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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재키(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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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16 19:10:46

어릴 때는 주기적으로 서점을 방문했었다. 최소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서점을 다녔던것같다. 독서실은 안 다녀도 그 옆의 도서관은 자주 찾았다. 공부하러 도서관을 간적은 없었고 주머니 사정으로 구하지 못 한 다양한 책을 읽으려고 도서관 마감시간 때까지 여러 종류의 책을 속독으로 훑어 내렸다. 지금은 한달에 책 한권 읽기도 버겁지만 학교 다닐 때는 꾸준하게 독서량을 유지했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전기물로 처음 눈에 띈 작품은 어린 시절 주기적으로 방문했던 서점 진열칸에 갈 때마다 같은 위치에 꽂혀 있었던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어느 순간부터 볼 수가 없었는데 한참 서점 방문을 습관적으로 행했을 때 이 책과 영화 [JFK]의 원작소설이 묶여서 기억되고 있다. 그 때는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의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책에도 관심이 쏠렸다. 갖고 싶고 내용도 궁금해서 구매예정 목록표에 책 이름을 기입해 놨었다. 그러다 주기적으로 찾았던 동네의 소규모 서점방문 횟수가 확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 책도 과거의 유물로써 기억에서 사라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대형서점 중심으로 서점의 이동구간을 늘리기 시작할 때부터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의 소장욕도 없어졌다. 그러나 잊을만 하면 새로 제작되고 기획되는 케네디 관련작품들을 접하면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가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첫 전기물 제목이었다.

 

이번에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재키]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한번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가 떠올랐다. 제목만 기억에 남을 뿐 책 정보에 대해선 알아보지 않았었는데 영화 보고 나서 처음으로 찾아보니 국내에는 '한언출판사'에서 1992년 4월에 '세기의 여인들'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그 무렵에 출판된게 맞을것이다. 신간에 속하니까 그 당시 자주 방문했던 서점의 진열칸에서 눈에 들어오기도 쉬웠던것이다. 낱권으로 나온 책의 두께가 있어서 더욱 시야에 잡혔다. 더 찾아보니 같은 제목으로 미국 NBC에서 2007년 5월에 3부작 전기물로도 방영된 기록이 있다. 데이빗 헤이만의 동명 전기물을 각색한 작품인데 그 방면에선 유명한 베스트셀러였나 보다.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생전에 나온 전기물이었기 때문에 사후에 보다 객관화된 시선의 완결성을 지닌 전기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 검색을 더 해봤는데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에 버금갈만한 전기물은 걸려들지 않았다. 명성에 비하면 전기물의 구색은 국내에선 빈약했다. 해외는 어떤지 모르겠다. 여러 해 동안 케네디 대통령 관련 작품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영부인으로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도 전문적으로 분석한 전기물 형태의 작품이 여러 종류 나와 있을거라 예상을 했는데 의외로 흔하디 흔한 전기물 분야에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전기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은 절판된 상태인 [재키라는 이름의 여자]가 그나마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생을 분석적으로 다룬 전기물로 국내에도 소개가 됐던 작품이었다.   

 

신작 [재키]도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따라간 전기물 형태의 작품은 아니었다. 전기물로는 보기 어렵다. 관람 전까지만 해도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재키]는 영화로는 거의 처음 만들어지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전기물이 아니지 않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영화는 모든 장면에 케네디가 사람이었던 시절의 재클린 케네디를 등장시키고 있지만 애칭인 재키를 통하여 수없이 분석되고 조명되었던 케네디 암살사건과 장례식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하는것이지 실존인물의 생애를 되짚어 보는데에는 관심이 없다. 전기물도 아니지만 전기물로 접근한다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물에 대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 내내 재키가 나오지만 특정시기의 재키를 담는데 주력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전기물의 백과사전식 전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영화는 미제로 남은 케네디 암살사건과 장례식까지 4일간의 종적을 영부인인 재키의 시선에서 재구성하였다. 극이 다루는 시간은 케네디 암살부터 장례식까지 4일이고 암살 일주일 후 재키가 '라이프'지와 가진 실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인물에 대한 해석의 방향을 찾고 있다. 극에서도 보여지고 있지만 '라이프'지의 인터뷰 내용을 서면에 옮기는데 재키가 걸어 둔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반 세기도 넘은 이 당시 일화를 극화할 때 작가의 상상과 추측으로 사건과 인물에 대한 재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실제사건과 인물을 허황되지 않게 깔끔하게 풀어낸 심리극이었다. 역사 다큐멘터리를 꼼꼼하게 분석한 흔적이 작품 곳곳에 묻어 나온다. 인물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케네디 암살사건을 다루는 심도는 얕지만 시대 고증이나 재현은 정확하며 강박적이다. 실제 자료와 일대 일 대조해서 놓고 봤을 때 극화된 영화와 자료화면과의 분간이 쉽지 않을만큼 정교하게 옮겨졌다. 성공적인 복원 결과물,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밀랍인형처럼 모사 결과에는 노고가 느껴진다. 그 시절 영상의 질감을 그대로 옮겨온데다 똑같이 만들려고 애를 써서 공항장면이나 장례식 행렬 등 이 작품이 재현한 구성을 사료로 속인다면 눈치챌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정교하게 제작된 위작이나 필사본을 접한 느낌이었다.  

