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오랜만의 감동, 블레이드 러너 UHD-BD : UBD의 홈런
북미 기준 9월 5일에 발매된 블레이드 러너 UHD-BD(이하 UBD)는, 발매 전부터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던 타이틀입니다. 기대는 당연히 새로운 미디어에 걸맞는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다였고 vs 불안은 구작 UBD들의 연이은 범타에 마음 상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발매 직전부터 주요 리뷰 사이트에서 상당히 평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구입은 어떻게든 시청한 뒤로 미루고 있었기에, 이번 감상도 자주 신세지는 지인의 힘을 빌렸더랬습니다. 헌데 그 지인이 말하길 '이것을 보는 동안은 군(= 너)도 아뭇소리 못할 걸세.'라고 운을 띄웠는데, 과연 그렇더군요. 어느정도였냐면 바로 직전에 본 가오갤2 UBD를 본 기억을 깜빡 잊어버렸을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이 화면의 스크린샷을, 그 느낌 그대로 찍을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아쉬웠고.
UHD-BD 듀얼 레이어(66G), 2160/24P(HEVC), 화면비 2.40:1, HDR10
최고 품질 사운드: 돌비 앳모스
* UBD 본편 + BD 본편 및 서플 + 서플 전용 2DVD의 총 4Disc 판본
- 영상 퀄리티
a. 마스터에 대하여:
UBD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블레이드 러너 BD는 2007년 12월에 처음 발매되었습니다. 워너는 BD 로드맵에 가속을 걸기 위해서라도 이 유명한, 그리고 매체의 발달사와 함께한 영화를 당시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투입하여 BD화했는데... 비록 VC-1 코덱에 비트레이트도 17M 남짓이었지만, 그때 본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무리도 아닌 것이 이 BD는 2000년부터 7년의 시간을 들여 35mm 네거 > 4K 스캔 & (일부 특수촬영 부분의)65mm는 8K 스캔한 디지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나온 모든 블레이드 러너 관련 미디어와 영상은 이 데이터를 근간으로 하니까요.
문제는 이때 너무 시간과 비용을 들인 탓인지, 블레이드 러너 관련 미디어는 2007년 초판 BD, 2008년에 나온 25주년 박스(꽤 유명한 철제 가방에 든 한정판), 2011년 파이널 컷 BD까지 계속 이때 만든 데이터를 BD화 한 마스터로 주구장창 만들었다는 것. 이 때문에 발매 당시엔 충격이었지만, 2011년 파이널 컷 BD에선 슬슬 다른 우수한 35mm 필름작 BD들과 비교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역시도 2007년에 느낀 감동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파이널 컷 BD는 좀 의무감에 시청한 것이 사실이고.
이번 UBD 역시도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해당 데이터를 사용했음이 짐작되는데, UBD에서도 필름의 일부 거스러미가 BD와 동일하게 보이는 것도 그렇거니와 워너가 이 UBD의 마스터에 대해 특별히 홍보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상의 질은 BD에 비해 대폭 다르며,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b. 확연히 눈에 띄는 화면 다이나믹스와 훨씬 섬세해진 계조:
블레이드 러너 UBD에서 가장 눈에 띈, 그리고 감동적인 변화는 명부와 암부 모든 곳에 걸쳐 다이나믹스 확장이 아주 쉽게 체감된다는 것 & 그러면서도 계조표현력이 대폭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BD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이미 '내가 보던 화면이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으실 듯.(스피너가 오가는 이 오프닝 장면은 65mm 촬영분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영화 전편에 걸쳐 자주 비치는)음습한 거리는 더욱 음산해지고, 때때로 치는 번개를 비롯한 광원들은 더욱 밝게 빛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고선 노이즈 등 계조적인 약점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인상적인 점이고요.
c. 선명하고 진한 발색감과 이제야 제대로 풀어져 나오는 디테일:
여기에 화면의 발색감 역시 상당히 진전되었고, 결정적으로 BD에는 자체 해상도 스펙과 코덱의 불리함으로 미처 다 풀어놓지 못했던 8K/ 4K 스캔의 해상감까지 가세하여, 약간 과장 보태서 개봉 당시 필름 상영관에서 보는 게 이랬을 것이라는 착각- 전 이 영화를 필름 상영관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마저 불러일으킵니다. 이스트먼 코닥 필름 특유의 붉은 톤까지도 유감없이 재현되는 건 보는 사람에 따라선 쓴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BD에선 전체적으로 옅은 느낌의 발색이 약간 아쉬웠던 것을 생각하면 이 UBD의 화면은 가히 Two Thumbs Up입니다.
