려한 방법은 실제로 운행하는 거대한 화물선(타이타닉 호와 대략 크기가 같은) 위에 촬영용 타이타닉 세트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타이타닉 호가 실제 바다 위를 운행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찍을 수 있고, 세트가 들어서지 않은 화물선의 부분에  각종 촬영 장비를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여러모로 경제적이지 못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후반 작업에서 디지털로 수정/삭제해야 할 부분(타이타닉 호 세트가 아닌 부분은 모조리 이 작업을 거쳐야 했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방법을 써서 바다에서 촬영을 진행한다면, 짐이 원하는 만큼의 인공조명을 확보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후에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타이타닉>의 조명 작업은 어떤 영화의 그것보다도 까다로운 것이었다). 짐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은 아주 전통적인 ‘미니어처 촬영’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만일 이 방식을 쓴다면 짐의 <타이타닉>은 - 같은 방식으로 촬영된 - <타이타닉 호의 비극 A Night to Remember>과 같은 기존의 타이타닉 소재의 영화와 다를 게 전혀 없는 영화가 돼버린다. 짐은 ‘미니어처 촬영의 한계와 장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따라서 그는 ‘꼭 필요한 몇몇 장면에서만’ 미니어처(사실 이 영화에 활용된 모형은 미니어처라기 보다는 ‘빅어처’에 가깝다)를 쓰기로 했다. 


<타이타닉>의 촬영에 사용된 미니어처 모형 중 하나. 


결국 짐은 ‘대단히 모험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바다와 접한 곳에 거대한 촬영용 스튜디오를 짓고, 거기에 타이타닉 호의 세트를 놓는다는 것. 이 방식은 사실상 ‘스튜디오 촬영’이었기 때문에 조명 및 각종 촬영 장비를 짐이 원하는 대로 배치/활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이 방식에 ‘모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바로 다음 문제 때문이었다: 짐은 타이타닉 호의 세트를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요소는 후반 제작 과정에서 디지털 작업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 두 가지의 주요 전제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1. 짐이 만들고자 한 것은 ‘타이타닉 호의 복제품’, 그러니까 ‘실제 배’가 아니라 오직 촬영을 위해 지어진 ‘타이타닉 호의 세트’다.

2. 따라서 이 세트는 실제로 바다 위로 띄워진 적이 없다!


자, 이쯤 되면 이 방식이 어째서 ‘모험적’이었는지 대략 이해가 갈 것이다. 여러분이 영화에서 본 ‘타이타닉 호의 대서양 항해 장면’은 사실상 ‘디지털 합성’의 승리다. 즉, 타이타닉 호를 둘러싼 모든 것들 - 바닷물, 수평선과 하늘, 세트로 만들어지지 않은 배의 부분(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설명), 그리고 승객들까지! - 은 후반 디지털 작업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짐의 영화가 늘 그랬듯) 이것은 이전까지는 시도된 적이 없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어느 부분이 디지털로 합성된 부분일까요?” 


촬영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짐은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뉴욕으로 향했다. 전처인 캐서린 비글로우가 감독한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홍보 활동을 돕기 위해서였다. (연재 글 5,6편 참조. 짐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 이 작업이 끝난 후, 짐은 곧장 <타이타닉>의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했다. 

 

우선, 짐은 자신이 찍은 타이타닉 호 촬영본을 미술부로 보내 모형 제작에 활용하도록 했다. 다음 단계로, 그는 초대형 촬영용 스튜디오가 들어설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러 장소를 샅샅이 뒤진 끝에, 그는 멕시코 바하의 로사리토 해변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다. 그 곳은 여러모로 ‘천혜의 <타이타닉> 스튜디오 부지’였다. 우선, 이 곳은 바다와 인접한 곳이어서 ‘최대한 실제 상황에 가까운’ 분위기의 연출이 가능한 장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짐의 마음을 끈 것은, 이 곳에서 작업을 진행할 경우 ‘현장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곳을 스튜디오의 건설 장소로 최종 낙찰하기 전에, 짐은 한 가지 테스트를 해야 했다. 짐은 곧장 스텝들에게 연락을 취해, 25피트(약 7.6미터)에 달하는 타이타닉 호의 모형을 트럭에 실어 현장으로 운반하도록 했다. 모형이 도착하자, 그는 스텝들과 함께 그것을 현장에 세워놓고 카메라 앵글, 태양빛의 세기, 주변 환경과의 조화 등 촬영에 관련된 제반 사항을 두루두루 체크했다. 머리 속으로 모든 계산을 끝낸 짐은 스텝들과 함께 현장에 온 제작자 존 랜다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곳의 땅을 깎고 스튜디오를 지으면 되겠네요!” 랜다우는 기겁하여 이렇게 외쳤다. “어허, 짐! 여기는 우리 땅이 아니에요!” 여기에 대한 짐의 대답은 이랬다. “그럼 우리가 사버리면 되죠!”


로사리토에 들어선 <타이타닉> 촬영용 스튜디오


그 길로 짐은 폭스 사로 향했다. 폭스 사의 간부들은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공포감(?)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이미 ‘실제 타이타닉 호를 찍는다’는 명목으로 수 백 만 불을 ‘수장’하고 돌아온 짐이 이번에는 어떤 황당한 요구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짐은 기절초풍할 만한 요구를 해왔다.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짐의 요구는 이랬다: “어이, 친구들! 멕시코에 내 전용 스튜디오를 하나 지어주시죠!” 간부들은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짐은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간부들을 설득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간부들의 입에서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기 전에, 짐은 ‘레퍼런스급’ 설득 작전을 펼쳤다. “멕시코에 스튜디오를 짓는다면 향후 폭스 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곳의 값싼 노동력과 천혜의 제작 여건을요. 아마도 캘리포니아에서 영화를 찍는 것보다 예산이 2~30%는 절약될걸요?” 짐은 이렇게 말한 뒤, 이 거대한 스튜디오야 말로 <타이타닉>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요소임을 강조했다. 간부들은 짐에게 단 한 마디의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간부들은 결국 -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 짐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룰루랄라~♬ 허가가 떨어졌다네!” <타이타닉>이 개봉을 앞두고 있던 1997년 12월 초, 에스콰이어 지에는 짐 카메론에 대한 장문의 기사가 실렸는데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James Cameron is the scariest man in Hollywood' (그가 왜 ‘the scariest man'인지는 지금까지 연재 글을 읽은 분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96년 5월 31일, ‘폭스 스튜디오 바하 Fox Studio Baja'라고 명명된 <타이타닉> 스튜디오의 건설 작업이 드디어 시작됐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스튜디오는 오직 한 영화를 위해 지어진 것들 중 전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영화의 개봉 날짜(폭스는 최초에 <타이타닉>을 1997년 7월에 개봉하려 했다)에 맞추려면, 이 스튜디오는 100일 안에 완성돼야 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스튜디오 안에 들어설 거대한 타이타닉 호의 세트 역시 이 기간 내에 완성돼야 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스튜디오의 건설’과 ‘타이타닉 호 세트의 건조’는 동시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스튜디오 내에는 실물 크기의 타이타닉 호 세트 외에도 배의 실내 장면 등의 촬영을 위한 세 개의 스테이지가 함께 들어설 예정이었다. 

 

스튜디오가 완성됨과 동시에 촬영을 진행하려면, 스튜디오 내부에 들어설 세트들이 먼저 완성돼야 했다. 이에 따라, 스튜디오의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일 때 각종 세트들(1등 선실 식당 세트와 대계단실 세트 등을 포함)은 다른 지역 - 멕시코 시티 - 에서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완성된 세트들은 일단 분해된 뒤, 최단 루트를 통해 로사리토로 ‘배달’되어 재조립 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멕시코 시티에서 제작되는 모든 세트들은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져 ‘분해 및 재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물론 로사리토에서 건설 중인 타이타닉 호 세트에 들어갈 중요한 시설들도 멕시코 시티에서 함께 제작됐다. 이 거대한 작업에는 멕시코 시티 현지에서 고용된 노동자들 외에 미국에서 차출된 인력, 그리고 수 십 명에 달하는 조선 및 건축 전문가들이 총동원됐다. 물론 모든 세트들은 타이타닉 전문가들 - 짐 자신을 포함한 -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설계/제작됐다.    


폭스 바하 스튜디오에 들어설 많은 세트들은 멕시코 시티에 있는 에스투디오 추루부스코 아즈테카에서 제작됐다.

 

타이타닉 호 세트의 규모와 디테일을 최대한 실제 배의 그것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은 짐으로써는 ‘당연한’ 전략이었다. 그는 자신의 <타이타닉>을 통해, 그간 같은 소재를 취한 여러 영화와 TV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황홀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려 했다. 타이타닉 호는 20세기 초 인류의 진보의 상징이며, 그 자체로 ‘서구 사회의 축소 버전’이었다. 따라서 짐은 - 볼품없는 미니어처 모형을 써서 찍은 과거의 영화와는 달리 - 카메라가 이 거대한 배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그것도 ‘롱 테이크’로 훑기를 원했다. (각본에는 심지어 부감 쇼트로 배의 이물에서 - 브리지와 굴뚝을 통과하여 - 고물까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논스톱으로’ 보여주는 신도 있었다!) 

 

관객이 스크린에서 이 배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그것이 미니어처가 아닌 ‘압도적인 크기의 진짜 배’임을 실감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배가 빙산에 부딪힌 뒤 가라앉을 때는 관객이 ‘작은 도시 크기의 배가 쩌억 갈라지고 바다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피부로 느끼기를 원했다. 그가 쓴 각본은 - 당연히도 - 이런 거대한 타이타닉 호 세트의 건설을 전제로 하여 작성된 것이기에 단순한 미니어처 모델 촬영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신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막상 세트를 만들 시점이 되자, 그는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바로 타이타닉 호 세트 건설 시 중요치 않은 부분을 일부 생략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생략된 부분이 후반 디지털 작업으로 보완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이것은 여러 모로 - 경제적으로나, 촬영 실무상으로나 -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어느 부분을, 얼마나 생략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짐은 애당초 <타이타닉>을 세 시간 정도 길이의 서사극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초반 20분 정도를 제외한 모든 장면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타이타닉 호를 배경으로 펼쳐질 예정이었다. 따라서 만일 생략되는 부위가 많다면 상대적으로 스크린 상에 비치는 배의 부위도 특정 부분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관객은 대번 ‘어? 똑같은 배 부위가 계속 나오네? 혹시 저 부분만 모형으로 만들었나?’하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 


‘폭스 스튜디오 바하’의 건설 작업은 1996년 5월 31일에 시작됐다. 묘하게도 이 날은 11년 전인 1911년, 벨파스트 항에서 (실제) 타이타닉 호의 진수식이 거행된 날이었다. 스튜디오의 ‘하이라이트’인 타이타닉 호 세트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 세트가 과거에 만들어진 미니어처 타이타닉 모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정확도를 지닌 이유는, 바로 할랜드 앤 울프(타이타닉 호의 건조 회사)의 실제 타이타닉 호 설계도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설계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분실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훗날 극적으로 발견됐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생략되는 부위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짐은 이물 쪽 갑판의 일부와 ‘눈에 띄지 않는’ 배의 중간 부분 및 약간의 구조물들만을 생략하기로 했다. 비율로 보면, 타이타닉 호 세트의 크기는 실제 배의 약 90%정도 됐다. 즉, 생략된 부분은 10% 정도(길이로 따지면 약 26~30미터) 되는 것이다. 여기서 90%라는 것은 ‘스케일’이 아닌 ‘실제 길이’를 의미한다. 즉, 생략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의 스케일은 ‘1:1’로 실제 타이타닉 호와 동일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몇 개의 예외는 있었다. 예컨대, 전체적인 세트의 길이와 조화시키기 위해 마스트와 굴뚝 역시 10% 정도 사이즈를 축소시켜 제작됐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구명보트와 대빗(보트/닻을 달아 올리는 기둥) 역시 10% 정도 사이즈가 축소됐다. (세트의 길이가 줄어든 관계로, 만일 구명보트를 1:1 사이즈로 만든다면 맨 마지막 구명보트는 엉뚱한 곳에 위치하게 될 터였다). 한편으로, 구명보트의 사이즈를 축소함으로써 타이타닉 호는 약간의 ‘반사적 이익’도 챙기게 됐다. 즉, 선체 위에 놓인 구명보트들의 사이즈가 좀 더 작아짐으로써 상대적으로 타이타닉 호의 크기가 더욱 커보이게 된 것이다. 

 

타이타닉 호 세트에서 생략된 부분은 위 사진과 같다. 하지만 - 전체 길이의 10% 정도가 생략됐음에도 불구하고 - 이 세트의 크기는 무려 240미터에 달했다! 


짐은 타이타닉 호 세트의 디테일 작업에서도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했다. 어차피 타이타닉 호는 (정면에서 봤을 때) 대략 좌우 대칭의 구조였으므로, 굳이 양쪽을 모두 (막대한 돈을 들여) 정교하게 꾸밀 필요는 없었다. 세트의 한쪽 면만을 자세히 만든 뒤 다른 쪽은 필름을 뒤집어서 현상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짐은 세트의 우현(右舷)만을 정교하게 꾸미고, 좌현은 ‘대충’ 만들기로 했다. 바로 여기서 <타이타닉>의 중요한 트릭 공식 중 하나가 도출된다: <타이타닉>에서 좌현(左舷)이 배경으로 비친 장면은 모두 ‘필름을 뒤집은 장면’이다. (물론 모형을 활용해 찍은 장면들 중 예외가 있긴 하나, 그것은 굳이 여기서 언급할 가치가 없다). 이 공식은 앞으로도 가끔씩 언급될 것이고, 영화를 감상함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되니 여기서 다음 ‘예제’를 통해 확실하게 숙지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예제) “이 장면은 필름을 뒤집은 장면일까요? 아닐까요?” 물론 (배의 좌현이 배경으로 등장했으므로) ‘필름을 뒤집은 장면이다’가 정답이다!


한편, 멕시코에서 실제 크기의 타이타닉 호 세트가 건조되는 동안 LA에서는 여러 개의 미니어처 타이타닉 모형들이 만들어졌다. 짐은 세트로 찍기 곤란한 부분들을 이 모형들과 그것을 활용한 CG로 보완하기로 했다. 또한, 앞서 언급한 영화 초반부의 ‘가짜 수중 촬영 신’을 위한 타이타닉 호의 모형도 동시에 제작됐다. 


디지털 도메인이 만든 1/20 스케일의 모형 타이타닉. 이 모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다. 로사리토에서 건설 중인 실제 크기 세트와 마찬가지로, 실제 타이타닉 호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숙련된 배 건조 전문가도 동원됐다.  크기가 무려 45피트(약 14미터)에 달하는 이 모형은 완성되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 


‘타이타닉 호 잔해 탐사 장면’ 촬영에 활용된 1/20 스케일 타이타닉 호 모형. 이 부분은 ‘드라이 포 웻 방식’으로 찍힌 뒤 짐이 이전에 찍은 ‘실제 타이타닉 호 촬영분’과 교묘하게 교차편집됐다. 사진에서 보듯, 타이타닉 호의 모형은 천장에 거꾸로 붙여졌는데 이는 촬영상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모델을 바닥에 놓고 촬영할 경우, 소형 잠수정을 움직일 복잡한 트랙이 천장에 설치돼야 했는데 이것은 매우 성가신 작업이 될 위험이 있었다). 


천장에 붙은 타이타닉 호 모형은 짐이 이전에 찍은 실제 타이타닉 호 잔해의 촬영분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물론 흐릿한 화질의 촬영분만으로 잔해 모형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델 메이커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잔해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짐은 모형의 제작 현장을 수시로 방문하여 “저 부분은 잘못됐어. 좀 더 휘어야 해!”라는 식으로 조언을 하곤 했다. 모델 제작을 맡은 조지 스티븐스는 짐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짐의 조언은 심지어, 수학적으로도 한 치의 오차가 없는 것이었다.


선체 벽면을 붙이기 전에, 알마스 인터네셔널의 기술자들이 초빙되어 수압식 조절장치를 이용해 세트를 위로 들어올렸다. 이후의 촬영에서 이 세트는 6도 정도 기울어질 예정이었다. (5번 항목 참조) 


 

5. “TITANIC WAS CALLED THE SHIP OF DREAMS..."


본래 <타이타닉>의 오프닝 장면은 여러분이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짐이 처음 쓴 스크립트에 의하면, <타이타닉>의 오리지널 오프닝 장면은 이러했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일랜드 인부가 ‘TITANIC'이라는 글자를 칠하고 있는 광경이 비친다. 이어서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서 이 글자가 새겨진 배가 얼마나 큰 것인지가 밝혀진다). 영화에 삽입된 오프닝 장면은 사실 짐이 후반 제작 과정에서 갑작스레 떠올린 것이었다. 짐은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대서양 바닥에 누워있는 유령선 같은 잔해’와 대비되는 ‘영광의 시절’의 타이타닉 호 모습을 삽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 장면의 타이타닉 호가 ‘찬란했던 과거의 모습’임을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뉴스릴’과 같은 다큐멘터리적 효과를 가미하기로 했다. 또, 잭이 죽음을 맞이하는 신에 흐르는 허밍곡을 배경 음악으로 삽입하여 묘한 감정의 울림을 불러일으키도록 했다. 이 장면의 다큐멘터리 효과는 짐의 친구이기도 한 에드 마쉬가 맡았다. 


<타이타닉>의 촬영은 켈디쉬 호 위에서 시작됐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보물 사냥꾼 브록의 배가 바로 실제 타이타닉 호 탐사 때 활용됐던 켈디쉬 호다). 촬영이 시작된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 엉뚱한 쪽 - 촬영감독 - 에서 ‘에러’가 나고 말았다. <타이타닉>의 원래 촬영 감독은 <내추럴 The Natural>과 <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으로 각각 아카데미 촬영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캘렙 데스채넬이었다. 그는 촬영 첫 날부터 여러 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장면의 촬영 작업은 해상에서 진행되는 것이어서 결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촬영 스텝들은 켈디쉬 호를 타고 온 많은 러시아 스텝들과 ‘의사소통 문제’를 겪고 있었다. (러시아 스텝들은 당연히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했다). 데스채넬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적응할 수 있는 베테랑 촬영감독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짐 카메론’이었다. 

 

실제 타이타닉 호 탐사에 동원됐던 켈디쉬 호는 영화에서도 ‘보물 탐사선’으로 출연(?)한다.  


‘자유주의 예술가’ 스타일의 촬영감독이었던 데스채넬에게 짐 카메론은 ‘최악의 독재자’였다.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지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이 있을 때는 가차 없이 독설을 퍼붓는 짐에게 그는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짐은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정말 형편없군! 쓰레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짐의 ‘언어폭력(?)’을 3주 간이나 용케(!) 버텨내던 그는 결국 백기를 들고 촬영장을 떠나고 말았다. 데스채넬의 후임으로는 ‘짐의 독재국가’에서 두 차례(<트루 라이즈>, <티2-3D>)나 활동한 바 있는 러셀 카펜터가 초빙됐다. 

 

짐의 기행(奇行)은 제작 초기부터 빛났다. 짐은 사전 제작 과정에서 그만 캐나다산 크런치 캔디 바에 중독돼 버렸다. (그에게 이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한 수단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촬영을 마칠 무렵에는 이빨이 다 썩겠다’라고 생각한 짐은 ‘특별 제작 어시스턴트’를 한명 고용했다. 이 사람의 임무는 오직 하나 - 짐이 하루에 한 개의 크런치 바만을 먹도록 철저히 감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짐은 이 어시스턴트가 보이지 않자 (기다렸다는 듯) 크런치 바를 한 움큼 쥐고는 미친 듯 포식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짐은 어시스턴트를 찾아 내 ‘자신을 감독하는 임무를 소홀히 한’ 데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


짐의 첫 번째 편집본에서 브록 일행의 타이타닉 호 잔해 탐사장면은 최종 극장 개봉판보다 두 배 정도 더 길었다. 짐은 이 부분에서 (당연히도) 자신이 애써 찍은 실제 타이타닉 호의 촬영분을 최대한 많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장면의 길이를 최대한 짧게 줄여버렸다. 이 장면이 너무 길 경우, 잭과 로즈를 중심으로 한 영화의 메인 플롯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때때로 ‘감독이 꼭 보여주고 싶은 것’과 (관객을 위한) 최종 편집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부분이 그 좋은 예다. 드라마의 효과를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짐은 (자신의 살과 피 같은) 아끼는 장면들을 잘라내고 만 것이다. 


본래 10일로 예정돼 있던 켈디쉬 호에서의 촬영 일정은 짐의 ‘완벽주의’ 때문에 속절없이 늘어만 갔다. 10일 안에 끝내야 했을 촬영이 20일, 30일이 지나도 계속되자 폭스의 간부들은 애가 타기 시작했다. 결국 짤막한 켈디쉬 호 신은 무려 40일의 촬영을 감행한 끝에 완성됐다. 이미 이 때부터 폭스의 간부들은 ‘짐이 또 한번 사고를 치겠구나!’라고 직감했다.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짐의 횡포(?)에 베테랑 스텝들은 ‘역시 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곧 스텝들은 <트루 라이즈>때처럼(연재 글 6편 참조) ‘You can't scare me, I work for James Cameron', 'T-3 not for me' 등의 기괴한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짐에게 장난기어린 ‘무언의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레퍼런스급 배짱’을 지닌 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타이타닉>의 촬영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짐의 외침이 수시로 들렸다. 


