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게] 빙과(氷菓) 국내 정식 발매 BD 리뷰
* 본 빙과(氷菓)의 국내 정식 발매 Blu-ray Disc(이하 BD) 리뷰에는, 아직 발매 예정인 파트의 언급도 포함(내용 스포일러성이 아닌, 타이틀 관련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제가 본 BD의 제작에 관여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블루레이 게시판에는 BD와 일본 애니메이션 양쪽 모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계시기에 발매 전에 살짝 말씀드리는 것을 재미있어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이니, 혹시 탐탁지 않으신 분이 계시더라도 고려해 주시어 널리 이해 부탁드립니다.^^
현재 일본 미스터리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요네자와 호노부 씨는, 2001년 카도카와 학원 소설 대상에 응모한 소설이 영 미스터리&호러 부문 장려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이 데뷔작의 제목이 ‘빙과’이고, 이 제목이 곧 여기 소개하는 애니메이션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소설 ‘빙과’를 시작으로 2018년 현재 총 여섯 권의 소설이 출간(여섯 권 모두 국내 정식 발매됨.)된 ‘고전부 시리즈’는, ‘청춘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아프지만도 않다.’는 공통 주제 하에 네 명의 고등학생을 주역으로 하여 소소한 일상 속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하지만 애니메이션 빙과도 이 점은 변함없습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어려웠다지만, 그래서 꽤 독특한 애니메이션이 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미스터리라 해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청춘의 명암을 다룬다 해서 엄청나게 판타스틱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고등학교 시절에, 어쩌면 이 소설과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예를 들어 제6화 ‘대죄를 범하다’에 나오는 이야기 같이.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주역 네 명은 책상에 둘러 앉아 별달리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소설이, 그리고 이런 소설이 원작인 애니메이션에 무슨 재미가? 그런데, 짜잔. 있습니다, 그런 재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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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는 재미
총22화 + OVA 1화로 구성된 TV 애니메이션 ‘빙과’는, 케이온 등으로 대표되는 많은 히트작을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쿄토 애니메이션’(이하 쿄애니)의 작품입니다. 그 쿄애니 특유의 화사한 그림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단한 내면적 기반을 가진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애니메이션 ‘빙과’는 소설과는 또 다른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 ‘그림’이란 내실
본래 쿄애니의 작화 레벨은 일본 내에서도 유명한 수준이었고, 최근 넷플릭스 배급작 ‘바이올릿 에버가든’을 통해 더 많은 분들에게 이것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 쿄애니의 작품 중에서도 수위급의 작화로 꼽히는 빙과는, 그냥 미려한 주역들의 얼굴 생김새로 미는 게 아니라 다음의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 원작의 이야기를 이해한 후, ‘영상으로 번역하고 표현한’ 구성
• 주역들뿐 아니라 엑스트라 캐릭터들의 작화마저도 안정적으로 표현된 그림
• 애니메이션 속 인물도 ‘연기’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애니메이터들의 노력
상당히 정적인 내용인 원작 소설을 가지고 ‘뭔가 보여줘야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이 ‘빙과’란 애니메이션에는 쿄애니란 집단이 그때까지 쌓은 노하우가 거의 다 투입되었고 그래서 잘 뜯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문에서 언급한 제6화는 a. 장소의 변화도 없이 b. 러닝 타임 25분가량을 c. 네 학생이 어떤 하나의 일에 대해 해석하고 추론하여 그 원인을 이끌어내는 내용입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아주 정적인 분위기의 이 단편 에피소드를, 애니메이션에서는 톡톡 튀는 부분을 입혀 각색해 놓았고- 그 결과 느긋하지만 유쾌한 애니메이션만의 모양새를 갖게 됩니다.
- ‘BD의 영상’이란 외형
그리고 이 애니메이션의 Blu-ray(이하 BD)는 이러한 빙과의 ‘보는 재미’를 가장 완전하게 체감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방영 당시에도 찬사를 받았던 작화 퀄리티를, BD 수록을 위해 한층 세세하게 체크 수정
• 2012년 발매 당시 뿐 아니라 현 시점에도 일본 TVA 최상급 수준의 영상 수록 퀄리티
우선 작화 체크 및 수정은 거의 숨은 그림 찾기 수준이라 이걸 따로 정리한 영상을 보는 게 더 빠르므로, 흥미가 있으신 분은 아래 영상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다음, 빙과 BD의 영상 수록 퀄리티는 2018년 현재까지 발매된 모든 재패니메이션 BD들 중에서도 단연 수위급으로 손꼽힙니다. 일본에서 BD/ 1080P24 해상도의 제작 관련 노하우와 기자재의 구비가 완료된 이후에 나온 ‘완성형 재패니메이션 BD’ 1세대라, 당시 이 BD 제작에 관여한 업체들 모두가 상당한 공을 들였으며 그 덕에 지금 봐도 그 화질은 절대적인 채점 기준에서 별로 모양 빠지는 부분들이 없습니다.
