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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D]  HDR이 UHD-BD에 끼치는 (본의 아닌) 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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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Updated at 2016-07-16 17:51:37

1. 서문
 

HDR, High Dynamic Range의 약자인 이 기능은 영상 계통에선 최근 UHD-BD의 대두와 함께 일반적인 '사용 기능'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 카메라나 게임 등의 방면에선 훨씬 이전부터 일반화된 개념입니다. 간단하게 투박하게 설명하면- BD를 포함하여 기존의 일반적인 화상(영상을 포함한 샷의 개념)의 명암과 색 데이터는 RGB 각 8비트(256단계의 계조를 가지는, 약 1678만 색) 컬러에 맞춰 설계되는데, 이는 당연하지만 실제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명암과 색상 정보는 물론이고 아날로그 필름의 순 명암비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HDR은 이러한 '열화'를 해결하기 위해, 24비트 이상의 컬러 데이터를 그대로 살리고 명암의 다이나믹스를 되도록 찍힌 원본에 가까운 명암(과 색상)으로 구현해 내고자 하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따라서 HDR은 고정된 일정 출력 데이터를 갖는 개념이 아니라, 소스에 따라 그 다이나믹스가 달라지고/ 소스를 최대한 찍힌 상태에 가깝게 출력할 수 있도록 '가져다 준다'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생한 컬러와 풍부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화면을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됩니다. 때문에 HDR 영상 역시, 비록 일반적이고 현재 가장 대중적이며 앞으로의 전망에 있어서도 영상 출력 기기가 '평판(2차원) 디스플레이'라는 개념을 유지하는 한 그 점유율 우위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LCD 패널 TV에서는 HDR 미적용 화면에 비해 그 명백한 우위를 잘 보여주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지기는 합니다만, '보다 찍힌 원본에 가까운 영상을 전한다'는 HDR의 그 개념 자체는 충분히 아름다운 진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에는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건 HDR이 적용된 영상이 기본적으론 주변 광량을 아주 많이 차단한 상태에서야 HDR 미적용 영상에 비해서도 눈에 좀 띄기 시작한다는 점이나, 정말 제대로 느끼려면 OLED 패널 TV 같이 암부를 제대로 가라앉혀 높은 명암비를 내는 디스플레이를 가져다 놔야 그 임팩트와 펀치력을 보다 쉽게 보여준다라는 외적 요인- 이것도 물론 충분히 어두운 사실이지만- 과는 다른 내적 요인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HDR이 갖는 그림자는 무엇일까요? 

 

 

2_1. 그림자 1 : 제작자의 의도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동원해 봅시다. 이 사진은 S모 스마트폰(OLED 디스플레이를 갖는)에서 HDR 촬영 기능을 On 하여 결과물을 확인하며 찍은 사진입니다.(앞으로 이 사진을 A라고 칭합니다.) 아래 올리는 동일 조건에서 HDR 기능을 Off 하여 찍은 사진과 비교해 보면 분명 피사체의 색상과 디테일이 보다 잘 살아있습니다. 물론 이 피사체를 실제로 보는 제 눈에 비해서는 다소 명암의 대비와 색상의 풍부함, 디테일도 모자라지만, HDR 촬영 기능을 Off 한 상태로 스마트폰의 촬영 준비 화면을 통해 본 사진과 비교하면 훨씬 (그냥)눈으로 보는 피사체의 실제 모습에 근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화상은 HDR 기능을 켜고 - 해당 피사물의 촬영 결과물을 촬영 준비 화면을 통해 촬영자가 인지한 상태에서, 그에 맞는 의도로 - 찍은 후 HDR 대응 출력물에서 역시 동일하게 나옴을 확인한 화상입니다. 또한 '온전하게 촬영 소스 데이터로 남은' 상태의 원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데...

