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기] 버닝 (2018)
2018년 5월에 개봉한 이 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헛간을 태우다'에서 모티프를 가져 온 작품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을 모두 본 분들이라면 이미 아시듯)그럼에도 원작과 이 영화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고, 그래서 사실상 또다른 독립된 작품으로 즐기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버닝'이며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키워드로 '청춘'과 '미스터리'를 제시했지만 그 근원에는 세상과 삶에 대한 분노가 있는 이 영화는, 그러면서도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해 볼만한 여러 테마를 가지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도록 잘 짜여진 정교한 영상 예술이었다- 라고 전 관람한 날 일기에 써놓았더랬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이러한 큰 틀에서의 감상조차 하나로 정의되지는 않을 것이고, 이 창동 감독은 아마도 그것마저 의도했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제가 이 영화의 정식 발매 Blu-ray(이하 BD)를 기다렸고 소개하게 된 이유는 저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이긴 합니다.
1. 디스크 스펙
BD-ROM 듀얼 레이어(50G), 전체용량 40.7G/본편용량 38.4G, BD아이콘 있음
영상스펙 1080P24(AVC)/ 화면비 2.39:1/ 비트레이트 29.92Mbps
음성스펙 DTS-HD MA(24/48) 한국어 5.1ch
(* 코멘터리 오디오 스펙 DTS-HD MA(16/48) 한국어 2.0ch)
자막 한국어, 영어 (모두 Off 가능)
참고로 (인조인간을 통해)국내 정식 발매된 버닝 BD는, Well Go USA에서 발매한 미국반에 비해 본편의 영상 평균 비트레이트가 더 낮습니다.(미국반은 34.98Mbps)
2. 서플
국내 정발된 버닝 BD에 수록된 서플은 아래와 같습니다.
- 제작기 영상 (1080i, 4분 9초)
- 캐릭터 영상 (1080i, 2분 23초)
- 티저 예고편 (1080P, 54초)
- 메인 예고편 (1080P, 1분 18초)
+ 본편 오디오 코멘터리: 이 창동 감독x이 동진 영화 평론가
영상특전의 경우, 제작기나 캐릭터 영상도 양으로나 질로나 '홍보 영상'의 궤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연기한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의 멘트를 열거해 주는 것조차 시간에 쫓기는 느낌. 더구나 영화 본편의 장면을 담은 부분과 (위 스크린샷처럼)서플 전용으로 찍은 화면 간의 화면 퀄리티 차이도 크게 나는 등, (BD용으로)완벽히 정제되어 나온 느낌은 아닙니다. 워낙 짧으니 그냥저냥 포기하고 보는 셈.
대신 오디오 코멘터리는 상당히 알찬 편이라, 이 BD의 서플 점수는 사실상 코멘터리 지분이 95%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래 구체적으로 서술하겠지만)제가 정발 BD에서 주저 없이 추천할 포인트는 이것 정도인 것 같습니다.
3. 영상 퀄리티
(상기 스크린 샷은 서플 중 한 장면)버닝은 Arri Alexa XT Plus 카메라로 찍은 3.4K 상당의 영상을 2K DI로 피니쉬한, 전형적인 요즘 시대 디지털 촬영 영화입니다. 동시에 이 창동 감독의 모든 작품 중 첫 디지털 촬영작이기도 하고.
홍 경표 촬영 감독이 밝힌 바에 따르면, '버닝'은 인공 광원 없이 오로지 자연광으로만 찍은 작품입니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디지털 촬영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편이긴 합니다. 밝은 곳에서 보이는 인물이나 사물의 디테일과 해상감도 제법 쨍한 편이고요.
하지만 명부와 암부 모두 계조 상태가 좋지 않고, 특히 이런 장면들에서 자연광 그림이라 하기엔 위화감이 제법 드는 모양새가 나오는 건 마뜩치는 않습니다. 그림의 명암 다이나믹스가 좁아서 입체감이 살지 않으며, 어딘가 눈에 필터 한 장을 끼고 보는 듯한 약간 뽀얀 감이 있는 것은 덤.
(정식 발매 BD 스크린 샷, 블닷컴 스샷과의 비교를 위해 1280x720 리사이징)
(블루레이 닷컴의 미국 발매반 스크린 샷)그래서 문득 블닷컴에 있을 미국 발매반과 비교를 해보니 이러합니다. 두 그림을 다운 받아서 A/B로 보시면, 제가 그 경향차를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정식 발매 BD 스크린 샷, 블닷컴 스샷과의 비교를 위해 1280x720 리사이징)
(블루레이 닷컴의 미국 발매반 스크린 샷) 블닷컴 쪽의 스크린 샷 취득 방식은 모르겠지만, 굳이 양측을 비교하려 하지 않아도 정발 BD는 a. 암부를 더 쉽게 보이게끔 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 b. 자연광 촬영이었던 원 촬영 소스가 그걸 제대로 받쳐주질 않으니 > c. BD화 과정에서 인위적인 조정을 세게 가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에 암부의 노이즈 처리 상태도 깔끔하지 않은 편이라, 결국 전반적으로 탁한 영상이란 인상을 갖게 만듭니다. 그나마 밝은 그림들이 (상대적으로)깔끔하게 느껴져서 완전한 추락은 막아내지만, 종합해 보면 어딘가 굉장히 '오래된 맛'이 나는 그림이 이 정발 BD의 특징이라면 특징.