    

영화는 그동안 많은 작품들에서 직간접적으로 다룬 케네디 암살사건을 다시 한번 그린것이기 때문에 소재 자체는 익숙하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대상을 짚어서 재키의 내면을 탐구한다. 케네디 암살사건은 이제는 과연 더 뽑을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이, 자주 분석된 소재다. 미망인인 재키를 통하여 비극적으로 끝난 케네디의 죽음을 관통한다 하여도 크게 달라질건 없다.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고 영화는 재현엔 강박적이어도 미제사건을 그럴듯한 가설로 풀이할 생각은 없다. 대신 사람들이 재키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케네디, 그리고 케네디 암살사건을 통해 재키가 겪는 불안과 혼란, 긴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재키의 예민한 심리변화에 주력한다.

 

극은 매 순간마다 변화하는 재키의 복잡한 표정을 집중적인 클로즈업 촬영으로 보여줌으로써 재키의 자아확립과 시대의 그림자를 병치시킨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영부인이기 이전에 졸지에 배우자를 잃고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할 가련한 과부의 측은한 모습을 비추면서도 상황을 직시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행동을 추구하는 의연한 모습을 통하여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확립했다. 재키가 주도적으로 바로 세우려 한 케네디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통하여 영화는 케네디가 꿈꿨던 이상주의도 찬양한다.

 

영화는 패셔니스타 재키, 텔레비전 시대의 첫 영부인으로서 전직을 살려 언론 활용에 능숙하고 전략적이었던 정치인 아내 재키라는 인물에 대한 통상적인 시각과 인식을 익숙한 케네디 암살사건 소재와 결합하여 대중적인 방식으로 편리하게 녹여냈지만 결정적으로 재키의 다양한 표정을 섬세하게 담아내어 같은 소재의 다른 방향으로 입체성을 부여하였고 차별화에도 성공하였다. 여기에는 나탈리 포트만의 훌륭한 메소드 연기가 극의 질감을 풍부하게 살리는데 기여도가 컸다.

 

나탈리 포트만은 체형적으로나 외모적으로나 재클린 케네디와 그리 비슷하게 생기진 않았지만 재클린 케네디의 행동과 외양적인 부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여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는데에 성공하였다. 최대한 재클린 케네디처럼 보이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자료조사하고 고민한 흔적이 성의있게 묻어나는 호연이었다. 클로즈업 촬영이 많은 작품인데 나탈리 포트만의 진가는 표정연기에서 나타난다. 극적인 순간마다 집요하게 잡아내는 나탈리 포트만의 표정에서 시대의 풍랑, 격변하는 정치적 흐름의 그늘진 이면, 미망인의 고통과 남편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부딫히는 각 상황들에서의 씁쓸함과 고독을 읽어낼 수 있다. 어린시절부터 지적인 학구파 이미지를 쌓는데 안간힘을 썼던 나탈리 포트만의 과시적인 지성미가 고상하고 이지적인 재클린 케네디의 요란스러운 유명세와 패션화보처럼 강렬하게 섞여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나탈리 포트만의 예의 그 연기를 위한 연기에서 위태롭게 드러나는 경직된 감정들, 너무 계산적이어서 인위적으로 빠지는 배역해석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참으로 오스카 성향과 잘 맞는 오스카표 연기였다. 대세는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에게 쏠려 있긴 하지만 기술적으로나 배역에 대한 세련된 접근방식 등 연기면에서 봤을 때는 [재키]의 나탈리 포트만이 우세한다. 그레타 거윅이 재키와 우정을 나누는 보좌관으로 나오는데 출연사실을 모르고 봤으면 못 알아봤을것이다. 몇 장면 안 나오긴 하지만 염색으로 변화를 준 외모와 전에 없이 차분한 배역과 연기로 그레타 거윅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바비 케네디로 분한 피터 사스가드도 극을 안정감있게 받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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