BD에서 못다 내보낸 디지털 마스터의 파워를 등에 업은 이 UBD의 화면은, 그래서 그 특유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공기감과 & 계조 및 해상도의 개선으로 얻은 화면의 깊이에 따른 입체감 역시 훌륭. 필름 상태가 아직 양호했던 시기에 디지털 스캔을 완료한 것이 천운이라 할 만큼, 확장된 명암을 인상적으로 담아내면서 정말로 현 극한의 디지털임에도 마치 필름을 재현한 것 같은 화면을 보여줍니다. 이 역시도 현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극한인 OLED TV에서 볼 때 정말 극명하단 것 역시 하나의 아이러니겠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직 HDR10 을 완벽히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4K 프로젝터들로 본 화면도, 그 나름의 맛을 가진다는 점. 특히 어딘가 안개와 증기가 자욱히 낀 듯한 애매하고 흐릿한 인상의 블레이드 러너 특유의 화면감은, 개인적으론 광량이 충분치 못한 프로젝터HDR 로 봤을 때 더 제 맛이었습니다. OLED에선 지나치게 명확하게 나와서 오히려 옛 영화 같지 않았던 점들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더군요.)
d. HDR10의 의문, 그러나...
흥분의 도가니와 함께 UBD 재생을 마치고, 지인과 논의했던 '이 UBD의 발목을 잡았던 점들'.
- 우선 이 UBD에 담긴 HDR10을 과연 정확하게 재생하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의구심과 추구감이 든다는 것 & 2007년 디지털 데이터화 완료 당시엔 HDR10 그레이딩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 데이터에 후속적으로 HDR 그레이딩을 건 것인데, 이 화면 역시 스콧 감독의 철저한 감수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 정도.
- 여기에 40Mbps 정도의 평균 비트레이트도 약간 마뜩치는 않습니다. BD가 VC-1 코덱의 17Mbps에 불과했지만 당시는 싱글 레이어 BD가 대세였던 시기라 그렇다치고, 지금 이 대작을 이 정도 비트레이트로 영접한다는 것은...
그러나 이 UBD의 영상을 보는 동안은, (현실에서도 익숙한)거리의 네온 사인이 뿜는 불빛, 데커드가 마주한 아무렇게나 방치된 석고상들의 질감들을 보노라면... 이 영화에서 스콧 감독이 나타내고자 했던 것들- 디스토피아의 세상, 데커드의 고뇌, 인간의 의미 등등- 을 가장 근사치로 완전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무튼 현재로선 이 UBD뿐이라고 단언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 이상의 것은 아마 나오기 어려울 것 같고요. 이제 와서 필름 네거를 다시 스캔하고 돌비가 손을 댄다한들, 세월이 열화시킨 필름 자체의 힘이 다 따라올 수 없을 것이기에...
- 음성 퀄리티
블레이드 러너는 BD 시기에도 당시 최신 포맷이었던 돌비트루HD(5.1ch. 24/48)를 수록하였고, 이 역시 2007년 당시 대단한 감흥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UBD에선 현 최신 포맷인 돌비 앳모스를 수록.
a. 마스터에 대하여:
블레이드 러너의 디지털 사운드 마스터는 영상과 마찬가지로, 작업 당시 상태가 가장 양호했던 오리지널 6트랙 소스(블로우 업용 70mm 필름에 프린트 된)를 당시 최신 기술로 리믹스한 것입니다. BD에선 이 리믹스 데이터를 근간으로 돌비트루HD 믹스. UBD에서는 역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나, 영상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데이터 단계에서 앳모스 믹스를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b. 인상적인 퀄리티 업:
블레이드 러너 UBD의 앳모스 트랙은, 영상만큼의 충격과 흥분을 안겨주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향상감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구판 HD사운드 > 신판 앳모스에서의 변경은, 주로 객체기반포맷의 장점에 근거한 정확한 위치감, 보다 향상된 공간감 정도로 어필하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UBD의 경우엔, 이쪽이 오히려 뒷전이고 그냥 사운드 자체의 모든 퀄리티가 전부 향상.
