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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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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부산에서 (3)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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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4-27 12:21:53

사실 전 영화를 TV와 영화잡지, 비디오로 배우고 습득했습니다.

극장에서의 영화관람이 주가 된 것은 대학생활 이후였구요.

그래서 부산 극장가에 대한 글을 적으려니 조심스러운데,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몇자 적어 봅니다.

 

부산 최초의 극장은 1903년에 남포동에 만들어진 극장 '행좌'라고 합니다.

일본과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노래방처럼 부산을 통해 극장 문화가 성행하고 퍼져나갔다고 하네요.

 

어릴적 이모 손에 이끌려 '슈퍼맨'을 남포동에 있는 모극장에서 처음 감상했던 기억이 나고, 국민학교(!) 시기엔 시민회관에서 상영했던 만화영화들을 보러 갔었습니다.

1973년 문을 열었다는 '부산 시민회관'은 아이들 만화영화 상영의 단골 장소였습니다.

 

('천녀유혼' 예고편)

중고등학교 시절, 재개봉관에서  상영했던 '영웅본색'이나 '천녀유혼'을 보고 온 친구들은 자랑스레 썰을 풀곤 했습니다.

특히 '천녀유혼'의 경우 '왕조현'의 미모를 칭찬하는 이야기에 다음날 나머지 친구들도 우르르 보러가는 나름의 신드롬도 벌어졌었네요.

 

머리가 크고, 극장을 활용하는 시기가 오게 되면서 전 극장이 밀집했던 남포동을 주로 애용했습니다.

 

한번은 부영극장에서 상영한 '클리프행어'를 복학생 형과 같이 보러 갔었습니다.

'야, 영화 한번 시원하게 잘 만들었네'라며 재밌게 영화 다 보고 관람객들과 우루루 나올 때, 같이 간 형이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던 지갑이 없어졌다고 저를 황급히 불러 세웠습니다.

'사람이 참, 칠칠치 못하게....'라며 그 형을 한심하게 쳐다보면서 저도 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지갑을 만져보는데 아뿔싸!!!

제 지갑도 없는 겁니다.

영화 상영을 마치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그 틈에 소매치기들이 지갑을 쭙쭙 가져 간 것이죠.

돈이 좀 들었던 복학생 형의 지갑은 소매치기들이 우체통에 넣어서 돈만 가져간 채로 나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제 지갑은 돈도 얼마 안들어 있던 빨간색 벨크로 나이키 지갑이었는데, 돈이 없다는 괘씸죄 때문인지 그런 자비를 베풀진 않았습니다. 

들리던 이야기로는, 돈이 얼마 안든 지갑은 칼로 흠집을 내고는 휴지통에 버려버린다고 하더군요.

나쁜 놈들.....

 

또 한번은 대학 때 만난 썸녀랑 서면에 놀러 갔다가 영화를 한편 보기 위해 극장을 훑었습니다.

썸녀는 동보극장에서 상영하는 '동방삼협'을 보자고 했고, 저는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는 감독판 '블레이드 러너'를 보자고 했죠.

나름 씨네필이라고 자부하던 때라 어디 싸구려 무협영화가 '블레이드 러너'랑 대적하느냐며 강하게 '블레이드 러너'감독판을 보자고 했습니다.

중학교때 주말의 명화를 통해 '블레이드 러너'를 이미 보았었는데, 그 감동을 잊지 못한 저는 깊은 감동에 빠질 것을 확신했거든요.

그렇게 시큰둥한 썸녀랑 대한극장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정말 없이 한산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안지나, 발 밑으로 뭐가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쥐였습니다.

시설이 낙후했던 대한극장은 하나 둘 들어서는 현대식 극장에 밀리는 와중이었었는데, 차가운 시멘트 바닥위로 영화광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서생원과 그렇게 '블레이드 러너' 감독판을 함께 봤었습니다.

영화를 다 본 후의 감상은.....

저도 어릴적 봤던 극장판의 감동에 비해 심심하게 여겨졌고 썸녀도 입이 어디까지 나와 있었네요.

