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김민희는 왜 홍상수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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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10-24 01:19:15
혈기 넘치던 시기의 홍상수
1-1.
과거 홍상수는 상당한 독설과 달변가로 유명했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대단히 말을 남기지 않기로 유명해졌다. 사생활에 대한 세간의 소문이 돌 때는 굳이 매체를 통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개봉하는 작품마다 소문의 사생활을 생생하게 재현해냈을 뿐이다. ("유능한 자는 행동하고, 무능한 자는 설명한다."라고 한 조지 버나드 쇼가 떠오른다.) 홍상수는 스캔들이 터진 이후 '할 말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1-2.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이야기한다.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온전한 메세지가 전달될 수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홍상수는 이미 작품을 통해 변명을 풀어놨다. 김민희 역시 작품을 통해 변명을 풀어놨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남긴 텍스트에 단서가 있다.
1-3.
홍상수는 작품의 외적 세계를 작품의 내적 세계의 소재로 삼는다.
술자리 대화에서 배우들이 내뱉은 말들을 각본에 반영하기로 유명하고, 심지어 자신의 사생활 마저도 끌어온다.
만약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역시 그랬다면, 김민희가 연기한 윤희정이란 캐릭터는 어느 정도 김민희에게서 길어낸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2.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김민희는 홍상수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인생과 홍상수의 인생은 완전하게 대칭된 세계이기에 그렇다.
그 둘은 불륜이란 발화점을 향해 인생의 조건이 배열되었기에 그렇다.
2-1.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1부 카페씬에서
희정은 '희정'이 아닌 '민희'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희정: 저 모델일을 했었거든요.
춘수: 아, 그래요. 모델 하셨어요?
희정: 네. 그걸로 꽤 돈도 괜찮게 많이 벌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냥, 하… 이거… 아니구나. 아닌거 같다 이런 생각이 막 들더라구요.
춘수: 알 거 같애요.
희정: 웃긴 게 그냥 말도 안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애요. 아무 미래도 없고, 너무 불안하고 막. 진짜 가치라는 걸 전혀 못 느끼겠더라구요 일하면서. 너무 싫었어요 그게.
3-1.
김민희는 육체성이 최고의 가치인 세계, 모델계의 스타였다. 그녀는 모델로서 매력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계급적 권력과 지위는 그녀와 연애했던 남성들(이정재, 이수혁, 조인성)로 증명했다. 대중을 보고 '평민'이라 하는 실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류 인생이었다.
3-2.
여성에게 있어서 육체의 권력은 상수가 아닌 변수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며 권력을 잃어갈 수 밖에 없었다. 육체성의 세계에서 그녀의 계급은 떨어질 일만 남았다.
탑 클래스의 단 맛을 본 그녀에게 계급적 추락은 육체성에 대한 회의와, 강렬한 계급 복귀의 욕망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일시적인 물질적, 육체적인 가치는 그녀에게 무가치한 것이 됐으니 ("이거... 아니구나. 아닌 거 같다." "그냥 말도 안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애요.") 절대적인 내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연기자의 세계에게 생존 가능성을 찾았을 것이다.
그녀는 육체의 세계에서 정신의 세계로 망명했다. 20대 중반부터 연기자로 제 2의 삶을 시작했고 2012년, 31살에 <화차>를 통해 인정을 받았다. 시간에 의해 결코 무너지지 않는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가치의 세계(연기)는 30대에 접어든 김민희가 남은 여생 동안 추구하며 살아갈 세계가 됐다.
4.
불륜 스캔들이 터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반응은 '늙은 육체'를 지닌 홍상수와 연인이 됐다는 것을 이해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하다. 일반인들은 육체라는 물질성이 중요하겠지만, 김민희는 일찍부터 육체의 덧없음을, 허망함을 겪었고 마침내 정신의 영원함을 깨닫고 체험한 사람이다. 육체의 세계에서 정신의 세계로 망명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가장 지적인 영화를 만들어왔고, 세계에서 인정하는 작가주의 감독인 홍상수는 김민희에게 플라톤으로, 부처로 보일 것이다.
5.
인생은 한 번 뿐임을 깨닫고,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은 용감해진다.
김민희는 계급적 추락으로 죽음을 체험했다.
홍상수는 육체적 추락으로 죽음을 체험했다.
죽음 앞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과, 중요한 것이 구분된다.
김민희에게 홍상수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완벽하게 채워주고, 자신을 완성시켜줄 타자고, 홍상수에게 김민희라는 여자는 스스로 사회적 죽음으로 뛰어들면서까지 자신의 지적 존재가치를 증명해준 가장 용감하고 충성스런 타자다.
그들은 불완전한 자신을 완성시켜줄 수 있는 완벽한 타자를 가장 좋지 않은 시기에 만났을 뿐이다. 그런 운명의 장난에 놓였을 때, 인간은 대부분 비겁해지지 용감해지지는 않는다.
윤리적인 것을 떠나 그들은 용감했다.
어쩌면 운명의 장난이 설계한, 용감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의 배열 속에 놓인 존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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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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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죄송하지만 개인적으론 글이 약간 꿈보다 해몽 같은데... 납득은 안 가지만 그래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