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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대]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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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4 11:13:48

아래글은 스타워즈 DVD 특별판 리뷰를 위해 김정대님이 예전에 디피에 쓰신 영화 소개글입니다. 김정대님 글 복원 작업의 일환으로 영화글만 별도로 편집하여 공개합니다. 오리지널 글이 영화가 아닌 DVD 소개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글 | 김정대(adoinel21@gmail.com)


※ 참고 한 눈에 보는 스타워즈 시리즈 계보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새로운 희망> 이야기 - “The force will be with you, always"


 

1970년대 초, 미국은 격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베트남 전 패배와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대중의 뇌리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감과 미국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비전이 자리 잡았고, 유례없는 물가상승은 이러한 혼란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정신적 공황에 빠진 미국인들은 암울한 현실을 단번에 잊게 할 ‘새로운 충격’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의 각본 작업에 착수할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다. ‘현대인에게 새로운 신화를 안겨주겠다’는 그의 야망은 돌이켜보면 기가 막히게 시의 적절한 것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각본의 초고를 쓸 때만 해도 루카스는 이 야망이 정말로 현실화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루카스의 심경은 이러했다. “속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어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미국인의 꿈’이 되어버린 <스타워즈>의 신화는 이렇게 소박한 ‘한 개인의 꿈’으로 시작했다. 인류 역사를 뒤흔든 사건들이 대부분 그랬듯, 루카스가 꿈꾼 신화 역시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심히 창대’ 했던 것이다. 


▲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는 영화 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낯선 별에서 뚝 떨어진 것과 같은 이질적인 것이었다. 루카스가 ‘돈줄’을 확보하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던 당시는 우주를 무대로 한 공상과학 영화는 ‘흥행하기 힘든 B급 장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닉슨 독트린 이후 미소 냉전 체제가 완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영화에서 ‘전쟁’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루카스의 이야기는 유치하게도 제목 자체에 ‘WAR'라는 글자가 들어가지 않는가? 게다가 당시의 통념을 따른다면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영화’가 크게 성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즉, <스타워즈>는 제작자들이 꺼려하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었던 셈이다. 스튜디오들이 약속이나 한 듯 그의 프로젝트를 거절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20세기 폭스사의 제작 부장 알란 랏드 주니어가 제작비 조달을 결정하며 구원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다면 그의 계획은 영원히 묻히고 말았을 것이리라.  


루카스가 73년 작성한 <스타워즈>의 초고는 무려 200페이지에 달한다. 여기에는 77년 영화화 된 <스타워즈 에피소드 4:새로운 희망(이하 <스타워즈>)>뿐만 아니라 두 편의 후속작 및 프리퀄 이야기의 일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오프닝 장면의 유명한 프롤로그 문구는 이 초고에서부터 등장했다. 이 프롤로그는 어린 시절 루카스가 열광했던 스페이스 판타지 시리즈물에서 따온 것이다. 


 <플래쉬 고든> 오프닝


루카스는 관객이 프롤로그 문구를 보며 <스타워즈>가 거대한 시리즈 중 한 편이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초고의 이야기는 우리가 영화로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간단하게 내용을 살펴보자. 

주인공은 아니킨 스타킬러(‘애너킨’이 아닌 Annikin Starkiller, 루크 스카이워커의 원형)이며 그에게는 ‘딕’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아니킨의 아버지 ‘케인’(후에는 이름이 ‘루크 스타킬러’로 바뀌며 성격도 변하게 된다)은 제다이 기사단 출신이며, 라이벌 기사단인 ‘시스’의 마수로부터 두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느 날 검은 옷을 입을 입고 가면을 쓴 시스의 전사가 딕을 살해한다. 분노에 휩싸인 아니킨은 광선검을 빼들고 시스 전사에게 돌진하며, 뒤늦게 아니킨을 구출하러 온 케인은 결국 대결 끝에 시스 전사를 죽인다. 딕의 장례를 치른 후 케인은 옛 친구인 ‘스카이워커 장군’에게 아니킨을 맡기며 수련을 부탁한다. 

