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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핵소 고지(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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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4-13 12: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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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의 다섯번째 연출작인 [핵소 고지]는 국내에선 별 인기도 없고 배급 혜택도 못 입었지만 메가박스에선 나름의 우대를 받고 있다. 메가박스 코엑스점 같은곳에선 애트모스 상영으로 M2관에도 척척 걸리며 일정 상영 횟수를 보장 받았고 각 큰 관들에서 낮은 객석점유율로 상영되고 있는 중이다. 보니까 [핵소 고지]는 메가박스가 선호할만한 성격의 작품이었다. 메가박스는 애니메이션으로 틈새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했고 틈새시장을 노리는것과도 별개로 업체의 남다른 관심과 사심이 거드는것인지 기독교적 색체가 짙은 종교적인 성격의 작품들에 늘 호의적인 곳이었다.

 

지금은 메가박스만의 독보적인 개성과 장점으로 거듭난 애니메이션 사업분야도 처음엔 장르적 사심에 입각한 흐름으로 상영배치와 큰 관 우대가 조성된것이다. 그게 매니아가 많은 애니메이션답게 반응이 좋았던것이고 이에 고무되어 애니메이션 상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선것인데 메가박스가 또 다른 방향에서 공들이는 기독교 정서의 영화들은 애니메이션과 달리 별로 주목을 못 받고 있다. 그래도 메가박스는 낮은 좌석점유율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활]이나 [미라클 프롬 헤븐], [천국에 다녀온 소년]같은 기독교의 개신교 정서가 노골적으로 담긴 종교 외화를 단독개봉으로 틀어주었고 [선 오브 갓]같은 예수 전기물 상영에도 무척이나 관대하였다. 내부적으로 기독교나 개신교 쪽에 강한 영향을 받는 인사가 있는것같다. 스콜세지의 [사일런스]가 메가박스의 M2관에서 걸린다면 메가박스 기준에선 의아할게 전혀 없을것이다.  

 

그래서 나는 메가박스 하면 일반인의 정서로는 도저히 따라갈수가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 단독개봉과 평일 낮에 방문하면 특히 중년 아줌마 단체관객들로 순식간에 신방 예배 분위기가 조성되는 기독교 영화들이 떠오른다. 몇 년 전에 해외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그렉 키니어도 나오길래 멋모르고 [천국에 다녀온 소년]을 보러 갔다가 기겁했다. 그러고보니 [머신건 프리처]도 메가박스에서 봤는데 이 영화도 굉장히 노골적인 기독교 전도물이다. 전과자 출신의 날건달이 우연히 개신교에 빠져 결국 목사까지 되고 빚을 져가면서도 수단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하는 사이사이 간증을 하는 장면이 수시로 교차된다. 영화 끝나고 나서도 실제인물의 간증 영상이 연이어 나와서 보는 이를 엄청 부담스럽게 한다. 이 영화 볼 때도 이 작품의 정체를 알고 방문한 개신교도 관객들 때문에 영화관이 신방 분위기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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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기독교인인 멜 깁슨이 작정하고 만든 또 한편의 기독교물인 [핵소 고지]도 목적이 뚜렷한 종교물의 흐름을 전쟁물의 구성에 엮어서 호불호가 갈릴만한 성격으로 완성된 신작이며 국내에선 특히 메가박스가 환장할만한 종교적 색체를 지니고 있다. 그나마 멜 깁슨의 연출적인 재능과 폭력적인 성향이 종교적 성격과 비등하게 깔려 있는 전쟁물의 흐름에 탁월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타 기독교 영화들보단 관객의 환심을 사고 있는것이지만 극의 종교적 요소에 거북함을 보이는 관객들의 반응도 이해해줘야 할것이다. 멜 깁슨은 자신의 연출적 재능을 빌미로 뚜렷한 종교적 사상과 지나치게 폭력적인 성향을 휘두를 수 있는 통제권을 얻은것이니 그에 따른 반응이 갈리는것도 종교물이자 전쟁물인 영화 [핵소 고지]가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핵소 고지]는 멜 깁슨의 통제권이 가장 자유롭게 발휘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의 지난 작품들에서도 지적됐던 잔혹한 폭력성이 실화 전쟁물이란 핑계로 더욱 더 작정을 한 채로 과격하게 펼쳐지며 그가 자부심을 드러내는 호주인의 정체성도 곁들였다. 멜 깁슨은 출생지는 미국이지만 어린 시절 호주로 이민가서 호주에서 연예 경력을 쌓다가 다시 미국 시장으로 진출한 경우이며 멜 깁슨 본인은 호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핵소 고지]에는 호주 출신의 배우들이 총동원되어 '호주인' 멜 깁슨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작품도 호주, 미국 합작물이긴 하지만 근래 나온 헐리우드 영화들 중 이렇게 국제적으로 알려진 호주 배우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한 작품도 못 본것같다.

