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곡성> 매우 실망
1. 애초에 나홍진에게 사람과 삶을 이해하는 깊은 시선을 기대한적은 없다. 그의 인터뷰만 몇개 읽어봐도 별 깊은 통찰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테크니션이다. 인문학적인 예민함보단 기술적인 예민함을, 어디까지나 진짜 삶보단 장르적이고 영상매체에 빠져 있는 오타쿠로서의 예민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매우 극단적인 표현과 제스쳐를 즐겨 사용하고, '대한민국식' 폭력과 날 것의 느낌, 광기와 강박과 집착, 그런 것들이 극단까지 밀어붙여지면서 다가오는 어떤 멍함, 쾌감 같은 걸 표현하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왔다.
2. 진짜 테크니션은 불과 얼음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데, 나홍진은 얼음이라곤 도저히 사용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에게서 들려오는 소문이든, 작품이든 보면 오로지 화염만 가지고 있는 사람같다. 침착함과 차가운 능청이 그에겐 없다.(에선 조금 그 가능성을 발견했는데, 이번에 완전히 날렸다) 한번 꾹 누르고 시치미 뚝뗀 채 분위기를 조성하는 능력이 없다. 이번엔 유머를 넣었다고 발전했다 떠들던데. 진심인가? 웃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이리저리 욕을 내뱉는 아재를 연상했다.
그간 두 영화를 자주 언급하며 나홍진은 불과 얼음 모두 다루고 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냈고, 에서 그 시도를 해본 것 같은데...매우 어설프고 얄팍한 시도였다. 원경을 끼워넣어 상황을 환기시키고 구체적 상황에서 추상적 멍함으로 번지게 만드는 기법은 전혀 신선하지도, 사용하는 구체적 센스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냥 뭐 좀 시끄럽다 싶으면 홍경표 명상 비디오를 끼워넣는 식이었다. 최근 가 이 뻔한 기법을 고수의 손길로 보여줬었는데..비교하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관조적 롱샷으로 뜨거운 상황에 다가감으로서 역설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극찬들이 많던데, 시늉만 냈다고 생각한다. 그냥 멀리서 찍는다고 그런 역설적인 긴장감이 나오는게 아니다. 사운드며, 대사며, 인물 설정이며, 모든게 '내가 본게 맞나? 오, 방금 섬뜩했어, 의도한거겠지? 아닌거같은데...' 이렇게 티 안나고 냉정한 요소들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나홍진에겐 그 모든걸 차갑고 냉정하게 다룰 얼음이 없다. 이거 봐라! 이거 주목해라! 딱! 사운드 딱! 음악 빵!
그는 서스펜스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의 김승현 암살 시도 시퀀스를 보면서 이사람이 재능이 있긴 있구나 싶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녹슬었는가? 이 스릴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온갖 사기와 편협하고 1차적인 몰아붙임에서 온다. 롱샷과 차갑고 가라앉은 톤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시작해놓곤 실력이 안되니 당장 써먹을줄 아는 치사한 방식이 불쑥불쑥. 자꾸 불쑥 끼어드는 쿠니무라 준의 달려드는 아가리 몽타주, 전반부에서 그나마 스릴을 만들어보겠다고 사운드로 장난질치는 시도(번개, 깜짝 놀래키기, 갑자기 되도 않는 소리지르기)는 형편없더라.
좀비씬, 벼락 맞는 씬 보면서는 애초에 나홍진이 이 영화를 블랙 코미디로 만들겠다고 했다가 슥 사라져버렸던 공언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의 전작들에 비해 너무나도 씬들의 퀄리티가 들쑥날쑥이다. 그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홍진이 영화 찍는 내내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나를 확신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3. 그래, 불가해성, 모호함, 수많은 해석과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태도가 현대 예술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잘나가긴 한다. 정말로 삶은 언제나 불가해하고 당장 내 앞의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무슨 거미줄을 거쳐 이렇게 된건지 우린 모른다. 맞다. 근데 그걸 예술품으로서 만들땐 또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수많은 요소들로 서로 다른 해석의 우주 안에서 이런 저런 연결선을 만들어내는 일이, 이른바 '시적인 통찰'을 만들어낸다는 일은 더 깊은 고민과 충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이미 얄팍하게 그 효과와 관객의 스토리 추적 코스를 계산해 두 세번 꼬아놓은 실타래를 완성해놓고는 그 앞뒤를 잘라 모호한 그림을 만드는건 그저 사기이자 스스로 쪽팔린 일이다.