 

(70년대 남포동 극장 풍경)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90년대까지 극장안에서 흡연은 당연한 일이었고 좁은 좌석과 구조 때문에 극장 자막은 앞사람 머리에 가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외화 자막은 지금과 같은 아랫쪽 가로 자막이 아니라 우측 옆면의 세로 자막이었습니다.

세로 자막은 일제 잔재이기도 하지만, 앞사람 머리에 가리지 않는 효과를 노리기도 한 결과물이었습니다.

DVD 초창기엔 그래서 극장 자막을 보는 기분을 위해 세로 자막이 함께 들어간 DVD가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1982~2000년대 부산 극장가)

 

극장 앞은 만남을 위한 약속장소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삐삐나 핸드폰이 없던 시기, 극장 앞이나 서점 등을 만남의 장소로 정하고 친구를 만났었죠.

특히 별다른 문화생활을 즐길 거리가 없던 시기엔 극장은 연인들의 좋은 데이트 장소가 되었구요.

각자가 나름의 멋을 부린 외모로 상대를 기다리는 극장 앞은 아직도 생생하네요.

 

(80, 90년대 서면)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이 등장하면서 안락하고 좋은 시설 공세 속에서, 경쟁력이 약하던  지역의 단관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각자의 추억이 녹아있던 극장들은 희미하게나마 우리 기억 속에서 아직도 영사기의 불빛을 발산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여러분의 극장 추억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하네요.

 

- 사용된 사진과 동영상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권리는 원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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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21-04-27 11:52:15

남포동극장가가 그땐 부산 제일의 번화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지하 코오롱상가도 좋았고 제가 살던 영도와 가깝기도 해서 좋았습니다.신작은 서면 은아스카라대한 보담 남포동에서 먼저 개봉했었죠.당시 메이저라고 생각하던 부영부산국도아카데미 말입니다.저도 93년도 여름에 봤던 클리프행어를 잊지 못합니다.그때 줄이 너무 길어 건물 한바퀴를 돌았어요.제가 서 본 줄 중에 제일 길었던 영화는 92년도 아카데미에서 개봉했던 터미네이터2였네요. 돈이 없던 고교시절에는 보림극장을 자주 갔었어요.이천원에 두편인가 그랬는데 개봉일은 놓치고 비디오는 아직 나오지 않은 영화를 보고 싶을때는 친구들과 가곤 했었습니다. 맞은편 삼성극장은 호기심에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안나서 못가보았구요. 덕분에 추억이 새럭새록합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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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12:30:48

어떤 재개봉관은 동성애자분들이 모이는 곳이라 거기 갔다가 당할(?) 수도 있다는 괴담에 가 볼 엄두도 못냈었기도 합니다.

인기 있는 영화의 경우, 극장 앞 암표상들도 진을 쳤던 기억도 나네요. 

2021-04-27 12:41:35

 서면로터리 북성극장에서 아버지 손잡고 벤허를 봤는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

WR
2021-04-27 13:17:57

벤허는 몇번을 재개봉하던 인기작으로 기억합니다.
“신이시여, 정녕 이 영화를 제가 만들었단 말입니까?”라는 헤드카피도 기억나네요.

2021-06-03 15:37:41

중학교2-3때 학교땡땡이 치고
온천극장서 봤던 천녀유혼1의 충격은
벌써 30여년전입니다. 1988년 봄쯤?

Updated at 2021-08-11 18:09:29

중학교가 전포동에 있어서 등하교길에

서면을 오가다보니 서면 극장거리를
3년동안 눈도장을 찍고 다녔습니다.

그 무렵에도 그림을 끄적대던 입장이라
어느극장 손그림 간판이 더 잘그렸나 

그런걸 챙겨보곤 추억이 있습니다.

2021-09-04 18:13:42

방학때면 외할머니 집을 갔었는데

광복동? 서면인지 모르겠는데

루지탕 747절대위기 죠스2 본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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