뭔가 재미있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가? 애너킨 스카이워커/다스 베이더는 바로 케인과 시스의 흑전사의 이미지를 합친 인물이다!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이 아버지상은 루카스가 각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탄생시킨 최고의 걸작품이었다. 또 한 가지 기겁할만한 사실은 이 초고에서 한 솔로는 ‘코가 없고 아가미가 달린 녹색 괴물’이었다는 것!

 


각본 작업 중 루카스가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바로 대사였다. ‘각본 쓰는 데는 영 재능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한 그에게 감칠맛 나는 대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한 고역은 없었다. 결국 그는 이 부분에서 친구인 윌라드 휴익과 글로리아 카츠(<인디아나 존스와 운명의 사원>의 각본을 쓴 콤비)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명대사 중에는 아주 우연하게 삽입된 것도 있다. 


 I got a bad feeling about this.

 

<스타워즈>의 모든 에피소드에 삽입된 ‘뭔가 느낌이 안 좋아(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는 루카스가 일이 뜻대로 안 풀릴 때마다 습관처럼 내뱉던 말로, 원래는 <스타워즈>와 동시에 구상 중이던 <레이더스>에 삽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레이더스>는 중절모 차림에 채찍을 든 고고학자의 ‘원맨쇼’인 관계로 주인공이 이 대사를 내뱉을 때 그것을 들어줄 동료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스타워즈>는 두 세 명의 주인공이 붙어 다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런 불평을 들어줄 상대방이 항상 있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이 대사는 <스타워즈>에 삽입되었다.


 오비완 케노비


루카스는 76년 3월 촬영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끊임없이 각본을 수정했으며, 촬영을 시작한 후에도 이 수정 과정은 계속되었다. 수정된 부분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바로 오비완 케노비의 죽음에 관한 부분. 

 

본래 오비완은 끝까지 살아남게 되어 있었으나, 각본 수정 과정에서 루카스는 문뜩 주인공들이 데스 스타를 탈출한 후 오비완이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오비완을 죽일 것을 결심하고 오비완의 역을 맡았던 알렉 기네스 경을 설득했다. 항간에 잘못 알려진 소문과는 달리 알렉 기네스는 <스타워즈>를 무척 사랑했으며 자신의 역을 즐겼다. 기네스는 오비완의 ‘사형 선고’를 듣고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러한 그를 설득하기 위해 루카스는 비지땀을 흘렸다. 결국 루카스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간신히 그를 설득시켰다. - 바로 속편에 오비완을 잠깐이라도 출연시킨다는 것. 물론 루카스는 그 약속을 지켰다. 


 팔콘

 

촬영 도중 루카스는 여러 차례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디자이너 랄프 맥쿼리는 영화의 ‘주인공격 우주선’ 밀레니엄 팔콘 호를 길쭉한 형태로 디자인 했고, 루카스는 그것에 만족을 표시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TV 시리즈 <우주 대모험 1999>에 맥쿼리가 그린 것과 거의 유사한 모양의 우주선이 등장한 것이다. ‘표절’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맥쿼리는 눈물을 머금고 팔콘 호의 모습을 재디자인했다. 루카스는 맥쿼리에게 ‘비행접시형’ 우주선을 제안했고, 이에 따라 디자인 된 것이 지금 널리 알려진 팔콘 호이다. 초창기 맥쿼리가 그린 팔콘 호는 모양이 약간 수정되어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스타디스트로이어에 쫓기는 영사선 탠티브 IV가 바로 그것이다. 