4. 그 좋은 배우들로 저런 연기 디렉션이라니...곽도원에겐 독이 된 거 같다. 나홍진이 그동안 만들어낸 인물들은 얄팍하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데 도취되있는 낭만적인 마초들이긴 했지만 싱싱함과 애정이 느껴졌는데. 어찌 저렇게도 매력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단 말인가..
삼신할매를 맡은 천우희에게는 내내 부담감과 불안함이 느껴졌는데, '난 초월적인 존재지만
또 그렇게 보여선 안돼 ㅎㅎ' 고민하며 대사 치는게 느껴져서 불안불안했다. 천우희씨 사랑합니다..
장소연씨도 사랑합니다...
아역 연기는 소름이 돋기 직전까지만 갔다. 연기 디렉션이란 그런 것이다. 에너지를 뿜게
하면서도 디테일한 추상을 심어줘야 하는데, 아역 연기는 딱 너의 모든걸 던져서 소름돋게 해!
가 느껴졌다. 어른 입장에서 계산한 것들을 어린이에게 그냥 시키게 한 것 같아 그 효과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느꼈다.
5. 나홍진에게 누군가를 패면서 심문하는 일은 일종의 페티쉬임이 확실해졌다..
6. 에서 이미 그의 오컬트적인 심취가 드러났던 장면이 꽤나 많았는데. 그때는 오히려
의도한건지 우연한 클리셰인지 모르겠어서 섬뜩했는데 이렇게 대놓고 폭발시키니 매력이 없다.
오컬트란 '알수없음'에서 대부분의 효과를 얻어낸다. 곡성이 파괴력을 얻어낼 수 있는 점은 애초에 너무나도 '대한민국적'이고 구질구질한 깡촌 분위기 안에서 '설마 외국애들처럼 좀비 부르고 주술사 나오고 그런거야?' 라는 일이 슬금슬금 끼어드는 이종교배에서 나오는데, 좀 더 능청스럽고 참을성 있는 연출이 필요했다. 꼭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못참고 결국 토해내고 마는 어린아이처럼 '그래, 이거 흑마술사 나오고, 좀비 나오고 하는 오컬트 영화야, 엑소시스트 봤지? 이제 달린다' 하며 달리니 오싹함이 급감한다. 이미 봐왔던, 익숙하고 정감가기까지 하는 요소들이 날뛰니 뭔가 새로운걸 본다기보단 결국 로컬리티로 포장한 오컬트 영화구나 싶은 것이다.
7.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시시한 쓰레기 유머로 한시간을 채우다가 몇분 로봇들 싸우는걸 보여줌으로서 우리에게 '재밌는걸 보고 있다는 착각'을 줬다. 곡성이 우리에게 '압도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있다는 착각'을 주는 결정적 시퀀스는 결국 굿 장면이다. 아주 격렬하고 폭력적이고 일상적이지 않고 강한 리듬 기반의 퍼포먼스는 언제나 우리들을 주술적 효과에 빠지게 한다. 록 콘서트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주술 춤이나 별반 다르지가 않다. 나는 굿씬만은 이런저런 계산과 비판적 사고에서 벗어나서 볼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무리 얄팍하고 깊이가 없어도 주술적인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단순하고 유치할정도로 수가 보여도 효과가 강력한것. 근데 달파란 장영규의 OST가 너무나도 구렸다.
음악의 타이밍과 그 상투성은 매우 심각해서,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그렇듯이 음악을 절반 이상만 들어내도 영화의 퀄리티가 훨씬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아방가르드하던 사람들이 어쩌다 이런 '꼭_흥행해야_하는_영화_OST'를 만들어낸건가? 음악을 넣는 타이밍은 또 왜 그렇게 순진할정도로 정확하고? 이런 사람들 아니었잖아. 폭스가 시키더냐..모지리 새키들..
ps. 황정민이 피토하는 장면은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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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해요. 관객을 속일려다가 수가 모자르니 야바위치는건 가장 어처구니없고 짜증나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