특히 ‘빙과’의 ‘빙과편’에서 ‘빙과’의 비밀이 밝혀지는 제5화의 영상미나 연출의 묘는, TV 방영판이나 스트리밍 서비스 퀄리티로는 전달의 깊이가 달라지는 부분들이 산재합니다. 5화 초반의 비가 내렸다 개인 공기감 및 그에 연관되는 주인공들의 심리 전달, 5화 중반에 그 시점의 이야기와 심리를 모두 함축하여 전달하는 찻잔 수면의 미묘한 파동, 5화 후반의 조용히 눈물 흘리는 주역 캐릭터의 모습과 그 배경의 오묘한 조화감, 같은 건 모두 BD에서 가장 완전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빙과 BD는 그 작화의 아름다움과 우수한 화질의 전달력, 외형과 내실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이를 통해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이 가진 ‘보는 재미’를 가장 완전하게 전달하고 있고, 이것은 이 마스터를 일본과 동일한 스펙으로 수록한 국내 정식 발매 BD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바입니다.
2. 듣는 재미
- 빙과의 ‘음악’
이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담당한 타나카 코헤이 씨는, 일본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음악가입니다. 어떤 면에서 유명한가 하면, 1980년대부터 수많은 장르와 작품을 넘나들며 여러 음악을 작곡한 베테랑 작곡가로요.
개인적으로 이 분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렇게 많은 곡을 작곡하면서도 각각의 창작물마다 거기 담기는 분위기에 가장 적합하다 싶은 음악을 빚어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타나카 씨는 음악으로 자기 주관을 드러낸다기보다, 음악으로 작품을 떠받쳐주고 자신은 조용히 무대 뒤에서 웃음 짓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개중 ‘빙과’의 음악에 대한 타나카 씨의 이야기는 일본 BD 한정판 동봉 북클릿에 권별로 실렸고, 국내 정식 발매 BD의 가이드북(전권 예약 한정 특전)에도 모두 번역 수록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가이드북을 참조하셔도 됩니다만, 여기에서 그 골자를 간단히 옮겨보면...
• 재미있고 흔치 않은 소재이지만, 영상화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확고한 주관을 가진 타케모토 감독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제1목표.
• 원작자 요네자와 씨가 요청한 클래식 음악들(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과 G선상의 아리아, 포레의 시칠리아 무곡, 베토벤의 월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구현할지가 제2목표.
• 원작 소설과 그것을 영상으로 각색한 애니메이션이 품고 있는 주제에 대하, 타나카 씨 개인의 느낌까지 섞어 OST로 완성한 것이 최종 목표.
이런 순서를 거쳐 완성된 TVA 빙과의 음악들은, 타나카 씨의 지금까지의 곡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주장이 강하여 음악 단독만으로도 인상에 남는 그런 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상과 함께 보면, 그 영상이 보여주어 말하고자 한 이야기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음표의 언어’를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실제 악기와 연주자를 통해 연주되고 수록된 ‘생음악’이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즐겁습니다.
- ‘빙과 BD’의 소리
이러한 타나카 씨의 음악들은 물론, 인물들의 대화가 작품을 끌고 가는 드라마 장르에서 중요한 대사의 전달, 그 영상에 실체를 더하는 효과음들- 모두 빙과의 BD를 통해서 가장 완전하게 전달되는 것은 영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말하자면 이 BD를 통해 듣는 소리가, 가장 완전한 빙과의 ‘듣는 재미’를 충족시켜 줍니다. 요즘 일본 TVA는, 어차피 디지털 평판 TV의 부속 스피커가 무슨 제대로 된 ‘음악’과 ‘음질’을 전달하기에 한참 모자라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BD 발매조차도 좀 건성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빙과의 BD는 그렇지 않습니다. ‘BD’라는 매체에 걸리는 기대를 잘 이해한 제작사의 노력으로, 그 투명한 전달력을 최대한 성의 있게 수록한 것이 장점.
조용하고 평범하게 들리지만 속 깊은 빙과의 이야기들처럼, 화려하게 울리지는 않아도 우아하고 우수하게 수록된 이 빙과 BD의 사운드를, 정식 발매 BD를 통해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식 발매 BD에는 다른 소리가 하나 더 들어 있기도 하고요.
- 빙과 ‘정식 발매 BD만의’ 소리
빙과의 정식 발매 BD 속에 든 다른 소리는, 한국어 더빙입니다. 이건 한국 시청자들만이 가장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듣는 재미이기도 하겠고.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주역 4인방이 대화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라서, 그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질적으로는 충분히 음미할 필요가 있고 딱히 양이 적지도 않습니다. 소소한 미스터리라도 가볍든 무겁든 머리 회전을 요할만한 수수께끼도 등장합니다. 이 작품이 담은 이런 모든 것들을 한국어를 쓰는 시청자에게 가장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한국어 더빙이 가진 장점.