“당신은 해고야!” - 아쉽군요. 이제 이 사진도 마지막이군요. [글쓴이 주 :-)]

   

촬영장의 군기(?)를 해쳤다는 이유로(어떤 스텝은 마약을 복용하다 짐에게 발각되어 해고됐다), 또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몇몇 스텝들이 쓸쓸히 ‘집으로...’ 향해야 했다. 향후 있을 ‘어떤 황당한 사태’는 이미 이 때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사태인지는 잠시 후에 언급하기로 한다). 그러나 스텝들과는 달리, 짐은 (적어도) 배우들을 다룸에 있어서는 전작들에서보다 확실히 ‘부드러워’졌다. 물론 짐이 영화 제작을 거듭하면서 ‘배우 다루는 법’을 스스로 깨달은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배우 때문이었다. 


올드 로즈의 손녀딸로 출연한 수지 에이미스. 그녀는 현재(2006년) 짐 카메론의 아내다. 


짐은 이 여배우에게 게일 앤 허드, 린다 해밀턴, 캐서린 비글로우 등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아우라가 있음을 즉각 감지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시선은 에이미스에게 고정됐고, 이 여배우도 시간이 갈수록 짐의 카리스마에 매혹돼 갔다. 이들이 종국에는 ‘심상치 않은 관계’로 발전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었다.


<타이타닉>은 일종의 액자 영화 형식을 띠고 있다. 외부액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브록이 다이아몬드(대양의 심장)을 찾는 이야기이며 그 과정에서 만난 올드 로즈가 들려주는 회고담이 내부 액자에 해당한다. 본래 짐이 쓴 각본 초고에서는 외부액자부분의 이야기가 (최종 편집판에서보다) 좀 더 드라마틱했다. 이 버전에서는 보물 사냥꾼 브록이 다이아몬드에 집착하는 모습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났고, 엔딩 장면 역시 최종 편집판과는 달랐다. (이 오리지널 엔딩은 <타이타닉> CE DVD의 서플먼트로 수록돼 있다). 그러나 편집 과정에서 짐은 외부액자의 ‘다이아몬드에 관한 일화’가 지나치게 부각되어 오히려 영화의 메인 플롯(내부액자)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 이 부분을 과감하게 축소해버렸다. 


한 때 짐은 내부액자부분의 시점에 대해서도 약간의 고민을 했다. 전술했듯, 내부액자 부분은 올드 로즈의 회고담(즉 ‘1인칭 시점’)에 해당하는데 그 중에는 로즈의 시점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즉, 순식간에 시점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동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짐은 이 부분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최종적으로 결론 내렸다. 왜냐하면 외부액자와 내부액자의 이야기 사이에는 80년이 넘는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타이타닉호 사건에 대한 많은 진상조사와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있었고 로즈는 (당연히) 여기에 대해 들었을 테니, 배의 침몰 당시 직접 보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켈디쉬 호에서의 촬영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고된 작업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브록의 보물 탐사선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세트가 아닌 켈디쉬 호 현장에서 촬영됐다). 재촬영이 수도 없이 반복되자, 스텝과 배우들은 하나 둘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짐이 촬영분을 모니터로 체크하고 최종적으로 'OK' 사인을 보낸 날, 스텝들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비록 촬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신의 작업은 대부분 마친 터라 켈디쉬 호에서의 촬영은 거의 마무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날, 배우와 스텝들은 ‘해방감’을 만끽하기 위해 각종 해산물 요리를 시켜놓고 ‘축하 파티’를 열었다. 짐 역시 이 날은 이례적으로 (보통 짐은 ‘쫑파티’ 때 자기 방에 틀어박혀 혼자 식사를 하곤 했다) 배우 및 스텝들과 만찬을 즐겼다. 자기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한 스텝들의 노고를 직접 치하한다는 차원에서였다. 빌 팩스톤에 의하면 이 날 이전에 촬영팀에게 제공된 해산물 요리는 지독하게 맛이 없었다고 한다. 짐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미 두 명의 요리사를 ‘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지겨운 촬영이 끝났다’라는 해방감 때문이었는지) 이 날 요리로 나온 차우더는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러나 잠시 후, 정말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맛난 식사를 한 뒤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와 타이타닉 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팩스톤은 거친 노크소리를 들었다. 문을 열어보니 스텝들이 정신없이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앰뷸런스가 ‘앵앵~’ 소리를 내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노크를 한 스텝은 팩스톤에게 이렇게 물었다. “혹시 오늘 차우더 드셨나요?” 팩스톤은 “그럼요. 한 다섯 그릇은 먹었을 걸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말을 들은 스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현재 차우더를 먹은 이들이 모두 이상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팩스톤에게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문 밖에서 어떤 이는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어떤 이는 머리를 마구 쥐어박고 있었으며, 또 다른 이는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가’ 하는 사이, 팩스톤 역시 기분이 묘해지고 있는 걸 느꼈다. 

 

짐 역시 이상한 증세를 느꼈다. 그러나 약삭빠른(?) 짐은 즉각 ‘방금 전에 먹은 차우더가 수상하다’라고 생각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짐과 팩스톤을 포함, 이날 차우더를 먹고 이상한 증세를 보인 이들은 모두 근처의 다트머스 제너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팩스톤은 이튿날 아침에 퇴원했으나 여전히 기분이 ‘찜찜’해서 문을 닫고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 소동으로 이튿날의 모든 촬영 일정은 취소돼야 했다. (다행히도 글로리아 스튜어트는 ‘이상한 증세’를 보이지 않아 스텝들이 휴식을 취한 다음날 남은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마도 <타이타닉> CE DVD의 영화 본편 디스크에 포함된 짐의 음성해설을 들은 분은 이 부분에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라고 궁금하게 여겼을 것이다. 짐은 바로 지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소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한 소동이 일어난 원인은 (짐의 예상대로) ‘차우더에 누군가가 PCP(펜시클리딘, 마약의 일종)를 넣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이튿날, 촬영장에는 ‘과연 누가, 왜 이런 소동을 일으켰나’에 대한 해괴한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스텝 중 하나가 (과로 때문에 우중충했던) 촬영팀의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이런 짓을 했다고 추측했다. 또 어떤 이들은 짐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복수’를 하기 위해 차우더에 PCP를 넣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들은 얼마 전에 ‘마약을 복용하다가’ 짐에게 발각돼 해고당한 스텝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한편, 팩스톤은 ‘짐에게 잘린 요리사들이 보복을 하기 위해’ 이런 소동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했다. (팩스톤은 짐의 절친한 친구이긴 했지만, 그가 스텝들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임은 솔직히 인정했다. 팩스톤은 “짐의 촬영장에는 늘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스텝들이 우글우글했다”라고 증언했다). 핼리팩스 경찰은 이 건에 대해 며칠간  조사했으나 결국 범인을 찾아내지는 못했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돼 버렸다.

 

‘PCP 테러범’은 과연 누구였을까?


 

6. ODE TO THE SHIP


타이타닉 호는 진보와 오만함의 상징이기에 앞서 ‘위선’의 상징이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이 배는 결코 번영과 영광의 상징은 아니었다. 올림픽 호(타이타닉 호의 쌍둥이 자매선)와 타이타닉 호가 건조될 무렵, 영국은 국내외적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빈곤 문제도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국외적으로도, ‘대영제국의 신화’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두 척의 거대한 배(올림픽, 타이타닉)가 건조되고 있던 1911년에는 격렬한 석탄 파업과 철도 파업 사태가 있었다. 특히 전국적인 석탄 파업은 타이타닉 호의 처녀 출항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 타이타닉 호는 ‘영국이 최고’라는 오만한 신화를 엉뚱한 쪽으로 재현해 보려는 위선적인 몸부림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폭스 바하 스튜디오는 1996년 9월에 완공되어 곧장 ‘active' 모드로 들어갔다. 촉박하기 짝이 없는 건설 계획이었지만, 일꾼들은 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결과물을 제 시간 내에 만들어냈다. 워낙 서둘러서 진행된 공사였기 때문에 몇 차례의 사고도 있긴 했지만 수술을 받아야 될 정도의 상처를 입은 인부는 한 명밖에 없었다. 타이타닉 호가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을 찍기 위한 탱크(여기에는 약 1천 700만 갤런의 물이 채워질 예정이었다)가 로사리토 해변의 모래 위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고, 그 주변에는 5백만 갤런의 물이 채워질 실내 탱크 및 세 개의 거대한 촬영용 스테이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현장에서 무엇보다 돋보였던 것은 압도적인 크기의 타이타닉 호 세트였다.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에 도착한 스텝과 배우들은 타이타닉 호 세트를 보고는 예외 없이 턱을 떨어뜨렸다. 

 

전술했듯, 짐이 제작 초기부터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바로 ‘보안’이었다. ‘스파이’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스튜디오가 들어선 부지 전체가 몇 겹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철통같은 경비 시스템도 구축되어, 외부인은 별도의 허락 없이는 절대 스튜디오 내로 진입할 수 없었다. 스튜디오가 제 때에 완공됐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이는 (물론) 짐이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 짐은 딴 곳에 있었다. 핼리팩스 현장 로케이션(켈디쉬 호에서의 촬영)을 마친 짐은 곧장 캘리포니아의 디지털 도메인 본부로 가서 ‘타이타닉 호가 반으로 쪼개지는’ 신의 제작에 쓰일 미니어처 모형과 특수 촬영의 준비 과정을 검토했다. 

 

1/8 스케일의 미니어처 모형을 활용한 신은 바하 스튜디오에서 찍을 실사 신과 교차편집 될 예정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한다). 짐과 처음 작업을 해보는 모델 메이커 마리오 카실라스는 평소에 스텝들이 왜 짐에 대해 험담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 날 짐이 현장 감독을 하는 모습을 본 뒤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스텝들을 다루는 태도도 놀랍기(?) 그지없었고, 특수효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더더욱 경이로웠다. (때문에 스텝들 중 어느 누구도 짐에게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카실라스는 현장에서 짐을 처음 본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 마디로 그는 ‘괴물 monster’같은 존재였다”. 

 

타이타닉 호가 반으로 쪼개지는 장면의 촬영에 쓰인 1/8 스케일 미니어처 모형


"첫 날의 촬영은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 한 시에 끝났어요!” 케이트 윈슬렛의 회고담이다. 다섯 시에 곧장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서 그녀는 새벽 세 시에 기상해야만 했다. 이런 혹독한 촬영 일정을 이전에는 경험한 적이 없는 윈슬렛은 첫 날부터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었다.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에서 거대한 타이타닉 호의 세트로 나온 그녀는 수백 명의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20세기 초의) 시대 복장을 한 채 웅성거리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스텝들은 그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잡다한 명령을 내리고 있었고, 장비 담당자들은 각종 촬영 장비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직 해가 수평선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지만, 짐 카메론은 이미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본격적인 ‘작업모드’에 돌입해 있었다. 배우 마크 린지 채프만(수석 항해사 헨리 와일드 역)은 이 광경을 ‘광기의 현장’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채프만에 의하면 적어도 그것은 ‘정돈된 광기’였다). 세트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엑스트라들 중 상당수는 멕시코 지역 주민(배우와 건설 기술자 등으로 구성)이었으며 그 중에는 영어를 못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짐은 이 모든 사람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0일 정오에 사우스햄튼 항을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이 장면은 수십 겹의 특수효과 레이어가 합성된 매우 복잡한 신이다. 화면에 비치는 바닷물은 CG로 그려진 것이며,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와 안개, 갈매기들도 후반 작업에서 디지털로 창조된 것들이다. 배 위에 서있는 승객들 중 일부는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한 실제 배우들이며, 나머지는 CG로 그려진 인물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선 항구의 풍경 역시 그린 스크린 촬영분, 매트 페인팅 이미지 등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완성됐다. 


이 씬의 촬영에는 천 여 명의 엑스트라와 스물다섯 마리의 말 외에 1910년대 풍으로 정교하게 복원된 십 여대의 고급 승용차가 동원됐다. 위 사진의 소녀(버트 카트멜의 딸)의 대사 “아빠, 이건 ‘배(ship)라고 불러야죠!”는 사실 각본에는 없던 것으로, 촬영 현장에서 짐이 일종의 ‘조크’로 삽입한 것이다. 짐은 많은 사람들이 타이타닉 호를 가리켜 ‘보트(boat)’라고 잘못 언급했던 점을 꼬집어, 이 소녀를 통해 ‘타이타닉 호는 보트가 아니라 배(ship)다’라는 사실을 재인식시키려 했다. 


예인선들이 타이타닉 호를 끄는 이 장면도 보기보다 훨씬 복잡한 합성 쇼트다. 예인선은 물론 모델을 활용해 촬영됐고, 거기에 탄 사람은 디지털로 그려졌다. 바닷물은 (물론) CG로 만든 것이며,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항적은 (다른 배를 이용해 바다에서 찍은) 실제 촬영분을 디지털 합성한 것이다. 예인선의 크기는 짐의 요구에 따라 실제보다 약 10%정도 작게 표현됐는데,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예인선의 크기를 줄임으로써 타이타닉 호가 더욱 거대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다.

 

윈슬렛에게 <타이타닉>의 촬영 현장은 초장부터 ‘혼란의 장’이었다. 전술했듯, 타이타닉 세트에서 디테일하게 꾸며진 쪽은 우현밖에 없었다. 헌데, 타이타닉 호가 사우스햄튼 항에 정박해있는 영화의 첫 신에서는 당연히 배의 좌현이 보여야 했다. (‘좌현’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portside' 자체가 “항구(port)에 대는 쪽”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짐은 세트의 우현을 배경으로 촬영을 한 뒤 나중에 신 전체를 ‘뒤집어서’ 현상해야 했다. 

 

이에 따라, 모든 배우들은 ‘오른쪽이 왼쪽인 것처럼’, ‘왼쪽이 오른 쪽인 것처럼’ 연기를 해야 했고, 프레임에 비치는 글자들도 모두 뒤집어서 제작돼야 했다. 심지어 배우들이 입는 시대 의상의 단추들도 좌우가 바뀌어서 달렸다. 윈슬렛은 마치 동화 속 ‘거꾸로 거울 나라’에 온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각본 상 ‘왼쪽’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그녀는 ‘오른쪽’을 바라봐야 했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왼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텝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모자와 차, 건물의 글자가 모두 뒤집힌 것을 보고 몇몇 스텝들은 “이런, 이러다가 실독증에 걸리겠군!”이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거꾸로 나라’ 촬영현장의 모습


윈슬렛의 경우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여러 번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짐의 연출 스타일에 그럭저럭 잘 적응해나갔다. 그러나 ‘자유주의자’ 스타일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와는 사정이 약간 달랐다. 비록 촬영 과정에서 ‘심각할 정도의 충돌’은 없었지만, 짐과 디카프리오는 여러 번의 사소한(?) 갈등을 경험해야 했다. (두 사람의 스타일은 누가 보더라도 융합되기 힘든 것이었다). 심지어 이 갈등은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까지 줄기차게 이어졌다. (에필로그 항목 참조). 당장 촬영 일정의 초반부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모종의 긴장감이 흘렀다. 촬영장의 규칙을 엄수했던 윈슬렛과는 달리, 디카프리오는 촬영 초기부터 몇 번이나 ‘지각’을 했다. 결국 짐은 어느 날 그에게 다가가 ‘경고장’을 던졌다. 비록 짐이 그에게 (스텝들에게 그랬듯)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그의 ‘조용한’ 경고는 실로 무게감 넘치는 것이었다. 이 경고는 당장 다음날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디카프리오는 그 이후로 촬영장에 늦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스타일의 차이는 종종 예기치 않은 ‘충돌’로 이어지곤 했다. 하루는 디카프리오가 짐에게 ‘속이 좋지 않아 오늘 하루를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 촬영 스케줄이 뒤쳐져서 고심하던 - 짐에게 이것은 ‘속 편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짐은 갑자기 디카프리오에게 빈 깡통을 하나 건내주고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먹은 것을 토해내게! 그리고 촬영을 시작하자고!”라고 말했다. 황당해진 디카프리오는 “알았어요. 촬영할게요!”라고 *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그는 실제로 토하지는 않았다). 이 순간, 디카프리오는 ‘짐이 촬영장의 패튼 장군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잭 도슨이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선술집의 창문으로 보이는 사우스햄튼 항과 타이타닉 호의 모습은 합성된 것이다. 이 작업은 짐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포워드 프로덕션에서 맡았다. 여기 비치는 타이타닉 호는 사진이며 그 앞의 건물과 기차 등은 미니어처 모형이다. 이 신은 워낙 정교하게 합성됐기 때문에, 육안으로 그것이 ‘합성 신’임을 구분해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실제 역사에서, 타이타닉 호는 사우스햄튼 항을 떠난 뒤 셸브루와 퀸스타운을 거쳐서 대서양으로 나가게 된다. 짐 카메론의 <타이타닉> 이전에 나온 타이타닉 소재의 영화들은 셸부르에서 타이타닉 호가 출발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짐은 좀 더 드라마틱한 씬을 원했기 때문에, 사우스햄튼 항에서 구름 같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타이타닉 호가 출발하는 모습을 영화의 첫 장면으로 선택했다. 타이타닉 호가 셸부르에 머무르는 모습(위의 사진)은 상대적으로 아주 짧게 처리됐다. 영화에 묘사된 장면은 아주 정확하다. 당시 셸부르 항은 사우스햄튼 항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타이타닉처럼 큰 여객선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타이타닉 호는 항구 바깥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고, 화이트 스타 사 보급선이 승객을 실어 와서 타이타닉 호에 인계했다. 


윈슬렛과 디카프리오에게 <타이타닉>의 촬영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중노동’이었다. 이것은 스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7월로 예정된 개봉일에 맞추기 위해, 짐은 다소 무리할 정도로 촬영 스케줄을 빡빡하게 짜 놓았다. 때문에 배우와 스텝들은 하루에 거의 스무 시간 씩, 일주일에 (무려) 90시간 씩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한 스텝은 <타이타닉>의 촬영 현장을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배우와 엑스트라들은 잠을 자다가도 짐이 ‘비상 호출’을 하면 언제든지 세트로 달려 나갈 태세를 갖춰야 했고, 만성 피로에 ‘중독’된 스텝들은 촬영 도중 깜빡 졸다가 대형 사고를 일으킬 뻔하기도 했다. 많은 촬영이 밤에 이뤄졌기 때문에, 배우들은 낮에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수면을 취해야 했다. 촬영 기간 중에는 점심을 새벽 두 시에 먹는다든지, 아침을 오후 네 시에 먹는 등의 ‘비정상적인’ 일이 허다했다. 

 

헌데, 윈슬렛과 디카프리오에게 약간 의외였던 것은 짐의 스텝을 대하는 태도와 배우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스텝들에게는 다소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한 대우를 한 반면, 배우들에게는 (앞서 언급했듯) 다소 부드러운 태도를 보여줬으며 때로는 ‘열린 마음’으로 배우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기도 했다. 윈슬렛에 의하면, 짐이 배우들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다룬 것은 상당히 ‘지능적인’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즉, 짐은 배우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해댈 경우 당장 그들의 연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짐은 관객을 타이타닉 호 속에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려면 뭔가 매혹적인 ‘유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유인물’은 외부액자 이야기의 주된 소재로 활용될 예정이었다. 즉, 외부액자의 주인공인 브록이 타이타닉 호에 ‘미친’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유인물이었다. 짐은 그것을 ‘대양의 심장’이라는 커다란 다이아몬드로 설정했다. (물론 실제 타이타닉 호에는 이런 보석은 없었다). 한 때, 이 ‘대양의 심장’이 저주받은 다이아몬드로 잘 알려진 ‘호프 다이아몬드’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팬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기도 했다. 짐은 대양의 심장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임을 직접 시인했다.


짐이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배우들을 다뤘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로즈의 약혼녀 칼의 역을 맡은 빌리 제인과의 일화다. 성격파배우 빌리 제인은 촬영장에서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경우 끊임없이 감독에게 재촬영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이타닉>의 촬영장에서도 제인은 (감히 짐에게!) 몇 차례나 재촬영을 요구하곤 했다. 하지만 짐은 군소리 없이 제인의 요구를 들어줬다. 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비록 칼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만들었지만, 빌리 제인은 누구보다 그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연기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한편, 촬영을 거듭하면서 윈슬렛은 빠른 속도로 짐의 스타일에 적응해갔다. 윈슬렛은 ‘촬영장의 독재자’와 일한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솔직히 나는 그가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그를 좋아하게 됐고 그를 이해하게 됐다”. 짐은 윈슬렛을 가리켜 ‘매우 생각이 깊은 배우’라고 칭찬했다. 특히 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테이크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연기력이 눈부신 속도로 향상되어갔다는 점이었다. 짐의 영화답게, <타이타닉>의 모든 신은 배우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로 많은 테이크를 거듭한 끝에 ‘엄선된’ 것들이다. 하지만 윈슬렛은 짐이 또 다른 테이크를 주문할 때마다 ‘짜증’을 내는 대신 자신의 연기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검토해 다음번 테이크에서 그것을 완벽하게 보완해갔다. 


