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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뉴스]  25년 전의 우리나라 영화 관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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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22:27:56

그냥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뒤지다가 퍼왔습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122100329121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12-21&officeId=00032&pageNo=21&printNo=14265&publishType=00010

 



 경향신문 1991년 12월 21일 자 기사입니다. 91년 연예계 결산 "영화"편.




 지금으로부터 딱 25년 전 이야기네요.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1991년) 영화 관객수는 이러합니다.

 


늑대와 춤을 - 103만 2천명

터미네이터 2 - 100만 5백명

사랑과 영혼 - 92만명

나홀로 집에 - 81만 9천명

다이하드 2 - 77만 1천명



장군의 아들 2 - 34만 9천명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20만 2천명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 17만 6천명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17만 6천명

젊은 날의 초상 -  17만 5천명

잃어버린 너 - 17만 3천명

사의 찬미 - 15만 2천명

은마는 오지 않는다 - 11만 5천명

아그네스를 위하여 - 10만 6천명




 여기서 주의할 점이 2가지 있습니다. 첫째 당시는 전산 통계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울 외의 지역은 집계가 아예 불가능했죠. 위 숫자는 전국 관객이 아니라 서울관객수 입니다. 전국관객수는 대충 여기에 *2를 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당시 전국관객수는 아무도 모릅니다. 




 둘째 그럼 서울관객수는 확실하냐. 그런데 그것도 아닙니다. 빨간책방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기자 시절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영화사에 전화를 해서 "00영화 관객 얼마나 들었습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전화 받으신 여직원 분이 전화기를 손을 가리고 "실장님 이동진기자가 전화로 관객수 묻는데 얼마라고 대답할까요?"라고 묻더랍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다 들렸다고. 서울관객 숫자라는 것도 대충 배급사에서 이정도 쯤 될거다라고 추정해서 발표한 것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  저 숫자를 전적으로 신뢰하진 마시구요 대충만 믿으면 됩니다. 


 


 당시의 흥행기준은 서울관객 10만이었습니다. 서울관객 10만명만 넘으면 일단 흥행작으로 쳐주었죠. 그래서 위 기사에서도 딱 10만명까지만 리스트를 뽑은 거구요. 참고로 외국영화들 중에서 서울관객 수 10만을 넘은 영화는 총 30편이었다고 합니다. 관객수 100만이면 망했다 소리나오는 요즘 영화와는 기본 단위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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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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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2 23:00:05

모 후보가 대기업 극장을 넘기고 배급과 극장을 분리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그 중소업체들이 하던 극장들...끔찍했죠. 그걸 CGV와 메가박스가 바꾼 후 관객수가 지금처럼 늘어난 겁니다.

차라리 배급을 못하게 하는게 낫지, 대기업 극장으로 인한 독과점 폐해보다는 시설과 서비스 개선이라는 득이 훨씬 큽니다. 

 

마스킹이나 옆관 음향 문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전에 중소업체들 동네 극장들이 어떤 수준이었는지 모르실 거예요. 앞사람에게 머리가 가려 반쯤 안보였다면 믿으시겠어요? 요즈음 핸드폰 불빛 문제 이야기하는데 전에는 아예 극장에서 앞쪽에 비상구 라이트 켜놓고 그것도 모자라 빛 나오는 금연 안내문까지 붙여 놓았다면 믿으시겠어요?

 


2017-01-23 12:56:56

마스킹얘기하니까 서울극장의 엽기적인 마스킹이 생각나네요~ 예전에 서울극장은 몇몇 상영관이 다 비스타사이즈 스크린이여서 시네마스코프영화를 틀면 화면의 왼쪽을 잘라버렸죠. 옛날엔 그런거 항의할데도 없고 어디서 얘기할데도 없어서 화면왼쪽이 싹 날라가버리는 상황이오면 에이 '똥밟았구나.' 하고 짜증내면서 봤죠. 얼마나 많이 잘렸는지 제목같은 경우는 아예 왼쪽에 심하게 치우쳐져서 나올정도구요. 사실 종로에서 오래있고 아직도 종로에 있는 입장에서 종로영화관들의 몰락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엽기적인 짓거리했던거 생각하면 잘되었다 싶기도 해요~ 이 짓은 지금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도 저지르곤했죠....

