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기] 최고의 메이크업은 역시 젊음인가. '천장지구'
오늘 '잭 스나이더 감독판 저스티스 리그' 블루레이는 무사히 예약하셨는지요?^^
저는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오랜만에 '첨밀밀'을 시청한 뒤로 요즘 홍콩영화 삼매경에 빠져있습니다.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덕에 재미있는 홍콩영화들을 많이 만났던 추억이 있습니다.
대학가 동시상영관의 퀴퀴한 냄새와 지저분한 시트도 그 당시엔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천장지구(1990, 원제는 '천약유정'이지만 우리끼린 천장지구로 합시다 ^^) 일반판 블루레이는 화이트 케이스에 풀슬립 구성이고 종종 특가로 나오기도 합니다.
블루레이의 화질과 음질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천장지구 물리매체 중에서는 가장 우수하겠지만 제가 가진 블루레이 중에서는 가장 블루레이 답지 않은(?) 퀄리티입니다.
원본 소스의 한계인데 필름의 보존상태도 좋지 않은데다가 복구에 투자를 하지 않은 탓인지 군데군데 스크래치가 보이는 화면도 눈에 띕니다.
(만일 보유하신 TV 화면 사이즈가 크다면 좋지 않은 화질이 더 부각될 수도 있습니다 ^^;)
대사나 배경음이 없는 씬 중에 아예 무음이 되는 구간도 있어서 순간 오디오가 고장인가 싶을 정도로 뻘쭘해질 때도 있습니다.ㅋ
오디오는 2채널 광동어만 수록되어있어서 북경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초라한 퀄리티가 이 영화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이들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을 듯 합니다.
최고의 메이크업은 역시 젊음이군요. 20대의 유덕화는 화려한 용모를 자랑합니다. 보통 남자들이 나이들면서 후덕해지고 군살이 붙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덕화는 최근까지도 상당한 비쥬얼을 유지하고 있어서 연예인 중에서도 발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아이돌같이 예쁘장한 외모의 남자 배우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임을 감안할 때 유덕화는 선굵은 홍콩 미남배우 계보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천장지구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가 모터사이클이죠. 본격적인 바이크 레이싱을 다룬 '열화전차'보다 천장지구의 바이크씬이 개인적으로 더 멋졌습니다.
유덕화가 타고 나오는 바이크는 1985년에 출시된 스즈키 RG500입니다. 4기통 모델이라 매니폴더가 엔진에서 네 줄로 나오는데 RG500의 머플러는 특이하게도 텐덤시트 하단에 두 개, 풋페그 아래에 두 개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덕화는 흰색 리복 운동화에 다양한 청청패션을 입고 나오는데 작품 캐릭터와 아주 잘 어울려서 지금 봐도 심하게 촌스럽진 않습니다(아주 약간은 좀...ㅋ).
90년대에 한국에도 몇 번 내한해서 '스크린'이나 '로드쇼'같은 영화잡지에도 비슷한 옷차림의 화보가 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보통 헬멧을 착용하면 머리도 커보이고 헬멧 내피 때문에 볼이 눌려서 얼굴이 못나보이는데 유덕화는 전혀 그렇지 않네요.
바이크 헬멧이 가장 잘어울리는 동양 배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천장지구는 90년대 인기작이었지만 어느새 중년 꼰대가 되어버린 지금의 제 시각에서 보니 황당한 부분들도 느껴집니다.
불량배들이 싸우는 장면의 칼부림은 그렇다 치더라도 은행을 털면서 여러 명이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이 대수롭지 않게 나옵니다.
그리고 영화제작 기술의 한계로 인해 다소 엉성한 장면들도 있는데 유덕화가 자동차나 바이크를 운전하는 장면에서 종종 대역 스턴트맨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점이 대표적입니다.ㅎ
스토리 측면을 보면 오천련이 유덕화를 막무가내로 좋아하며 따라다니는 것도 좀 억지스럽고 오천련에게 다짜고짜 행패(?)부리는 유덕화의 모습도 요즘의 사회적 시각에서는 거북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 분위기가 변화되었고 요즘처럼 영화 제작사들이 수익성을 이유로 국가별, 인종별, 성별 등 각각의 눈치를 보며 제작을 하지 않던 시절이라 가능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블루레이의 만듦새와 더불어 이러한 내용적인 이유들로 이 작품을 한번도 접하지 않은 20, 30대에게 선뜻 권하기가 어렵더군요.
요즈음에 이 영화를 자녀들과 함께 감상하면 머쓱해질 듯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직감한 유덕화가 오천련의 집으로 찾아오는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부터 시작되는 뜨거운 감성을 능가하는 작품은 지금도 흔치 않습니다. 아무리 반복해서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장면입니다.
청순하고 순종적인 부잣집 딸래미 역할로 첫 영화에 데뷔한 오천련은 유덕화의 화려한 미모에 다소 밀리긴 했습니다.^^;
진목승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고 얼마던 타계한 오맹달의 동네 형같이 둥글둥글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인상깊었던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 시절만의 애수가 담긴 OST도 계속 흥얼거리게 됩니다.
첨밀밀과 더불어 천장지구의 OST도 유튜브 뮤직으로 찾아서 즐겨듣고 있습니다.
블루레이 부가영상으로 뮤직비디오처럼 편집된 영화 예고편 한가지만 수록되어 있는데 본편보다 화질이 더 조악하지만 천장지구의 엑기스를 모아둔 듯해서 의외로 좋았습니다.
요즘 영화들에 비해서 초라한 스펙의 블루레이일지라도 90년대 홍콩영화를 즐겼던 당시의 청춘들과 바이크 매니아들에게는 지금도 회자되는 걸작이기도 합니다.
마치 조미료 범벅의 몸에 해로운 음식같지만 저는 이 영화가 좋습니다.^^
언젠가 다시 활공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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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키우는 중년아재가 돼서 다시 보고 있노라니...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하는 영화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