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자동
ID/PW 찾기 회원가입

[영게]  개인적인 상반기 최고의 영화 5편

 
15
  3517
Updated at 2016-06-12 18:21:06

다음 목록은 제가 올해 들어 본 '개봉작' 중 가장 좋았던 5편입니다.

 

후에 시간이 되면 올해 본 미개봉작 베스트도 올리겠습니다.

 


5. 〈헤이트풀 8〉 (The Hateful Eight, 2015)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 8〉은 아마도 그의 가장 악취나고, 고약한 농담일 것이다. 남부 전쟁이 끝난 설원의 비경에서 흑백의 총잡이들이 만난다. 〈괴물〉의 비틀린 변주에서 한 오두막집에 갇힌 8명 사이 피비린내 나는 '증오'의 풍경, 이를 두고 미국의 역사를 끌어오는 것은 너무 뻔하기에 오히려 시시하다. 사실, 타란티노가 '말하는' 여러가지는 영화의 홍보부터 시작해 영화 속의 이야기까지 허풍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되려 여기서 그가 새로운 시네마틱함을 탐색하고 있음에 흥미를 느꼈다. 타란티노는 시점 쇼트처럼 왔다 갔다하는 포커스와 카메라의 렌즈만이 제공할 수 있는 스플릿 포커스의 사용으로 지극히 '연극적'인 세팅 속 '영화적'인 보기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런 '보기'의 방법으로 타란티노는 우리에게 미국을, 장르를 보여준다. 피와 찌꺼기에 뒤덮인 데이지는 누굴까. 먼저 데이지는 여자다. 여기서 타란티노는 〈캐리〉에서 드러난 비체로서 형상화되는 여성성의 공포를 끌어온다. 다음으로 그녀는 빨강의 피에 얼굴이 뒤덮였다. 빨강의 얼굴, 그것은 레드페이스로서 흔히 미국 원주민(인디언)을 이르키는 말이다. 링컨의 편지를 읽으며 힘을 합친 북부의 흑인과 남부의 백인이 이뤄낸 것은 결국 인디언의 말살이었다. 마지막 카메라는 죽은 데이지의 시선에서 편지를 읽는 둘을 바라본다. 이때 흐르는 음악, 링컨의 테마에서 타란티노는 우리에게 이것이 미국이라 말한다.


4. 〈동주〉 (2015)

사실 난 이 영화의 한 장면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저 괜찮은 영화로 생각했다. 이 영화가 내 머리를 띵하게 친 것은 바로 동주의 시신을 아버지가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동주〉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영화라고. 〈동주〉는 2년이 지나서야 늦게 도착한 첫 '세월호 이후'의 영화다. 이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세월호 이후'의 사유는 무엇인가, '세월호 이후'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준익 감독은 두 사유의 중심에 놓인 단어를 노골적이지만 효과적으로 말한다. 중간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게 정말 부끄러운거지'. 지금 우리는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부끄러움을 어떻게 담아야 할지 모르는 사태에 이르렀다. 저 한마디를 지키려는 영화의 결단이 〈동주〉의 가장 큰 미덕이라 생각한다. 이 결단이 죽은 사람의 '죽은' 말을 생생하게 살아내려는 미학의 결단과 합쳐질 때, 과거 유명한 시인의 영화는 현재로 스며들며 세상과 나란히 놓일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섬광을 내뿜는다. 〈동주〉는 이렇게 말하는게 아닐까. 이 영화가 세상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섬광을 본 사람이라면, 부끄러움의 짐을 질때 비로소 윤동주의 서시의 유명한 구절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을거라고.


3. 〈캐롤〉 (Carol, 2015)

〈캐롤〉은 〈밀회〉의 구조와 제스처를 50년대에 놓음으로서, 금기시 되야 할 것이 아님에도 당시엔 금기시된 이야기라 말해주는 영화다. 표면과 내면의 긴박한 숨박꼭질에서 말을 주저하는 인물들은, 주저하지 않는 손짓과 눈빛으로 말의 자리를 대신한다. '남자의 눈'을 철저히 배제하는 이 영화는 캐롤의 편지에 나온 표현처럼 (기차 트랙 같이) '하나의 원'을 그리는, 두 감정을 하나로 모으는 운동을 계속한다. 여기서 이 운동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를 모으는 시선에 있어서다. 서사에서 테레즈와 캐롤이 가까워진 순간이 그녀가 카메라로 캐롤을, 세상을 보기 시작한 순간과 일치함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자신의 렌즈루 그녀를 보기 시작한 순간 시작된 이 원 운동은 끝에서 그 아름다운 작용-반작용을 선보인다. 마지막 쇼트-역쇼트를 자세히 보면, 테레즈를 보는 캐롤의 시선과 달리 캐롤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쇼트는 전적인 시점 쇼트이다. 카메라가 자신의 눈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이 작용-반작용은 종착점을 찾는 셈이다. 여기서 토드 헤인즈는 믿는다, 영화의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작용 중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찾고, 바라보게 해주는 눈이 되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라고.