앞서 언급한 홍 경표 촬영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버닝'은 특별히 색을 보정하지 않고 원본 소스 그대로 + 약간 매만진 정도라 합니다. 하지만 정발 BD의 그림은 글쎄, 명암의 장난(?)으로 인하여 색조도 탁하고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억눌린 느낌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 분(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이 감수하여 의도한 그림이었다면, 개인적으론 그것도 창작자의 권한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겠지만 과연 어떨려는지? 단지 현 BD의 그림이 감상 내내 화질면에서 흥이 나는 그림은 아니었다는 것만은 덧붙여둡니다.
4. 음성 퀄리티
정발 버닝 BD에는 24비트 스펙의 DTS-HD MA 멀티채널(5.1ch)이 단독 음성 포맷으로 수록되었습니다.
스펙은 준수한 편이지만, 일단 대사 음성은 (평범한 한국 영화들처럼)꽤 탁한 편. 일례로 위 장면에서 나오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 같은 경우 TV 드라마에서 익숙한 부자연스럽게 또렷깔끔증폭시킨 그 소리가 그리울(?) 정도로, (토종 한국 사람인 제가 들어도)한국어 자막이 없으면 아주 쉽게 알아듣기는 좀 어렵습니다.
이는 종종 리어 채널에 할당되는 생활 소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평소에 들리는 소음이라든가 지나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채록한 스타일인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 소리들도 그다지 깔끔하게 울리는 것은 아닙니다. 좋게 말해 평범한 한국 영화고, 나쁘게 말해 늘 그런 느낌.
상당히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가 빠지는 느낌의 BG는 그 역할에 충실하게 울립니다만, 이쪽도 어딘가 좀 답답한 감. 효과음을 포함하여 몇몇 (의도인지 아닌지 애매하게)노이즈가 살짝살짝 거슬리는 부분들은 일단 제껴두더라도, 전반적으로 '깔끔빠릿한' 사운드와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쪽도 좀 '오래된 맛'이 있고, 이것이 영상처럼 (좀 일부러 매만져서 나온)오래된 맛이란 느낌이 덤으로 낍니다.
그래도 굳이 장점을 들자면 이 영화가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어떤 '분위기'만은, 어떻게든 서라운드 음상 공간 안에서 느끼자면 못 느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겠는데... 이런 스타일을 긍정하고 듣는다면 조금 완화될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정도의 음질은 아닙니다.
하기는 영화관 상영 당시에도 '요즘 영화스럽게' 울린 사운드는 아니었으니, BD가 그것을 충실하게 재현했다고 하면 제 개인적으론 긍정할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분들이 어떨지까진 제가 강제할 수 있는 건 아니고.
5. 총평
본문에도 언급했듯이, 국내 정식 발매된 버닝 BD의 영상/ 음성 퀄리티는 AV면에서 사람을 막 흥분시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부터가 그런 타입이 아니니까 잘 맞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보는 내내 이보다 조금은 더 '평범한 정도로 좋게' 뽑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정돈 들긴 했네요.
더불어 이 BD는 발매 직후에 이미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표했듯이, 최근 익숙해진 고급스런 패키지에 비하면 상당히 단촐하게 발매되었고 코멘터리 이외의 서플은 양과 질 모두가 부족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글쎄... '소장'을 바라는 유저들을 만족시킬 부분이 부족한 건 부정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마 모두 인정하실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친절하고 대중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여기에 본편 (내용) 외에 사실상 눈길을 끌 요소가 영 부족하다 싶은 정식 발매 BD는, 이 매니악한 디스크 수집 시장에서 어찌 보면 영화만큼이나 친절하지 않은 상품이다 싶고.
다만 제 생각에 이 영화의 이면에는, 그 어려움을 관객에게 강요하기보다 마치 부드럽게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하니' 하는 듯한 감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저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이 정식 발매 BD도 그런 관점에서 감상한다면 긍정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본 감상문 내내 제가 뭔가 애매한 스탠스인 것도, 그런 영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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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클은 아니고, 홍영표가 아니고 홍경표 촬영 감독입니다. 정성스런 후기 잘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