97년 공개된 SE판에서야 제 모습을 드러낸 ‘자바 더 헛’ 씬의 경우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루카스는 본래 인간 대역을 써서 이 장면을 찍은 후 후반 작업에서 자바 더 헛 부분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촬영분으로 교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 제작에 돌입하자마자 폭스 이사회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영화 제작을 중단하겠다’라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루카스는 여기에 대해 20년 동안이나 아쉬워 하다가 마침내 CG 기술의 도움을 얻어 극적으로 ‘한’을 풀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스타워즈>의 첫 시사회 광경은 어땠을까? DVD에 서플먼트로 수록된 다큐멘터리 <꿈의 제국>에서는 이 때의 상황을 ‘루카스의 친구들은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폭스사 간부들은 좋아했다’라고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욱 극적이다. 77년 1월, 루카스는 친구들과 관계자 몇 명을 모아놓고 러프 컷으로 시사회를 가졌는데, 결과는 한마디로 ‘재앙’이었다. 참석한 모든 이들이 혹평을 늘어놓았으며 심지어 친구 브라이언 드팔마는 ‘내가 본 중 최악의 영화’라며 루카스를 놀렸다. 몇몇 이들은 의기소침해 있는 루카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용기를 내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썰렁한’ 반응이 나온 데에는 이 러프컷이 완전한 편집본이 아니었으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악이 삽입되지 않았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 러프 컷 만으로도 영화의 성공을 확신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낸 이들도 있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이 콕스였다. (참고로 제이 콕스는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 오브 뉴욕>의 각본을 쓴 사람이다. 당시 타임지의 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루카스, 스콜세지 등 신세대 감독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스필버그는 루카스와 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당시 스필버그가 기획한 <미지와의 조우>는 <스타워즈>와 거의 같은 시기에 제작에 돌입한 상태였다. <미지와의 조우>의 특수 효과를 맡은 인물은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특수 효과를 맡았던 더글라스 트럼불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스타워즈>의 특수효과를 맡은 존 다이크스트라는 트럼불의 수제자였다. 


 존 윌리엄스


스필버그는 루카스에게 영화 음악가 존 윌리엄스를 소개해 준 장본인이기도 한데, 당시 존 윌리엄스는 <스타워즈>와 더불어 <미지와의 조우>의 스코어도 구상 중이었다. 77년 3월,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스코어 녹음 현장에서 존 윌리엄스의 주제곡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해 스필버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것을 들려주었다. 스필버그는 그 음악을 듣고 등골이 오싹했다. <미지와의 조우>의 음악이 그것보다 나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77년 5월 25일, 드디어 <스타워즈(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가 개봉했다. 그러나 <스타워즈>의 간판이 걸린 상영관은 40개가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극장들은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타워즈> 따위의(?) 흥행이 불확실한 영화에 스크린을 내줄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제작사인 폭스 사조차 <스타워즈>보다는 이후에 개봉할 대형 작품들의 마케팅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개봉을 앞두고 타임지나 뉴스위크 등 유력 언론 매체에도 <스타워즈>에 관한 평은 실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스타워즈>는 모두에게 찬밥 신세였다. 

 

그러나 관객들은 ‘명품’을 즉각 알아보았다. 개봉 즉시 간판이 걸린 모든 극장에서 연일 매진 신기록이 터져 나왔고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한 폭스 사는 즉각 전국 확대 상영을 결정했다. <스타워즈>는 순식간에 역대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수립했고, 그 엄청난 인기는 영화 현상을 넘어 전 지구적 문화 현상으로 발전했다. 


 

이듬해인 78년까지도 미국의 주요 상영관에는 <스타워즈>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한국 어린이들의 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던 이 시절, 미국 아이들의 꿈은 ‘루크 스카이워커가 되는 것’이었다. <스타워즈>와 관련된 각종 부가 상품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렸고, 그 연령층은 어린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스타워즈>는 7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시각 효과부문의 상을 거머쥔 존 다이크스트라는 시상식 직후 이렇게 외쳤다. “마치 꿈이 실현된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어메리칸 드림이다!”



<제국의 역습> 이야기 -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스타워즈>의 대성공이 루카스에게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제작의 자유’였다. 루카스는 꿈에 그리던 속편의 제작을 메이저 스튜디오의 간섭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카스는 속편의 제작비를 손수 조달한다는 다소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폭스사는 배급만을 맡기로 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스타워즈>의 속편은 할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비싼 독립영화’가 될 터였다. 