 

윈슬렛과 디카프리오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신은 공교롭게도 영화에서 가장 에로틱한 이 장면이었다. (짐이 이 ‘낯부끄러운’ 신의 촬영을 스케줄의 맨 앞쪽에 배치한 것은 순전히 의도적이었다. 그는 두 배우가 서로를 잘 알지 못했을 때 ‘가장 부끄러운 씬’을 연기하게 함으로써 두 배우의 ‘가슴 설레는(?)’ 표정을 생생하게 포착하려 했다).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었던 윈슬렛은 앞장서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했다. 분장실의 문을 고의로 열어놓아 디카프리오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디카프리오가 멋모르고 문을 열고 분장실로 들어선 순간, 그녀는 자신의 나신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윈슬렛에게 한 방을 ‘제대로’ 먹은 디카프리오는 이후 그녀와 좀 더 편안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짐은 PG-13등급을 받기 위해 이 장면을 최대한 ‘예술적으로’ 찍어야 했다.  

 

 

 

 케이트 윈슬렛의 눈이 글로리아 스튜어트의 그것으로 디졸브되는 이 장면은 단순한 오버랩 신이 아닌, 매우 복잡한 디지털 특수효과 장면이다. 두 배우의 눈은 완전히 다른 조명 환경에서 촬영됐기 때문에 모프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스튜어트의 눈이 (생김새와 색깔 모두에서) 윈슬렛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는 점이었다. 디지털 도메인의 스텝들은 관객이 이런 차이를 느낄 수 없도록 오랜 시간을 투자해 정교한 작업을 했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 장면에서 스튜어트의 눈은 윈슬렛의 그것으로 ‘대치’됐다. 즉, 맨 아래 사진의 스튜어트의 눈은 사실은 윈슬렛의 그것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하지만 특수효과의 완성도가 워낙 높아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고 해도 그것을 구분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디카프리오의 이 대사는 사실 짐이 쓴 각본과는 다른 것이다. 윈슬렛의 나체를 보고 살짝 ‘흥분’한 디카프리오는 “소파로 가서 누워요 get on the couch"라는 대사를 읊으려다가 실수하여 ”침대로...(윽!) 아니 소파로 가서 누워요 get on the bed...er! couch"라고 말했다. 디카프리오의 음탕한(?) 마음이 여지없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짐은 이 실수장면을 무척 재미있어했으며, 결국 영화에도 그대로 삽입하게 됐다. 그는 ‘실제로 잭 도슨은 레오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실수 대사(?)는 리얼리티의 극치다’라고 생각했다. 


버라이어티 지의 평론가 토드 맥카시는 <타이타닉>에 대해 극찬을 하며 “이 영화는 현대 (특수효과) 기술이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에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 평을 듣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짐이었을 것이다. 짐이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신을 연출함에 있어 궁극적으로 목표로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짐은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신중에서 플롯전개와 관련 없는 ‘볼거리 용’ 장면은 전혀 없다고 단언한다. 짐은 각본 작성 단계부터 이 점을 철저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트루 라이즈>때에 이어) 짐에게 <타이타닉>은 ‘SF-액션 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작업의 ‘마침표’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따라서 이 영화의 특수효과 장면은 ‘절대 SF 영화처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트루 라이즈>의 특수효과 쇼트가 그랬듯,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쇼트는 ‘극 사실주의’, 즉 ‘특수효과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사실적인 효과’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타이타닉>에서 짐은 여기서 진일보한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바로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플롯을 전개하는 필수적인 도구’로서 특수효과를 활용하는 것이다.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신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플롯을 전개하는 필수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당장 영화 시작 부분의 이 특수효과는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레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이타닉>에서는 이런 인상적인 장면전환이 수차례 등장한다.


이 점에서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신들은 매우 기념비적이다. 예컨대, 일부 평론가들만이 지적해낸 ‘놀라운 신’ 중 하나는 바로 잭 앞에서 누드 모델이 된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눈이 ‘올드 로즈’(글로리아 스튜어트)의 눈으로 ‘몰핑’되는 장면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장면은 단순한 오버랩 장면이 아닌, 대단히 복잡한 디지털 특수효과 장면이다). 짐은 이 특수효과를 씀으로써 단순히 플롯의 과거와 현재(<타이타닉>은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짐은 이 시간의 경과를 특수효과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시각화하고 있다)를 부드럽게 연결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극영화의 플롯 전개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묘한 감흥마저 창출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 나신을 드러낸 10대 소녀 로즈의 ‘떨리는 감정’은 ‘올드 로즈’의 눈을 통해 그대로 전달된다. 짐은 이 특수효과를 통해 ‘올드 로즈는 그 때의 10대 소녀의 감정을 아직까지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 다음부터는 올드 로즈를 볼 때마다 자연스레 10대 소녀 로즈를 마음속으로 오버랩하게 된다.


 

 

 

 

많은 평론가들은 타이타닉 호의 이물에서 고물까지를  롱테이크로 샅샅이 훑는 이 유명한 신을 ‘최고의 스펙터클 특수효과 신’이라고 극찬했다. 짐이 ‘Ode to the ship'이라 명명한 이 장면은 할리우드의 디지털 특수효과가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음을 증명하는 경이적인 신이다. 이 신은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찍은 배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대니 누치)의 모습과 모션 캡쳐 기법으로 만들어낸 갑판의 CG 사람들, 디지털로 손본 타이타닉 호의 모형, CG로 그려낸 바닷물과 실제로 찍은 뒤 디지털로 합성한 항적(航跡)등 수없이 많은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완성됐다. 실로 감탄할만한 점은, 이 긴 장면 내내 카메라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도메인의 스텝들은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맞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합성 쇼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문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했다. (‘정지 쇼트’를 합성하는 것도 힘든 판이었는데 스텝들은 짐 특유의 역동적인 쇼트의 요소들을 완벽하게 합성해내야 했다. 이 복잡한 합성작업에는 자그마치 6개월이 소요됐다!) 물론 요즘 관점에서 보면 CG 사람들의 움직임 등에서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도 보이지만, 영화가 CG 모션 캡쳐 기법이 걸음마단계였을 때 나온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이 신은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놀랍기만 하다.


그린 스크린을 배경으로 연기하고 있는 디카프리오와 누치. 

 

짐은 자신과 ‘앙숙관계’였던 영화음악가 제임스 호너에게 <타이타닉>의 음악을 맡겼다. (연재 글 3편 에필로그 항목 참조). 10년 만에 재결합한 두 사람은 <에이리언 2>때와는 달리 ‘환상적인 앙상블’을 과시했다. 짐은 ‘Ode to the ship' 씬 (이 씬은 짐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이 성공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감동적인 스코어 때문’이라며 호너의 공로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 장면에 흐르는 호너의 스코어는 ‘Take her to the sea, Mr. Murdoch'이다). 호너는 <타이타닉>의 스코어 작업으로 무려 두 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넣었는데, 시상식장에서 매우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에필로그 항목 참조)


몇몇 관객과 평론가들은 ‘짐은 감독으로서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각본가로서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타이타닉> 후에 이런 평가가 많이 나왔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평가에는 영화 속의 ‘정형적’이고 ‘유치한(?)’ 대사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짐과 작업을 해본 스텝이나 그를 아는 동료 각본 작가들,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 짐의 각본 작업을 도와줬던 랜달 프레이크 등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편견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짐이 쓴 각본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각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일 것이다. 짐이 쓴 각본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구성을 하고 있으며 촬영용 도구로도, 흥미용 읽기 자료로도 흠 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라고 주장했다. 많은 관객들에게 ‘유치하다’라는 혹평을 들었던 이 대사 “나는 세상의 왕이다!”는 사실 짐이 쓴 각본에는 없는 것이었다. 이 대사는 촬영 현장에서 짐이 떠올린 것으로, 그는 잭이 (꿈을 안고 떠나는) 타이타닉 호에서 느끼는 환희의 절정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다. 짐은 또한, 이 대사를 통해 ‘Ode to the Ship' 신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폭스의 간부들은 ‘SF-액션물’의 대가인 짐이 과연 ‘멜로 드라마’를 잘 연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짐은 여기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랜달 프레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짐은 그 이유를 (놀랍게도) ‘<타이타닉>과 이전에 내가 만든 영화들은 근본적으로 다르지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무슨 말이냐면, 짐은 자신의 전작들 역시 SF-액션 영화이기 이전에 ‘러브 스토리’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짐에 의하면, <어비스>는 ‘전형적인’ 러브 스토리이며, <트루 라이즈>는 ‘위험에 처한 부부관계에 관한’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 또, <에이리언 2>는 ‘모성애’에 관한 영화이며 <터미네이터> 시리즈 역시 고딕 러브 스토리의 변형된 형태라고 한다. 즉, <타이타닉>은 정확히 짐의 전작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며, 단지 전작들에 비해 ‘순수 드라마’적 요소가 더욱 강조된 작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이타닉>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스 신’인 이 장면에서 잭이 “나를 믿나요? Do you trust me?"라고 묻자 로즈가 ”당신을 믿어요 I trust you"라고 대답하는 부분은 사실 각본에는 없었다. 짐은 촬영 현장에서 이 부분을 추가시키기로 했는데, 후반부 타이타닉 호가 가라앉는 부분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똑같은 대사와 앙상블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분에서 또 하나의 멋진 디졸브 신(과거의 타이타닉 호가 현재 잔해로 남은 타이타닉 호로 디졸브 됨)이 나오는데, 이 장면의 합성과정 역시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짐은 이 장면을 통해 ‘특수효과가 플롯 전개에 시적인 분위기를 부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잭과 로즈가 정사를 벌이는 곳은 실존 인물 윌리엄 카터의 최고급 르노 자동차의 내부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이 차가 타이타닉 호에 선적되는 모습도 등장한다). 짐은 이런 식으로 실제 역사상의 배경과 픽션을 교묘하게 섞었다. 윌리엄 카터는 타이타닉 호 침몰 당시 살아남았으며, 나중에 보험 회사에 이 차에 대한 보험금(5천불)을 청구하게 된다. 짐은 실제 타이타닉 호 탐사 당시 이 차도 찾아보려 했으나, 결국 찾는 데는 실패했다.

                  

 

7.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 호가 유빙지대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스미스 선장이 왜 속도를 줄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짐의 <타이타닉>에 등장하는 이 장면(화이트 스타 선박 회사의 사장 브루스 이스메이가 스미스에게 ‘속도를 올리자’고 종용하는 부분)은 배의 침몰 후에 열린 청문회 당시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승객들의 증언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물론 이스메이는 청문회에서 이것을 완강히 부인했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그는 “나는 단지 승객일 뿐이었다. 배의 운행에 대해 선장에게 어떤 압력도 주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단지 승객일 뿐이었다”라는 그의 뻔뻔한(?) 주장은 영국 청문회에서 루퍼스 이삭스 경의 기막힌 질문 하나 때문에 웃음거리가 됐다. 이삭스 경의 질문은 이러했다. “그렇다면 증인은 요금을 지불했습니까?” (물론 이스메이는 ‘공짜’로 타이타닉 호에 승선했다!)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부딪히는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의 스타일은 크게 바뀌게 된다. (이전까지의 스타일이 ‘멜로 드라마’였다면, 이 장면 이후는 ‘리얼리즘 액션 드라마’다). 특히 이 부분부터는 ‘철저하게 사실에 입각한’ 사건 전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롯의 중심에는 물론 (가공의 인물인) 잭과 로즈가 있지만, 그들은 ‘실제 있었던 사건’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사실상 그들은 배 위를 누비면서 그 곳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카메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법칙에서도 ‘예외’가 있기는 하다. 바로 아래 장면이다.   

 

 

타이타닉 호 망루의 빙산 감시원들은 잭과 로즈를 지켜보며 ‘한눈을 팔다가’ 빙산을 늦게 발견한다.


이 장면은 잭과 로즈가 ‘실제 사건’에 영향을 끼치는 거의 유일한 부분이다. 사실 짐은 이 부분을 ‘의식적으로’ 설정했다. 빙산의 사이즈를 고려했을 때, 망루의 감시원들이 ‘실제로’ 무언가에 정신이 팔리지 않고는 그것을 늦게 발견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짐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어떤 것에’ 정신이 팔렸는지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었다. 짐은 이 ‘끊어진 고리’를 메우기 위해 자신이 만든 주인공들을 이용했다. 물론, 짐은 ‘검증되지 않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도 솔직히 인정했다. 

 

타이타닉 호의 망루 감시원들이 왜 빙산을 늦게 발견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이들이 ‘졸다가’ 빙산을 늦게 발견했다고 추정했고, 또 다른 이는 이들이 꽁꽁 얼은 손발을 ‘데우기’ 위해 망루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뒤늦게 일어서서 빙산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타이타닉 호의 침몰 후에 열린 청문회에서 실제 망루 감시원이었던 프레데릭 플리트(위 캡쳐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인물)는 ‘배 앞에 안개가 끼어 있어서’ 빙산을 늦게 발견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안개’ 이야기는 빙산을 늦게 발견한 데 대한 변명으로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실’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충돌하는 장면. 이 빙산의 모습은 사고 당시에 생존한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디자인 된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타이타닉 호가 빙산과 충돌하는 위의 장면은 매우 정확하게 재현됐다. 청문회 때의 증언에 따라 당시의 광경을 재현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빙산을 뒤늦게 발견한 플리트는 급히 브리지에 전화를 걸어 6등 항해사 무디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바로 앞에 빙산이 있다”는 보고를 들은 무디는 플리트에게 “고맙다 Thank you"라고 말한 뒤 1등 항해사 머독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빙산이 코앞에 있는 상황에서 ‘고맙다’라고 말할 여유가 있었다는 것은 실로 코믹(?)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검증된 사실이다. 짐은 이 부분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했다). 

 

1등 항해사 머독은 키잡이 히친스에게 ‘키를 최대한 우현으로!’라고 외친다. 머독은 그 후 기관실 전신기를 향해 ‘정지’, 그리고 ‘전속력 후진’ 명령을 차례로 전달했다. 이어서 그는 정신없이 뛰어가 벨 단추를 누른 뒤(이것은 배 밑쪽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방수 칸막이의 문이 곧 닫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음) 방수 칸막이를 닫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상 설명한 부분을 영화의 해당 장면과 비교해보면, 짐이 얼마나 정확도 높은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등장하는 <타이타닉>의 모든 장면들은 이 부분과 동일한 수준의 정확도(즉 98~99%, 어차피 100%의 정확도란 존재할 수 없다)로 재현됐다고 보면 틀림없다.  

 

타이타닉 호가 반으로 ‘쪼개져서’ 가라앉았다는 이론은 (영화 개봉 당시만 해도) 많은 관객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짐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신에 이 장면이 등장할 경우, 대부분의 관객들이 당혹해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초반부에 이 CG 장면을 삽입했다. 결과적으로 이 ‘친절한 비디오 해설’ 덕분에 관객들은 클라이맥스 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들’ 외에 논란이 된 많은 부분들을 묘사함에 있어, 짐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 치밀한 고증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논란이 된 부분 중 적어도 ‘타이타닉 호가 침몰 당시 반으로 쪼개졌는가’에 대해서는 짐은 확실하게 ‘그렇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1985년, 로버트 발라드가 발견한 타이타닉 호의 잔해가 명백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짐의 영화가 대히트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타이타닉 호가 침몰 당시 쪼개지지 않고 그대로 물 속에 가라앉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짐의 영화 이전에 나온 타이타닉 영화들 - <타이타닉 Titanic>(1953)이나 <타이타닉 호의 비극 A Night to Remember>(1958) 등 - 에 묘사된 배의 침몰 장면이 그렇다. <타이타닉> CE DVD 리뷰의 영화 소개부분을 참조하시라). 참으로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합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역사는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 적어도 타이타닉 호 사건에 있어서 이 명제는 ‘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미국 청문회의 자료에 의하면, 최소한 12명의 생존자들이 ‘타이타닉 호는 가라앉을 때 반으로 쪼개졌다’라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반으로 쪼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타이타닉 호의 2등 항해사 라이톨러의 증언이 ‘정설’이 돼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라이톨러는 ‘권위 있는’ 항해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권위 있는’ 소수의 주장이 ‘힘없는’ 다수의 주장을 가볍게 눌러버린 것이다. 그럼 왜 라이톨러는 이런 ‘거짓 주장’을 했을까? 


라이톨러 씨, 왜 그랬어요?!


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라이톨러는 선장 자리에 오르기를 갈구하는 ‘야심찬’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화이트 스타 선박 회사의 편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만일 그가 다른 증인들처럼 ‘타이타닉 호가 반으로 쪼개졌다’라고 증언했다면, 화이트 스타 선박 회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간판으로 내세우던 배가 빙산에 부딪혀서 침몰한 것 자체만으로도 회사로서는 씻을 수 없는 데미지인데, 배가 반쪽으로 갈라지기까지 했다면 사람들은 ‘애당초 타이타닉 호는 그다지 튼튼한 배가 아니었군!’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화이트 스타 선박 회사로서는 (이 ‘불리한 증언’과 관련해) 또 한 가지 걱정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바로 타이타닉 호의 쌍둥이 자매선인 올림픽 호였다. (올림픽 호는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후에도 23년 동안이나 더 운행했다). 만일 사람들이 ‘타이타닉 호가 튼튼한 배가 아니다’라고 여긴다면, 누구도 올림픽 호에 승선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라이톨러의 주장이 ‘정설’로 선택되면서 화이트 스타는 ‘최악의 사태’는 모면할 수 있었다. 짐은 - 말하자면 - 자신의 <타이타닉>버전을 통해 ‘왜곡된 역사 바로잡기’를 시도한 셈이다.

 

월레스 하틀리가 이끄는 밴드가 끝까지 배에 남아 악기를 연주했다는 사실은 타이타닉 열혈 팬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진 것이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만일 아무런 힌트도 없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신에 이 에피소드가 소개된다면, 타이타닉 호 사건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관객들은 ‘설마 저런 영화같은 일이 있었을까’라고 의심하게 될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짐은 영화 초반부에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브록의 인터뷰 음성을 통해 이 부분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짐이 잠시 고민했던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타이타닉 호의 밴드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이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많은 생존자들은 그 곡이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Nearer My God to Thee"였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다른 주장도 있었다. 타이타닉 호의 무전 기사였던 해롤드 브라이드는 뉴욕 타임즈를 통해 “밴드가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은 왈츠곡 ’가을 Autumn'이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짐은 브라이드의 증언 대신, 절대 다수가 지지한 ‘내 주를 가까이’를 택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짐에 의하면 브라이드는 ‘허풍선이’에 가까울 정도로 말 지어내기를 좋아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짐의 주장은 사실이다. 실제 청문회 때에도 브라이드는 앞뒤가 안 맞는 증언을 계속하여 주위 사람들을 당혹케 했다). 둘째, 밴드의 리더였던 월레스 하틀리는 일찍이 다른 배의 동료에게 “만일 내가 탄 배가 가라앉는다면 나는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틀리는 또한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자신의 누이에게 보낸 바 있다. 이것은 그가 배의 침몰 당시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감동적인 일화를 남긴 악단장 월레스 하틀리(사진 가운데 인물)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다. ‘내 주를 가까이’라는 곡도 여러 버전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인들에게 ‘내 주를 가까이’는 ‘Bethany'라는 멜로디의 곡으로 통한다. (이 멜로디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것이다. 짐의 <타이타닉>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멜로디다). 하지만 영국인들에게 ’내 주를 가까이‘는 ‘Horbury’라는 멜로디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미국인 생존자들과 영국인 생존자들이 모두 ‘밴드가 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는 점이다. 양 측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밴드는 ‘배가 가라앉는 급박한 상황에서 (미국인과 영국인 모두를 생각하여!) 두 버전의 멜로디를 모두 연주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상식적으로도 이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타이타닉 호의 악단이 연주한 곡 ‘내 주를 가까이’는 제작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영화에서 각기 다르게 묘사됐다. 미국에서 만든 1953년 작 <타이타닉>(진 네글레스코 감독, 위 사진)에서는 짐의 <타이타닉>에서와 같은 멜로디 버전인 ‘Bethany'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영국에서 만든 1958년 작인 <타이타닉 호의 최후 A Night to Remember>(로이 워드 베이커 감독, 아래 사진)에서는 'Horbury' 멜로디 버전이 삽입된 바 있다.

  

단, 악단장 하틀리가 영국 출신이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밴드가 연주한 곡은 (<타이타닉 호의 최후>에서처럼) ‘Horbury' 멜로디 버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짐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Bethany' 멜로디 버전을 삽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으로 인해 여러 나라 - 특히 미국과 우리나라 - 관객들에게 해당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감동적인 신’으로 기억되게 됐다). 


<타이타닉>에서 가장 감동적인 ‘내 주를 가까이’ 신 중 일부. 여기 나오는 부부는 그 유명한 이시도어-아이다 스트라우스 부부다. 잠시 실제 역사를 언급하면, 이시도어 스트라우스는 당시 세계 최대급의 메이시 백화점(뉴욕 소재)을 소유한 대부호였다. 그는 또한 40년이 넘도록 아내 아이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 멋진 남편이기도 했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이들은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여자와 아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우라는 명령에 따라, 이시도어는 아내 아이다에게 ‘어서 보트에 타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다는 ‘남편과는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 지금껏 함께 살아왔듯, 죽을 때도 함께 죽겠다’면서 이를 한사코 거부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이는 ‘나이 많은 두 사람이 보트에 타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며 두 사람이 모두 배에 타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이시도어는 “아니오. 나는 남들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특혜를 받고 싶지는 않소”라면서 이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스트라우스 부부는 결국 배에 남아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스미스 선장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브리지로 가는 것을 보았다는 생존자의 증언만 있을 뿐이다. 짐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짐은 스미스가 사고를 자초한 데 대한 죄책감을 ‘밖으로’ 드러내며 최후를 맞도록 했다. (그가 죄책감을 어떤 식으로 드러내는 지는 영화에 묘사된 대로다).

