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미학의 완성, 쿠르베 3웨이 스피커
현대 미술의 오브제 같은 쿠르베의 매혹, Courbe 3Way Speaker
쿠르베(Courbé)라는 제품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혹시 프랑스 화가 쿠르베를 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19세기 중엽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이 작가의 그림은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접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친숙한 터였다.
그러나 화가 쿠르베의 정식 이름은 'Jean Desire Gustave Courbet'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뒤에 't'가 하나 붙느냐 마느냐 하는 차이를 불러온다. 실제 '쿠르베(Courbe)'라는 단어는 불어로 '곡선, 커브'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브랜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제품의 외관을 보면 예술적 센스가 제대로 묻어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일전에 페이퍼버스라는 오픈 갤러리에서 작품 발표회도 한 만큼, 단순히 듣기만 한 오디오가 아니라 보고 느끼는 일종의 조각과 같은 인상도 받고 있다. 실제로 이 행사에서 여러 쿠르베의 제품이 전시된 모습은 무슨 현대 조작가의 작품 발표회를 연상케도 한다.
그런데 이 회사의 연혁을 살피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하나 발견했다. 제품의 설계자이자 동시에 오너이기도 한 박성제 대표의 이력 때문이다. 정확히는 MBC에서 20년간 일해 온, 일종의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아마도 기자의 배경을 갖고 스피커를 디자인한 예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오디오에 진지하게 몰두한 듯, 무려 50여종의 스피커를 교체하면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듯하다. 평소 생각해온 스피커에 대한 이상을 펼치게 된 셈이니 한 명의 애호가 입장에서 더 없이 반갑기도 하다.
또 그의 출사표는 극단적으로 편중된 현 오디오 업계의 양극화 구조를 깨보자는 이상도 담겨 있다. 말하자면 수천만 원 혹은 억대의 스피커 아니면 스마트폰용 미니 스피커로 나뉘어 있는 시장의 중간 레벨을 개척해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축구에서 미드 필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는 만큼, 오디오의 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하겠다. 든든한 미드 파이의 백업이 전체 시장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가는 두 말하면 잔소리. 바로 그런 시장의 개척을 위해 과감히 스피커 제조업에 뛰어든 것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쿠르베라 명명된 본 기의 외관은 상당히 유니크하다. 얼핏 보면 무슨 오브제처럼 강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고, 그래서 미술관이나 전시 공간에 더 어울릴 법도 하다. 이런 포름에서 음악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또 궁금해지기도 한다. 과연 어떤 음이 나올까?
▲ 스피커 내부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이런 형상은 철저히 스피커의 ABC를 낱낱이 파악해서 기초 개념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만들어간 철저한 연구와 과학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접근법은 현대 스피커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어서 더욱 흥미를 끈다. 말하자면 철저한 기능성의 추구가 오히려 미학적인 맥락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본 기의 강점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우선 철저한 대역간의 간섭을 억제한 부분에 있다. 3웨이 3스피커로 구성된 포름에서, 각각의 대역을 별도의 챔버에 수납해서, 상호 간섭을 근본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구조적으로 이런 내용을 갖고 있으면, 일단 음을 만드는데 상당히 수월하다.
동시에 이런 구성은 위험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고역-중역-저역으로 이어지는 3개의 대역이 위에서 아래로 쭉 일자로 그은 형태가 아니라, 일종의 둥글게 만 형상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위상이라는 점에 실패할 요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는 어떻게 객관적인 측정과 수많은 리스닝 테스트로 이 부분을 극복하냐가 관건이라 하겠다.
또한 3개의 챔버를 일정한 시간축을 갖고 움직이도록 조정하는 것도 또 다른 숙제다. 그러므로 본 기를 옆에서 보면 저역이 좀 돌출된 가운데, 중역이 좀 뒤로 밀려 있고, 고역은 더 뒤로 밀려 있다. 그러나 무조건 당기고 밀기만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면, 3개의 대역이 따로 놀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 역시 메이커의 노하우가 필요하리라 본다.
즉, 요약해보면 이런 수려한 자태는 그 자체로 위상과 시간축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요소를 잘못 연산할 여지가 있으며 그 점에서 제작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해진다.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썼지만 실제 시청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는 일종의 기우로 판명이 되었다. 마치 하나의 유닛에서 나오는 것처럼 전 대역이 통일성을 갖고 기민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그 음에 대한 인상이 주가 될 것이다.
