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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재심(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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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8-05 06: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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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영화계의 유행은 몇년전부터 사회풍자물로 굳어졌는데 그 전에는 한동안 공소시효 설정의 추적물이나 행정기관에서 안 해주는 공개수배를 대행해주는듯한 실화 각색물이 많았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사건인만큼 억울하고 어이없는 사례들이 텔레비전 재연 드라마와 극 영화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며 줄줄이 나왔었다.

 

2000년대 중후반경에 이런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살인의 추억]이 본격적으로 이 방면의 물꼬를 튼것같고 [그놈 목소리]같은 작품이 이 계통의 기획으로 굉장히 선방했다. 영화는 별로였지만 [이태원 살인사건]같은 저예산 영화의 등장 덕분에 어이없게 묻혔던 사건이 다시 거론되면서 범인을 잡는데 성공하며 영화의 영향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실화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공소시효 문제를 화두에 올려 흥행에서 성공한 2012년작인 [내가 살인범이다]를 끝으로 이 계통의 유행이 시들시들해진 감이 있다. 2015년작인 [살인의뢰]는 이 방면의 구성이 얼마나 바닥이 났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삼을만했다.

 

지난 2000년 일어난 일명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재심]은 2000년대에 한동안 유행이었던 억울한 실화사건을 재조명하여 지저분한 유착관계로 빚어진 공권력을 비판하고 사건의 문제점을 다시 끄집어 내어 공분을 일으키려는 기획 형태를 오랜만에 재개시킨듯한 작품이다. 한동안 이런 류의 작품들이 지치지도 않고 양산 됐을 때는 물렸고 지겨웠다. 그러나 멀티캐스팅을 과시하며 되도 않는 사회풍자물을 의도한 남자배우 중심의 뻔한 기획물들이 연일 피로도를 축적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에 [그것이 알고싶다]정서로 각색된 극 영화를 보니 기획 자체에선 작품 자체로는 전혀 특이점이 없는데도 충무로 기획 영화의 흐름에선 제법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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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무난하게 실화를 각색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을 [그것이 알고싶다]가 두번의 기획으로 파헤치면서 '재심'까지 이어졌고 이렇게 극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미 종결지은 사건이 '재심'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하는데 방송 매체의 영향력을 [그것이 알고싶다]가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문제를 2013년 6월 15일 898회와 2015년 7월 18일 994회로 나눠 두번에 걸쳐 다루었는데 영화는 당시 이 사건을 취재하던 sbs의 이대욱 기자의 제안에 의해 시작됐다고 한다. 

 

영화로 기획됐을 때만 해도 사건이 마무리 된것도 아니었고 '재심' 청구도 통과된게 아니어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불안정한 실화 각색물이 될뻔했는데 정말 다행이도 영화 제작 중 '재심'이 통과됐고 무죄판결이 나서 건드리기에 다소 위험한 사건을 각색한 영화의 의미가 애초 기획 의도를 넘어설 수 있었다. 후반 작업 때까지만 해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남을 뻔했는데 비교적 해결이 잘 나서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려는 극의 선량한 의도가 살아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그래도 이 무정한 사회에서 일말의 희망은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실화에 기반하여 영화적으로 각색된 극 자체는 어이없게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킨 실화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자제심을 잃을 때도 많고 너무 감상적이며 극단적인데가 있어서 실화를 넘어선 극적인 힘이 약하다. 각 인물의 묘사 방식이나 상황 설정도 거칠다. 보면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의 [너츠]가 떠올랐다. [너츠]와 비슷한 구성은 아닌데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순 있었다. [너츠]는 살인사건에 연루된 창녀가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화에 기초하여 아예 정식 재판조차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무시 당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주인공이 살인범으로 기소될 위기에 처했다가 한 인권 변호사를 만나면서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하기까지의 투쟁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준 사회물이다.