 

 

다음, 이 사진은 같은 스마트폰으로 HDR 기능을 Off 하여 찍은 사진입니다.(이 사진은 B라고 칭합니다.) 분명 앞선 사진보다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HDR 촬영 기능을 Off 한 상태에서 스마트폰의 촬영 준비 화면을 통해 촬영자인 제가 인지한 피사체의 모습은 이 사진의 그것이었습니다. 그게 뭐? 아무튼 열악하잖아? HDR 영상이 우수한 건 이걸로 증명 끝이네. 아닙니다. 사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HDR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도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건, 디지털 카메라로 찍건, 비록 그 다이나믹스의 차이는 기기에 따라 방식에 따라 달라도 거기에 '찍힌' 화상은 BD의 24비트에도 다 담아내지 못할만큼의 풍부한 색상과 명암 정보를 갖습니다. HDR이란 이 아날로그 필름이나 디지털 촬영 원본 소스(이하 RAW)에 '찍혀서 발라진' 바를 되도록 최대한 살려낸다는 개념을 갖기 때문에, 아주 넓은 의미에서 'HDR 대응 카메라'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그대로 찍을 때는 모든 게 다 (카메라 자신이 찍을 수 있는 한도의)HDR 화면이니까요. 그런데 레드 에픽, 드래곤, 알렉사 M 등의 카메라는 그 스펙을 홍보할 때 굳이 'HDR'을 표방하곤 합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HDR 기능을 가진 디스플레이로 출력될 화면을, 촬영자가 카메라의 촬영 화면에서 바로 확인하고 인식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HDR 대응' 카메라란, 사실 촬영자를 대상으로 한 기능이지 출력물을 보는 시청자를 기준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즉, 앞서 언급한 스마트폰의 (HDR 기능 On 한 상태의)촬영 준비 화면을 떠올리면 간단합니다.

그럼 이 'HDR 대응'이 없는, 아니 HDR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기의 카메라로 찍는 촬영자는 그럼 어떻게 화면을 인식하고 찍었을까요? '카메라가 갖는 최대 스펙'의 화면을 인식하고 찍은 다음 확인했을까요? 아니면 '찍은 시기에, 출력 장비로 확인할 수 있는 최대 스펙의 화면'으로 인식했을까요? 그리고 아날로그 필름은 시간이 지나면 열화하여 특히 명암을 찍힌만큼 되살려내는 것이 어려워지며, RAW 데이터가 아니라 코덱 압축된 디지털 마스터는 물론 상영관의 출력 한계에 맞춰 색상과 명암의 정보를 컷오프합니다.(마치 MP3가 WAV에서 인간의 인지 영역 외 음성을 컷오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B의 사진은 그런 상태의 마스터를 의미합니다.

즉, 역광으로 인해 디테일이 잘 안 보이거나 소실된 B 사진의 화면은, HDR 비적용 상태의 출력물을 떠올리면 됩니다. 촬영자인 저는 이렇게 나올 것이라 인지하고 좌측 종이 인형이 사실은 속이 검고 음흉함(?!)을 표현하고 우측 로봇은 이 음흉한 인형이 부리는 하수인쯤으로 보이려는 의도로 찍었습니다. 한술 더떠서 영화관 상영이나 2차 매체를 위한 후처리 화면에 대해 감수에 참여하면 이보다 더 종이 인형의 얼굴을 시커멓게 보이도록 명암비를 더 둔하게 만드는 걸 선호했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촬영자인 제가 인지하지 못했거나 인지하더라도 염두하지 않은 상태로, 촬영 데이터에 수록된 명암(과 색상)은 A 였고, 이 데이터를 HDR을 적용하여 살려내고 출력한 건 A 화면과 같습니다.(* 이 예시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마트폰 촬영의 HDR On/Off 기능의 정확한 기능적 정의와 100%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촬영자의 인식과 HDR을 적용한 화면의 갭을 손쉽게 설명하기 위한 재료로서만 인식해 주십시오.)

분명히 A가 B보다 디테일이 더 살아있고 색상도 더 명확합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야 지금 이 화면이 1차적으로 와닿기에 더 잘 보이니 좋은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촬영자인 제가 의도한 바는 어떻게 된 걸까요? 저는 (출력 기기의)HDR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를 살던 감독으로서, 명암과 색상의 표현력이 제한된 영화관 영사기와 더 나아가 일반 TV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제 의도가 전달되도록 화면을 찍었고, 상영관에서 보면서 확인하고 2차 매체 제작 작업에도 참여하여 꼼꼼하게 컨펌했습니다. 그럼 촬영자인 제가 인정하는 화면은 A일까요 B일까요?

