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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컨택트(어라이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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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07 00:33:59

불신과 분쟁의 순환고리를 깨어
'분열의 역사'의 종언을 고하다

 운명은 본래,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개념으로서 효용되어 왔다. 인간은 이미 완결된 이야기의 등장인물에 불과하고, 정해진 바 그대로 행동하여 그에 대한 결과를 응당 감당하게 됨이, 바로 우리가 인식해왔던 운명이다. 이에 따라 운명은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존재이며, 선택을 하고자 하는 자유의지 개념과 정면으로 대칭되는 개념으로서 이해되었다.

 어라이벌(한제-컨택트)은 이러한 점에서 매우 혁신적인 논지를 펼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비관적 운명론을 뒤집어, 운명에 대한 '인지'가 인간을 구속하지 않고, 되려 폭력과 불신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공적의 상당한 지분은 원작이 된 테드 창의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돌려야 함이 아무래도 타당하겠지만 말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미지와의 조우', '에일리언', '콘택트'(97년작) 등 외계적 존재와의 조우를 다룬 선배격 영화들과 달리 어라이벌은 인간계에 상존하는 공동체(국가)들간의 첨예한 대립 및 긴장관계에 영화 전개의 상당부분을 할애하는 차별점을 지니며, 이러한 긴장관계는 현실세계의 세태를 상당부분 반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시작부터 인류와 공존해왔던 영속적인 폭력, 그리고 불신의 족쇄는 문명의 고도화와 함께 더욱 단단해져왔다.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인간공동체 간의 보복행위들은 인류역사에 누적되어 민족 대 민족, 국가 대 국가 간에 양방향으로 수렴하는 불신의 장벽을 형성하였고, 영화 내에서도 파국의 위기로 향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이러한 국제적 분쟁과 불신의 연속적 역학관계는 종말의 날이 오기 전까지 인류가 헤어나오지 못할 갈등의 순환고리로 풀이된다. 감독 드니 빌뇌브는 악'의 순환고리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지극히 일관된 방식으로 다루어왔다.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그을린 사랑', 광신주의에 경도된 납치범과의 추적전을 벌이는 '프리즈너스', 허황된 판타지에 뒤틀려버린 자아를 그린 '애너미', 멕시코 카르텔과의 마약전쟁으로 점철된 지옥도를 묘사한 '시카리오', 감독의 전작 네 편 모두 끝없이 돌고 도는 폐곡선 속에 갇혀버린 비참한 인간의 운명을 차디찬 염세주의적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라이벌은 그의 전작들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일관된 염세주의적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한 작품이다. 극 중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문자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간혈적으로 환영을 보게 된다. 이러한 파편적인 환상기억의 조각들은 극이 절정에 달하며 원형의 형상을 하고 있는 헵타포드의 문자처럼, 선형적 흐름을 초월하는 비선형적 시간의 순환고리로 규합된다. 시간을 단방향의 일직선으로 인식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를 동일 시점으로 인지하며, 앞으로 발생할 일련의 일들, 다시 말해 운명을 보게 된 루이스가 종국에는 태초부터 인류가 매여있던 분열의 폐곡선을 끊어내는 열쇠 역할을 함으로써, 빌뇌브의 이전 작 중 인물들이 벗어나지 못했던 족쇄로부터 마침내 해방된다. 비록 루이스가 본 환영은 미래, 자신이 처하게 될 운명이었으나, 그 운명대로 살고자 선택을 한 것도 루이스 자신이다. 수동적으로 운명에 귀속되어 구속받는 삶이 아니라, 운명대로 살겠노라 한 '선택'이 어라이벌의 능동적인 운명관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 뒤에는 그 선택으로부터 파생될 모든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용기가 있었다.
 
 운명은 곧 필연이다.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 있는 미래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국제적 분쟁과 긴장상태의 종식이다. 분열의  종언을 선언함과 함께 협력과 통합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파시즘의 부활과 함께 극단주의의 태동을 실시간으로 목도하게 되는 요즘, 인종과 체제, 그리고 종교의 다름을 이유로 하는 분열의 흐름이 가속화 되는 중이다. 유럽과 미주의 극우정권과 구공산권 독재국가들, 종교적 극단주의자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현 세태를 묵과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결단은 인류의 생존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가부의 여부, 당위의 차원을 넘어선, 반드시 하게 될 '필연적' 선택이다. 나, 공동체, 그리고 인류가 거듭하여 생존하기를 바라는 자는, 바라는 그대로 이루어진 미래의 자신을 이미 본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지금도 혐오의 언어로 증오를 부추기며 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자 하는 이들의 손에 쥐어준 권력을 되찾아와, 분열의 역사와 단절된 통합의 미래로 향하는 관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우연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라이벌은 지극히 시의적절한 시점에 제작되어 개봉하였다. 어쩌면 빌뇌브가 이토록 이상주의적인 원작을 택하여, 기존의 염세주의가 두텁게 깔린 필모그래피를 뒤집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도, 심상치 않은 요즘 세태를 뒤집을 극적인 반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 이미 장인의 경지에 오른 우리 시대의 거장의 의중을 감히 추측해 본다.
#왓챠 https://watcha.net/comments/c6055f758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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