 

촬영이 거듭되면서 짐은 더욱 가혹하게 스텝들에게 채찍질을 해댔다. 공포에 질린 타이타닉 호의 승객들이 구명보트로 몰려드는 신을 찍던 날, 엑스트라들은 짐의 사악한(?) 자아가 폭발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수 없이 많은 재촬영을 거듭했음에도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짐은 자신의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혼자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촬영분이 나오는 가 했더니, 이번에는 음향 담당자가 실수를 하여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다. 음향 담당자는 짐에게 다가가 정중히 사과를 했지만, 짐은 이렇게 외치며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뭐가 잘못됐는지 말해줄까요? 당신은 내 설명을 제대로 듣지를 않았기 때문이오!” 기가 질린 음향 담당자는 단 한 마디의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다음 테이크에서, 이번에는 엑스트라들이 실수를 하여 촬영을 망치고 말았다. 짐은 곧장 제작 어시스턴트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저 앞에 있는 커플들 보이죠? 저 사람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당장 해고시켜버려요!” 물론 그 불쌍한(?) 엑스트라들은 곧장 ‘집으로...’ 향해야 했다. 가까스로 촬영이 끝난 뒤, 휴식 시간에 짐은 이렇게 외치며 촬영장의 군기(?)를 잡으려 했다. “정신들 차려요! 우리는 지금 ‘전투’를 치르는 중이라고요!”

 

 

<타이타닉>은 컴퓨터를 이용한 모션 캡처 기법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에 나온 ‘실험적인’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는 매우 ‘모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션 캡처를 할 때에는 모델이 되는 연기자가 ‘마커가 달린 바디수트를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관행화 돼 있다. (앤디 서키스가 바디수트를 입고 ‘골룸’이나 ‘콩’을 연기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실 것). 하지만 <타이타닉>의 모델들은 ‘시대 의상’을 입고 거기에 마커를 달았다. 즉, 모션 캡처 담당자들은 단순히 모델의 움직임만을 캡처한 것이 아니라 ‘시대 의상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까지도 통째로 캡처한 것이다. 그 결과는 (당시의 기준으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CG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Ode to the ship'등 많은 장면에서 활용됐다. 특수 효과 감독인 롭 레가토는 스텝들에게 “‘Ode to the ship'신에 나오는 타이타닉 호의 승객들 중 누가 진짜 배우이고 누가 CG 배우인지를 알아 맞춰보세요!”라는 퀴즈를 냈다. 스텝들 중에 정답을 맞춘 사람은 없었다. 정답은 ‘모두 다 CG 배우’ 였다.


윈슬렛에게 <타이타닉>의 촬영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에는 그녀가 이전에 출연했던 어떤 작품보다도 많은 ‘육체적 연기’(섹스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 포함돼 있었다. 극중 로즈는 좁은 세트에서 정신없이 뛰기도 하고 차가운 물이 가득 찬 복도를 ‘목숨을 걸고’ 걸어다니기도 하며 타이타닉 호의 난간에 매달리기도 한다. 거의 ‘스턴트’에 가까운 이런 장면들은 이전까지 ‘점잖고 섬세한 연기’를 주로 맡았던 그녀에게는 정말 소화해내기 벅찬 신이었다. 더군다나, 이 영화의 감독은 ‘아무리 사소한 신이라도 최소한 2-30회의 재촬영은 거듭하는’ 짐이 아닌가?! LA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윈슬렛은 “<타이타닉>의 촬영은 시련 그 자체였습니다”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촬영이 거듭되면서 그녀의 몸은 멍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이 ‘마치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주부 같았다’고 우스개소리로 말했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몸에 상처가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을 정도였다. 

 

“젠장! 차가워 죽겠네!” 여자는 남자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액션 신(?)을 찍는 내내 디카프리오는 물이 차다느니, 힘들어 죽겠다느니 등등 갖은 불평을 해댔지만 윈슬렛은 묵묵히 그것을 소화해 내 짐을 감동(?)시켰다. 

 

때때로 윈슬렛은 연기를 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잭과 로즈가 물이 밀려들어오는 복도를 지나 좁은 계단통의 철문을 통과하는 신을 찍을 때였다. 디카프리오와 윈슬렛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젖은 채 이 신을 몇 차례나 연기했다. 짐이 ‘액션!’이라고 외치면 두 사람이 있는 (철문 앞) 좁은 계단통에는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야 철문을 통과해 빠져나오게 돼 있었다. 물론 촬영 현장에는 안전 요원이 배치돼 있었고, 여러 가지 안전 장비가 구비돼 있었지만 막상 차가운 물이 턱 밑까지 차오르자 윈슬렛은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철문을 통과하려는 순간,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의 끝자락이 철문에 걸려버린 것이다. 순간, 그녀는 ‘진짜로’ 숨이 콱 막혔고, 카메라 앞에서 ‘나 죽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우적댔다. 극적으로 철문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그제야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숨막혀요! 짐!”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가 ‘진짜로 공포에 질렸음’을 즉각 눈치챘다. 하지만 ‘작품’을 찍느라 여념이 없던 짐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진짜 실감나게 연기를 하네’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짐은 윈슬렛에게 ‘기절 초풍할만한’ 지시를 내렸다. “좋았어요! 한 번 더 찍읍시다!!!” 이 ‘끔찍한’ 지시를 듣고 윈슬렛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붙어버렸다. 그제야 그녀가 ‘진짜로 공포에 떨고 있음’을 안 짐은 “걱정 말아요! 내가 누굽니까! 안전에 관한 한 날 믿어도 돼요! 아무 일도 없을 테니 안심하고 한 테이크 더 갑시다!” 놀랍게도, 윈슬렛은 군소리 없이 이 요구에 ‘Yes'라고 응했다. 그녀는 후에 인터뷰를 통해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겁쟁이가 되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죠!” 그녀는 결국 촬영을 무사히 끝마치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훗날 LA 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라고 밝혔다). 

 

 

당신이 백만장자고, 가라앉는 타이타닉 호 위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구명보트를 내리고 있는 항해사들 중 한 명을 돈으로 구슬려서 목숨을 부지하려 한다면, 누구를 택하겠는가? 타이타닉 호 침몰 당시의 실제 상황을 재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타이타닉 호의 좌현에서는 2등 항해사인 라이톨러(위 사진)가 승객들을 구명보트에 싣고 있었고, 우현에서는 1등 항해사 머독(아래 사진)이 같은 임무를 맡고 있었다. 짐은 두 사람 중 ‘머독’을 택했다. (칼은 머독에게 돈을 쥐어주며 ‘잘 봐줄’ 것을 부탁했다). 이것은 여러모로 신빙성 있는 선택이었다. 라이톨러는 지나칠 정도로 원리 원칙에 충실한 타입이었고, 머독은 이보다 훨씬 융통성 있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라이톨러는 끝까지 ‘여자와 아이들 먼저’라는 원칙을 고수하여, 배에 빈 자리가 있어도 남자 승객은 태우지 않았다. 반면, 머독은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 승객들도 적지 않게 보트에 태웠다. 물론 머독이 이런 융통성을 발휘한 이유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머독이 우현에서 구명보트를 거의 다 내렸을 때 (‘여자와 아이들 먼저’라는 원칙을 고수하던) 라이톨러는 좌현에서 구명보트를 절반 정도 밖에 내리지 못했다. 만일 칼이 라이톨러에게 갔다면, 그는 (존 제이콥 애스터가 실제로 그러했듯) 구명보트에 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말이 ‘머독이 매수되기 쉬운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머독은 단지 참사의 현장에서 ‘촉박한 시간 내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1등 항해사 머독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짐은 <타이타닉>에서 검증되지 않은 ‘머독의 자살설’을 과감하게 택했다. 타이타닉 호의 항해사 중 누군가가 승객을 향해 총을 쐈다는 것은 증언에 의해 입증됐다. 다만, 그것이 머독이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짐은 자신의 해석 버전에서 그것을 머독으로 설정했고, 머독은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권총 자살을 한다. 머독의 유족들은 짐의 <타이타닉>에 그려진 머독의 모습에 매우 분노했다. 짐은 이 부분에 대해 <타이타닉> CE DVD의 음성해설에서 유족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그는 머독을 ‘타락한 인물’로 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실은 그 반대였다. 짐의 영화에서 머독은 분명히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한편, 망루 감시원 플리트는 머독이 ‘자신이 내린 빙산 경고를 무시한 책임을 통감하고 권총 자살을 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플리트는 ‘망루에서 빙산 경고를 세 차례나 보냈지만 머독과 무디가 그것을 무시했다’면서 책임을 이 항해사들에게 떠넘기려했다).


짐의 스텝들에 대한 ‘학대’는 급기야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황당한 헛소문마저 낳고 말았다. 문제의 소문은 ‘물이 채워진 탱크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짐이 지시대로 하지 않는 엑스트라를 향해 총을 발사하며 위협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짐은 엑스트라들의 안전을 걱정하여 그들이 몇 시간 동안 ‘빠져 있어야 할’ 할 탱크의 물을 따뜻하게 데우기까지 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와야 할 ‘찬 입김’은 후반 작업 시 디지털로 합성하기로 했다. 이것은 이전에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스트라와 스텝들이 짐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워낙 오랜 시간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기에, 엑스트라 중 일부는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또, 시간이 갈수록 물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그로 인해 피부병 등 각종 질환에 감염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배우들을 가장 괴롭혔던 것은 바로 ‘수면 부족’이었다. 윈슬렛은 “촬영 막바지에 이르러, 나는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녀는 한 마디의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왜냐면, 짐은 하루에 세 시간밖에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호의 설계자인 토마스 앤드류스는 완벽주의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타이타닉 호가 완성된 뒤에도 끊임없이 그것의 결함을 찾아내 수정, 보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만일 타이타닉호 사건이 없었다면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타이타닉 호 보다도 나은) 또 하나의 ‘걸작 여객선’을 설계했을 것이다. 앤드류스가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단지, 그가 일등실 승객용 흡연실의 벽난로 앞에 서서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다는 증인이 있을 뿐이다. (그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도 짐은 (어쩔 수 없이)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앤드류스가 입지 않은 구명조끼는 결국 (허구의 인물인) ‘로즈’가 입게 됐다.


 

화이트 스타 선박회사의 사장 브루스 이스메이는 1937년 10월, 세상을 뜰 때까지 평생을 ‘비겁한 기회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그가 어떻게 구명보트(그는 윌리엄 카터와 함께 접이식 구명보트 C에 탔다)에 탈 수 있었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이스메이는 청문회에서 “접이식 보트가 내려지고 있을 때 타이타닉 호의 갑판에는 여자와 어린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보트에 올라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애석하게도 그의 증언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론 증인 중에는 존 세이어처럼 “이스메이가 다른 남자들 사이를 헤치고 보트에 올라탔다”라고 상반되는 진술을 한 이도 있었다. 짐은 (당연히) 후자 쪽을 택했다. 이스메이가 보트에 탄 뒤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장면(위 사진)은 실제 생존자의 증언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이다. 


한편, 촬영이 거듭되면서 폭스는 (언제나 그랬듯) 제작비 문제로 인해 ‘패닉 상태’가 됐다.  <타이타닉>의 제작비는 이미 1996년 말에, 당초 책정된 금액인 1억 2천만 불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작비가 대체 얼마까지 치솟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폭스와 공동투자를 하기로 한 파라마운트(<타이타닉> CE DVD 리뷰 참조)는 일찌감치 ‘6천만 불 이상은 절대 투자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상태였다. 짐은 자신에게 무한한 특혜를 배풀어주고 있는 폭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이미 이 시점에서 제작비만큼은 그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이 돼 버렸다. (이미 할리우드에는 <타이타닉>의 제작비가 2억 8천만 불에 달하고 있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었다). 결국 짐은 이 시점에서 전례 없는 ‘감동적인’(?) 용단을 내리고 말았다. 

 

그는 <타이타닉>으로 자신이 받을 금액 8백 만 불(제작자, 감독으로서 받을 fee)과 흥행에 따른 수익금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폭스 측에 통보했다. 그가 받게 되는 금액은 각본료(약 1백 25만 불)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그는 (사실상) ‘무상으로’ <타이타닉>을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으로 인해, 만일 <타이타닉>이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그가 받게 되는 금액은 전무하게 됐다. (물론 에피소드 항목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타이타닉>이 초대박을 터뜨린 후 폭스는 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줬다. 하지만 이 선언을 할 당시 짐은 애당초 이것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짐은 <타이타닉>이 제대로 흥행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짐은 이런 ‘무모한’ 결정을 내린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도덕적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나는 폭스가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상처’를 얻은 만큼, 나 역시 그 정도의 ‘상처’를 받고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다”. 짐은 자신과 폭스와의 관계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 영화의 제작을 허락하고, 그 힘든 제작 과정을 인내해준 폭스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자신의 ‘신의’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짐은 계속 말을 잇는다. “솔직히 말해, 나는 폭스가 이 영화를 ‘상업적 잠재력이 있는’ 영화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일 이 영화가 제작비만 건진다고 해도, 폭스는 기뻐할 것이다. 아마도 폭스는 이 영화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할 것이다. 배우들 역시 그럴 것이다. 나는 (앞서 언급한 ‘선언’ 때문에) 이 영화로 1달러도 벌지 못한다. 말하자면, 나는 3년을 ‘공짜로’ 일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타이타닉>은 ‘선물’이다. - 내가 세상에 주는 ‘선물’말이다”. [글쓴이 주 - 짐의 이 발언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돈 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시점만 해도 짐은 영화의 흥행에 대해 전혀 자신하지 못했습니다. 글쓴이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

 

 

토마스 앤드류스가 라이톨러에게 구명보트에 사람을 더 태우라고 훈계하는 이 신은 짐이 정성스레 준비한 ‘설명’ 신이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 당시 나중에 출발한 몇 척의 구명보트만이 승객을 (정원에 맞도록) 가득 채웠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처음에 출발한 구명보트들에 탄 승객들의 수가 왜 정원에 훨씬 못 미쳤는지는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된다. 첫째, (짐이 이 장면에서 설명한 것처럼) 타이타닉 호의 항해사들은 구명보트가 그다지 튼튼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만일 정원에 맞춰 승객을 가득 태운다면 구명보트가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처음 출발한 몇 척의 보트에 정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의 승객을 태우는 우를 범한 것이다. 둘째, 적지 않은 승객들이 ‘타이타닉 호는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한 이들은 ‘위험해 보이는’ 구명보트에 타느니 차라리 타이타닉 호에 남는 게 더 안전하다고 여겨서 보트에 타기를 거부했다. 결국 항해사들은 이들을 ‘강제로’ 보트에 태워야 했다.


하지만 짐의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가십거리를 찾느라 혈안이 된 언론 매체들은 1996년 후반부터 짐의 <타이타닉>을 타깃으로 하여 갖가지 ‘Bad News’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호들갑스러운 매체들 덕분에, <타이타닉>은 (편집도 시작하기 전에) ‘제 2의 <천국의 문 Heaven's Gate>’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시기, 언론 매체들은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가 투입된 <타이타닉>이 - 과거 <천국의 문>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사를 말아먹었듯 - 20세기 폭스 사를 ‘침몰’ 시킬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짐을 곤혹스럽게 한 이슈는 비단 ‘제작비’만이 아니었다. 짐이 스텝들을 학대하고 있다는 소문이 눈덩이처럼 부풀려지면서 ‘안전 문제’ 역시 당시 지역 언론들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던 중 언론 매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짐이 ‘타이타닉 호의 선미가 거의 직각으로 곧추서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이 장면의 촬영에는 수 십 명의 스턴트맨 엑스트라가 동원됐는데, 워낙 많은 인물들이 한꺼번에 ‘밑으로’ 떨어져야 하는 부분이어서 철저한 계획과 안전장치가 요구됐다. 짐은 스턴트맨들이 떨어지는 도중 다른 이와 ‘치명적인 충돌’을 하여 부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치밀한 사전 계획을 세웠으며 그들이 떨어지는 도중 부딪혀야 하는 소품들(테이블, 의자 등)도 모두 ‘고무 재질’로 만들어 부상을 원천봉쇄하고자 했다. 

 

스턴트맨들이 타이타닉 호의 선미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의 촬영 과정. 그린 스크린이 설치된 부분은 후반 작업에서 디지털로 확장될 부분이다. 이 장면을 찍으면서 배우와 스턴트맨들은 공중으로 30미터 이상 들어 올려져야 했다. 촬영에는 거대한 건설용 크레인이 동원됐는데, 짐은 <트루 라이즈>의 ‘인터테라 빌딩 촬영’(연재 글 6편 참조)때 크레인을 요긴하게 활용했던 경험을 떠올려 <타이타닉>의 세트에서도 크레인을 촬영의 보조도구(카메라 플렛폼)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를 짜냈다.


처음 몇 번의 테이크에서는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됐다. 그러나 선미가 90도로 들어올려진 상태에서 감행한 테이크에서 드디어 심각한 부상자가 발생했다. 스턴트 우먼 한 명이 광대뼈가 부러져 병원으로 후송됐고, 스턴트맨 한 명도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곧 이어 또 다른 이가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물론 지역 언론 매체가 이 ‘특종’을 놓칠 리 없었다. LA 위클리 지는 이 사고를 보도하며 ‘짐이 사고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감행해야 한다고 우겼다’는 근거 없는 목격담도 전했다. 

 

물론 ‘진실’은 LA 위클리 지의 보도와는 달랐다. ‘안전 지상 주의자’인 짐으로서 그런 ‘대형 사고(?)’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껏, 짐의 촬영 현장에서는 - <트루 라이즈> 때 경미한 부상자가 한 명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 이런 심각한 사고는 없었다). 결국 짐은 이후에 진행된 촬영에서는 ‘밑으로 사람이 떨어지는’ 장면은 찍지 않았다. 배우들은 (안전 장비를 한 채) 선미의 난간에 매달려있게만 했다. 사람이 떨어지는 장면의 부족분은 후반 작업에서 디지털로 보완하기로 했다. 

 

실물 크기의 타이타닉 호 세트는 출항 장면 및 ‘정상적인’ 운항장면을 찍은 후 부분적으로 해체되어 6도 정도 기울여져서 다시 조립됐다. 타이타닉 호가 이물부터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에는 무려 3주가 걸렸다!

 

타이타닉 호의 이물이 서서히 물에 잠기는 이 장면은 (놀랍게도) 미니어처 모형을 활용하여 촬영됐다. (아래 사진) 승객들과 배의 뒷부분(모형은 앞부분 밖에 제작되지 않았다)은 후에 디지털로 그려진 것이다. 

 

짐의 ‘안전’에 대한 강박증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스테이지 2에서 타이타닉 호의 식당과 대계단이 물에 잠기는 신을 찍을 때였다. 물이 차오르는 실내 세트에서 지미 뮤로(스테디캠 촬영 담당)는 스테디 캠을, 짐은 핸드 헬드 카메라를 각각 들고 ‘신나게’ 촬영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끼익~’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세트 전체가 1.5미터 정도 내려앉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천정에 붙어있던 소품들이 떨어졌고, 물이 무서운 속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세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 승객들이 느꼈던 공포감’을 실제로 느꼈다. 짐은 “모두 세트 밖으로 나가요! 서둘러요!”라고 미친 듯이 외쳤다. 스텝들은 장비를 내려놓고 황급히 세트를 빠져나갔고, 짐은 끝까지 세트에 남아서 그들의 대피를 도왔다. 잠시 후, 세트에는 짐만이 남게 됐다. 그런데 다음 순간, 밖으로 빠져나가던 지미 뮤로가 자신의 스테디캠을 챙기기 위해 세트로 다시 돌아왔다. 짐은 뮤로에게 “뭐하는 겁니까! 어서 나가요!”라고 미친 듯이 외쳤고, 뮤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돌아섰다가 다시 스테디캠을 챙기기 위해 달려왔다. (정말 투철한 직업정신이 아닐 수 없다 -_-;) 짐은 ‘다른 사람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나는 세트를 떠나지 않겠다’면서 억지로 뮤로를 밖으로 끌어냈다. 결국 이 돌발사태로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후, 짐은 뮤로를 불러서 ‘다시는 그런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세트가 갑자기 내려앉은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스텝들은 - 굳이 짐이 지시하지 않아도 - 안전에 더욱 유념하게 됐으며, 안전 교육 시간에도 조는 일이 없었다. 