속편이 사전 제작 단계에 돌입할 무렵 <스타워즈>가 재개봉되었는데 이 때 제목에는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라는 부제가 붙었다. <새로운 희망>이 에피소드 '1'이 아닌 '4'가 된 것은 ‘시리즈를 더욱 거대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싶다’는 루카스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프리퀄 삼부작’의 영화화 계획은 없었다. 본래 <새로운 희망>은 에피소드 1이 될 예정이었으며, 후에 <제국의 역습>이라는 부제가 붙은 속편의 초고에는 ‘에피소드 2’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메가폰을 잡으며 스튜디오의 살인적인 간섭을 경험한 바 있는 루카스는 이번에는 감독 대신 제작자로 참여하기로 했다. 그가 이런 변신을 하게 된 데에는 각본, 제작, 편집 등 모든 과정을 총지휘하기에는 오히려 제작자의 위치가 더 적당하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었다.    


속편을 위한 루카스의 선택은 쇼킹함의 연속이었다. 루카스가 감독으로 지목한 이는 대학 선배 어빙 커쉬너였는데, 그는 이전에 SF나 판타지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전무 했다. 게다가 각본가로 지목한 리 브라켓은 여류 SF 작가로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인물이긴 했지만, 정작 그녀가 각본을 맡았던 영화들은 <빅 슬립>, <리오 브라보>와 같은 진지한 극영화였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복잡한 이야기 구성과 인물의 성격 묘사에 재능이 있었다는 것. 루카스가 이들은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그는 속편에서 심리극적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캐릭터들의 성격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 것이다. 


 어빙 커쉬너 (맨 좌측)


브라켓은 루카스와의 스토리 회의를 거쳐 78년 2월 <제국의 역습>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브라켓이 바로 그 다음달에 암으로 사망한 것이다. 다급해진 루카스는 평소 재능을 눈여겨보았던 로렌스 캐스단을 대타로 ‘임명’했다. 캐스단은 당시 <레이더스>의 초고를 막 탈고한 상태였다. 갑작스런 부름에 놀란 캐스단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아직 내가 쓴 <레이더스>도 읽어보지 않았잖아요? 제가 좋은 작가인지 어떻게 알고...” 루카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이봐, 난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여기 초고가 있으니 어서 고치게. 나중에 <레이더스>의 각본을 읽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자넨 해고일세!”


루카스는 브라켓의 초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영화 속의 명장면이나 명대사들은 대부분 캐스단이 작성한 두 번째 각본부터 등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솔로가 냉동장치에 갇히는 씬이나 베이더가 루크에게 자신이 아버지라며 ‘커밍 아웃’하는 씬 같은 것은 초고에는 있지도 않았다. 베이더가 루크의 팔목을 자르는 유명한 씬도 캐스단의 두 번째 각본에서야 등장했다. 


 루크 임마, 내가 니 애비야! (I'm your father.)

 

사실 루카스는 베이더의 정체를 <제국의 역습>에 드러낼 것인지, <제다이의 귀환>에 드러낼 것인지를 놓고 오랜 기간 고민했다. <새로운 희망>의 ‘장밋빛 비전’을 꿈꾸며 극장에 들어선 어린 관객들에게 이런 ‘커밍 아웃’씬이나 루크의 팔목이 잘려나가는 씬 같은 것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루카스는 이 씬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관객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베이더의 말이 사실일까’라고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시도는 당시 크게 히트한 상업 영화의 속편으로는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어빙 커쉬너는 루카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 장면의 연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촬영에 돌입하기 전까지 ‘베이더의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심지어 배우들에게 나눠준 각본에도 ‘가짜 대사’가 들어가 있었다. 


제임스 얼 존스(베이더의 목소리)는 유명한 대사 ‘내가 네 애비다’를 녹음하기 직전에야 각본에서 확인했는데, 그것을 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베이더가 ‘뻥’을 치고 있구먼.”