 

[재심]은 법적으로 기준이 마련돼 있는 '재심'을 마땅히 받아야 할 대상자가 사회적 편견과 편법, 각종 인맥이 동원된 암초를 만나다가 가까스로 '재심'절차를 밟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나간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실제 사건에 대해 잘 몰라서 나는 극의 절반은 '재심'을 밟기까지의 과정, 나머지 전반은 법정물로 가겠거니 예상했는데 그렇진 않고 [너츠]처럼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 나가기까지의 진행사항을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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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사건이 너무 칙칙하고 어둡다고 판단해서인지 상업영화의 오락성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서인지 중간중간 코미디로 빠질 때가 있는데 이게 다음 장면을 탄력적으로 붙여주며 극을 이완시키는게 아니라 작위적이어서 오히려 코미디로 빠지는 부분은 빼는게 좋았을것같다. 정우가 연기한, 속물 변호사였지만 강하늘이 연기한 조현우의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변호사로서 개과천선하는 이준영과 조현우가 나누는 우정의 감정도 다소 과하다. 이준영이 인간적인 연민으로 조현우에게 감정이입하며 눈물을 보이고 감싸 안아주는 장면이 뭉클하긴 하지만 배우가 너무 눈물을 많이 흘리는 통에 보기가 부담스러웠다. 정우의 감성 연기는 훌륭했지만 사건을 직업적인 접근에서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인식하여 철저하게 준비해나가는 전문성을 기대했는데 이준영은 너무 감정적으로 대처해 나간다. 

 

악역으로 나오는 경찰들의 성격도 너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면만 강조해서 과장된 느낌이 적지 않다. 누명쓴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야밤에 묻지마 살인을 당한 택시기사가 단순히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의 기둥설정을 받쳐주기 위한 재료로만 소모된것도 아쉽다. 중요한건 아무 죄도 없는 소년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서 10년을 감방에 갇히고 그것도 모자라 1억 7천만원의 빚까지 졌다는것이지만 사건의 발단이 살인사건이었던것만큼 살인을 당한 유족에 대한 관심도 기울였으면 더 좋았을것이다.

 

정우가 왕년에 탈선을 즐기며 놀았던 날라리 출신의 변호사로 나오는데 일반적인 변호사 역할의 성격과는 많이 다르다. 변호사가 된 현실에서도 일은 똑부러지게 잘 하지만 왕년에 놀았던 정서가 남아 있어서 양아치 같은 느낌을 겸비하고 있는데 이게 기존의 영화 속 변호사 역할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신선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정우가 하면 신선하기 보단 기존 정우가 갖고 있는 배역상을 이 작품에도 투과하여 친밀감을 돕는 맞춤형 연기가 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정우는 익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친근한 양아치 정서와 서민적인 소탈함에 풍부한 감정을 섞어 눈물샘을 자극하는 감성연기 말이다. 정우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바람]에 나오는 배역이 성장하여 변호사가 됐다고 보면 된다. 강하늘과 정우의 조합이 좋고 강하늘은 이번 작품에서도 잘 했다. [더 킹]으로 이름이 알려진 김소진이 정우의 이혼한 아내로 나오는데 비중이 단역급이어서 아쉬웠다. 김해숙이 강하늘의 엄마로 나오는데 맹인 연기를 하는 화면 장악력이 대단하다.

 

사실이 소설보다 기이하단 말도 있지 않나. [재심]의 소재도 소설보다 어이없고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각자의 입장에서 경력이 흠집날것을 우려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망치다니 보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 작품에서 피해자로 나오는 모자는 너무 없이 사는 하류층이다 보니 아마 근로복지공단에서 이자에 이자가 붙어 버려 원금의 3배 이상으로 불어난 구상권만 청구하지 않았다면 재심을 의뢰하지도 않았을것이다.

 

경찰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만만한 서민 한명 붙잡아 놓고 살인자로 만들어 버린 다음 표창장까지 받아 놓고 살인자로 몰려 15년형을 받은 피해자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면서 지불해야 할 보상 금액에 대해 어떤 보호도 해주지 않았다. 감독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10년이나 한 사람이 보상금까지 지불해야 하는 열불 나는 상황을 보고 이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감독은 [그것이 알고싶다]와 별개로 [현장 21]에서 이 사건을 소개한것을 보면서 영화화의 가닥을 잡았다고 하는데 제작 당시만 해도 아무런 해결이 나지 않았던 사건이기 때문에 도박과도 같은 실화물 기획을 추진해나간 의욕 하나는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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