<타이타닉>의 조명 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까다로운 것이었다. 생존자들은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당시를 ‘달빛도 없는 고요한 밤’이었다고 묘사했다. 따라서 타이타닉 호가 침몰할 때(상영시간의 절반에 해당!)의 조명은 사실상 ‘배에서 나오는 불빛과 희미한 별빛’밖에 없었다. 다행히 타이타닉 호의 불빛은 침몰하기 직전까지 켜져 있었다고 하니(이는 증언에 의해 확인된 사실이다. 이 때문에 보일러실의 인부 중에는 생존자가 없었다), 적어도 이 때까지는 배 근처가 ‘환하게’ 묘사돼도 리얼리티가 훼손될 우려는 없었다. 하지만 촬영감독 러셀 카펜터는 배 전체를 비춰줄 은은한 조명도 고안해 내야 했다. 그는 궁리 끝에 (위 사진처럼) ‘조명 풍선’을 여러 개 띄워 타이타닉 세트 전체에 고루 빛이 비치도록 했다. 배의 불빛이 꺼진 뒤의 장면에서는 ‘심리적 조명’이라 명명된 컨셉을 쓰기로 했다. 관객은 이후의 장면에서 ‘어두운 가운데서도 사물을 또렷이 볼 수는 있지만’ 그 광원이 무엇인지는 절대 알아챌 수 없다. 카펜터는 이 까다로운 작업을 훌륭하게 해 낸 공로를 인정받아 아카데미 촬영상까지 수상했다.


하지만 한 번의 사고로 인해 ‘찍힌’ 이후, 짐은 언론 매체의 집중포화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찍히면 죽는다!”) 그리고 때맞춰, 스크립트 수퍼바이저인 버사 메디나가 또 한 건의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하루 20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던 그녀는 차를 몰던 도중 깜빡 졸았고, 결국 교통사고가 났다. 그녀는 곧장 샌디에고로 옮겨져 응급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살았다. 그녀는 이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살아서 매우 기쁘다. 기분이 꼭 타이타닉 호에서 살아남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 (-_-;) <타이타닉> 관련 사고가 계속 이어지자, 마침내 그것만을 파고드는 리포터마저 나타났다. 샌디에고의 TV 리포터인 마크 매튜스가 바로 그였다. (아마도 짐은 지금도 ‘마크 매튜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이를 갈 것이다!) 

 

매튜스는 ‘특종’을 잡기 위해, <타이타닉> 촬영 중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한 의사와 ‘독점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만일 인터뷰에서 의사가 ‘조금이라도 (짐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한다면, 매튜스는 그것을 트집 잡아 짐에게 ‘맹폭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타이타닉>의 홍보 담당자는 급히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하지 말 것을 부탁했고, 다행히 의사는 인터뷰 약속을 취소했다. 그러나 ‘레퍼런스급 거머리 정신’으로 똘똘 뭉친 매튜스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타이타닉>의 홍보 담당자가 ‘세트장의 안전에 관련해 뭔가 찔리는 게 있기 때문에’ 의사에게 인터뷰 취소 요청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여기에 대해 더욱 집요하게 파고들기로 결심 했다.      

 

타이타닉 호가 반으로 쪼개지는 이 장면은 정교한 미니어처 모델로 촬영됐다. (아래 사진 참조). 배 위에 바글거리는 승객들은 물론 ‘CG 인물’ 들이다. 

 

매튜스는 이후 며칠 간 <타이타닉> 세트장의 안전 상태에 대한 자료를 여기저기서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순전히 주관적인’ 시나리오를 써내려갔다. 결국 그는 1996년 12월에 이에 대한 ‘독점 취재 결과’를 TV로 방영했고, 이 ‘미국판 PD 수첩’은 즉각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매튜스는 이 방송에서 “<타이타닉>의 촬영 도중 최소한 열 명이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다). 이 방송이 나간 후, SAG(미국 영화배우조합, The Screen Actors Guild)는 마침내 ‘<타이타닉> 촬영장의 안전 상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짐 - 그리고 폭스 - 에게는 실로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만일 SAG의 조사 결과가 ‘엉뚱한 쪽으로’ 난다면, <타이타닉>의 프로젝트 자체가 ‘헤어 나오기 힘든 블랙홀’로 빠질 수도 있었다. 크게 당황한 제작자 존 랜다우는 즉각 “<타이타닉>의 촬영장에서 약간의 부상자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촬영장은 다른 영화의 그곳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SAG는 랜다우의 발표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세트의 안전 상태에 관한 실사를 감행하고야 말았다.


1997년 1월 3일, 모든 관계자가 숨죽인 가운데 SAG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짐의 KO승’이었다. SAG의 이사 켄 오르사티는 조사 결과문에서 “언론 매체의 보도와는 달리, 제작자들은 배우와 스텝의 보호를 위해 ‘각별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SAG는 언론 매체에서 주장한 ‘안전 위험 요소’에 대한 증거를 전혀 못 찾았을 뿐만 아니라, <타이타닉>의 제작진이 ‘안전 보장’에 관한 새로운 기준을 확립했다고까지 결론 내렸다”라고 밝혔다. 


“아싸! 내가 이겼어요!” <타이타닉>의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짐은 황색 언론의 추측성 보도의 피해자였다.


 

8. “I'M FLYING!"


1997년 3월, 마침내 <타이타닉>의 촬영이 마무리됐다. 장장 210일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짐의 ‘또 다른’ 시련이 시작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영화의 7월 개봉이 ‘가능하다’라고 여기고 있던 짐은 드디어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디지털 작업을 해야 할 특수 효과 신의 분량이 예정된 것 보다 세 배 이상 많았던 것이다! 이미 철야 작업을 하고 있던 디지털 도메인의 스텝들은 ‘인원과 장비’가 부족하다고 짐에게 목멘 소리를 했다. 어쩔 수 없이 짐은 다른 특수 효과 전문 업체들에게 ‘외주’를 맡기기로 했다. 즉, 디지털 도메인에서 중요한 신의 작업을 하되 그 외의 모든 신은 외부 업체에게 맡기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의 ‘고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타이타닉>의 모든 특수효과 신이 ‘이전에 시도되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고난도의 신이라는 점이었다. 디지털 도메인을 비롯한 특수 효과 업체들은 (당연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솔루션을 개발할 시간이 필요했다. 3개월의 후반 제작 기간으로는 이들 업체들이 임무를 100% 완수하기란 ‘100%’ 불가능했다!    

 

짐은 ‘<타이타닉>은 스턴트 맨의 얼굴을 실제 배우의 그것으로 ‘디지털 합성’하는 기술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첫 번째 영화‘라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위의 장면이 바로 ‘문제의 신’이다. 이 작업은 외부 업체인 퍼시픽 오션 포스트 Pacific Ocean Post에서 맡았다. 


5월이 되자, 짐은 ‘<타이타닉>의 7월 개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물론 영화의 러프 컷은 이미 거의 완성돼 있었다. 하지만 특수효과 신의 완성도가 여전히 짐의 기대치를 밑돌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당시 짐은 특수효과 업체들의 결과물을 ‘신나게’ 퇴짜 놓고 있었다). 폭스는 이 시기에 <타이타닉>의 러프 컷(무려 세 시간 반짜리!)을 가지고 시사회를 가졌고,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미 이 때부터 폭스 간부들의 뇌리에는 ‘아카데미 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 짐은 이대로는 영화를 개봉할 수 없다고 판단, 결국 폭스에게 ‘최악의 제안’을 하고 말았다. 영화의 개봉일을 연말로 연기하자는 것이다. 

 

폭스는 다시 한번 길길이 뛰었으나, 짐의 ‘굳은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짐이 폭스 측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앞서 있었던 러프 컷 시사회가 크게 작용했다. 시사회의 결과가 워낙 ‘대박’이었기 때문에, 폭스 측에서도 이 ‘걸작’을 절대 망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짐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상영시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폭스는 물론 ‘가능하면 영화의 상영시간을 더 줄여달라’고 짐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짐은 폭스의 회장 피터 처닌에게 직접 “나는 작품성을 훼손하지 않고 <타이타닉>의 상영시간을 (세 시간 반에서) 20분 정도 더 줄일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확고하게 밝혔다. 처닌과 폭스의 간부들 역시 시사회에서 러프 컷을 본 뒤 짐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결국 1997년 5월 28일, 폭스는 <타이타닉>의 개봉일을 12월 19일로 연기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이 발표가 있은 직후, 황색 언론들이 또 다시 짐을 타깃으로 집중포화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언론 매체들은 폭스가 개봉일은 연기한 이유에 대한 나름대로의 ‘추측’을 앞 다투어 내놓았고, 물론 그 중에는 ‘<타이타닉>의 러프 컷이 워낙 형편없어서 폭스는 고의적으로 개봉일을 연기했다’는 식의 황당무계한 억측도 포함돼 있었다.   


짐의 <타이타닉>에서 5등 항해사 로우는 또 한명의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는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지점으로 보트를 돌려 생존자를 수색하러 간 유일한 인물이었다. (짐의 <타이타닉>은 로우가 생존자를 수색하는 과정을 자세히 영상화한 매우 이례적인 작품이다. 1953년 작 <타이타닉>이나 1958년 작 <타이타닉 호의 비극>에는 이 장면이 없다). 당시 상황을 재현해보면 이렇다: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을 때, 로우는 14번 구명보트를 타고 그것을 지휘하고 있었다. 얼마 후, 로우는 구명보트 몇 척을 한 데 모아 사람들을 옮겨 실은 뒤 타이타닉 호의 침몰 지점으로 생존자를 수색하기 위해 떠났다. (떠나기 직전, 그는 머리에 숄을 두르고 ‘여장을 한’ 이탈리아인 남자를 발견하고 홧김에 그를 다른 보트로 밀어제쳤다고 증언했다. 짐은 이 부분도 영상화했으나 최종 편집판에서는 삭제했다. 이 부분은 <타이타닉> CE DVD의 삭제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배가 침몰한 지점에서 네 명의 생존자를 구해냈으나, 그 중 한 명은 곧 사망했다. 짐의 영화에서는 가공의 인물 로즈가 생존자 중 한 명으로 설정됐다. 로우가 구해낸 실제 생존자 중에는 중국인도 한명 있었는데, 짐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반 링(연재 글 5편 참조)에게 이 중국인 역을 맡겼다.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아쉽게도 최종 편집판에서는 삭제됐다. (물론 CE DVD의 삭제 장면에는 포함돼 있다). 


로우가 생존자를 찾기 위해 돌아왔을 때 보게 되는 이 광경은 실제 생존자의 증언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아이를 안고 그대로 동사한 여성의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곰곰이 뜯어보면 로우는 상당히 ‘냉정한 영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그가 생존자를 수색하러 떠나기 전까지 얼마동안을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만일 타이타닉 호의 침몰 직후 곧장 보트를 돌려 사람들을 구하러 간다면 물 위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드는 통에 보트가 전복될 것이 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 좀 잔인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 생존자의 수가 줄기를 기다린 것이다. (당시 바닷물의 온도는 영하 1~2도 사이였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2~30분을 버티기가 힘들다). 그가 보트를 돌려 타이타닉 호의 침몰 지점으로 갔을 때는 이미 물 위에 뜬 사람들은 대부분 저체온증으로 인해 죽은 뒤였다. 짐의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폭스의 개봉일 연기로, 짐은 전에 없던 ‘넉넉한’ 후반 제작 기간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완벽주의의 극한’을 추구하던 그에게는 7개월이라는 추가 기간도 결코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최종 편집판이 완성되기 직전까지도 잠을 아껴가며 (문자 그대로) ‘사투’를 했다. 특수효과 업체의 스텝들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최고의 결과물이 나오도록 유도했으며, 자신도 쉼 없이 편집본을 보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그리고 황색 언론의 집요한 공세로 인해 이중 삼중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그는 자신이 어느 때보다도 심적으로 ‘고독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는 이 ‘난국’에서 영혼을 의지할 누군가를 본능적으로 찾게 됐다. 

 

당시 짐은 린다 해밀턴과 잠시 소원해진 상태(<단테스 피크 Dante's Peak>를 찍느라 여념이 없던 그녀는 한동안 짐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였고, 촬영장에서 인연을 맺은 수지 에이미스와 간간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총체적 난국’을 함께 헤쳐 나갈 인물로 결국 옛 파트너인 린다 헤밀턴을 골랐다. (그녀에게 자신의 핏줄인 딸 조세핀이 있다는 사실도 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 사람은 7월 26일에 캘리포니아의 말리부에서 웨딩마치를 울렸다. 비록 한 때였지만,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듯했다. 짐은 공공장소에 자랑스럽게 해밀턴과 딸 조세핀을 대동하고 나타났고, 아내를 향한 자신의 식지 않은 사랑도 공공연히 밝히곤 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2년 뒤 이혼하고 말았다. 짐은 현재 [편집자주 그리고 2016년 현재까지도] 수지 에이미스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짐과 수지 에이미스


폭스는 1997년 하반기에 접어들자 맹렬한 <타이타닉> 홍보 공세를 펼쳤다. 근사한 예고편이 북미 수 천 개의 극장에, 그리고 전 세계의 극장가에 배포됐고 각종 홍보용 영상물들도 방영됐다. 하지만 언론 매체는 여전히 <타이타닉>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는 그들의 1차 공격 대상이었고(전술했듯, 이미 몇몇 언론은 오래 전에 <타이타닉>을 ‘제 2의 <천국의 문>’으로 규정지은 상태였다), 짐의 호의적이지 못한 태도(마크 매튜스 사건 이후 짐이 언론 매체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역시 그들의 ‘찌라시 본능’을 자극했다. <타이타닉>이 (기대했던 대로) ‘제작비 2억 불’이라는 미증유의 고지를 점령했다는 것이 확실시되자, 언론 매체들은 또 다시 갖가지 ‘부정적인’ 억측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폭스가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2억불의 제작비에 프린트 비용과 홍보비용, 기타 부가 상품 비용 등을 모두 합친다면 <타이타닉>의 최종 제작비는 3억 불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당시 언론들의 계산이었다. (물론 이것은 다소 과장된 수치다).   

 

과연 <타이타닉>이 이 엄청난 제작비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인가? 당시 많은 언론들은 그 가능성을 거의 ‘0’로 보았다. 세 시간이 넘는 시대극이 북미 흥행 3억불을 돌파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할리우드에서 3~4시간 길이의 에픽극이 박스오피스를 호령하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아니, 당시만 해도 그렇게 여겨졌다). 운이 좋다면, 해외 흥행 수입까지 합쳐서 폭스는 가까스로 ‘체면치레’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나마 ‘호의적인’ 전망이었다. 

 

한편, 폭스는 영화의 홍보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를 놓고 또 한 차례 고민을 해야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케이트 윈슬렛은 당시만 해도, 포스터 전면에 대문짝만하게 내세울 특급 스타배우들은 아니었다. 물론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이름은 충분한 ‘상업적 잠재력’을 지녔음에 틀림없지만, 문제는 폭스가 홍보하려는 영화가 <터미네이터 3>나 <트루 라이즈 2>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터미네이터 2>와 <트루 라이즈>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멜로 시대극’이라! -_-; 홍보 담당자가 골머리를 앓을 만도 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폭스는 “One Story Left to Tell", "Nothing on Earth Could Come Between”, “Collide with Destiny"등의 기막힌 문구를 ‘억지로’ 만들어내 포스터와 전단지에 삽입하며 ‘침몰 위기의 영화를 띄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폭스가 홍보용으로 제작한 초기 포스터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보인다. 

 

<타이타닉>의 역사적 개봉일이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고, 짐은 가까스로 3시간 14분짜리 <타이타닉> 최종 편집판을 완성했다. 짐은 이 편집판에 ‘완전한 만족’을 표시했다. (그는 이 편집본 - 즉 ‘극장 상영본’ - 이야 말로 ‘완전한 감독판’이며, 다른 버전을 편집할 생각은 없다고 몇 차례나 밝혔다. 물론 작년 말에 나온 <타이타닉> CE DVD에도 ‘다른 버전’은 실리지 않았다). 인고의 노력 끝에 ‘최종 결과물’을 내 놓은 그는 1997년 12월 19일, 관객이  ‘최종 심판’을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이 시점에서 갑자기 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 포스터가 튀어 나왔냐고? 간단하다. 이 포스터는 <타이타닉>의 포스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는 아래 사진과 ‘직접 비교’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타이타닉>의 개봉에 즈음하여, 각종 매체에서 리뷰가 쏟아져 나왔다. 일찍이 여러 보도 기사를 통해 ‘<타이타닉> 죽이기’에 앞장섰던 LA 타임즈는 간판으로 내세우는 평론가인 케네스 튜란의 혹평으로 ‘확실한 KO펀치’를 날리려 했다. 튜란은 리뷰에서 "<타이타닉>을 보면서 당신은 좌절감으로 울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고, 특히 짐의 각본에 대해서는 아주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튜란의 ‘<타이타닉> 폭격’은 이 리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 특히 <타이타닉>이 아카데미 상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즈음에는 더더욱 신랄하게 - 그는 직, 간접적으로 <타이타닉>과 짐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쏟아냈다. 물론 튜란이 특정 영화에 대한 ‘거의 감정적인’ 혹평을 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던 짐에게는 그의 집요한 혹평 공세가 ‘눈의 가시’처럼 여겨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에 벌어진 ‘어떤 사건’(에필로그 항목 참조)은 사실상 튜란이 자초한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튜란의 혹평은 ‘소수의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개봉 직전에 열린 시사회 후 대다수 매체의 평론가와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타이타닉>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당시 매체들의 분위기는 마치 ‘폭발 직전의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타이타닉>보다 먼저 개봉하여 (평론가들의)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던 <LA 컨피덴셜>도 이 정도의 ‘광란의 분위기’는 연출하지 못한 터였다. 뉴욕 타임즈의 자넷 매슬린은 “<타이타닉>은 근래 몇 십 년간 나온 영화 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비교될 수 있는 첫 번째 작품이다”라고 극찬했고, 버라이어티 지의 토드 맥카시 역시 “이 영화는 현대 (특수효과) 기술이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에 어떻게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예다”라며 호평을 했다. 할리우드 리포터의 듀안 바이어즈는 “최첨단 특수효과와 멋진 중심 스토리가 기막히게 결합된 영화”라면서 ‘호평 대세’에 합류했고, 로저 에버트는 “flawlessly crafted”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최고 평점(별 넷)을 매겼다. 그러나 매체의 열광적인 호평들은 향후 전개될 ‘경천지동’의 대사건의 서막에 불과했다. 

 

짐 카메론은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에서 올드 로즈는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서 천국에 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았다. 여기에 대해 그는 “그건 관객이 결정할 문제입니다”라면서 다소 불친절한(?) 대답을 했다.


1997년 12월 19일, 북미 여러 지역에서 ‘처녀항해’에 나선 <타이타닉>은 예상대로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은 “2~3주 정도 뒤면 <타이타닉>이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서 내려와 서서히 ‘침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들의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4주 뒤에도... 5주 뒤에도...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 명단이 발표된 1998년 2월 10일에도...심지어 짐이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외치던 ‘광란의 밤’ 3월 23일에도...<타이타닉>은 침몰하지 않았다. 아니, 침몰하기는커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배 주제에!) 끝없는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제 2의 <천국의 문>의 출현을 고대했던 황색 언론들은 이 경이적인 현상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고, 폭스와 파라마운트의 간부들은 연일 환호성을 지르느라 목이 쉴 정도였다. ‘침몰하지 않는 Unsinkable 영화' <타이타닉>은 장장 15주 동안이나 박스오피스의 왕좌에서 군림한 뒤 1998년 4월 첫 주가 되어서야 <로스트 인 스페이스 Lost in Space>에 왕관을 조용히 인계했다. (‘15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흥행 성적 자체도 믿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더 놀라왔다. 거리의 소년 소녀들은 “나는 <타이타닉>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어요! 앞으로도 더 볼거에요”라고 떠들고 다녔고, (평론가들이 유치하다고 악담을 퍼부어대던) 영화 속 대사들은 어느 새 ‘유행어’가 되고 있었다. 

 

<타이타닉>은 그때까지 북미 최고의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던 <스타워즈>(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어 ‘전인미답’의 5억 불의 고지마저 점령하며 쾌속 항진을 계속했다. 그리고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6억 불의 고지를 점령한 뒤에야 기나긴 항해를 끝마쳤다. <타이타닉>의 미국 내 배급을 맡은 파라마운트의 간부들은 (당연히) 이 엄청난 항해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해외 배급을 맡은 폭스의 간부들은 ‘희열’을 넘어 거의 ‘패닉’에 가까운 황홀감을 맛보았다. 

 

<주라기 공원>이 가지고 있던 해외 흥행 기록(9억 1천 4백만 불, 북미 수익 포함)을 ‘일찌감치’ 돌파한 <타이타닉>은 ‘마의 고지’로 불리던 10억 불의 고지도 가뿐하게 점령하며 무서운 기세로 항진을 계속 했다. 1998년 상반기 내내 전 세계는 ‘<타이타닉> 열병’을 앓아야 했으며, 폭스의 회계 담당자들은 매일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손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물론, 한국도 이 현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타이타닉>은 <사랑과 영혼 Ghost>의 기록을 무너뜨리며 당시 관객 동원 신기록을 수립했다). 결국 해외 흥행에서, <타이타닉>은 북미 흥행 수익의 두 배에 달하는 경이적인 수익을 올리며 폭스의 ‘과감한 출혈’에 확실히 보답을 했다. <타이타닉>의 최종 흥행 수익(북미 수익 + 해외 수익)은 18억 4천 5백만 불로, 지금껏(2006년) 이 기록적인 수치에 ‘가까이 접근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9. EPILOGUE - "I'M THE KING OF THE WORLD!"