 

국내에선 이상하게도 자국에선 R등급으로 적절한 등급을 받은 멜 깁슨의 폭력적이고 잔혹한 연출작들이 15세 관람가로 하향조정이 되곤 하는데 [핵소 고지]도 마찬가지다. [핵소 고지]는 과거 멜 깁슨의 [브레이브 하트]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처럼 국내에서 15세 관람가를 받은게 신기한 작품이다. [브레이브 하트]같은 경우는 나중에 dvd로 특별판이 나오면서 과도한 폭력성의 이유로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1995년 개봉 당시엔 극장 개봉부터 비디오 출시까지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 전기물이란 종교적 요소에 힘입어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것같지만 [핵소 고지]는 15세 관람가를 받은게 이해가 안 된다. 이 작품은 [아포칼립토]때처럼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을 받는게 당연해 보이는데 작품의 실화에서 기인한 박애주의와 인도주의적인 태도에 힘입어 등급혜택을 받은듯싶다.

 

이 작품보다 묘사수위가 덜 잔인한 전쟁물인 [퓨리]는 블러 처리 당해가며 겨우 15세 관람가를 받았는데 [핵소 고지]는 요즘 수입사들이 등급 혜택 받으려고 흔하게 자행하는 블러 처리 하나 없이도 원본 유지에 성공했다. 온갖 방식으로 절단되어 피가 철철 넘쳐 오르는 신체의 적나라한 묘사를 15세 관람가임에도 멀쩡한 상태로 접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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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실화물의 사실주의로 포장한 멜 깁슨의 가학적인 성향은 여전하다. 그러면서도 극 전반에 기독교적 정서로 평화로운 세계관을 물들여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폭력적인것에 집착하는 변태 성향의 고약한 취향을 평화주의의 공존이란 이중적인 태도로 이렇게 솔직히 드러내다니, 이 작품은 오랫동안 우리가 알고 있고 편견을 가지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던 멜 깁슨의 모든 성향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극한의 순수함을 추구하려고 한다.

 

[핵소 고지]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어린 실언과 각종 추문으로 제법 긴 시간을 헐리우드의 눈밖에 났던 멜 깁슨의 재기작으로 인정 받고 있지만 나는 '핵소 고지'에서의 실감나는 전투 장면 정도만 추켜세우고 싶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볼만한 작품이긴 하다. 음향도 생생해서 극장에서의 체험효과가 근사한 전쟁물이다. 애초부터 멜 깁슨의 호주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보수적인 종교적 시각을 극단적인 폭력성과 혼합한 작품이라 전쟁드라마의 균형미는 포기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전체 구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엔 영화의 종교적 태도가 너무 짙어서 부담스럽다.

 

다른 이들이 전쟁영웅으로 훈장까지 받았던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각색했다면 실제 인물이 지니고 있는 광신도적인 성격을 순화시켰을테지만 독실한 기도교인이자 헐리우드 갑부인 멜 깁슨은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것이다. 오히려 기독교적 색체를 보강하면 보강했지 죽여야 한다면 멜 깁슨이 10년만의 연출 복귀작으로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택하진 않았을것이다. 영화는 모든 부분에서 과하고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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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영웅담이 영화로 각색되는것을 오랫동안 반대했던 데스몬드 도스는 1950년대부터 받은 영화화 제의를 수십년동안 뿌리치다가 87세의 나이로 죽기 몇 년 전에 허락을 했다. 1919년생인 데스몬드 도스는 2006년에 사망하였다. 데스몬드 도스의 사망 후 10년만에 그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한 상태로 참전했던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일화를 멜 깁슨의 지휘 아래로 각색된것이 영화 [핵소 고지]이다.

 

데스몬드 도스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가장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다고 기록된 '핵소 고지'에서 75명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인정 받아 1945년 10월 12일에 최고의 전쟁영웅들에게 수여하는 '명예의 훈장'을 받았다. 집총을 거부한 상태로 군생활을 보낸것도 놀라운데 그 상태로 의무병으로서 실전에 참전하여 악명 높았던 '핵소 고지' 전투에서 75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하니 이게 실화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것이지 지어낸 이야기였다면 비현실적인 구성이라고 놀렸을것이다. 실제로 데스몬드 도스가 75명의 생명을 구한것은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데스몬드 도스는 50명을 구했다고 밝혔고 목격자들은 100명 남짓이라고 주장하여 절충한것이 75명이다. 