 

<제국의 역습>의 또 다른 모험은 ‘인형’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는 것이었다. 바로 ‘요다’였다. 루카스는 관객이 만일 요다를 ‘우스꽝스러운 인형’이라고 비웃는다면 그것은 곧 <제국의 역습>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루카스는 이미 리 브라켓과의 스토리 회의 때부터 요다를 ‘어린아이 같은 노인’형 외계인으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스크린에 그를 구현한 것은 후에 감독으로도 활동하게 되는 프랭크 오즈였다. 프랭크 오즈의 활약 덕분에 요다는 역대 할리우드 영화 속의 외계인 중 최고의 인기스타로 등극했다. 루카스는 오즈의 ‘열연(?)’에 감동하여 그를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인형은 후보에 오를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루카스는 기네스 경과의 약속대로 <제국의 역습>에 다시 오비완을 출연시켰는데, 이번에는 ‘포스의 영’의 모습이었다. <에피소드 1:보이지 않는 위험>이 공개된 후 ‘오비완은 죽은 뒤에 포스의 영이 되었는데 왜 콰이곤은 그러지 못했나?’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는데, 오비완의 포스의 영을 구상할 당시의 루카스의 ‘해명’은 황당할 정도로 단순했다. “죽은 뒤에 포스의 영으로 남는 것은 일종의 제다이의 기술인데, 오비완은  그 기술을 요다에게 배웠다. 그 기술을 익히기 위한 수련을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제작비 초과와 촬영 지연 등 우여 곡절을 겪은 끝에 완성된 <제국의 역습>의 첫 시사회는 뉴욕에서 있었다. 반응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참석한 모든 관계자와 평론가들은 영화의 완벽한 완성도에 찬사를 보냈다. 관객 중 한 사람은 불이 켜진 뒤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빨리 세 번째 작품을 만들란 말이야!‘라고 외쳤다. 그는 바로 SF 작가인 아이작 아쉬모프였다. 1980년 5월 21일 영화가 개봉한 후 관객들은 예상을 훨씬 비껴간 영화의 구성과  결말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베이더의 충격 발언’은 그해 내내 팬들의 논쟁 대상이 되었다.


 

<제다이의 귀환> 이야기 - "May the Force be with you, always"


 

<제국의 역습> 상영 도중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작가협회와 감독협회가 루카스에게 벌금을 물리고 <제국의 역습>의 상영을 중지하려 한 것. 이유는 당시 협회의 규정을 어기고 두 편의 <스타워즈>에서 감독과 작가의 크레딧을 영화 시작 부분이 아닌 끝부분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루카스가 크레딧을 영화의 끝부분에 삽입한 이유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위해서였다. 이 사태에 환멸을 느낀 루카스는 벌금을 문 뒤 감독협회를 탈퇴했다. <제다이의 귀환>의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발생했다. 루카스는 탈퇴 이후 감독협회에 소속된 이를 감독으로 고용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제다이의 귀환>의 감독으로 일찌감치 ‘찍어둔’ 사람이 협회 소속이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루카스가 구상한 <제다이의 귀환>은 전편들과는 달리 세 개의 이야기가 거의 같은 비중으로 동시에 다루어지는 복잡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엔도의 전투, 루크와 베이더의 대결, 데스 스타의 공격’이었으며, 이 사건들은 모두 긴밀한 연관성을 띠고 진행된다. 즉 한 사건은 다른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구조인 것이다. 3개의 이야기의 균형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영화는 엉망이 될 판이었다. 루카스는 이런 까다로운 연출을 훌륭하게 소화해 낼 적임자는 바로 스필버그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루카스는 고민 끝에 <바늘구멍>을 연출하여 주목받은 리처드 마퀀드를 대체 감독으로 결정했다.


