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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지름신] 지쳤습니다 → 마이클 잭슨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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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23:47:56
요기 클릭~!!!!  →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 - The Ultimate Collection



>> Biography


팝의 황제, Michael Jackson

1989년 5월 1일 캘리포니아 경찰은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종업원의 신고를 받고 어떤 보석 가게에 출동했다. 알고보니 그 수상한 사람은 변장을 하고 쇼핑 하러 온 수퍼 스타 마이클 잭슨이었다.
1958년 8월 미국에서 9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저메인, 말론, 재키, 티토 등 다른 네 형제들과 함께 '66년 아버지 조의 기획으로 잭슨 파이브(Jackson 5)에 가입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면 잭슨 파이브는 마이클 잭슨을 중심으로 한 보컬 앙상블에 가까왔다. 고향인 인디아나에서의 명성으로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의 소개를 받고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잭슨 파이브는 공식적인 데뷔 앨범을 서둘러 발매했고 여기서 무려 4곡이 차트 No.1을 기록하면서 이 보유한 최고 거물급 팝 그룹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72년 이 마이클과 저메인을 모두 솔로로 독립시키려고 하면서 그룹으로서의 활동은 조금씩 엷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75년 저메인 잭슨(Jermaine Jackson)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잭슨스(Jacksons)라는 이름으로 에픽(Epic)사에 안착한다.
한편 변성기로 접어들면서 다이아나 로스의 솔로 전향 권유에 고무된 마이클 잭슨은 독립을 선언했고 명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인 퀸시 존스(Quincy Jones), 스티브 포카로(Steve Pocaro), 래리 칼튼(Larry Calton),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까지 거물급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은 그의 데뷔 작품 [Off The Wall]은 미국 내에서만 8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다시 퀸시 존스의 도움을 받은 두번째 앨범 [Thriller]는 5천만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 실적을 거두면서 전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MTV의 부상과 더불어 그의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와 특히 뒤로 걸어가는 "문워크(Moonwalk)"는 전 세계의 춤꾼들을 긴장시켰다. '85년에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기 위한 "USA For Africa"에 참가하기도 했다.
다음 작품 [Bad] 역시 놀라운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전작의 성과가 워낙 엄청나 예전보다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88년에는 영화 를 만드는 등 점차 스스로를 신화화하려는 시도가 고개를 들기도 했다.
1991년 퀸시 존스와 결별한 이후 4년만의 신작 [Dangerous]가 발표되었다. 이번에도 첫 싱글 'Black Or White'는 그래픽 효과가 절묘했던 뮤직 비디오의 도움을 받아 단숨에 차트 정상에 올랐고 이후에도 여러 개의 싱글들이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더블로 발매되었던 이 앨범 역시 2850만장이라는 천문학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인기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미국 인디 음악들이 수면으로 떠오른 얼터너티브 폭발의 '93년.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 성 추문 사건으로 이미지를 실추당했다. 어린이를 위한 "Heal The World" 재단을 설립한 시기와 맞물려 있어 충격은 더욱 컸다. 또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Lisa Mari Presley)와 갑작스럽게 결혼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 발표를 하고 또 그의 각종 기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고개를 쳐들면서 마이클 잭슨은 어린이를 사랑하는 위대한 팝의 황제에서 갑자기 이중적이고 가식적이며 우스꽝스런 캐릭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95년 6월 마이클은 베스트 트랙들과 신곡을 모은 [History]를 발표했고 1997년 여름에는 또 [History]의 리믹스 앨범인 [Blood On The Dance Floor]를 발매했다. 그리고 2001년 10년만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 [Invincible]을 내놓으며 음악계에 복귀했다. 하지만,이 앨범은 저조한 판매로 상업적으로 참패했으며, 2003년 말에 발매된 그의 베스트앨범 역시 아동 성추행 소송으로 비디오 촬영도 하지 못한 채 묻히고 말았다.