다시 말하지만 HDR 자체는 피사체가 '찍힌' 명암 대비를 포착하여 보다 선명하게, 명확하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기능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찍혀 필름이나 RAW 데이터로 '발라진' 화면(= HDR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의 카메라로 찍은 화면)도 당연히 (해당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정보 자체는 머금고 있습니다. 애초에 아날로그 필름이건 디지털 카메라건, 우리가 지금까지의 비HDR, 표준 디스플레이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폭넓은 명암 정보를 머금으니까요. 그런데 '찍은' 사람은 그걸 모두 다 살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찍은' 경우 그 사이의 갭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령 HDR을 인지하지 않은(= 할 수 없는) 상태의 카메라 피사물로 찍은 감독의 연출을 무시하고 무심하게 역광에 의한 어둠도 없이 모두 다 선명하게 보이는 화면의 의미는? 도리어 작품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2_2. 그림자 2 : 선의의 독(?) 

 

하지만 HDR이 갖는 강점,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그냥 간단히 말해 명암 대비가 보다 극명하게 보이는 화면은 분명 순 시청자 입장에선 좋게 볼 구석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디지털 해상도가 계속 높아지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는 가장 단순한 의미에서 '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고 사람들은 보다 선명한 화면을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을 사람들은 환영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HDR도 분명, 제대로 구별이 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좋아할 것입니다.(단,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은 2_1에서 설명했으나 일단 보이기엔 그렇다고 치고)

헌데 HDR은 A. UHD-BD만의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 스트리밍, VOD에도 적용되는 무기이며 B. 또한 이를 제대로 살릴 디스플레이를 필요로 하지만 앞서 잠시 언급한대로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LCD 패널 TV에선 그 강점을 잘 드러내지 못합니다. 2K > 4K의 해상도 발전은 LCD 패널에서도 가까이서 보건 화면이 커지건 하면 아무튼 상대적으로 쉽고 편하게 인식이 되게 마련인데 HDR 적용 영상의 강점을 쉽게 인식하려면 '주변이 어두워야'라는 좀 귀찮은 제반조건이 붙습니다. 아니면 OLED 같은 특이한(상대적으로 더 비싸고, 번인과 수명 문제에 대한 의심으로 세간의 인식이 안 좋으며, 때문에도 더 대중적이지 않은) 디스플레이로 볼 때나 좀 일반적인 주변 환경에서도 보다 임팩트를 갖습니다. 이건 물론 HDR의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옥의 거리에 깔린 도로는 대개 선의로 포장되었다는 경구처럼, HDR의 잘못이 아님에도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낳지는 않습니다.

값싸고 편리하고 인지도가 높고, 그래서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LCD 패널 TV- OLED는 LCD만큼 단가를 낮춰 고해상도가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대화면을 구현하기가 구조적, 시장 규모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시그니처요? PDP 몰락의 교훈을 떠올립시다. 쉽게 대화면을 만들 수 있는 프로젝터 쪽은 HDR을 인상적으로 만들기가 더 어렵습니다.- 에서 HDR이 별 인상을 못 준다는 것은 더 많은 사용자에게 '이 기술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그만큼 낮게 잡도록 만듭니다.(주로 볼 수 있는 데서, 별 임팩트가 안 느껴지니까, 많은 돈을 내며 얻을만한 가치가 느껴지지 않으므로)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HDR은 UHD-BD에만 허용된 기술이 아닙니다. BD만이 갖는 높은 비트레이트와 세련된 화면은 스트리밍이나 VOD에 비해 BD가 더 비싼 당위성을 부여하고 긍정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HDR은 UHD-BD보다 더 낮은 비트레이트로 전달되는 더 싼 것에도 실을 수 있습니다. 아니, 물리 매체인 UHD-BD보다 더 때깔 좋게 보이는 디지털 다운로드 가능 데이터- UHD-BD에는 HDR로 수록하고, 같은 컨텐츠의 디지털 데이터에선 더 명암 다이나믹스 폭을 넓게 잡는 돌비 비전을 담는다거나- 까지도 논해지는 것이 작금입니다.

