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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게]  왜 오지 않을 종말을 예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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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1-24 20:43:26

안녕하세요 가끔 글을 남기는 백모군입니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는게 낙으로 살았는데 근래 시간이 나지 않아서 영화만 보고 리뷰를 쓴적은 없었네요. 그러다가 디피에 올라온 정성일 평론가의 글 (http://www.gqkorea.co.kr/2017/01/09/%EC%99%9C-%ED%8F%AC%EC%8A%A4%ED%8A%B8-%EB%B4%89%EC%A4%80%ED%98%B8%EB%8A%94-%EB%82%98%ED%83%80%EB%82%98%EC%A7%80-%EC%95%8A%EC%9D%84%EA%B9%8C/?_C_=18)

을 보고 뭔가 저랑 생각이 다르단 생각이 들었었는데, 오늘 마침 일이 일찍 끝나서 집에서 <오버워치>만 죽 붙잡고 있다가, 글을 써볼까 하고 한번 장문의 글을 써보았습니다. 

평론에 대한 평론이기에, 저도 평론 형식으로 쓴다고 반말에 말투도 씨니컬한 일종의 저격글이어서 걱정도 되지만 재미로 봐주세요.

 

 왜 오지 않을 종말을 예언하는가? 

 

2003년이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였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지구를 지켜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장화홍련>, <클래식>, <실미도>, <스캔들>, <바람난 가족>등 양으로나 질로나 풍성한 한 해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2003년을 추억해왔다. 그리고 정성일 평론가의 「왜 포스트 봉준호는 나타나지 않을까?」는 과거 한국 영화에 비해 생명력이 사라진 오늘날 한국 영화계를 우려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글이 쓰인 2016년 한국 영화는 2003년 이후 양으로, 질로 만족스러웠던 해였지 않는가.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터널>, <아가씨>, <밀정>, <마스터>, <곡성>, <럭키>, <검사외전>, <덕혜옹주>, <판도라>로 이어진 흥행 블록버스터 중, 2000년대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에 견줄만한 처참한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은 <인천상륙작전>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온 수십 편의 폭탄들에 대한 기억은 잊었는가? 하한선이라는 기준에서 2016년은 본다면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폭탄을 만들지 않는 법을 어렵게 배웠다. 거기에 더해 <동주>, <우리들>, <4등> 등 작은 영화들도 빛을 발했다.

또한 촬영장 스텝들의 처우 개선이 느리지만 진행되고 있으며, ‘영화계 내 성폭력’에 대한 이슈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오랜 세월 지적받았던 여성 영화감독의 부재도 <비밀은 없다>, <미씽>, <연애담>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보였다. 거기에 더해, 올해 개봉한 <더 킹>까지 이어지는 대형영화의 행보를 보라. 블랙리스트가 횡횡하는 예술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부 비판적 주제의 작품을 많은 예산을 들여 진행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 영화계였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수익 확보를 위해 안정적 시나리오만 나오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 쉽고, 안일한 선택이지않은가? 과거 한국에서 나왔던 것과 같은 ‘극한의 영화들’이어야만 좋은 것인가. 영화인들에게 이상적 환경이 2017년 한국보다 2003년 한국에 가까이 있었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정성일 평론가는 2016년 한국 영화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두 편의 영화를 예로 들었다. 첫째는 <곡성>이었다. 그는 관객을 농락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곡성>의 트릭들을 비판하며 그 영화의 됨됨이가 거의 윤리적으로 파탄 된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가 곡성의 모순이 만들어낸 텅 빈 장소에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담론의 경기장, 즉 영화를 감상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내용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이어나가는 관객들까지 비판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여기서 질문, 정성일 평론가는 언제부터 영화뿐만 아니라 관람객까지 마음껏 비평할 권리가 생겼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관객을 포함하여 영화를 둘러싼 ‘현상’에 대해 평론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질문, 어떻게 그는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국내외 평론가까지 나름의 논리들을 펼치며 행했던 호평까지 ‘인정 투쟁’의 과정으로 평가 절하할 수 있었는가? 