 

움직였다 하면 사격 당하고 즉사하게 되는 살벌한 격전 상황에서 총도 없이 자욱한 안개를 뚫고 오로지 종교적 신념 하나로 수십명의 생명을 아군, 적군 상관없이 구해낸 데스몬드 도스의 일화는 흥미진진하다. 아군을 구하려고 그물로 매듭을 지어 내려 보내려다 의도와 상관없이 적군을 유인하게 돼 벌집을 만들어버리는 후반부의 편협한 묘사도 화끈했다. 일본인들이 보기엔 불편한 묘사들이 많은데 일본에선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다. 몇 년 전에 [언브로큰]이 나왔을 때는 안젤리나 졸리한테 그 난리를 치더니 일본인들에게 대사 한마디 제대로 쥐어주지 않고 좀비떼처럼 묘사나 하며 사살하는데만 열중하는 [핵소 고지]의 멜 깁슨한테는 별 말이 안 나오는것을 보면 이것도 성차별이라면 성차별이다.

 

미국 군인들은 동료를 구하고 전쟁의 피해자로 안쓰럽게 묘사되는 반면에 일본인들은 패전에 대한 비관으로 약먹고 동반자살하거나 할복하는 극단적인 모습만을 수시로 교차해서 대조시킨다. 일본인들은 훈도시만 입고 우스꽝스럽게 총살되거나 적의 함정에 걸려들어 만화적인 표정과 몸짓으로 몸서리를 치다가 죽어나가는 모습으로만 비춰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독일과 달리 반성의 기미가 없는 일본 입장에선 [언브로큰]보다 [핵소 고지]가 더 불편할 작품같아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조용한것같다.          

 

다행이도 본인의 종교적 신념과 상황이 맞아 데스몬드 도스의 광신도적 태도가 명예의 훈장으로 이어진것이지만 인간적으론 호감이 안 가는게 사실이다. 그는 너무 고집스럽고 자신의 사상에 취해 있어 동료들한테 미움 받고 군대에서 따돌림 당할만한 짓을 자초한다. 집총을 거부하는 채식주의자, 비폭력주의자로서 외골수 개신교인인 데스몬드 도스가 추구한 종교는 개신교의 한 교파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는 이단으로 취급되는 종교인데 주인공은 종교적 삶에 완전히 취해있어 판단력까지 제압 당한다. 그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토요일에도 훈련을 거부하였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이런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다행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남은 복무기간을 감옥에서 썩을뻔한 위기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폭력적인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군대 인맥으로 겨우 모면하고 총 없는 상태에서 '핵소 고지'전투에 참여하게 된것이다.

 

종교가 멀쩡한 한 인간을 미친 고문관으로 만들어 버린건데 그래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장면들이 연속으로 나와 이 심각한 전쟁물의 환기구를 마련해주었다. 멜 깁슨의 폭력적인 성향이 이중적인 태도로 드러나는것도 자극적인 재미가 있지만 데스몬드 도스의 광신도적인 태도, 툭하면 기도하고 신에게 모든 공을 돌리는 멍한 모습도 황당한 재미가 있다. 종교에 취해있는 데스몬드 도스야 늘 심각하지만 그의 종교적 의식으로 보는 이들은 난감해지는 상황이 이어지는것이다. 그래도 그 극한의 상황에서 미친 고문관의 나사 빠진 개신교 신념에 힘입어 50명에서 100명 사이의 생명을 괴력으로 구해냈으니 마지막에 이병 주제인 데스몬드 도스의 기도 의식을 위해 상급 계급의 군인들과 군 지휘자들이 참을성있게 기다려주는 역전된 상황은 영웅의 일화로서 감동을 남긴다.

 

이 희대의 2차 세계대전 영웅을 연기한 앤드류 가필드도 배역과 무척 잘 어울린다. 평소 앤드류 가필드가 가진 어리숙한 너드 이미지가 미친 개신교 고문관의 숙맥스러운 순수함과 훌륭한 매치를 이룬다. 이 작품으로 또 군인을 연기한 샘 워싱턴은 배우로서 외모 관리 좀 해야겠다. 너무 삭아서 50은 넘었는 줄 알았다. 1976년생, 이제 겨우 40대 초인데 외모를 방치한 흔적이 육체의 온 부분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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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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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5 17:37:03

종교적 색채가 짙다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딱히 그런건 못 느꼈습니다. 흔히 한번쯤 주변에서 보이는 고지식하고 신념강한 사람으로 생각하니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전쟁장면은 진짜 최근 본 것 중에 음향이나 그 잔인함이나 꽤 좋았네요. 극 중 도스가 주여 한 명만 한 명만... 이러는데 저게 실화라고 생각하니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가슴 한 켠이 뭉클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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