그 결과는? UHD-BD라는 값비싸고 불편하고 확연한 우위를 보여주지 못하는 매체의 몰락 확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그럼 그 다음엔 어떤 게 다가올까요. 일껏 UHD-BDP를 산 사람들이 곤란해 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더 싼 스트리밍 데이터, 한 번 보고 대개 버리는 이 디지털 파일에 누가 제작자의 의도를 시시콜콜 따져 시간과 예산과 귀찮음이 동반되는 작업을 진지하게 하려 들까하는 것입니다. 컨텐츠 제작자가 흙파먹고 장사하는 게 아니니 싸게 매겨지는 물건은 싸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렇게 만들어지는 HDR 컨텐츠가 제작자의 의도를 얼마나 시시콜콜 조사하고 주의깊게 담아내려고 노력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례로 HDR이란 개념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Darbee 등의 영상 기기 메이커에선 기존 소스의 명암 대비를 원본보다 더 강조하는 방식의 영상 조정 프로세서를 내놓곤 했습니다. 이 회로를 장착한 오포의 BDP에는 명암차를 시청자 입맛대로 비율을 조정해 가며 강조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 기능을 쓰면 분명 화면을 아주 재미있게 조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컬러리스트와 관계자들이 주의 깊게 제작자의 의도를 반영하여 수록한 BD의 '(의도된)본래 화면'에 최대한 접근하는 화면이라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제작자의 의도를 담아내지 않은 HDR 컨텐츠란, 다비 프로세서로 이리저리 조작해낸 화면과 기술적 정의는 다를지언정 개념상으론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이건 '그냥 해상도를 뻥튀기하는' 업스케일과 다른 문제입니다. '명암(과 그로 인한 컬러)'은 화면에 끼치는 영향의 정도가 단순한 해상도 업보다 훨씬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드시 주의깊게 핸들링 되어야 하며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결론
 

앞서도 계속 언급했지만, HDR이 적용된 소스와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출력한 영상은, 어떻게든 구별이 잘 되는 환경에서 진지하게 본 시청자에게, 충분한 감명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필름의 연식에 따른 열화와 디지털 압축 방식에 따른 컷오프 된 마스터로 인해 그 한계는 제각각일지라도- 가장 극단적인 예는 HDR로 긁어놓아도 BD랑 같은 수준의 수록용 마스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걸 후보정해서 씌우기라도 하여 감독의 의도와는 더더욱 멀리 떨어진 화면이 나오더라도 그냥 보기엔 HDR 적용 화면이 (인지만 한다면)더 좋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놓은 화면에는 과연 촬영자의 의도가 제대로 담겨 있을까요? 그건 HDR 적용자와 시청자로선 그 누구도 보증할 수 없습니다. HDR로 출력되는 화면이란 개념이 없던 시기의 촬영물은 더욱 그렇거니와 그 개념이 나온 후의 촬영물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HDR이 끼어들지 않던 시기 모든 영상의 명암과 색상 표현폭이 '평등하게' 좁아진 시기에는 설령 제작자가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좁은' 풀이기에 움직일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 길을 잘못 들 염려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HDR이 넓혀 놓은 풀에서, HDR 적용자와 시청자는 길을 잃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모두가 미아가 된 후에 남는 영상물은 분명 '보기는 좋게 보이지만'(이것도 기기따라 환경따라 다를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제작자의 의도대로인' 하물며 '예전 영화관에서 본 그 화면일' 공산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런 개념을 보다 단순화해서 자막으로 비유하면, HDR 화면은 번역자의- 제작자가 아니라- 의도가 너무나 많이 들어가 있어 '번역자가' 의도한 뜻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에만 좋다는 맹점을 갖기 쉬운 자막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를 '박쥐남자 v 슈퍼남자 : 정의의 새벽' 이라고 번역하면 원작을 아는 사람은 모두 웃을 겁니다. 하지만 원작을 전혀 모르는 번역자에겐 이쪽이 되도록 영어를 정확하게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영어를 전혀 모르는 시청자는 이 번역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싫어도, 정식 발매판 영화와 홍보물에 모두 저렇게 떡 하니 인쇄되어 나오면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소스를 HDR화 한다는 건 극단적으론 이런 것입니다.