먼저 발매된 vol.1에 포함된 제1–6화를 통해 선보여진 대로, ‘빙과’ 정식 발매 BD 속 한국어 더빙은 그 녹음과 수록 모두 가능한 한 성의를 다해 제작되었습니다. 담당 성우분들의 진지한 연기, 적절한 번역과 때로는 로컬라이징 번안- 특히 vol.3에 수록되는 제13-17화 사이에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도 다수 가미된 대본, 깔끔하고 좋은 퀄리티의 녹음 및 수록이 이를 보조하는 동시에 증명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도 이 한국어 음성 덕에, 2012년 방영 당시부터 접했던 이 작품을 다시금 신선하게 맛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상의 이유로 빙과의 BD, 그 정식 발매 BD가 담은 소리는 ‘듣는 재미’ 면에서도 만족스럽습니다. 적어도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긍정하는 분께는, 멋진 선물이 되는 ‘소리’인 것은 확실합니다. 빙과 BD의 음질은, 화질과 함께 작품을 견인하는 든든한 두 다리로 꼽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말 더빙을 통해, 앞서 말씀드린 쿄애니 특유의 ‘연기’- 캐릭터들의 세세한 움직임, 표정 등-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빙과 정식 발매 BD는 ‘보는 재미’까지도 두 배로 견인하는 ‘듣는 재미’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3. 읽는 재미
세 번째로 꼽고 싶은 바는 ‘읽는 재미’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무엇을 읽느냐 하면-
- 소설을 각색한 영상 언어
- 한국어 자막
추리 미스터리라는 오블라토로 감싼 청춘의 약을 삼키는 것이 주 내용인 원작에서는, 추론의 답 이외에는 제시되지 않습니다. 이 열린 감각이야말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특징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선 그래선 곤란한 부분들도 많기에 제작자들 그나름대로 번역/ 해석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고 반영한 에피소드들이 또 다른 ‘돋보임’을 줍니다.
요네자와 씨가 고전부 시리즈의 캐릭터 인물상을 정립하기 위해 참고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예로 들면, 거위 배에 보석을 숨겼던 범죄자를 그냥 놓아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빙과’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이야기가 가진 씁쓸함과 그 한편의 따스함과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 감각을 어떻게 영상으로 ‘써내려’ 갔는지, 어떻게 써내려 갔기에 이 애니메이션이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을 수 있었는지 ‘읽어’보는 것도 상당한 재미입니다.
그리고 정식 발매 BD에서 이 ‘영상의 독서’에 도움을 주는 한국어 자막, 에도 그 번역과 감수 및 검토에 걸쳐 충분히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그 감수 및 검토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제가 말하기도 뭣하지만, 그래서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번역자분, 우리말 더빙 작업을 담당한 PD분, 그리고 저도 깊이 음미한 이 이야기를, 모든 시청하는 분들께도 되도록 충실히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두들 제작에 임했으니까요.
모든 분들이 100% 만족하는 자막 같은 건 불가능하지만, 자막 번역에 담긴 열의가 모든 분들께 한 자락 정도 비칠 만큼은 열심히 만든 한국어 자막을 통해- 이 ‘빙과’라는 애니메이션의 영상을 보다 충실하게 읽고 그 재미를 체득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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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스쳐지나간 사람의 본심을 알고 싶어 조사하고 추리하는 마음
그 후에 무언가를 함부로 말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것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명을 받는 마음
이러한 마음들이 좋다면, 이 작품을 봐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작품의 가장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는 제18화는, 이러한 마음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이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일본 심야 TVA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빙과’란 작품은 처음엔 작은 수수께끼 같은 추론에 매달리고(이걸 보조하는 게 원작의 힘), 다음엔 주역 아이들의 심리와 그 움직임에 매달리고(이걸 보조하는 게 쿄애니의 실력), 영상을 보면서 그 감각들을 곱씹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이걸 보조하기 위한 BD 퀄리티)
교내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참조한 메모지 맨 아래에 ‘호박’이란 단어를 쓴 이유
원작 소설에서는 알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선 그 이유를 생략한 구상
생략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이러한 부분들까지 마음에 둘 수 있다면, 이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시간이 충분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꼭 모든 에피소드를 보지 않더라도, 국내에 정식 발간되어 있는 원작 소설을 읽어보시고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에피소드 부분만 택해 BD의 영상을 통해 또 다른 맛을 취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런 분들을 돕기 위해, ‘선배’라는 호칭 하나 때문에도 번역에 관여한 사람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며 흘려보냈던 모든 시간들이 ‘빙과’의 정식 발매 BD에 오롯이 담겼습니다.
느긋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을, 여기 소개한 정식 발매 BD로 만나 보시는 것은 그래서 특별한 경험이 되실 것입니다. 현재 vol.1(Disc 1-3. 제1-6화 수록)이 발매된 빙과의 정식 발매 BD가, 마지막 vol.4 패키지와 기타 동봉품들까지 모두 멋진 모습으로 나와 주기를 그래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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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세한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구매에 도움이 되었네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