1998년 1월에 거행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타이타닉>은 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서 4개 부문(드라마 부문 작품상, 감독상, 스코어, 주제가)의 상을 가져갔다. 이미 이 순간부터 <타이타닉>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 것이라는 것은 기정사실화 됐다. 매체들의 예언은 거의 “<타이타닉>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대부분의 상을 독식할 것은 확실하다. 만일 ‘이변’이 생긴다면 그것은 카메론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낳은 결과가 될 것이다”라는 식의 분위기였다. 

 

비록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 컨피덴셜>이라는 ‘다크호스’가 있긴 했지만(<LA 컨피덴셜>은 전해에 전미 비평가 협회상, 뉴욕 영화평론가협회상, LA 비평가 협회상을 모두 휩쓴 바 있다), ‘초대형 스펙터클 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젖어있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타이타닉>이 절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당시 아내였던 린다 해밀턴과 함께 나타난 짐.

 

2월 10일 아카데미 후보작 리스트가 발표됐다. 예상대로, <타이타닉>은 무려 14개 부문에 걸쳐 후보로 지명됐다. (이것은 조셉 멘키비츠 감독의 <이브의 모든 것 All About Eve>와 더불어 역대 아카데미 최다부문 노미네이트 기록이다). 특기할만한 점은, <타이타닉>은 작품상과 감독상에 모두 노미네이트 된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각본상 후보로는 지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케네스 튜란이었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 바로 직전까지 사설을 통해 <타이타닉>에 대한 맹폭을 퍼부어댔다). 

 

한편, 시상식을 앞두고 개최 측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열성 팬들 때문에 한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다. (공동 주연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미 전역의 열성 팬들이 개최 측에 항의 전화를 해댔다. 관계자에 따르면, 항의 전화를 한 사람은 비단 ‘십대 소녀’들만이 아니었다. 

 

한 할머니(-_-;)는 전화기를 붙잡고 “당신들 때문에(디카프리오를 후보에서 탈락시켰기 때문에!) 온 플로리다가 난리가 났다!”고 소리를 쳤다. 심지어 영화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부른 셀렌 디옹 역시 “나에게 디카프리오는 제임스 딘과 같은 인물이다. 그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을 믿을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결국 이 사태(?)는 ‘광란의 밤’을 꿈꾸고 있던 짐에게 ‘사소한 근심거리’를 안겨주고 말았다.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근사한 턱시도를 입고 시상식장을 누비는’ 디카프리오의 모습을 꿈꾸던 십대 소녀 팬들은 이 소식을 듣고 거의 울상이 됐다. 

 

짐 역시 이 소식을 접하고 디카프리오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생각해서라도 시상식에 참석하라’고 간곡하게 설득했지만, 그는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디카프리오는 심지어 이후에 TV를 통해서도 시상식을 지켜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디카프리오의 괘씸한(?) 행태는 ‘광란의 밤’의 뜨거운 분위기에는 결국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케이트 윈슬렛


1998년 3월 23일 오후 6시, LA의 쉬린 오디토리움에서 제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 날 시상식은 ABC를 통해 생중계됐는데, 이 중계방송은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당시 미국, 아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타이타닉> 열풍’ 때문이었다. (시상식이 진행되던 주에도 <타이타닉>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이 날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타이타닉>이 과연 <벤허>가 가지고 있는 역대 최다부문(11개 부문) 수상 기록을 깰 것인가”였다. 시상식이 시작되자, 사회자 빌리 크리스탈이 거대한 타이타닉 호 모형을 타고 무대로 올라왔다. 이미 이 순간, 아카데미 시상식은 ‘<타이타닉>을 위한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는 것이 (일찌감치) 예견됐다. 

 

빌리 크리스탈의 재치 넘치는 ‘작품상 후보작 메들리’가 끝난 후, 쿠바 구딩 주니어가 여우조연상 후보를 발표하기 위해 등장했다. 여우조연상을 누가 타게 될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타이타닉>의 글로리아 스튜어트가 후보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가 상을 타느냐 못 타느냐에 따라 <타이타닉>이 <벤허>의 최다부문 수상기록을 깨느냐 마느냐가 ‘초장에’ 결정될 판이었다. (후보로 오른 14개 부문 중 여우주연상 - 케이트 윈슬렛 - 은 수상하기 어렵다는 것이 도박사들의 예측이었다. 분장상 역시 <맨 인 블랙> - 이 영화의 분장은 오랫동안 최고의 분장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릭 베이커가 맡았다 - 이라는 ‘강적’이 있어서 수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결국 여우조연상은 <LA 컨피덴셜>의 킴 베이싱어에게 돌아갔고, <타이타닉>은 ‘타이기록(11개 부문 수상)’을 세우는 데 만족해야 했다. 

 

여우조연상을 받고 감격해하는 킴 베이싱어. 이 날 시상식에서 <LA 컨피덴셜>은 총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으나 <타이타닉>의 광풍에 밀려서 단 두 개의 상(여우조연상, 각색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이어서 의상 디자인 부문의 시상이 진행됐다. 이 때부터 시상식은 본격적인 ‘<타이타닉> 모드’로 접어들었다. 의상상은 <타이타닉>의 데보라 L. 스콧에게 돌아갔다. 스콧은 수상식 소감에서 “1등실에 태워줘서 고마워요, 짐 카메론!”이라고 밝혔다. <타이타닉>은 이어서 음향상, 음향 편집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주제가상, 편집상, 미술상, 촬영상을 차례로 수상했다. 크리스토퍼 보예스와 함께 음향상을 수상한 톰 벨포트는 “짐, 바다는 비록 험했지만 이 항해에 동참하게 해 주셔서, 그리고 길이 남을 멋진 배를 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고 두 개의 트로피를 손에 넣은 제임스 호너는 수상소감에서 “짐 카메론, 노래를 보여준 날 ‘좋은 모드’였던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제법 뼈 있는(?) 멘트를 날렸다. 짐은 두 명의 동료(콘라드 버프, 리차드 A. 해리스)와 함께 편집상 수상자로 결정되어 이 날 처음으로 시상식 무대에 올랐는데,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집에서 이 시상식을 보고 있을 다섯 살짜리 딸 조세핀에게. 아가야, 이게 오스카라는 것이다. 이걸 받아서 무지하게 기분 좋단다!” 

 

한편, 이 때까지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이는 바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스탠리 도넌 감독이었다. 자신을 멋지게 소개한 마틴 스콜세지를 향해 도넌은 “마티, 이건 거꾸로군요. 이 상은 내가 당신에게 주었어야 하는 겁니다!”라고 겸손한 수상 소감을 밝힌 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쇼’를 펼쳤다. 점잖게 수상 소감을 읊던 그는 갑자기 “Heaven, I'm in heaven....♬"으로 시작하는 어빙 벌린의 명곡 “Cheek to cheek"을 부르며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객석은 완전히 열광의 도가니였다. 만일 이후 짐의 ‘폭탄 수상 소감’이 없었다면, 도넌의 이 ‘깜짝 쇼’는 70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기억될 뻔 했다.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열창하고 있는 셀렌 디옹. 이 날, 그녀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양의 심장’의 모양을 본뜬 보석(170 캐럿의 다이아몬드, 사파이어로 주문제작) 목걸이를 하고 나와서 눈길을 끌었다. 이 보석 목걸이는 무려 2백5십만 불짜리였다! 


이 날,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가 독식했다.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 사진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헬렌 헌트.


이어서 워렌 비티가 감독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변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짐은 (당시 아내였던) 린다 해밀턴에게 키스를 하고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무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감독상으로 짐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맨 아래 사진은 아놀드 슈왈츠네거다. 


짐은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_-;) 저는 지금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로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이어서 케이트 윈슬렛, 글로리아 스튜어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존 랜다우, 마이크 카메론, 린다 해밀턴, 필립과 셜리 카메론(짐의 아버지와 어머니) 등에게 감사의 표시를 표한 그는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초울트라 엽기 멘트를 날렸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 와우~~”

 

"I'm the King of the World! Whoooooooooop!"


순간, 객석의 귀빈들은 ‘황당+당황+어이상실+대략난감+-_-;;;’의 분위기 속에 (거의 억지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음 날 각종 신문에서 짐의 엽기 멘트는 단연 ‘화제 1순위’였다. 짐의 멘트에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이렇다: 이전까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겸손한’ 수상 소감을 밝혀왔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상 ‘아름다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이었다. 영화인들과 기자들은 이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수상을 하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예우’로서도 이런 겸손한 태도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짐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관행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뉴욕 타임즈의 버나드 와인라웁(“‘겸손한 수상소감’에 익숙해져 있던 많은 영화인들을 당황케 했다”), 뉴욕 포스트의 수 아바스티(아바스티는 짐에게 ‘가장 막나가는 수상 소감 상’을 수여했다 -_-;), 잭 매튜스(“카메론은 아카데미 시상식 내내 ‘겸손함’이라는 덕목을 결여했다) 등 수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이 이 엽기 멘트에 대해 맹렬히 비판을 하고 나섰다. 심지어 팀 굿맨은 “짐이 수상 소감을 말한 뒤, 그에게서 트로피를 도로 뺏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라고까지 밝혔다. (그런데 짐에게서 ‘겸손한 수상소감’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웃긴 일이 아닌가? -_-;;;)


이어서 숀 코네리가 작품상 발표를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객석은 대략 시큰둥~한 분위기였다. 어떤 작품이 상을 탈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네리 역시 ‘뭐 모두가 예상하시는 그 작품입니다’하는 투로 “<타이타닉>!”을 호명했다.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타이타닉>!”이 호명되는 순간 짐의 모습 


짐과 함께 무대로 오른 존 랜다우는 무려 40여 명의 이름을 ‘속사포처럼’ 호명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물론 그가 호명한 맨 마지막 인물은 짐 카메론이었다. (“(오스카 트로피를 받은) 우리 모두는 멋진 각본을 쓴 위대한 각본가 짐 카메론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 짐을 ‘감독’이 아닌 ‘각본가(Screenwriter)’로 언급한 점을 특히 주목하시길. 그는 (케네스 튜란을 비롯해) 짐의 각본을 깔본 몇몇 평론가들에게 이런 식으로 ‘한방’을 날렸다). 

 

랜다우에게서 마이크를 이어받은 짐은 감독상 수상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숙연한 목소리로 1912년에 타이타닉 호를 탔다가 죽은 1500여 명의 사람들을 잠시 추모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침묵이 흐르는) 몇 초 동안, 나는 여러분이 가슴 속에서 고동치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몇 초간을 ‘타이타닉’을 위해 침묵합시다”. 짐의 제안에 따라 시상식장에는 약 15초간 침묵이 흘렀다. (물론 이튿날 신문에는 ‘과연 이런 제안이 시상식 수상 소감으로 어울리는 것이냐’를 놓고도 많은 말이 있었다). 잠시 후, ‘세상의 왕’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객석의 박수) 여러분은 정말로 이 밤을 기억할 만한 밤(A Night to Remember)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제 동이 틀 때까지 파티를 즐기러 갑시다!” 

 

짐과 존 랜다우. 이 날 짐은 총 세 개의 오스카 트로피(편집상, 감독상, 작품상)를 챙겼다. 


짐은 ‘열광의 밤’ 이후에도 숱한 화젯거리를 만들어냈다. 시상식이 끝난 후, 그는 ‘<타이타닉> 죽이기’에 앞장섰던 LA 타임즈에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것은 특히 케네스 튜란을 향한 것이었다. (<타이타닉>에 대해 혹평을 한 평론가가 비단 튜란만이 아니었음에도, 짐이 유독 그를 지목한 점을 보면 튜란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독설 공세가 얼마나 그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짐이나 폭스의 입장에서 튜란이 쓴 몇몇 글들은 거의 ‘<타이타닉>의 아카데미상 석권을 결사적으로 방해하려는’ 테러로 보였다. 실제로 튜란의 문체는 그 정도로 독설적이었다). 

 

그의 편지는 ‘나는 몇 달 간이나 당신(튜란)의 독설을 참아왔다. 결국은 내가 이겼다’라는 톤의 강도 높은 조롱조의 내용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몇몇 동료 평론가들은 ‘발끈’하여 튜란을 옹호하고 나섰다. 예컨대, 잭 매튜스는 “고작 한 평론가의 혹평이 영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튜란의 혹평 공세에도 <타이타닉>은 흥행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은가? 카메론은 그것으로는 성이 안 찼던 것이다”라면서 동료 편을 들었고 로드 드레허 같은 이도 “짐에게: 당신이 이겼소! 그럼 이제 ‘왕다운’ 근엄한 자세를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소?”라고 꼬집었다.

 

한편, 연일 파티 분위기였던 폭스는 마침내 짐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해주기로 결정했다. (앞서 설명했듯, ‘원칙대로’라면 짐은 <타이타닉>이 아무리 흥행에 성공해도 단 1달러도 벌 수 없었다). 폭스는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작’을 만든 데 대한 대가로 짐에게 1억 달러를 지급했다. 이 뉴스는 그 해 짐과 관련된 뉴스 중 가장 ‘훈훈한’ 것이었다. (그러나 짐은 그로부터 몇 달 뒤, 해밀턴과 별거 상태에 돌입해 또 한 번 언론매체에 ‘기사거리’를 제공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커티스 핸슨은 기자들에게 “<LA 컨피덴셜>이 <타이타닉>에 밀려서 상을 두 개밖에 받지 못한 데 대해 유감은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핸슨은 <타이타닉> 열풍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에게 7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일생에 한 번 밖에 없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터였다. 만일 <타이타닉>만 없었다면 이 시상식의 주인공은 분명히 핸슨이 되었을 것이다). 핸슨은 이 질문에 프랭크 카프라가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와 관련해 남긴 명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온 해에는 당신의 ‘최고 걸작’을 만들지 말라!” [글쓴이 주: 프랭크 카프라의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1939)는 194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열풍에 밀려서 고작 한 개의 오스카 트로피(오리지널 각본상)만을 건지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 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특별상 두 개를 포함해 총 열 개의 상을 쓸어갔다.] 핸슨의 인용은 적절했다. <타이타닉>은 우리 시대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 끝 -


글쓴이 후기 (※ 편집자주 : 이 후기는 2006년 버전입니다. 김정대님이 직접 쓰신 2016년 버전은 맨 아래 별도로 링크되어 있습니다)

어느 새 이 연재를 끝마칠 때가 됐군요.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시원한 이유는 그간 이 글을 쓴다고 고생을 많이 해서고요, 섭섭한 이유는 이제 (적어도 ‘제임스 카메론의 특집글’로는) 여러분의 따뜻한 리플을 볼 수 없어서입니다. ^^; (아마도 DP의 많은 분들이 그랬듯) 저 역시 한 때 열혈 영화감독 지망생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밤새워 비디오를 보는 것 외에 했던 ‘과외 활동’이 있다면 롤 모델이 될 만한 감독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는 국내에는 감독들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국내에서 ‘(대중적인) 상업 영화감독’에 대한 편견과 홀대가 너무나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저 역시도 (시네마떼끄 세대들이 대체로 그렇듯) 무의식적으로 ‘상업 영화에 대한 편견’(혹은 ‘예술영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그러더군요. 예술영화 전용관 같은데서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를 차례로 필름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거기에 대한 제 대답은 “에이, 성격상 좀 안 맞잖아요? 예술영화 전용관에 짐의 영화라...” 순간 저도 흠칫 하고 말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저 역시 ‘카메론 영화는 무척 재미있긴 하지만....그냥 상업영화(?)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과연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혹은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요? (아마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의견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여기에 대한 토론도 여러분과 한번 해 보았으면 합니다). 모 영화주간지의 기자 분은 저보고 좀 특이하다고 하더군요. “프랑소와 트뤼포와 로버트 알드리치, 스탠리 큐브릭과 세르지오 레오네에 열광하는 김정대 씨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또 제임스 카메론이라니, 이건 좀 부조화 아닌가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껏 저는 여기에 대해 별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간 제가 너무나도 속상했던 것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내가 좋아하는 다른 감독들(소위 ‘예술영화감독’으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글은 넘쳐나는데, 왜 정작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어메이징 Amazing'한 감독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글은 드문 것일까?” 물론 그간 카메론에 대한 국내 매체의 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글들 중 저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글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해는 말아주세요. 그 글들이 ‘형편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제가 바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제가 원한 것은 ‘감독을 평가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였습니다. 이번 연재글을 쓰면서, 저는 국내에서 나온 자료는 단 한 가지도 참조/인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가능한 한 외국에서 나온 자료를 직접 참조/인용해’ 정보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국내 자료 중 짐의 영화인생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내용의 것은 전무했다는 점도 있었지요). 적지 않은 분들이 ‘연재가 너무 늦는 것 같다’라고 불평하셨는데, 굳이 변명을 대자면 그 이유는 ‘검증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였습니다. 사실 몇 년 동안 짐의 자료를 끼고 살아온 저에게, 글 자체를 쓰는 시간은 (비록 인터넷 연재 글 치고는 엄청난 분량이긴 하지만)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글에 대해서 책임은 져야 할 것이 아니냐’는 욕심이 생겨서 보다 많은 시간을 검증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지요. 

 

검증 작업은 정말 피곤한 것이었습니다. 거의 한 문장에 대해 몇 권의 외국 자료를 들춰봐야 했으니까요. 심지어 짤막한 문단 하나를 놓고 '내용이 정확한가‘를 검증하기 위해 10권이 넘는 옛날 잡지와 신문 기사를 대조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연재 글 6편의 짤막한 <크라우디드 룸>과 <스파이더맨> 관련 부분만을 검증하는 데도 Variety, EW 등 각종 잡지와 과거 신문, 출력물, 단행본 등 대략 20 종의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물론 제가 농담조로 쓴 문장도 모두 이런 식으로(최소한 두 군 데 이상의 소스를 통해) 검증된 것입니다. 연재 글을 쓰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인가’하는 회의감이 한두 번 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DP 가족분들의 따뜻한 격려 리플을 떠올리며 힘을 얻곤 했습니다. 저는 감히 제 글이 ‘100% 정확한 정보’라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해 검증한’, 즉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정보라는 말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타이타닉> 글을 검증하느라 저는 거의 몇 주를 밤을 새다시피 했습니다. 이 부분은 DP 운영진의 정영한 씨가 아마 입증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저는 이번에 DP에 연재한 글을 2~3년 정도 뒤에 ‘확장판(지금보다 약 2~3배 정도 길게 편집하여)’으로 재편집해서 책으로 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짐의 차기작이 DVD로 나올 시점에는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 (물론 이건 그냥 희망사항입니다. 저도 ‘확답’은 못하겠습니다). 대략 짐작하시겠지만, 지금 DP에 올라간 글은 ‘인터넷 버전’으로 쓴 것입니다. 종이에 인쇄된 글과는 달리, 인터넷으로는 오랜 시간 ‘정독’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신세대 통신 용어나 ‘-_-;;;’ 같은 이모티콘도 넣어가면서 읽는 분의 지루함을 최대한 덜어드리려 애썼습니다. 

 

또, 두 문단 정도 뒤에는 재치 넘치는 사진(저는 이걸 ‘짤방’이라고 한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습니다 -_-;)도 삽입했습니다. (이 사진들 고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답니다). 물론 책 버전에서는 신세대 통신용어나 이모티콘 같은 건 볼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 엄청난 분량(지금 DP에 연재된 글의 2~3배 분량)의 책을 과연 흔쾌히 출판해 줄 데가 있겠느냐는 것이죠. (출판사 두 군데와 이야기 해봤는데, 한 군데는 ‘완전 부정’이었고 한 군데는 ‘반 긍정’이었습니다 -_-;) 또, 출판을 해줄 곳이 있다고 해도 제가 그것을 다시 편집할 시간이 되느냐가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제대로 내려면 책은 두 권(상, 하) 정도로 나눠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연재 글에서 분량 제한 때문에 삭제된 부분들(예컨대, <티2-3D>의 일화 같은 것)도 여기에는 모두 포함 돼야겠죠. ‘가뜩이나 많이 팔릴 것 같지도 않은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을 내는 의미가 없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냥 지금 인터넷의 연재 글로도 충분하죠. 실제로, 저렇게 안 한다면 저는 책 아예 안 낼 생각입니다. -_-;     

 

연재를 시작하면서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이 엄청난 분량의 글을 끝까지 읽어줄 DP 가족이 몇 분이나 될까? DP 박사장님이 어느 순간 ‘연재가 지루하다’라면서 자르시지는 않을까? (솔직히 저는 처음에는 ‘과연 내가 이 연재 글을 끝까지 쓸 수나 있을까’라고 걱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박사장님께서는 흔쾌히 제 글을 ‘끝까지’ 받아주셨고, 결국 저는 무사히 이 마지막 글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매체 같았으면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올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번 연재를 가능하게 해주신 박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진짜 감사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바로 박사장님입니다!) 그리고 제 글을 편집하느라 ‘노가다’를 하신 ^^; 박건일 씨와 정영한 씨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만일 제가 쓴 연재 글이 감동적이었다면, 그것은 제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닙니다. 바로 이 글이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짐의 영화인생 자체가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솔직히, 제 글에서는 - 저의 짧은 글 실력으로는 - 수년간 자료를 수집하며 제가 받았던 ‘엄청난 충격과 감동’은 절반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원고 분량 제한 때문에 글에서는 삭제됐지만, 짐이 <어비스>나 <터미네이터 2>를 만들 때 행한 자료조사나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은 ‘감동’을 넘어서 차라리 ‘엽기’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글임에도 DP 가족 여러분들이 (다행히) 즐겨 보시는 것 같아 그간 너무나 기뻤습니다. 제가 이 연재 글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던 것은, (박사장님의 공도 지대했지만 ^^;) 궁극적으로는 따뜻한 격려의 리플을 달고 성원을 보내주신 DP 가족 여러분 덕분입니다.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글쓴이 후기 2 - 2016년 버전 링크 ▶︎ 

 | (근황)<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인생과 작품세계>를 쓴 김정대입니다.  |  프라임차한잔 

216
Comments
1
2006-05-19 16:50:25

그간 제임스 카메론 특집 쓰시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

2006-05-19 16:52:50

일단 리플부터!! 2등!! ^_^

2006-05-19 16:53:22

정말 그간 애쓰셨습니다. 이제 재미나게 읽을 일만 남았네요.