간단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BG는 물론이고, SE의 디테일마저 너무 좋아져서 (인위적으로 집어넣은)노이즈까지도 생생하게 재생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소리의 디테일감이 속속들이 한올한올 뽑혀나오듯이 퀄리티 업이 체감되며, 이는 거의 하이파이 소스단의 DAC을 바꾼 수준의 퀄리티 향상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실제 장면의 체감차를 논한다면, 비오는 장면에서 UBD쪽이 훨씬 굵고 세차게 내리는 것으로 체감된다고 하면 와닿으실런지?
c. 많지는 않지만, 객체기반 사운드의 재미도 아울러 추구:
지금보면 약간 유치하지만 당시로선 최신 SF 장르의 작품답게, 블레이드 러너는 SE를 비롯한 사운드 연출에 상당히 미래지향적인 느낌이 있었고 여러가지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우수한 것은 정확한 위치감을 통해 더 살려낸 소리 방향성. 말그대로 오버헤드 채널을 요란하지 않지만, 적재적소에 잘 써준 것이 인상적입니다. 특히나 비오는 장면 같은 건 원래 앳모스 데모 디스크에도 포함될만큼 돌비가 장기로 삼는 부분인데, 이 UBD의 앳모스 사운드도 전술한 사운드 자체의 디테일 향상과 합쳐져 정말 폭우 속에 앉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절대적 장점.
그리고 대사의 방향성, 입체감, 명확함도 역시나 인상적. 당시엔 아직 젊다할 수 있던 해리슨 포드 씨 특유의 음색까지도(사실 전 아직도 양 지운 씨의 더빙 목소리가 더 익숙하긴 합니다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UBD의 돌비 앳모스는 35년 전으로 시청자를 거슬러 올라가게 해주는 수준입니다.
d. 가장 효율적인 블레이드 러너 사운드의 결정판:
결국 이 UBD를 통해 재생되는 스코어를 듣고 있노라면- 오디오파일들이 그토록 추구하던 사운드의 '향상'이 무엇인지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수많은 돈, 시간, 때로는 비과학적 미신이란 눈길도 받아내며 추구하는 사운드의 '향상'... 그리고 영화적 '재미'까지, 이 UBD는 그다지 큰 돈, 시간도 안 들고 BD > UBD란 명백한 디스크 차이 덕에 과학적이란 소리도 들어가며 이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VHS > LD > DVD > BD를 거쳐 계속 들어온 익숙한 반젤리스의 스코어와 대사, SE들을 UBD로 다시 들으면서 또 한번 레벨 업을 경험한다는 것... 정말로 디지털의 승리라 할 만합니다.
- 결론
이 UBD에 바치는 찬사는, 냉정하게 보면 VC-1 코덱의 초판에서 10년 가까이 발전이라 할 만한 게 없었던 BD의 탓도 있습니다. BD가 한 2년전 쯤, 최신 4K 리마스터 사양! 이라며 등장했다면, 이 UBD에서 받은 충격이 좀 약해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20년만에 나온 천재 투수!' 가 아니라 '2년 전에 제구 좋은 160km 구속의 투수가 나왔는데, 이번엔 그 속구 그 제구에 변화구도 잘 던지는 투수가 나왔어...' 하면 감이 전혀 다르듯이.
그러나 상대 투수가 대단치 않다하여 대형 홈런을 친 타자를 깎아내리지 않듯이, 이 블레이드 러너 UBD는 명백하게 상찬받을만한 퀄리티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제 논조를 계속 따라오셨던 분이라면 익히 아시듯이 전 UBD에 대해 상당히 냉정한 시각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만, 서두에 언급한 지인의 말처럼 이 UBD를 보는 동안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알던 (BD까지의)영상과 음성이 아닌, 30년 전 필름 영사관에 앉아 있었다면 이러했을까- 하는 감각이 밀려왔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전 지금까지 UBD를 딱 한 타이틀만 추천한다면? 이란 문의를 받는다면 늘 '레버넌트 UBD'를 꼽았는데 이젠 이 블레이드 러너 UBD도 끼우겠습니다. '디지털 촬영작은 레버넌트, 아날로그 촬영작은 블레이드 러너'올시다. 하는 추가 설명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요. 그만큼 인상적이고, 그만큼 가치가 있게 나온 디스크입니다. 이 디스크 같은 수준의 UBD가 앞으로도 나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과도기나 비용의 문제를 모두 무시하고 지금 당장에라도 UBD 재생 시스템을 적극 권하고 싶을 정도로, 블레이드 러너 UBD는 정말로 멋있었습니다.
PS:
이 위대한 작품과 이 작품을 (가장 근사치로 담아냈다고 생각되는)UBD에 감히 '평가'란 말을 붙일 수 없어 본문에선 '평가'란 말을 배제하였습니다.
혹시나 지금이라도 이 작품에 대해 보다 속속들이 알고 싶으신 분이라면, 텍스트로는 김 정대 님의 칼럼: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dpinfo&wr_id=43358 을 / 영상으로는 단연 여기에서 소개한 블레이드 러너 UBD를 권합니다. 북미반 등에 한국어 자막도 수록되어 있으며, 정식 발매도 예정되어 있(다곤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서 약간 불안은 한 상태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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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발 사주고 싶어서 해외판 안사고 허벅지 찔러가며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좀 팔아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