HDR 영상이 (제작자의 참여 없이도)무조건적으로 100% 제작자의 의도대로라 보증할 수 있는 건 HDR 개념이 나온 후, 해당 기능으로 출력되는 결과물을 찍는 시점부터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카메라(= 가장 좁은 의미에서 'HDR 대응' 카메라)로 찍은, 자연의 의도를 담는데 충실한 순수 자연 다큐멘터리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값싼 스트리밍이 장악한 시대가 오면 그때는 아무도 제작자의 의도니 과거 영화관에서 봤던 추억을 그대로 소장한다 같은 개념은 따지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타협안은... HDR, 돌비 비전 출력 개념이 확립되고 그런 설비를 염두한 상영관에서 전달한다는 개념이 등장한 후, 해당 요소를 염두하고 만든 작품(예를 들어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는 돌비 비전 마스터링 되었습니다.)에 한하여, 원작자의 감수와 컨펌을 받아 출시한다면 이런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면 자연히 출시 컨텐츠 수는 제한될 수밖에 없으니 진퇴양난이겠지요. 그럼 HDR 기능을 강제로 끄고라도(아니면 HDR 기능 없는 디스플레이로) 볼까요? UHD-BD의 강점을 스스로 없애야 하나...

일전에 제가 방송 체크용 OLED를 통해 본 HDR 적용 화면은 정말 근사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과연 이렇게 출력되는 걸 염두하고 이걸 찍은 것일까요? 만약 이걸 찍은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그의 생각은 앞으로 누구의 입맛대로 어떻게 해석되게 될까요? BD에서도 판본별 색감 보정에 따라 이런 예는 간혹 있었습니다. HDR은 그것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 쿠키

때는 19XX년.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밤하늘을 찍는 감독이 있다. 그는 자기 영화에 아주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먼저 컨펌용 디스플레이의 출력 화면을 보면서 관객들에게 전달될 결과물에서 별이 어둑하니 잘 안 보임을 확인한다. 잠시 숙고하던 감독, 주연 배우에게 지시한다.

"자, 보다시피 화면에 별이 좀 어둡게 나오는데 관객들은 이 화면을 보게 될 거야. 그러니 이 장면의 감정 전달을 극대화 하기 위해 '저 어둑한 별처럼 내 마음도 어둡군' 이란 대사를 추가해 보세."

감독의 애정, 배우들의 열연으로 이 영화는 아카데미를 비롯 많은 상을 타고 명작으로 일컫어진다...


세월이 흘러 감독도 배우도 세상을 떠났다. 제작하던 스태프들도 현직을 은퇴하거나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명작을 새로운 매체로 (또)발매하여 (또)팔고 싶은 제작사가 이 작품을 점찍었다.

시대는 새로운 기술을 요하지. 그러니 HDR 출력이 가능하게끔 필름을 새로이 긁어 'HDR 출력! UHD 얼라이언스 인증! 4K 리마스터 UHD-BD 재발매!'로 홍보해야 하고말고. 뭐, 제작자들 찾아서 뭐해? 있는 거 다시 싹 삐까번쩍 긁는 건데.

그리고 발매된 UHD-BD. 기대에 차 그것을 산 시청자 A. 일껏 많은 돈을 들여 교체한 시스템에 걸어 보며 탄성을 지른다. 와, BD에선 어둑하던 밤하늘의 별들이 저렇게 반짝이네. HDR 최고! ...어?

"저 어둑한 별처럼 내 마음도 어둡군..."

??? 저 배우 왜 저래. 눈이 나빴던가? 아... 맞아맞아. BD에선 별이 잘 안 보였지. 쩝... 이건 그래도 말이라도 해줘서 다행이네. 근데 이런 대사도 없는 영화들은 어쩌지...