<제다이의 귀환>은 부제를 붙이는 단계에서부터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제다이의 귀환>은 루카스가 처음부터 ‘에피소드 6’의 부제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제작자 하워드 카잔지안이 “최종편의 부제로는 좀 약한 것 아닌가요?”라고 묻자 루카스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가 다시 생각해 낸 것은 <제다이의 복수(Revenge of the Jedi)>였으며 언론 매체에도 이렇게 알려졌다. 그러나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루카스의 생각이 또 바뀌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제다이에게 ‘복수’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으며, 영화 속에도 ‘복수’에 해당하는 부분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부제는 <제다이의 귀환>으로 환원되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폭스 사에서는 이미 <제다이의 복수>라는 부제로 마케팅을 개시했던 것.  개봉 시 갑자기 영화의 부제가 바뀌자 팬들과 언론매체 사이에서는 ‘혹시 루카스가 원래 부제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제다이의 복수>라는 가짜 부제를 알린 것이 아니냐’라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제다이의 귀환>의 플롯은 끊임없는 스토리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리처드 마퀀드는 루카스, 캐스단과의 회의 도중 랜도 캘리시안과 레아가 ‘변장’을 한 채로 자바 더 헛의 궁전에 들어가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때 레아는 현상금 사냥꾼 복장을 하며 관객은 복장을 한 이가 레아라는 사실을 한 눈에 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캐스단은 이 의견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관객은 현상금 사냥꾼이 레아라는 것을 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카스는 두 의견을 절충하여 결론을 내렸고 레아의 목소리를 변조해서 외계 언어로 들려주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내 놓았다. 


 

루카스가 또 고심한 부분은 바로 전작들에서 레아가 너무 ‘기가 센’ 여자로만 묘사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최종편에서 레아의 여성미를 강조하고 싶었다. 그 결과 두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 탄생했다. 하나는 전 세계 소년들의 가슴을 불타게 한 ‘황금 란제리’ 씬이며 또 하나는 영화 중반 루크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씬이다. 그의 예상대로 이 두 씬은 관객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스토리 구상 단계에서 루카스를 가장 애타게 한 인물은 바로 해리슨 포드였다. 포드는 두 편의 전작에서도 자신의 비전과 감독의 지시가 상충한다고 생각되면 지체 없이 이의를 표시하는 ‘반항적인’ 배우였다. <제국의 역습>의 명대사인 “알아(I know)"(레아의 "사랑해요”에 대한 대답)가 바로 그의 작품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제다이의 귀환> 제작 시 그는 이미 <레이더스>로 세계적 스타가 된 상황이어서 입김이 더욱 거세졌다. 



그는 루카스에게 ‘한 솔로는 <제다이의 귀환>에서 할 일이 별로 없으니 죽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제다이의 귀환>을 전편과는 다른 활기찬 액션 활극으로 만들고자 했던 루카스는 물론 이 주장에 반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암울했던 <제국의 역습>의 결말 때문에 팬들의 가슴에 ‘상처’가 생겼을 텐데 시리즈의 최고 인기 스타를 죽이면서까지 팬들의 가슴에 또 다른 못질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결국 포드는 루카스의 의견에 백기를 들었으나 영화 속에서 한 솔로가 활약하는 많은 장면들은 포드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판타지 영화의 필수 요소인 ‘거대 괴물’이 전작들에 많이 나오지 못했던 점을 아쉬워한 루카스는 <제다이의 귀환>에서는 식인 괴물 랭커, 살락 등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괴한 형상의 괴물들을 줄줄이 등장시켰다. 특히 관객들에게 인기를 끈 것은 거대한 외계 불량감자 ‘자바 더 헛’과 외계 테디 베어 ‘이워크’였다. 자바 더 헛을 민달팽이 모양으로 처음 구상한 이는 고-모션 기법(스톱-모션의 진화된 기법)을 맡았던 필 티펫이었는데, 그가 떠올린 이미지는 ‘담배를 태우는 민달팽이’였다. 


 

