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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컨택트(Arrival,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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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2-25 20:19:49

 

여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지적 쾌감을 동반한 유일무이 스토리텔링. 

평점 ★★★★☆

 

일단 제목이 바뀐 이유가 궁금했다. '도착'이라는 뜻을 가진 원제 <Arrival: 어라이벌>에서 '접촉'이란 뜻의 <컨택트: Contact>로 바뀌었다. 이 영화를 배급한 UPI 코리아의 관계자는 사내 시사를 통해서 제목이 변경되었다고 한 기자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밝힌 바가 있지만, 과연 배급사의 센스가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자국에 해외영화를 배급하면서 원제와는 의미가 사뭇 다르게 수정하고 다른 영화로 보이게 하는 편법은 많이 행해지고 있긴 하지만 <Arrival>은 제목이 가지는 의미가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접촉'은 작품을 표면적 외부만 보고 있을 뿐, '도착'에 비하면 철학적 깊이를 담아낼 그릇이 안 된다. '그들이 온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메인 카피도 마찬가지. 블록버스터로 홍보하면서 작품의 의도가 훼손되는 일은 더없어지기를 바란다.

 

본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가장 많이 들리는 평이 '어렵다'인 것 같다. 그 때문에 나는 극장을 찾아 영화를 눈 앞에 두기 전 까지 조금의 긴장감을 붙들어매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반전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혼란스럽기는 하더라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명쾌하다. 그러니까, 어렵다는 평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전개 상 필요한 언어학적 지식들은 간결하고 쉽게 설명되고 그다지 거슬릴 만큼 전문적이지도 않다.

 

차라리 <컨택트>는 '새롭다'는 평에 더 부합할 만한 작품이다. 다만 여기서 조심하고 싶은 건, 장르적으로 새롭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송경원 평론가는 <컨택트>가 새롭지 않은 이유 중 하나를 "문답무용 침공하는 스테레오타입의 외계인이 아니라서"라고 말했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우주 전쟁> 같이 외계 존재에 대한 낯섬과 대적하는 영화가 아니라 <미지와의 조우><E.T.> 같은 스필버그 초기 영화를 연상케 하는, 외계와의 교감을 그리는 편향을 타고 있을 뿐이다. 또, <컨택트>는 장르적인 볼거리를 추구한다고 보기에는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적이며 차라리 재난영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관객들이 어느 정도 낯설다고 느끼는 건 장르적 기대에 부합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거리감일 뿐이지  소재나 전개 자체는 새롭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로운가? 그건 바로 원작에서 빌려온 쾌감을 전달하는 데 있어 영화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대부분의 평론가들도 이 영화의 형식적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SF와 서스펜스를 어떻게 조합시키는지와 더 나아가 어떤 지적 쾌감과 영화적 깊이를 끌어내는지가 주된 이야기거리가 된다. 위에서 말했듯이 <컨택트>의 주제는 쉽게 간파된다. 그렇다고 해서 주제 의식이 얕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설명이 아니라 묘사의 예술이다. 서스펜스에 대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탁월한 감각과 세련된 스타일은 작품에 무게감을 부여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익스트림 롱 숏은 거의 인장과도 같다. 드니 빌뇌브 영화에서 서스펜스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재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드니 빌뇌브 감독은 작가주의적이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황량한 사막의 전경 한에 위치한 범죄의 도시 후아레즈를 저 멀리서 찍어내는 카메라는 이미지 자체로 하여금 공간의 위압감을 조성한다. <컨택트>에서도 그런 스타일은 유효하다. 언어학자 루이스가 녹음 파일로 전해들은 외계인의 소리로 인해 관객은 불안감에 감싸지고  셸이라는 미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의 편집의 리듬감은 낯선 공간에 조금씩 접근해가는 간접적인 체험을 만들며 관객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컨택트>에서는 지구와 셸의 대비가 의미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드니 빌뇌브는 영화에서 공간이 가지는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공간이 가진 영화적인 힘을 안다.