2006-05-19 17:19:42

정말 몇번이고 검토해서 재미난 글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잘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6-05-19 16:55:26

알~~~ 드디어....^^

3등 이요

2006-05-19 16:56:22

알 -->아싸(^^)
재밌게 읽겠습니다.

2006-05-19 16:57:15

앗 3등!

2006-05-19 16:57:31

윽 4등...

2006-05-19 17:07:38

이 글 다 읽고 보려고 CE 사고도 안뜯었다는 것 아닙니까..^^
감사합니다.

2006-05-19 17:12:18

박사장님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2006-05-19 17:00:34

저도 일단 리플 먼저!

2006-05-19 17:05:45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염치불구하고 다음에도 좋은 글 부탁할께요~!^^

2006-05-19 17:06:45

마지막회라니....ㅠ,.ㅠ

카메론 &#54973;아 어서 다음작품도 조속히 내줘...

2006-05-19 17:08:53

정말~~~ 목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그리고 출판이 된다면 바로 한권 사겠습니다. ^^
그동안 수고하셨고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5-19 17:10:06

회사라서 읽지도 못하고 집에가서나 제대로 읽을 수 있겠네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기회에도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2006-05-19 17:35:44

꺄아~~ 고마워요~~~ 에러때문에 이제 보네... 게시판서 중계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까지~ 마지막회는 아니되옵니다. 다른걸루 또 부탁드려요~

2006-05-19 17:37:46

선리플 후감상 ... 수고하셨습니다 ...정대님께 감사

2006-05-19 17:38:39

멋지다는 말밖애....꼭 책으로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다른분들도 가장 바라는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2006-05-19 17:47:32

와 책으로 나와도 되겠습니다.
폭스사의 간부들도 정말 대단하군요.
나중에 1억달러를 준것도~

2006-05-19 17:49:05

드디어 머지막 마무리가 올라 왔군요!! 추천 추천 드립니다. 정말 즐거운 글이였습니다.

2006-05-19 17:50:51

아.. 은근히 아쉽네요.. 그동안 잼나게 봤습니다 ~

2006-05-19 17:52:46

솔직히 말해서 너무 읽고싶지만 모니터로 보면 도저히 집중이 안되더군요.
책으로 나와주길 간절히 바랐는데 2,3년 후라니..ㅠㅠ
어쨋든 책나오면 꼭 구입하겠습니다.

2006-05-19 17:58:25

이제 남은 건 단행본 출간뿐.....*^^*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DP 역사에 영원히 남을 시리즈로 기억될 겁니다.

2006-05-19 18:07:34

박사장님, 박건일님, 정영한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6-05-19 18:12:43

저는 타이타닉이후 작품을 내지 않아 김정대님의 글이 여기서 끝난다는것 때문에 제임스카메룬이 정말 싫어질려구 하는군요. ㅠㅠ

그동안 정말 반복해서 여러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단행본 나오면 정말 좋겠네요. 이 기회에 박사장님이 아예 출판사 하나 내심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2006-05-19 18:13:57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2006-05-19 18:27:07

정말정말 재미있게잘 봤습니다.

2006-05-19 18:29:59

읽느라고..한시간이 훌쩍 넘어버렸네요...
수고하셨습니다.

2006-05-19 18:32:09

클릭하고 페이지 열리는데만 30초...--;;;
암튼 그동안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이라니까 아쉽네요 ㅜ.ㅡ
그나저나
.
.
.
.
.
.
.
.
.
.
.
.
제임스 카메론 감독 다음은 누굽니까...^^ㅋ

이대로 끝난다는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른 감독들도 연재 해 주세요~~~~~~~~~~~~~~~~~~~~~~~~ ㅎㅎ

ps.나중에 책 출판되면 dp에서 공구 꼭 부탁드립니다.

2006-05-19 18:36:45

에필로그 부분에서 버그가 생겨서 (커티스 헨슨의) "<LA 컨피덴셜>"글짜가 모두 빠졌군요 -_-;
DP 운영진이 퇴근해서......한참 있어야 수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2006-05-19 18:48:33

그런 사소한걸 벌써 확인하셨네요 빠르십니다 수시로 계속 글을 확인하시니요^^?

2006-05-19 18:37:37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책으로 꼭 출판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엔키노 연재중이신 다른글들도 잘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1
2006-05-19 18:44:00

아~~~ 너무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게 있어 이 연재글은 정말이지 평생 간직하고픈 멋진 글임과 동시에
한 사람의 순수한 열정을 느낄수 있는 (정대님과 카메론 두분 모두에게 무한한 열정을 느낍니다.)
멋진 글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너무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제 생애 이런 멋진 글 볼수 있었다는거 두고두고 자랑하고 기억하겠습니다.

모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정대님께 모진 말이겠지만.. 또다른 레퍼런스 급 글 기대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고,
그간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6-05-19 18:44:08

카메론이 보상으로 1억달러나 받았다구요 허허허허허헐~ -_-; 스필버그가 영화 몇편을 찍어야 받을돈일텐데 영화를 찍으면서 나오는 급료를 포기한 보람이 있었겠네요 카메론 감독님은 그 1억달러때문에 아직도 영화제작을 안하시고 계시는건가

이런 좋은정보,글을 읽게 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매달 이시리즈를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어느덧 끝날때가 되어버리다니 아쉽네요 ㅠㅠ 이제 후속시리즈가 나온다면 뭘로 하실건가요 dp에서 계속해서 이런 시리즈 연재를 올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냥 피터잭슨이나 스타워즈의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이라던가 스필버그 감독님은 어떨까요 ㅎㅎ?

그리고 2~3년 뒤에 책이 나온다면 저는 2~3년전에 이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던 추억을 생각하면서 서점으로 달려갈겁니다 꼭 책이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

2006-05-19 18:46:31

너무나도 수고하셨습니다.

2006-05-19 18:59:37

와우~ 단번에 읽었습니다~ 역시 기대에 부흥하는 멋진 글이었습니다. 아쉽군요~
부디 다른 글로 또 뵙길~

예상대로(?) 책으로 나온다니 벌써 기대됩니다. 영화도 재밌지만 뒷이야기가 이렇게 재밌는줄은
몰랐네요.

부디 빨리 출판하셔서 대박나시길~~~ 공구도 추진되길~~~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06-05-19 19:04:40

휴~ 1시간 걸려서 겨우 읽었습니다(원래 글 읽는 속도가 느려서리;;).책 기대하고 있겠습니다.꼭 출간되길 바랍니다.^^

2006-05-19 19:06:22

정말 고생하셨고 이런 좋은글을 끝까지 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매체의 특성상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정독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연재물은 한글자도 놓치지 않고 정독했습니다
꼭 확장판(?)으로 다시 만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6-05-19 19:09:13

김정대님의 열정도 카메론 감독의 열정과 거의 흡사한것 같네요^^
수고하셨고요 정말 열심히 탐독했습니다. 다음에도 좋은글 부탁드린다면 너무 제 욕심만 챙기는 건가요
후에 책으로 출간되면 필독하겠습니다.

2006-05-19 19:21:42

하늘을 나는 저 유명한 장면......., 정작 배우들에게는 그다지 로맨틱하지는 않았을것 같군요.

2006-05-19 19:23:31

다 읽는데 거의 1시간 정도 걸렸네요.. 영화 타이타닉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연재를 해주신 김정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간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2006-05-19 19:31:46

책으로 출판 하시죠 ..아님...

제본해서 공구 합시다....

2006-05-19 19:42:55

퇴근도 미룬채 다 읽었습니다...정말 수고하셨다는 말 밖에는 드릴 수가 없군요. 짐 감독만큼은 아니겠지만 김정대 님의 열의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확장판 도서가 나오면 필 구입하겠습니다.

2006-05-19 19:47:47

정말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자료 조사와 검증도 힘든 일이지만,
그 내용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정리해서 쓰시는것도 더 힘든일이었을거라 생각되내요.
엔키노에서도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리구요.
디피에서도 또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2006-05-19 19:48:09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


인쇄해보니 사진 빼고 텍스트만 따져도 지금까지 연재했던 것 모두 합쳐 A4용지로 100페이지를

넘어가는군요. 대단하십니다! :-)

2006-05-19 19:53:12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이 하셨고... 도서가 발간된다면 꼭! 하나 구입하겠습니다.

2006-05-19 20:00:16

사실 타이타닉은 그다지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나올 당시에 군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그 열풍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없었죠.
셀린 디옹의 노래가 줄기차게 나오는 것도 이해가 잘 안갔구요.
이 글을 보기전까지도 그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 글 보고는 타이타닉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재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감독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구요.

정성어린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읽으면서도 자료조사 어마어마하게 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재미있게 잘 봤구요.

이제 dp에 무슨 낙으로 와야 좋을지.. ㅜㅠ

2006-05-19 20:11:42

한시간에 걸쳐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동안도 모두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보니 더더욱 흥미롭게 읽었답니다.
감사합니다~

2006-05-19 20:12:24

아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책 꼭 나왔으면 좋겠네요.

2006-05-19 20:12:43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런글에 추천버튼이 없다는게 넘 아쉬울 따름입니다 ^^

2006-05-19 20:23:13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책으로 꼭 내세요.(농담이나 이모티콘도 살렸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만..)

2006-05-19 20:28:35

김정대씨 그동안 너무 수고많으셨습니다.
당신의 수고한 댓가로 저같은 DP인들이 재미난 좋은 글을 읽을수있는 기쁨을 가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소한 이글을 읽는 동안만은 김정대님.....You Are The King of the DP!
2006-05-19 20:40:44

이런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_)

2006-05-19 20:42:46

휴~ 읽는데. 이거 얼마나 걸린거야.. 이 대단한 작업을 하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2006-05-19 20:52:23

정말 수고 많으셨구요...책으로 꼭.꼭.꼭. 내주시기 바랍니다.

디피에서 최초로 책을 공동구매 하겠군요. (최초 맞죠..? )

2006-05-19 20:59:18

김정대님 만세! DP만세! 박사장님 만세!!!!!! 정말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T2-3D에 대한 에피소드를 포함해서 책으로 꼭 내주세요. 꼭 구입하겠습니다!!

2006-05-19 21:13:22

정말 잼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5-19 21:26:18

정대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셨네요. 이젠 또 다른 시리즈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길..

2006-05-19 21:31:23

고맙습니다... 수고하셨구요...
김정대님이 세상의 왕입니다...!!

2006-05-19 21:41:22

7시3분부터 읽기 시작해 다 읽은 시각이 9시31분.
dvd리뷰까지 포함해서 읽는 데 걸린 시간이 2시간 28분.
순수한 이 리뷰만 읽는 데는 1시간 56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정대님의 글을 흥미롭게 봤지만, 이렇게 일독하기는 타이타닉이 처음이었습니다.
대부분 선리플 후감상을 택하시는데, 아직 한번도 일독을 해보지 않았던 터라 보자마자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서 1시간이 지나니까, 저도 글 속에 언급된 제작진의 엑스트라가 된 기분이 되더군요.
정성껏 쓰신 정대님에겐 좀 누가 되는 표현입니다만, 읽다가 막 짜증이 나더라구요...^^
그래도 끝까지 읽고 그간 여러 고생 하신 후기까지 읽고나니,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동안 연재하신 글들 출력해서 정독하려고 합니다.
좋은 콘텐츠 제공해주신 정대님의 정성에 맘 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

2006-05-19 21:44:36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꼭 출판물로 나오길 바랍니다.^^

2006-05-19 21:48:41

대중영화에 대한 편견은 저 역시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가끔씩 저도 누군가 존경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으면, 제임스 카메론을 첫손에 꼽습니다.
그러나 헐리웃에 대한 노이로제에 가까운(?) 영화평론계의 편견 탓인지, '상업성'만 밝힌다는 혐의 하에 진정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얼마전에 디피설문에서도 조사했던 것이지만, 저의 dvd감상에 대해서도 많이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dvd 퀄리티에 대해 철저한 완벽성을 제작사에 강조하지만, 소비자인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잘 소화하고 있는지 말이지요. 아마 대부분 스페셜 피처 같은 경우는 건드리지도 않고, 먼지만 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겠습니까? 그냥 가볍게 줄거리 파악 정도에 그치는 영화감상에 대해 다시금 자성의 기회를 삼게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오버센스일 수도 있겠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 정대님의 리뷰였습니다.
저 역시 정대님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장차 성실한 리뷰어로서의 꿈을 키워보려는 중에 있기도 해서 말이죠. 무조건 길게 쓰는 것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것도 꼼꼼한 글을 통해서 받은 감동 중의 하나입니다.

WR
4
2006-05-19 21:52:52

김정대님의 후기를 읽어보니 필자가 쏟은 그 동안의 정성과 노력이 느껴져 뭉클합니다. 몇 달 전만해도 인터넷에서 이런 대단한 글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디피 가족께서도 상상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대단한 글을 써주신 김정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아울러 이런 대단한 글을 제대로 알아보시는 디피 가족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후기에서 저를 언급해 주셔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_^ 이런 멋진 글이 출판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간절히 바라며, 제임스 카메론 시리즈의 완결을 축하드리고 또 그 동안의 고생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운영자 박진홍 드림

2006-05-19 21:56:39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네요.

"책 나오면 바로 사겠습니다!"

2006-05-19 22:05:07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제가 출판사 사장이 아닌게 참 안타깝습니다..ㅠ.ㅠ

꼭 책으로 만들어주세요!!그럼 당장 삽니다.!!!

2006-05-19 22:08:26

한줄한줄 음미해가면서 읽었는데..영화 볼때의 감동과 제작 현장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 오는 군요!

정말 감동입니다.

이런 좋은 글을 접할수 있게 해주신 김정대님에게 정말 감사 드리며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책이 발간되는 그날을 다시 기다리겠습니다.

2006-05-19 22:10:21

페이지 열리는데만도 시간 걸리네요.

글을 읽는 동안에는 오직 눈과 귀는 모니터만 보고 있었습니다.
다 읽고 시계를 보니 한시간은 흘러갔네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6-05-19 22:14:44

!!! 와우! 초반만 읽다, 감동해서 글 남김니다.
김정대님 전의 글은 어떻게 볼 수 있는지요?
또 이 글 그림과 통채로 저장하고 싶은데 어케 해야 합니까?
멋진 글 정말 대단합니다~~~!!

2006-05-19 22:16:40

짐이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인 태도’로 배우들을 다뤘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로즈의 약혼녀 칼의 역을 맡은 빌리 제인Billy Zane과의 일화다.


<<로즈의 약혼녀>>가 아닌 거 같은데요,,,

2006-05-19 22:31:04

이젠 드뎌 안녕(?)이라는 말을 할수 있겠군요....
좋은 글 읽게해주셔 감사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2006-05-19 22:42:26

중간 중간 쉬면서 읽느랴 4시간 정도 걸렸네요..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너무 좋은 글 잘 읽었구요..
그리고 책으로 꼭 출판해주셨으면 합니다. 읽으면서도 이글이 책으로 출판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기분좋게 마무리를 본것 같습니다.

2006-05-19 22:46:06

아아 이렇게 스크롤이 좋을때가~~!!
선리플 후감상하겠습니다! ㅋ

2006-05-20 00:22:10

방금 다읽었습니다 ㅎㅎ;

2006-05-19 22:53:59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dp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를 구지 dvd로 사서 보거나, 돈지랄 (?)처름 보이는 피규어를 사는 취미를 가진 비슷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 글의 연재로 인하여 또하나의 이유가 늘었습니다. 오랫동안 자료수집하고 집필하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부디 책으로 꼭 출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가끔 마감일 까지 마무리져야 하는 일을 하느라, 받으셨을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합니다. 이제 당분간 두다리 쭈욱 뻗고 주무실 수 있기를...

2006-05-19 23:25:48

뎃글이라는거 거의 달지를 않는데 이글에는 정말 달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동안 정말 잘 봤습니다. 수고하셨구요.....

2006-05-19 23:27:40

이 연재물은 모두 숨조이며 화면을 뚫어지게 보게 하는군요.
엄청 된통 퍽 썩 굉장히 매우 많이 울트라 캡숑 왕 짱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06-05-19 23:33:08

자, 일단 읽기 전에 리플부터 달겠습니다. 대단원의 막이군요

2006-05-19 23:34:52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 후기가 훈훈한 감동이 되어 돌아오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연재글들을 통하여 제임스 카메론이란 한 사람에대하여 전혀 새로운 생각과 시각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재 초기에 언급하셨던 타이타닉에의 , 카메론에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한 애송이였지만 그를 뒤집고 다시 한번 그의 작품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부디 원하시는 대로 이 멋진 글들을 서점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을 다시 한번 올리며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2006-05-19 23:43:51

저는 이 아름다운 연재로 인해 제 꿈을 향한 집념에 더욱 불과 열정을 일으켜준 김정대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이제 무슨 낙으로 살지..."

2006-05-20 00:02:54

정말 읽는 것만으로도 긴시간이 걸리는 이글을 쓰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검증과 노력을 하셨다니...
새삼 그 노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글을 읽다가 "어떻게 이런것까지 알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엄청난 고증이 있었군요...

제임스 카메론이나 김정대님이나 모두 열정과 끈기가 있어서
저희가 그런 좋은 영화나 이런 좋은 글을
접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잠시 푹쉬시고
앞으로 또다른 연재글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카메론 감독님도
이제 그만 쉬시고
또다른 영화 부탁합니다

2006-05-20 00:04:30

저에게 타이타닉은 정말 특별한 영화였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에다, 그 당시 좋아하던 여배우인 케이트 윈슬렛, 거기에다 미치도록 좋아하던 셀린 디옹의 주제곡까지.... 이 영화만큼 저를 설레게 한 작품은 없었죠. 카메론 감독은 여타 다른 상업 영화감독과는 다른 뭔가가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 정말 잘 읽었고 감사드립니다.^^

2006-05-20 00:11:46

어이쿠, 책도 사야할 것 같군요 ^_^

참,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를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볼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하나 있네요.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AV 퀄리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_^;;;

2006-05-20 00:18:45

후~~~ 정말... 모니터로 이렇게 긴 글을 읽는게 쉽지 않은데...
대단하시네요.
한숨에 다 읽어 버렸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아~~~ 눈이야...

2006-05-20 00:55:48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2006-05-20 01:26:54

ㅜ.ㅜ .... 정말 감동입니다. 저는 좀 천천히 읽는 편이라 2시간이나 걸려 읽게 됐지만,, 2시간을 이렇게 재미나게 본 글은 처음입니다.
이 글 역시 <타이타닉> 만큼이나 감동적이고 재미가 넘쳐나는 군요~ (정말 흥미 진진해서 눈을 뗄수 없었답니다)

엄청난 글을 쓰신 정대님과 그리고 운영자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 이런 환상적인 경험을 가지게 해 주셔서요~
일단 책 출판되면 기본 3권 구입입니다. 소장용(평생 미개봉), 막 보는 용, 막 보는용 너덜너덜해 지면 보는 용 .... (추가로 선물용 1권 까지~!!)

p.s) 굳이 단점을 얘기 하자면..... 이런 글을 보게 되면,,, 앞으로 '글 쓰는 사람들'의 경우 정말 허탈해 질 것 같다는 예감이.... <글을 쓰려면 적어도 이 정도로는 써야 한다>를 제대로 보여 준 글이었습니다. "이런 글이 좋은 글이다"를 여실히 보여주는 군요~ 방대하고도 정확한 자료 조사... 정말 감동의 역작 그 자체입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더라도 항상 이 연재 글이 '걸림돌'이 될 것 같군요 ^^*

정대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
2006-05-20 01:32:18

왜 이곳에는 추천을 할수가 없단 말인가... 추천 100개!!