이 역시 대답은 간단하다. 그 자신이 평가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많은 지식과 예민한 감성을 바탕으로 평을 이어온 정성일 평론가의 글을 읽다보면 그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영화상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성일 평론가의 비평은 기존의 영화들 사이의 우열과 같이 객관적 기준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의 비평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과의 갑론을박을 위해 제시된 것이 아니라 게시되는 순간 움직이지 않는 기준이 되기를 차라리 바라는 것 같다. 물론 이 관점은 개별 영화를 평가할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준만 일정하다면 그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참고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2000년대 초와 현재의 ‘영화계’를 평가했다는 점이다. 

 

절대적인 기준을 세웠기에, 그 기준과 ‘오늘날의 영화’가 달라지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오지 않을 종말을 예언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이제 그가 두 번째로 예를 든 <부산행>을 살펴보자. 그는 <부산행>에 대해서는 좀비의 탄생에 대해서 알리지도 않은 채, 부산에 가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인 이상한 영화라고 한다. “무언가 작동하고 이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다.”라는 말이 그가 말하는 비판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많은 이가 <부산행>을 뛰어난 영화라고 부르는 지점 아닌가. 오랜 전통을 가진 좀비영화들을 봐온 관객들은 좀비의 탄생을 굳이 볼 필요가 없다. 좀비 영화를 비롯해 장르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주어진 사건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지점이다. 평론가를 업으로 하면서 이를 몰랐겠는가? 아니다. 알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건 좋은 영화의 기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나 환히 빛나는 좋은 영화의 기준 때문에 <부산행>을 비판할 수 있는 다른 지점은 놓치고 말았다. 연상호 감독의 모든 영화를 관통해 존재하는 기능적 여성 캐릭터들. 연상호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주체인 남성캐릭터에게 주어지 ‘상황’으로서 존재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 아동, 임산부, 노인 캐릭터는 극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생존에 불리한 신체적 한계를 지닌 이들이 생존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시작하면, 극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변수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부산행>은 어떠했는가? 남성들은 여성, 아동을 지키려고 하고, 상대적 약자들은 수동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뿐이다. 남성 위주의 영화계에서 각본, 감독을 남성 혼자 담당하면서 발생한 아쉬움이다. 그리고 이는 <곡성>에도 똑같이 적용 가능한 비판이다. 그러나 정성일 평론가는 이처럼 개별영화에 툭 튀어나와 눈에 밟히고, 여러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행히 정성일 평론가는 자신이 멈춰 선채 지나가는 열차를 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시네필들은 게토에 갇혀 있으며,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대중은 “내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원인을 가정하고 발명하고 있는 중”이며 자신과 대중 사이에 어떤 공동체도 불가능 하다고 역설한다. 어쩌면 탄핵안 가결을 통해 희망을 보고자 했던 글의 결론과 달리 그에게 종말은 이미 바로 곁에 다가와 ‘느껴지는’ 현실일지 모른다. 

그런데 후자, 즉 대중에 속한 나는 이런 의문이 든다. 왜 나를 포함한 대중은 시네필이 될 수 없는가. 정성일 평론가의 글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만 결코 글에 드러내지 않은 원인과 결과, 상징성이 명확한 그의 이상적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 기준만을 바라보다 수많은 영화를 놓치고 있는 그가 서있는 낡은 정거장을 나는 애처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품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공동체도 불가하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이상 그 길을 요원해 보인다. 그는 그곳에 남아 새로운 열차가 도착하길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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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1-24 13:33:17

 정성일 평론가의 글보다도 이 글이 더 영양가가 있고 좋은 글 같네요. 감사합니다.

WR
Updated at 2017-01-24 18:16:56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 글은 이미 써진 글에 대한 코멘트일 뿐이니 

유리한 위치에서 쓴 좀 야비한 글이죠 ㅎㅎ...

 

앞으로도 가능하면 디피에 글 하나씩 쓰려고 합니다.

 

2017-01-24 14:52:30

정성일의 글보다 훨씬 읽기 편한 글이라는 점에서 일단 추천

키노시절부터 그의 글쓰는 태도와 방법이 거슬렸던 영화감상자로서 2단 추천 콤보

WR
2017-01-24 18:16:47

저도 정성일 평론가의 글을 재밌게 읽어 왔지만, 저라면 더 쉽게 쓸탠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훈련이 필요할 것 같아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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