여기서 본 기의 음 조성은, 중역대를 충실하게 구축하면서 자연스럽게 위 아래를 넓히지 않았나 싶다. 즉, 음악에서 주가 되는 악기나 보컬의 존재감이나 밀도에 집중하면서 무리하게 대역을 넓히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스펙상으로 대역이 좁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 플랫 리스폰스로 전대역을 다 커버하다 보면 일종의 두루뭉실한 음을 만들 수 있는데,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당연히 심벌즈나 킥 드럼과 같은 악기들이 당당히 나오지만, 역시 주력 포인트는 중역대로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애호가에 따라 좀 더 카랑카랑하고, 공격적인 고음이나 바닥을 치는 양감이 풍부한 저역을 바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얻는 것이 있고 또 잃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본 기의 강점에 보다 주목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본 기는 세 개의 챔버를 원형의 스탠드에 교묘하게 담아냈다. 이런 스탠드의 재질도 여러 가지여서, 목재냐 아크릴이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고, 아크릴도 블랙이냐 크리스탈이냐에 따라 또 인상이 달라진다. 이 부분은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모양으로, 그런 점에서 보다 소비자 친화적인 제품이라 하겠다.
한편 스펙을 보면 4오옴짜리 스피커로 88dB의 감도를 갖는다. 그러나 구동이 아주 어렵지는 않다. 약 70~300W 정도의 출력을 가진 앰프를 권장하고 있다. 담당 주파수 대역도 넓어서 밑으로 24Hz, 위로는 30KHz까지 뻗는다. 그러나 전술한 대로 튜닝 포인트는 중역이 중심으로 특히 보컬이나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의 호소력은 특필할 만하다.
본 기는 총 7개의 제품 군으로 구성된 라인업의 제일 상급 기종으로 당연히 제일 크고 또 제일 비싸다. 그러므로 본 기를 듣고 마음에 든다면 그 아래 배치된 모델 중에 자기 형편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본 기에 투입된 음향 철학과 디자인 컨셉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하위 기종이라고 해도 음에 대한 인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번 시청평이 처음 만나는 쿠르베의 실력과 개성을 점검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앰프는 최근 화제를 몰고 있는 드비알레의 120 모델을 사용했다. 120이라는 숫자가 뜻하듯, 이 제품은 6오옴에 120W의 출력을 낸다. 그러나 본 기를 울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편 소스기로는 티악의 SACD/CD 플레이어 CD-3000을 동원했다.
▲ 드라마 '밀회' 중
첫 번째 곡으로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이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중 1악장.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따스한 느낌이다. 피아노의 감촉이 풍요롭고, 잔향도 깊다. 오케스트라의 움직임도 기민하고, 상당히 넓은 음장을 그린다. 투티에서 폭발하는 느낌도 제대로여서 사이즈에 걸맞는 스케일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단, 매칭된 앰프의 영향인지 전체적으로 수려하면서 고품위한 음이 나온다. 또 아직 드비알레에 본 스피커에 맞는 SAM 프로그램이 없어서 만일 이런 부분까지 보충된다면 보다 뛰어난 매칭을 기대할 수 있다. 일단 전체적으로 풍윤하고, 질감이 풍부한 음이 좋은 인상을 준다.
이어서 세자르 프랑크의 를 뒤메이와 피레스 콤비로 듣는다. 과연 이런 실내악에서 디테일한 묘사가 발군이다. 바이올린으로 말하면 주변의 기척이나 잔향이 세밀히 묘사되고, 그 음 자체가 결코 하늘하늘 얇지 않다. 일정한 두께를 갖고 심지 있게 뻗는다. 피아노도 은은하고, 부드럽게 감싸는데, 약간 임팩트가 더 있으면 어떨까 싶기는 하다. 아마 케이블이나 여러 액세서리로 보완 가능한 부분이라 하겠다.
주얼의 에서 역시 주 감상 포인트는 보컬. 약간 코맹맹이가 가미된 호소력 짙은 음성이 매력인데, 과연 기대대로 잘 나온다. 무엇보다 힘이 있고, 발음이 명료하며, 디테일한 부분도 거침없이 나온다. 초반에 반주를 맡은 어쿠스틱 기타의 현란한 음향이나 점차 베이스, 드럼 등이 가미되어 스케일이 늘어나는 대목도 일목요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단, 매칭 앰프에 따라 보다 강력한 베이스와 펀치력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의 . 이렇게 구성이 복잡하고, 대역이 넓고, 파괴력이 강한 음원에서 본 기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일체의 빅 마우스 현상도 없고, 여러 악기가 얽히고 섥히는 부분도 없다. 단, 약간 온화한 음색은 록의 거친 부분이 오히려 고급스럽게 승화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혈기왕성한 20대 멤버들의 강력한 기백이 살아있어서, 피가 통하는 재생이 이뤄지고 있다. 또 이런 방향으로 좀 더 전개시킨다면, 이런 개성을 지닌 앰프를 선택해도 좋다. 그만큼 본 기는 중립적이고, 다양한 음색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시장의 좋은 반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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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평론가 분의 글로 보니 또다른 느낌이네요. 정말 외국의 유명 오디오 브랜드에 못지 않아 보입니다. 작년에 쿠르베 주니어를 3일 동안 집에서 청음 해봤는데 그 한달전에 새로운 스피커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당장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 이었습니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가게 되면 구입 목록 1순위가 쿠르베 3웨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 아무쪼록 한니발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