2006-05-20 02:02:57

미국에서 듣던 영화 수업시간때, 교수님께 추천드렸던 리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분량이
너무나 방대해서 번역할 수는 없었고, 그냥 간단하게 설명만 해드렸지요. 감독 이름만보고
신뢰하고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2006-05-20 02:13:38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꼭 책으로 내셔야 합니다ㅠㅠ

2006-05-20 02:33:58

"레퍼런스급 리뷰"라는 말로도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니 제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려고 합니다.
잊고 있던 무언가가 이끌려 나온 듯한 느낌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2006-05-20 02:45:43

정말 대단합니다^^
평소 타이타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런 영화였다니..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하네요^^

2006-05-20 02:56:24

이 글을 꼭 번역해서 제임스 카메론에게 보내야 합니다 T.T

2006-05-20 04:16:53

그동안 연재된 시리즈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쉽지만 책으로 꼭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글쓰시느나 수고하신 김정대님 디피 운영진에게 이런좋은글 읽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2006-05-20 04:51:28

헉.. 다읽고나니 날이 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타이타닉이 또한번 보고싶어지는군요.. 10번은 본거 같은데..-_-;; 수고 많으셨습니다..^^

2006-05-20 05:40:17

그동안 다음글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읽고 있었는데 드뎌 마무리 하시는군요. 댓글은 처음 달지만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짐 카메론의 팬인데 미국과 달리 상업영화 감독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우리의 선입견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합니다.

2006-05-20 07:13:41

그동안 DP에 들어오는 낙이었습니다.

아 이젠 어떻게 살죠...(이우진 톤으로) 너무 아쉽습니다. 그만큼 좋은 글이었으며 그만큼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감독의 열정이 그대로 살아서 묻어나오는 글이었습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자, 다음은 이제 조지 루카스 특집입니다~(.....;)

2006-05-20 08:44:14

역시나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분량의 글이네요.
읽어보는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리는데 신기한건 그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는 겁니다.
알찬 얘기들을 재밌게 써주시고, 중간중간 짤방(?)에 한번씩 웃다보니 어느덧 다 읽었네요.
글쓰시느라 들이신 시간과 노력이 너무 대단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합니다만
김정대님 덕분에 참 많은 것을을 알게되었네요.
감사드립니다. *^^*

2006-05-20 09:14:53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글 .. 재미있는 내용.. 끝까지 읽으면서 계속 설래임이 멈추질 않네요.
출판사와 쉬운 타협 마시고, 카메론처럼 밀고 나가서, 꼭 전면 컬러본으로 작품하나 내주시면
더욱더 좋겟네요.. ^^

2006-05-20 09:32:04

고생했습니다 ,89년어비스찍고 인터뷰에서 자비를 들어 찍었다고...그뒤 카메론 감독를 좋아하게
되는데...김정대님 덕분에 더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부디
책으로 나와서 DP 공동구매 사면 좋을것 같네요 ,,,,

2006-05-20 09:57:05

로그인을 안할수 없게 만드네요. 책 출판에 저도 동감합니다. 책으로 낼수 있을까요가 아니라 내야 합니다. 한권은 제가 책임집니다.

2006-05-20 10:15:40

와우.. 아침에 출근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벌써 10시가 훌쩍 넘었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좋은글을 써주신 김정대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책 나오면 꼭 사서 집에있는 영화좋아하는 아들놈들하고 같이 보고싶습니다.

다시한번 수고하셨습니다.

2006-05-20 10:48:15

수고하셨구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릅니다.
"세상의 모든 평범한 자들이여. 내가 너희들의 죄를 사하노라"
어쩌면 천재란 신이 세상에 선물하기 위해( 타이타닉처럼) 희생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2006-05-20 10:50:22

내용이 길다곤 하지만 읽다보면 순식간에 읽어내려가서 긴줄도 몰랐네요..^^
요즘 DVD 생활이 뜸해서 프라임에 안왔었는데 순전히 김정대님의 글이 새로
포스팅 됐는지 왔었드랩니다.

영화보다 더 재밌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이야기 잘 보았구요.
혹 책으로 나온다면 반드시 지릅니다..^^
그간 수고하셨습니다.~

2006-05-20 11:12:05

선리플 후감상...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장이군요?
잘 읽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만...
쬐금 아쉽습니다.

더 보고 싶은데...^^

2006-05-20 14:22:53

마무리에서 올리신 말씀들이 더욱더 감동적으로 유종의 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는 군요?
그 책...저 구입할 예정입니다.
내기만 하세요~
벌써부터 제대로 뽐뿌 받았습니다. ^^

1
2006-05-20 11:38:09

잘 읽어보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네요. 장문의 글 만큼이나 수많은 자료와 정보가 나오는데...
그 자료의 출처를 정확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물론 후기에서 '자료를 참고해서 쓴것'이라고 밝히셨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글을 읽어보면 제임스카메론의 개인적인 생각도 거침없이 언급되는데,
당연히 감독에게 직접 들은 얘기는 아닐것이고, 어딘가 다른 소스에서 얻은 자료겠지요?
그런 레퍼런스들이 전부 언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 글은 김정대님이 지어낸
소설이거나 남의 자료를 무단으로 편집한 글조각밖에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김정대님께서 추후에 생각하고 있다는 책으로도 재편집 하여 출간도 못할 것이구요.

수고스럽겠지만, 각각의 정보에 대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출처없는 정보의 인용은. 영화를 불법으로 다운받는 행위 만큼이나 저질스런 일입니다.

2006-05-20 23:27:54

위에 김정대님도 밝히셨지만 이 글은 인터넷용으로 쓰신 겁니다.

학술 논문도 아닌데 참고문헌 다 밝히자면 분량도 휠씬 늘어나고 딱딱해질 것을 고려해서 일부러 포함시키지 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정식으로 책을 내시게 되면 당연히 포함시키시겠죠.

오랫동안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신 분이 그런 상식을 모르실리가 있습니까?

2006-05-20 23:40:36

원더피쉬님의 마지막 문장은 정성을 다해 글쓰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군요. 눈쌀이 찌푸려집니다.

2006-05-21 00:51:52

자료의 출처를 밝히라는 요청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원더피쉬님의 어투는 심히 불쾌합니다. 기분좋게 글을 읽은 다른 사람마저 기분 나쁘게 만드는군요.
'저질스러운 일'이라느니 '무단으로 편집한 글조각', '지어낸 소설' 이런 말을 꼭 써야 했을까요? 정성을 다해 글을 쓴 필자에게 이게 예의라고 생각하십니까?
원더피쉬님의 요지가 설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표현이 저렇다면 누구라도 눈쌀을 찌푸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덧글은 삭제해주셨으면 좋겠네요.

2006-05-21 02:49:56

글에 어조를 담는 일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뜻하지 않은 것은 쉽게 되기도 하는 법이지요. 원더피쉬 님의 말씀에 담긴 불쾌하기 그지 없는 어조는 님께서 원하셔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인터넷 댓글을 통한 지적은 참으로 조심스러워야하지 않을까요?

2006-05-21 08:01:17

마지막 맨트..나 원 어이가 없군요..
저질스런 덧플이나 지워주세요..

2006-05-21 18:23:46

본 연재의 1회 초반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군요...


참고로 본 연재 글은 그간 글쓴이가 수집한 외국 자료들(Fangoria, Entertainment Weekly, Variety, Omni 등 영화 관련 잡지 약 30종에 실린 카메론에 관한 기사들, 세 권의 제임스 카메론 전기 단행본, 그리고 BFI 모던 클래식을 비롯한 7종의 카메론 작품 관련 단행본 등)을 토대로 하여 작성된 것이다.


댓글 보시면 바로 사과글 올려주세요!

2006-05-21 20:49:09

헐... 모비우스님이 출처도 적어주셨고 설명도 하셨는데 사과정도는 하셔야 하실 듯... 방대한 글을 적으면서 출처를 일일히 다 밝힐 수 없는 점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정식출판엔 들어갈 것이고...

논문쓰는 것도 아닌데 일일이 주석달아 붙이는 것도 노동일테고...
글의 전개나 앞뒤 연결에 있어 부드럽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연구하고
생각하면서 쓰셨다는 증거인데 이를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글조각'운운하며 공격하시는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히려 장문의 좋은글을 접하기 힘든 인터넷에서 좋은 글을 전해주신
분에 대한 감사함만 깊어지는군요.

2006-05-24 22:40:58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참 기분나쁘고 저질스럽게 말씀을 하시네요...^^;

Updated at 2016-08-05 23:13:52

10년전..
독해..

2006-05-20 12:22:05

다읽고 나니까 서운 하네요 정말 재밌었는데.

꼭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2권 3권사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해 주고싶어요!!

2006-05-20 12:28:22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O^

2006-05-20 12:50:03

지금보니까 LA타임즈의 케네스 튜란이라는 평론가는 편견으로 가득찬 사람이군요. 트루라이즈에서도 페미니스트가 인정하는 씬을 여성비하로 씹어대고, 또 여기서 타이타닉을 망하라고 씹어대는군요. 미국도 찌라시들은 만만치 않은가봐요. 실컷 비난하고도 짐카메론이 한마디했다고 인정하라고 어쩌구 하다니 참나...저런 평론가들은 좀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어쨌구나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열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훌륭한 글입니

2006-05-20 13:36:46

김정대님의 글이 디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입니다. :D

2006-05-20 14:24:26

드디어 올것이 왔군요......

2006-05-20 14:28:43

매회 정대님 글을 기다리는 저로썬..많이 아쉽습니다..
이런 레퍼런스급글을 언제 다시 볼수있을지..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정대님의 글과 예전에 정영음에서 정성일평론가께서 하신
카메론에 대한 특집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감독이자, 지독한 완벽주의자..그래서 더더욱 대단한것 같습니다..

2006-05-20 14:44:37

정말 멋집니다^^

2006-05-20 14:55:15

직업인으로서, 일에 대한 저의 태도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물론,
김정대 님을 보면서 말이죠.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06-05-20 15:23:04

리플부터 쓰고 읽었는데
아쉽네요

책 나오면 사전구매 들어갑니다.~

2006-05-20 16:53:38

아... 왜 이 글에는 추천기능이 없는 겁니까.

덧붙여 책으로 나오면 무조건 삽니다!!!

어여 출판하세요~

2006-05-20 18:18:28

정말 감동적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그동안 너무나 수고하셨습니다....

2006-05-20 18:29:56

이 좋은 글이 더욱 방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의 책으로 하루빨리 출판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2006-05-20 18:41:40

타이타닉이 나올때까지 눈빠지면서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보면서 눈물이 ㅠ.ㅠ
어쩌면 영화보다 더 감동적인듯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05-20 20:28:20

잘봤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과 비교 되는 부분등을 제일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출처 표시는 어디 되어있나요?
맨 밑에 나올 줄 알았는데 없네요;;

2006-05-20 21:28:13

그동안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정든 시리즈도 이제 끝이라니 아쉽습니다. 타이타닉 DVD를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건필하십시요.

2006-05-20 21:40:03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책으로 묶여져 나온다면 꼭 사고싶을 정도로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2006-05-20 22:09:20

제임스 카메론을 존경하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카메론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을수 없었습니다...
김정대님 글을 첫장부터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반 원망반 했습니다..
한달에 한번 들어오는 싸이트를 거의 매일 들어왔거든요.. 글 올리시는 주기도 일정치 않아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님의 그 많은 노력을 볼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이글을 읽는데도 2시간 이상이 지났지만 너무나도 아쉽네요.. 더 많이 볼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제임스 카메론.... 더 더욱 존경스럽네요.. 차기작을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ㅎㅎ
김정대님 너무 수고 하셨습니다.. 인터넷에서 정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의 무언가를 얻을수 있었다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6-05-20 23:04:06

<타이타닉> 리뷰에서의 절단신공 이후 얼마나 이글을 기다려왔는지..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라도 해주시는 듯 엄청난 분량때문에 읽는데도 한참 걸렸네요. 개인적으로 제가 인터넷에서 읽은 글 중 최고였습니다.^^ 저도 짐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책나오신다면 꼭 사겠습니다~ 책도 꼭 내주세요!!

2006-05-21 00:21:44

엉엉!!! 감동의 물결이.... 에필로그로 현재의 카메론 감독도 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습니다^^

2006-05-21 00:25:47

정말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

13
2006-05-21 00:46:00

안녕하세요. 김정대입니다.
출처를 밝히라는 분이 몇 분 계셔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될것 같아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원래 글쓴 이 후기 끝에 넣었다가 글이 너무 길어져서 삭제했었습니다. 혹 몇몇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렸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책에는 '당연히' 들어갈 예정입니다. 책에 참조문헌이 안들어간다는 것은 물론 말도 안 되죠).
물론 소스는 여기 언급한 게 다는 아닙니다. 일간 신문과 잡지의 기사(주로 토막 뉴스들) 중에는 빠진 게 상당히 많습니다. (잡지의 소스는 굵직한 특집 기사들만 넣었습니다) 여기 빠진 것은 향후 책에서 모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책 & 잡지 (괄호 안은 저자, 출판사 순서입니다. 발행년도는 시간 관계상 생략했습니다)

BFI Modern Classics : The Terminator (David M. Lubin, BFI)
BFI Modern Classics : Titanic (Sean French, BFI)
Ken Marschall's Art of Titanic (Ken Marschall, Hyperion)
James Cameron's Titanic (Ed W. Marsh, Harper Collins)
Titanic: James Cameron's Illustrated Screen Play (James Cameron-annotated by Randall Frakes, Harper Perennial)
Titanic and the Making of James Cameron : The Inside Story of the Three year adventure that rewrote motion picture history (Paula Parisi, Newmarket Press)
The discovery of the Titanic (Robert D. Ballard, Warner Books)
Titanic: An Illustrated History (Donald Lynch-Ken Marschall, Hyperion Books)
True Myths: the life and times of Arnold Schwarzenegger (Nigel Andrews, Bloomsbury)
Fantastic: The life of Arnold Schwazenegger (Laurence Leamer, St. Martin's Press)
How I Made a Hundred Movies in Hollywood and Never Lost a Dime (Roger Corman, Randon House)
James Cameron (Brian J. Robb, Pocket Essentials)
James Cameron: An Unauthorized Biography of the Filmmaker (Mark Shapiro, Renaissance Books)
Dreaming Aloud: The Life and Films of James Cameron (Christopher Heard, Doubleday Canada Limited)
The Making of Terminator 2(Don Shay, Spectra)
The Abyss (Orson Scott Card, Pocket Books)
Terminator 2: Judgment Day: The Book of the Film (James Cameron-William Wisher, Applause Books)
The Unseen Force: The Films of Sam Raimi (John Kenneth Muir, Applause Books)

Fangoria #41 ('James Cameron: the Terminator' Article)
Fangoria #56 ('James Cameron: Direction Aliens' Article)
Cinefex #21 (The Theminator 특집)
CInefex #27 (Aliens 특집)
Cinefex #59 (True Lies 특집)
Cinefex #72 (Titanic 특집)
Esquire 1997년 12월호 ("James Cameron is the Scariest Man in Hollywood" Article)
Premiere 1994년 8월 ("Iron Jim" Article)
Premiere 1998년 4월 ("Cameron is God" Article)
Entertainment Weekly 1994년 7월 ("5 True Lies About James Cameron" Article)
Omni 1989년 8월 ("Deel Sea Cinema" Article, Omni지는 이 외에도 많이 참조했습니다. 여기는 하나만 적겠습니다).
Variety 1993년 1월 외 다수 기사들("Arcara Files Contersuit in Crowded Room", "Cameron Ankels Crowded Room" 외 The Crowded Room 관련 뉴스들 다수)
Variety, Entertainment Weekly, Daily News 다수 기사들("Spider-Man spins legal web"외 Spider-man 관련 뉴스들 다수)
Starlog ("How to Direct a Terminator", "Paul Reiser: Doing Lunch with Aliens", "Director's Judgment"외 다수 기사)
Rolling Stone ("Cameron: the King James Version" 외 기사들)
Film Comment("The Terminator: $5 million" Article)
Hollywood Reporter ("Cameron on Cameron"외 다수 기사)
New York Times ("Cameron's Abyss"외 다수 기사)
기타 Chicago Tribune("Aliens May Terminate Director's Anonymity"), Los Angeles Times (Kenneth Turan의 Article) 등의 기사들

이 외에 영상자료로 DVD로 출시된 카메론의 모든 작품들(각각의 타이틀 언급은 생략), "History Channel: Titanic", "Titanic"(1953), "A Night to Remember" 등을 참조했습니다.

아참, 그리고 70회 아카데미 시상식 관련 영상은 온미디어의 장현 국장님께 제공받았습니다. (본문에서 이 분의 이름을 거론 안 한 것은 큰 실수입니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2006-05-21 06:28:58

정말 방대한 자료를 수집, 참고, 인용하셨군요....^^

좋은 글은 언제나 저자의 노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2006-05-21 15:40:16

우와~ 너무 멋지십니다.

2006-05-22 14:47:37

정말 대단하십니다.
너무너무 고생하셨어요. ^^

2006-05-21 01:06:39

너무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거 기다리고 읽는 낙도 많았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네요

다른 글도 기대하고 있구요, 꼭 책 출간하세요

2006-05-21 02:51:47

참으로 오랫만에 순수한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책으로 반드시 출간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06-05-21 02:56:55

평소에 매우 좋아하던 감독이었는데, 김정대님의 이번 연재 글을 통해서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김정대님의 열정 또한 가히 레퍼런스급이라고 생각됩니다.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내용이 정말 방대하군요. 읽는 데만도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니,
글을 쓰는 데에 들이셨을 시간과 노력, 정성을 생각하면... 타이타닉급의 안습입니다. )
그동안 장문을 글들을 쓰시느라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스크랩 해 두었다가 몇번이고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

PS. 완벽주의자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 인생을 보면서 불현듯 느낀 점 하나.
Director <=> Dictator
" 훌륭한 영화 감독은 어느 정도(?)는 '독재자'의 기질이 꼭 필요하다. "

2006-05-21 03:39:01

너무나도 완벽한 제임스카메론의 일대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2006-05-21 04:07:25

제가 평소 가장 좋아하던, 아니 가장 존경하던 제임스 카메론감독에 대한 글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재미있게 써 주신 김정대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말 김정대님의 글은 DP 최고의 보물이었던것 같습니다.
더이상 김정대님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위인전(?)을 볼수 없다는게 너무 아쉽네요.
대신 꼭 책으로 내 주셨으면 합니다. 구입목록 1순위 입니다.
아무튼 건강하시고, 계속 DP에서 좋은글 써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너무 감사드리고 수고하셨다는말 전하고 싶네요...

2006-05-21 04:57:31

문장력이 없어 그냥 넘어갈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수 없군요.
'님'께서 올려주신 글들은 제가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었던 이래
최고의 글이였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99년부터 모뎀으로 했으니깐 햇수로만 7년째군요...)

결코 겸양하실 필요없이 보기드문 최고의 글이였으며 인터넷이란 매체에 가장 잘 어울리고
이곳 디브이디 프라임에 가장 적합한 글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정성스런 답글을 달아주신 이유도 '님'께서 쏟으신 노력을 글로써 느낄 수 있기에
조금이나마 감사드리기 위해 답글들을 달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글을 기다려왔고 연재가 안올라오면 성질까지 낼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오를때도 있었지만(특히나 마지막편인 이번께 제일 기다리기 힘들었습니다...--;)
막상 이렇게 마지막 글을 대하고나니 가슴 한구석이 휑한듯 너무나 허전합니다.

디브이디도 CE니, LE니, 디럭스 컷이니 각종 이름을 달고 다시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티2-3D>의 일화'를 멋지게 대미장식용으로 만들어주시면 어떨련지요...

물론 윗글에서 분량문제로 삭제하셨고 나중에 책이 나올때 추가하신다고 했지만
이 수많은 어린양들을 위해서 아주 조금만 시간을 내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솔직히 '분량'문제라니요!!! 디피 운영자님들이 그리 박복하시겠습니까!!!
이 문젠 디피 운영자님들이 오히려 더 부추겨서 추가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티2-3D'는 국내에서는 절대 볼 수도 없구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상이기에 오히려
국내에선 정보를 얻을래야 얻을 만한 곳이 극히 드물고 내용또한 너무나 허접합니다.
(저의 조잡한 정보능력으론 몇년전에 T3개봉전 씨네21로 접한 몇줄의 기사가 다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아시면서 분량문제로 그 귀한 정보들을 2~3년간 묵히신다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또다른 정신적 공황상태로 내 몰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 축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딱! 한번만 그 귀한 시간들을 조금씩만 내어주셔서
마지막 유종의 미를 거두시길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한달도 좋고 두달도 좋습니다.
써주신다는 말만 해주신다면 책이 나오기전까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디피 운영진 여러분들,
제발 글 쓰신 김정대님을 괴롭혀주세요.
저희는 얼굴도 모르고, 사시는 곳도 모르고, 연락처도 몰라 괴롭(?)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김정대님의 글에 만족을 느끼시는 다른 모든분들도 저의 조그만 의견에 동의하신다면
제발 글 쓰신 김정대님이 자극 받으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좋은 정보와 내용을 자세한 짤방까지 포함해 가면서 글을 써주신 김정대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레퍼런스급 감독에 버금갈만한 레퍼런스급 내용이였습니다.

항상 건승하세요!!!

'<T2-3D>의 일화'...를 써주신다는 글을 기원하며!!!

2006-05-21 05:48:28

정말 좋은 글 잘봤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에 대한 김정대님의 열정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네요

2006-05-21 08:04:27

정말 정말 기다렸던 글이 드디어!.. 이번에 타이타닉 감상할땐 코멘터리로 필히 감상을..^^

김정대님
그동안 좋은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카메론의 얘기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레퍼런스한 영화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