2.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 (L'ombre des femmes, 2015)

필립 가렐은 자살의 그늘 아래 삶을 긍정하는 작가다. 그에게 영화란 흑의 필름에서 백의 이미지를 찾는 것이자 셀룰로이드에 자신의 이야기를 새김으로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망각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그는 삶의 절망을 부정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다. 그러는 순간 거짓이기 때문이다. 되려 그는 절망을 수용한 채, 그 안의 찬란한 빛을 찾는다. 참으로 '찬란한 절망'이다. 가렐은 새로운 걸작 〈여인의 그림자〉에서 로셀리니와 나루세를 중간 지점에서 만나도록 한다. 문명의 근심이란 짐을 지닌 두 남녀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죽음의 이미지와 맞닿인 후 재결합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루세는 지극히 개인의 사유를 보여주기 때문에, 〈흐트러진 구름〉의 두 남녀의 어긋난 파토스가 억지로 그어진 선으로 연결지어진 후, 죽음의 이미지와 만날 때,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렐은 '개인의 단위'에서 오래된 남녀 욕망의 불평등한 역사를 사유한다.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는 남녀는 떨어진 쇼트에서나마 시선의 화해를 겪고, 죽음의 이미지에 마주할 때 서로를 감싸게 된다. 이것은 필립 가렐만의 '기적'이다.


1. 〈자객 섭은낭〉 (刺客聶隱娘, 2015)

허우 샤오시엔은 애초에 영화가 '세상에 대한 예의'라 말했다. 이는 내가 지금까지 들은 수많은 정의 중 손 꼽을 만한 것이라 생각하며, 이런 마음가짐이야 말루 허우 샤오시엔의 위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허문영은 영화를 두고 '간격을 다루는' 예술이라 했는데, 허우 샤오시엔은 이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카메라와 대상의 간격, 쇼트와 쇼트의 간격에서 그의 세상에 대한 태도, 세상에 대한 예의의 여진이 진동한다. 그가 예전 자신의 영화적 리듬을 두고 '단지 일상의 리듬을 영화에 넣고 싶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것은 흉내낼 수도 없는, 재능과 배움의 자세에서 비롯된 미덕이다. 이런 자세를 통해 허우 샤오시엔은 〈자객 섭은낭〉에서 새겨들어야할 사유를 제시한다.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나약한 마음을 지닌 여성 자객은 임무를 거쳐 그 연민을 버려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 이것을 듣는 순간 허우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녀의 실패를 바로 예견했으리라 믿는다. 영화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영화'로 인간됨을 긍정하는 영화가 바로 〈자객 섭은낭〉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인물들의 시대에(영화가 없던 시대) 그는 영화로 인간됨을 가능케 만들었다. 그렇기에 임무와 인간됨 사이서 씨름하고 고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바람에 흔들리지만 그 형태를 유지하는 비단의 물결처럼 그려낸 이 영화를 보며 우린 같이 고뇌하고 씨름해야 한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런 씨름을 지난 후 우리 또한 그녀의 결정을, 영화 자체를 긍정하리라 믿는 것이다. 즉, 우린 짝패의 옥을 버리고 거울을 택하는 여성 자객에게 짝을 찾아주고, 내내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그녀에게 마지막 미소를 선사하며 인간됨을 택한 그녀의 결정을 긍정하는 이 영화를 함께 지지하게 된다. 자연의 순간을 봉인하는 것과 인간됨을 가능케 하는 것, 이것은 영화가 내포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3
Comments
2016-06-12 02:11:09

잘 읽었습니다. '동주' 를 세월호 이후의 영화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인상깊네요. 작품 감상하면서 한 번도 생각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Tarantinoesque 님 글을 보고 동주의 아버지가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니 그렇게도 느껴지는군요.

2016-06-12 17:45:50

헤이트풀 8을 보고 선혈이 낭자한 시퀀스의 유희를 윤리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고민을 잠깐 했었는데 쓰신대로 타란티노가 생각한 미국이라 생각하니 그것이 과연 유희였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6-06-12 18:21:06

다른 곳에서 '동주'에 대해 세월호 이후의 영화라고 얘기를 꺼내는 건 꽤 봤지만 디피에선 처음이네요…. 개인적으로도 아직까진, 아니 아마도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는 '동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태도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글쓰기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