 

<컨택트>는 두 개의 플롯을 중점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루이스가 헵타포드와 소통을 시도하는 플롯과 다른 하나는 루이스의 회상으로 만들어진 플롯이다. 이 두 플롯은 중첩적이기 보다는 분리되어 있지만 상호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사고방식은 언어를 통해서 습득된다는 '샤이어 워프 가설'과 시제가 없는 헵타포드어의 '비선형 문답형'의 특성은 반전을 위한 포석이다. <컨택트>가 주는 지적 쾌감의 대부분은 두 플롯의 '진짜' 관계가 드러날 때 발생한다. 루이스의 딸 한나가 대어나고 희귀병으로 죽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오프닝과 루이스가 강연을 하려는 시퀀스로 이어질 때 관객은 당연하고 전자가 과거의 시점으로 받아들여지며 영화 중반주까지 두 플롯은 동일선상에 위치한 선형적인 시제로 읽혀진다. 후반부에 갈 수록 (감독에 의해) 제한되었던 정보가 관객에게 드러나게 되면서 시제는 비선형적이 되며 입체화된다. '루이스가 그 아이(한나)를 모른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드니 빌뇌브의 비밀이 관객에게 트릭을 걸어온 것이다. 플래시백을 가장한 플래시 포워드였던 것이다. 물론 타임슬립 영화에서 이러한 트릭 또는 반전은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반전으로 관객의 관념적인 시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컨택트>에서 '현재'는 개별적인 것(과거에 의해 결정되고 미래로 이어지는 중간으로서의 개념)가 아니라 다소 복합적인 것이다. 헵타포드의 관점은 시간은 서로 영향을 받는다. 어느 한 시점만으로는 현재가 성립되기 힘들다는 관점을 내포한다.

 

그렇다면 <컨택트>의 '도착'점은 어디인가? 

 

헵타포드어가 원형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 이미지 디자인은 영화 전체를 꿰뚫고 있다. <컨택트>는 수미상관 구조를 띄는데 중간 과정은 마치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원점에서 시작해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의 상징적 도형으로 원이 연상된다. 이것은 루이스의 운명과 닮아있다. 헵타포드어를 배움으로서 루이스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미래는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다. 어떤 미래를 맞이할 지는 관객들도 루이스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타임슬립 영화는 최근에 들어서 빈번히 제작되고 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나 <너의 이름은.> 같은 부류의 영화가 주목받고 인기를 끄는 데는 과거의 삶을 돌이키고 싶은 무의식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를 선택한다. 이것이 <컨택트>의 운명론적인 미래관에 대한 대답이자 최종적인 도착 지점이다. SF의 공상(Fiction)보다는 과학(Science)을 반영한 철학으로 읽혀지기도 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루이스의 선택은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오히려 루이스가 너무 소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초월적인 설정에 놓여진 인물에 대해서는 드니 빌뇌브 감독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명쾌한 답을 원한다면 차라리 원작 소설을 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테드 창의 원작은 물리학 영역의 '페르마 최단 시간의 원리'와, '세월의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예시로 들며 시간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한다. 사실 원작이 그렇게 가볍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응용되는 지식은 전문 지식은 아니더라도 쉽게 풀어 설명하지 않아 이해하는 데 있어 독자의 교양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정리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루이스의 선택과 행동은 의무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미 결정된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 현재의 행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컨택트>에서는 이런 어려울 법한 소설의 논리와 결론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활자의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는 반항인 걸까. 어찌 됐든 드니 빌뇌브 감독은 결론을 내리는 역할을 관객에게 맡겨버린다. 과학을 '설명'하기보다는 드라마를 '묘사'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인식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과학보다는 인간을 다루는 예술이니까. 원작보다 덜 운명적이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존재로서 인간을 바라보려 하는 긍정의 시선이 배여있다. <컨택트>는 과학의 외피를 쓴 인간의 내피를 가진 휴먼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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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17-02-26 00:05:38

이 영화를 대하는데 있어 어려운 이론들을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알면 물론 좋겠지만요)

오히려 일반관객에게 더 벽이 있게 느껴질 뿐이라 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굉장히 매니악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아니라고 보기에 일반 관객들에게 있어 매력은 그러한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이며 운명이라고 느껴지게 만드는 것과 영화를 그려나가는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의 표현방식의 장점이 드러나고 그것을 더 잘 표현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SF지만 상당히 감성적이라는 점입니다.

심지어 키스장면이 없다는 것도 묘하고요. 애초에 일반적인 우리의 선형적 이야기 구조와 뻔한 장면들을 넣지 않았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것을 대변한다고 봅니다.

 

시카리오도 이제 보니까 상당히 감성적이라고 느껴지는 면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도 저에게는 이제 이 감독을 조금은 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결론은... 좋은 영화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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