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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아주 긴 변명(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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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8:20:07

[아주 긴 변명]은 연출을 맡은 일본의 여류감독인 니시카와 미와가 영화에 앞서 소설로 먼저 내놓은 본인의 동명원작을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작품이다. 감독 본인이 직접 쓴 원작소설은 2015년 2월에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호평 속에 그 해 나오코상 후보에 올랐다. 원작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데 영화감독이 쓴 소설인만큼 영화화는 작품의 자연스러운 진행과정 중 하나였을것이다. 영화감독이 자신의 연출작을 소설로 내놓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국내에서도 각본도 담당한 영화감독이 영화 개봉 전후로 해당 작품을 소설화시켜 홍보 겸용으로 내놓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니시카와 미와가 영화에 앞서 소설로 구성한 원작은 국내에선 영화 개봉에 맞춰 출간되었다.

 

[아주 긴 변명]의 영화 전단지 뒷면 하단에 원작소설 홍보가 돼있어서 소설의 국내 출간여부는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관심이 없었다. 흔한 영상소설이겠거니 싶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일본에서 나오코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하니 눈길이 간다. 사별한 남자주인공의 재기과정을 그린 잔잔한 드라마 구성이라서 영화에서 상세하게 표현해내기 어려운 심리묘사가 기대된다.

 

[아주 긴 변명]은 서정적이고 잔잔한 전형적인 일본영화의 차분한 드라마 정서가 깃들여진 소품이다. 일본 실사영화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조용하고 정적이면서 느린 호흡으로 깨끗하게 서서히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일상적인 극 말이다. 작품의 외양에서 바로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기대하게 되는 형식이 원하는대로 깔끔하게 진행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국내에서 호감도가 아주 높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더욱이 흡족해 할 작품이 [아주 긴 변명]일것이다. 수입사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찾는 관람층을 염두해두고 이 작품을 들여오지 않았을까 싶다. 외화 중 이 작품과 비슷한 설정으로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최근작으로는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가 돋보였던 [데몰리션]이 떠오른다.

 

[아주 긴 변명]의 특이점이라면 사별한 남자주인공이 재기하는 과정에서 맺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일반적인 설정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구성됐다는데 있다. 관람 전에 간단한 줄거리를 읽고 봤는데 처음 줄거리를 접했을 때는 아내를 사고로 잃은 남자주인공이 아내와 함께 사고로 죽은 아내 친구의 배우자와 인연을 맺게 됐을 때 그 아내 친구의 배우자 성별이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작품에서 사별한 사람끼리 새로운 인맥을 형성시키는 설정이 허진호의 [외출]과도 같은 구성인 줄 알았다. 그래서 사별한 주인공이 서로의 남녀배우자와 관계를 발전시키는 통속적인 연애물인가보다, 라고 취급해 버렸다. 근데 줄거리를 다시 읽어 보니 내가 넘겨 짚은 흔한 인물관계도가 아니었다. 아내는 동성친구와 겨울 여행을 가다가 차량사고로 죽은것이고 주인공은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아내 친구의 남편과 그 자녀들을 만나면서 사별에 따른 상실감과 고통을 치유해 나가는것이다.

 

인물관계도가 이런 류의 설정으로 진행되는 극과 달라서 뻔한듯 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정서로 전개되는 힘이 있다. 감독은 사고로 사별한 주인공이 재기하는 과정을 담은 흔한 드라마 설정에서 성별의 위치를 살짝 틀어 설정의 전형성을 탈피했다. 미망인끼리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것은 새로울것도 없지만 홀아비들끼리 만나서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을 공유하며 서서히 회복해 나가는데 주인공은 상대편의 아이들을 도맡으며 유모 노릇을 해가며 상처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게 남녀관계이면 멜로로 발전될 수 있는 손쉬운 설정이고 순정만화적인 양념을 치면 동성애물로 확대시킬 수도 있다. 인물관계 설정 자체가 묘한 분위기로 전환시키기에 딱 떨어진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지식인층으로 유명 인기 작가이며 주인공이 돌보는 아이들의 아빠는 한달의 절반 이상이 출장근무로 외부에 나가 있는 거친 인상의 트럭 운전수이다. 만약 꽃미남 배우가 작가가 직업인 주인공을, 터프가이형 미남배우가 트럭 운전수로 출연했다면 유사 동성애물 분위기가 풍겼을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설정에 의존하는 허영을 버리고 현실적인 분위기로 극을 끌어간다. 배우들도 현실세계의 주변인으로 접할 수 있는 평범하고 푸근한 인상의 인물로 접목시켰다.

 

작가로서의 인기를 의식하고 아내를 비롯하여 주변에는 무관심하며 이기적이었던 남자가 애써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던 아내의 죽음을 뒤늦게 인식하고 재기하려는 성장의 과정이 밀도있게 그려진다. 홀아비들끼리 공유하는 우정과 상대편 유가족 아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 사람들과의 인연에서 얻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들이 잔잔한 흐름 속에 서서히 감정을 고조시켜 파괴력있는 울림을 선사하는것처럼 [아주 긴 변명]도 공감하기 쉬운 설정 속에 세상과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맺기로 도약하는 과정을 섬세한 손길로 진솔하게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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