 

님의 서명
無錢生苦 有錢生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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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6-04-14 15:30:15

조지마님 글은 요점에 대해 직접적으로 궁금함이 다가왔을 때, 검색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판단내리는데 좋은 도움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

2016-04-14 15:48:37

진짜 빛과 그림자군요!추천합니다~

2016-04-14 16:19:44

HDR은 쉽게 보자면 소프트웨어며, 디스플레이는 하드웨어겠죠? 말씀하시는 게 정보(원 소스)의 왜곡인 듯 읽히네요. 거기까지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는데, 애초에 모든 디스플레이가 동일한 표현력을 가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어느 정도의 왜곡은 모든 시청자가 겪는 것 아닌가요? 기기의 설정 문제도 있겠지만, '원작자의 의도대로 전달이 되느냐'의 문제만을 놓고 본다면 글에 언급하신 시청장소의 밝기도 문제가 되겠고,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어떤 각도로 시청되느냐도 변수가 되지 않는가 궁금하네요. 아니면 본 글에서 말씀하시는 점은 그런 데서 오는 차이는 원 소스를 '의도하고' 변질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고, '의도적으로' 변경한 HDR은 문제제기가 되어야 한다 인지.... 사진으로 예시를 든 부분에서 HDR로 인해 생기는 차이가 앞서 제가 언급한 부분보다는 커 보이지만, 단순히 차이의 정도를 말씀하고 계신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여쭤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장마다 디스플레이(시각적 전달), 음향장치(청각적 전달)가 다 제각각이고 물리매체를 구입하여 시청하는 분들의 기기도 저마다 다른 환경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원작자의 '의도한 바 그대로' 전해지는 경우는 결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조악한 예시일지 모르지만, 일반 상영관과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시청자가 각각 받아들이는 정보는 청각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어느 쪽이 원작자의 의도가 배제된 경우인가요? 좀 더 '나아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점에서 기존 상영관이 나온 후 한참이 지나 개발된 아이맥스 상영관이 '왜곡'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제가 본 글의 논지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요? 혹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해선 그것을 어떻게든 쫓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건지 의문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 아니다의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개인이 만족하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 보다 제작자의 의도를 헤아리는 것이 우선인가... 이 부분이 애매하네요. 원작자의 의도가 감상의 절대적 기준이라면 자막도(물론 최근 오역 관련 문제가 많았습니다만) 없앤 채 감독이 기용한 배우의 육성 그대로만을 시청자가 전달받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리마스터(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등)에 대해 결사반대하는 팬들의 심정은 '원작자의 의도'보다는 '감상 당시의 내 경험'이 우선인 것 같은데 이 논쟁도 잠시 떠오르는 글이었구요. 블루레이에 입문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작성자 분의 게시글을 흥미롭게 읽어왔는데, 글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유달리 BD의 다음 세대에 대해선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부정적인 뉘앙스를 숨기지 않으신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아서요. 혹시 제가 어디선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건가 싶어 갑작스럽게 짧지 않은 댓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3
2016-04-14 16:27:06

좀 생뚱맞은 질문이긴 한데, VW1100 구입하신다면 BD 감상시 RC 기능을 끄고 보실 건가요? ㅎ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화면이 너무 세세하게 보여 희미하던 별도 뚜렷하게 보일지도?.. 새로운 기술은 우리의 의지에 상관없이(감독의 의지에 상관없이) 계속 나타날테고, 양쪽이 모두 적응해야 하는거라 봅니다. 그리고, 감독의 부재와 관계없이 고전 명작들이 새로운 매체로 다시 발매되는건 환영할 일이며, 만약 엉터리로 발매된다면 후작업을 한 컬러스트나 발매한 업체를 탓해야지 HDR을 탓할 순 없지 않을까요..

2
2016-04-14 19:03:2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DR 기술은 애초에 필름의 감도에 따른 dynamic range 가 제한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밝기가 0~100라면 필름은 이 중 10%만을 받아서 이미지화한다고 가정하면 이때 촬영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50~60 사이를 담을지 40~50 사이를 담을지요. 이게 감도와 노출을 정하는 단계고 이 범위를 초과하는 영역은 검게 나오거나 하얗게 나옵니다. 그런데 40~50, 50~60, 60~70 의 영역으로 촬영하고 합성을 하면 40~70 영역을 담을 수 있겠죠? 이게 HDR입니다. 그런데 화면에서 40~70 영역을 온전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태양의 강렬한 빛을 디스플레이에서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요. HDR이든 뭐든 디스플레이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색역의 범위가 명확합니다. 다만 HDR로 촬영된 소스인 경우 OLED와 같이 암부 표현력이 좋은 디스플레이는 밝은 장면과 함께 암부도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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