2017-01-23 01:10:57

저 당시 우후죽순 제작됐던 청소년 영화는 서울 5만만 채워도 본전치기는 했었죠. 서울관객수 집계는 개봉기간엔 배급사 자체집계에 의존해서 뻥튀기가 심하지만 대충 개봉 끝날 무렵엔 정상적으로 산정되는 편이라 상단의 수치는 신뢰할만한 집계이긴 합니다. 배급사 자체집계에 의존하다 보니 개봉기간에 한해서 요즘의 천만이라 할 수 있는 서울관객 100만 돌파한 가짜 대박작이 많았죠. 실제로 단관시절에 쉬리까지 포함해서 서울 100만 돌파한 영화는 몇편 안됐지만요.

1991년 한국영화 흥행작 중에선 도미 후 복귀작으로 요란스러웠던 아그네스를 유ㅣ하여가 운좋은 흥행작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영화가 하도 안되니까 영화의 날을 지정하여 하룻동안 서울 시내의 상영관 일부를 정해놓고 한국영화에 한해서 무료관람 이벤트가 열렸어요. 아그네스를 위하여는 최수지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더해져 개봉 초반엔 지지부진하다가 영화의 날에 몰린 공짜관객들 사이로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으로 이어졌죠. 이 작품의 전개가 훗날 나온 이미연 주연의 인디언 썸머와 유사했어요.
젊은날의 초상은 당시엔 힘이 있었던 대종상빨과 낮은 좌석점유율에도 한국영화 흥행에 대한 앵벌이 정신으로 단관상영 버티기를 고집스럽게 하여 저 정도 모으며 흥행을 한거라 배급규모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성적이었죠.

1991년의 한국영화들 중 깜짝 흥행작은 누구도 흥행을 예상 못한 최루성 실화 멜로인 잃어버린 너 였습니다. 해외판매가도 높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최루성 멜로라고 평단에선 외면받았었는데 극장가에서 터졌죠. 김혜수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니저를 맡고 있었던 엄마가 계약한 바람에 하기 싫은거 억지로 출연해서 별 애정없는 출연작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힌 영화. 강석우가 남자주인공에 참 잘 어울렸어요. 김혜수는 원래 동시에 섭외가 들어왔던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를 하려고 했었다죠.

나의사랑 나의신부는 더 관객을 모을수도 있었는데 늑대와 춤을에 밀려 메인관에서 내려갔었죠. 은마는 오지 않는다가 개봉일이 계속 밀리고 대종상 출품거부로 말이 많았다가 몬트리올 영화제 수상빨로 화제가 되면서 흥행에서도 반전을 일으켰던 기억이 납니다. 김보연,이혜숙 연기가 대단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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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3 06:40:26

 그래도 저시대에 추억이 많이 남습니다 

손으로 그린 비스무리한 주인공얼굴,극장앞에 붙어잇던 스틸사진. 영화관 특유에 냄새. 입구에 표받는 아저씨.

애국가 나오면 일어서고 대한뉴우스 나오고 ....본영화 나오기전 가슴이 두근두근.....

히트작 나오면 뒤에서 서서보거나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보던.....

지금 명작이라고 소장하는영화는 다들 저때보던 영화들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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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3 08:12:53

cj가 그래도 영화산업을 발전시키긴 했죠.

2017-01-23 18:27:04

양날의 검이지요.발전도 시켰지만 독과점으로 폐혜또한 크게 만드는 것을요.더붙이자면 저시절 개봉영화 한편보려면 정말 하루 금방 지나 갔지요.지금이야 가까운곳에 영화관이 있지만 그 때는 시네를 꼭 나가야만 해서....터미네이터2 보려구 전날 서울극장가서 예매하구 그다음날 일찍 보러갔던 기억이 나네요.

 
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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