반면 이워크는 처음부터 루카스의 야심작이었다. 이워크와 제국군의 전투 장면은 데뷔작 <THX 1138>에서부터 루카스가 관심을 가져온 ‘기계 문명의 인간성 말살에 대한 경고’의 연장선상에 선 일종의 ‘복수극’인 셈이다. 기계 문명을 상징하는 것은 제국군이며 순수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것은 이워크이다. 최첨단 무기로 중무장한 제국군은 원시 문명의 대표 선수인 이워크들에게 어이없이 당하며, 놀랍게도 관객들은 이 ‘유치한 활극’에서 신선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1983년 5월 25일(정확히 <새로운 희망>의 개봉일로부터 6년 뒤) 개봉한 <제다이의 귀환>은 최고의 오프닝 수입을 기록했으며, 비평가들에게도 전편들 못지않은 격찬을 받았다.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달성했다”는 LA 타임즈의 평가는 당시 이 영화에 쏟아진 열광적인 환호를 대변하는 것이다. 팬들은 전혀 성격이 다른 세 편의 영화에서도 정통성을 훌륭히 유지함으로써 시리즈를 격조 높은 것으로 승화시킨 루카스의 공로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제다이의 귀환>이 종영된 후에도 ‘스타워즈 현상’은 계속 되었다. 루카스가 직접 지휘한 외전의 편찬 사업으로 스타워즈의 우주는 계속 확장되었고, 세대가 바뀜에 따라 클래식 삼부작의 전설적인 성공은 점점 신화가 되어 갔다. 


나온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리즈가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간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어왔다. 그러나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희망>의 공개 직후 나온 타임지의 평가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구가 담겨있다. 

<스타워즈>는 어린이를 겨냥한 영화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어린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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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12-14 11:39:26

 아 정독해 버렸습니다. 

아이작의 소리에 적극 수긍하면서

2016-12-14 11:43:20

아 좋네요. 김정대님 글 다 복원해서 올라오면 좋겠습니다.

2016-12-14 11:46:15

선추천후리플^^

1
Updated at 2016-12-14 11:51:12

 자바씬을 보면서 느끼지만 90년대말 디지털 리마스터링 개봉을 보기전에 오리지널 영상을 보고난 후

디지털 편집에 무한 감동을 했었죠.

 이후 프리퀄 3부작이 끝나고 제다이의 귀환 엔딩부분에 다스베이더가 바뀐것으로 보고

황당해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작자의 뚝심은 높이사지만 추억을 망가뜨리는건 용서가 안되네요.

2016-12-14 12:09:30

추천후 정독합니다~^^

2016-12-14 12:30:38

김정대님 글은 따로 단행본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016-12-14 12:31:44

선추천 후감상 들어갑니다~

2016-12-14 13:36:03

역시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스타워즈 리뷰

1
Updated at 2016-12-15 12:09:20

'제다이의 귀환'에서 죽지 못 했던 '한 솔로'가 그렇게 오래 살아 남을줄이야~

2016-12-15 09:10:07

아..최신작의 스포일러 경고를 남기시는 게 어떨지...

스타워즈 팬이야 아니겠지만 아직 모르는 분들도 계실텐데...

2016-12-15 12:10:05

'플레이트'님의 덧글 보고 댓글 내용 수정했습니다.

2016-12-14 13:52:23

후속편들은 왜 다들 그 모양인지..하나같이 고만고만해서 실망입니다.

2016-12-14 15:14:29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2016-12-14 15:36:24

새로운 희망 개봉시 루카스는 흥행 실패할거라 예상하고 집밖에 안 나갔다가 극장에 길게 쯕 줄 선 사람들이 스타워즈 보러 온 관객이라느걸 알고 층격 받았다죠 ㅎㅎ

2016-12-14 19:10:29

읽는내내 머릿속에 스타워즈 메인테마송이
자동연주되면서 영화 프롤로그 올라가듯 읽힙니다요.^^

2016-12-14 20:41:45

예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봐도 좋군요. 추천 드려요~~

2016-12-14 23:28:04

 에피5는 정말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최고였던거 같습니다

2016-12-15 01:16:54

김정대님의 글들이 복원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고 좋습니다!

불타는 블레이드 런너 연대기 나머지 부분들도 부탁드립니다...

좋은 글 다시 잘 읽겠습니다.

2016-12-15 08:24:3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
2016-12-15 09:04:38

스타워즈는 어린시절 꿈같은 이야기였죠 진짜로 우주전쟁이 있었을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나는 영상은 그 당시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2016-12-15 09:10:43

다시 정독...후 추천!!!

2017-01-03 21:47:20

 내용이 훨씬 길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빨리 복원해 주세요.

2021-01-19 04:54:07

 캬~좋네요~윗분말씀이 원내용이 훨씬 길었다고하는데...복원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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