oimusic 2004년 05월 고영탁

마이클 잭슨과 팝계 최고의 황금 콤비로 활약한 퀸시 존스는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프로듀서다. 마이클 잭슨을 필두로 조지 벤슨, 패티 오스틴, 엘라 피츠제랄드, 레이 찰스, 사라 본 등 수많은 R&B, 재즈 가수들과 90년대 갱스터 랩퍼 갱스타(Gang starr)의 [Hard To Run](1994) 등에서 프로듀서로 참여해 '흑인 음악의 대부'로서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허나 명 프로듀서 이전에 그는 밴드 마스터였다. 트럼펫 주자와 빅 밴드 마스터로서 1950년대부터 카운트 베이시, 디지 길레스피 같은 재즈 대가들과 연주 활동을 함께 했었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빅 밴드 마스터로 무대에 섰으며, 편곡과 프로듀싱 분야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발휘했다. ’70년대부터는 팝 가수들의 앨범 프로듀싱을 맡게 되고 비로소 마이클 잭슨과도 만나게 된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첫 만남은 [오즈의 마법사]의 흑인판이었던 1977년도 뮤지컬 영화 [The Wiz]의 사운드트랙에서였다. 그 후 2년 뒤 마이클 잭슨의 첫 솔로 앨범 [Off The Wall]에서 퀸시 존스가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둘 간의 전설적인 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퀸시 존스는 70년대 펑크(funk)의 활력 넘치는 리듬과 에너지를 받아들이면서 마이클 잭슨 보컬의 부드러움을 최대한 살려나갔다. 또 재즈 뮤지션 출신답게 퀸시 존스의 제작방향은 기타, 건반, 관악기, 퍼커션 등 다채로운 악기편성과 악기들간의 절묘한 메커니즘으로 표현되었다. 거기에 잭슨 특유의 팝적 감수성과 발라드, 록 필이 더해져 뭇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된 전대미문의 댄스 뮤직이 되었다.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는 [Off The Wall]에서부터 흑백 음악의 크로스오버로 미국에서만 2천6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기념비적 작품 [Thriller](1982), 차트 1위곡을 비롯해 모두 7곡의 톱텐 히트곡을 배출하면서 마이클 잭슨을 명실상부한 '팝의 황제'로 등극시킨 [Bad](1987)까지 총 3장의 앨범에서 함께 했다. 그러나 [Bad] 시절부터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독자적인 프로덕션 를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곧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다. 그리고 그는 1991년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기용해 [Dangerous]를 발표했다.

oimusic 2003년 10월 고영탁

MTV와 뮤직비디오 발전의 1등 공헌자

마이클 잭슨이 이룩한 업적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MTV와 뮤직 비디오를 통해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가져온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팝 역사상 뮤직 비디오를 가장 잘 활용한 인물인 동시에 뮤직 비디오와 MTV의 발전에 가장 공헌한 인물 중 하나다. MTV 개국 이전인 1979년 발표된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부터 최근의 'You Rock My World'까지 마이클 잭슨이 내놓은 싱글들은 대부분 뮤직 비디오를 동반했고, 그 하나 하나의 작품들은 놀라운 영상미학을 구현했다. 마이클 잭슨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수많은 음악 팬들을 MTV 앞으로 이끌었다.
그의 뮤직 비디오는 단순히 뮤직 비디오가 아니라 숏 필름(short film)이라 말할 정도로 방대한 스케일의 작은 영화다. 쟁쟁한 영화 감독들을 초빙해 탄탄한 스토리 라인과 특수효과를 갖춰 웬만한 영화 못지 않은 뮤직 비디오를 탄생시켰다. 그 신호탄이 잘 알려진 'Thriller'다. 마이클 잭슨의 강박관념이 반영된 이 뮤직 비디오에는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Zombie)와 늑대 인간으로 분해 공포와 노이로제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13분이 넘는 대작인 그 숏 필름은 공포영화의 대가인 존 랜디스가 연출을 맡았다. 뉴욕의 뒷골목과 지하철 거리를 배경으로 찍은 20분 짜리 숏 필름 'Bad'의 감독도 그 유명한 마틴 스콜세지였다.
마이클 잭슨이 뮤직 비디오를 통해 선보이는 기술은 점점 향상되었고, 특히 1991년에 발표된 앨범 [Dangerous]에 이르러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 사람의 얼굴이 바뀌는 'Black Or White', 이집트 파라오의 신비가 등장하는 'Remember The Time' 등에서는 영화 [터미네이터 2]에 쓰인 모핑 기술이 도입되었다. 또 슈퍼 모델 나오미 캠벨과 관능적인 춤을 선보인 'In The Closet'는 라스베이거스 네바다 사막의 갈색 톤을 매력적으로 잡아냈으며, 영화 [세븐], [파이트 클럽]의 감독 데이빗 핀처가 만든 'Who Is It'에서는 차가우면서도 도시적인 세련된 감각을 보여줬다. 그리고 1995년 'Scream'을 통해서는 사이버 펑크 스타일을 연출했으며 'Childhood'에선 아이들의 시선으로 판타지를 엮어냈다.
이처럼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인기를 높이는 동시에 MTV와 뮤직 비디오의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켰으나 MTV가 처음에는 마이클 잭슨의 뮤직 비디오를 틀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oimusic 2003년 03월 

Mystery Of MJ
마이클 잭슨을 둘러싼 많은 얘기들 가운데 가장 큰 미스터리는 아무래도 그의 모호한 정체성일게다. 그의 음악이나 행동, 외모를 보면 흑인인지 백인인지, 어른인지 아이인지, 또 남자인지 여자인지 전체적으로 뚜렷이 알기 힘들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각각의 모호성이 모두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사실. 그렇다면 그 모호성들이 음악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한다.

첫째, Black Or White. 명백히 마이클 잭슨은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이다. 그러나 [Off The Wall](1979)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표했던 음악들을 보면 어떤가. 거기엔 흑인 음악도 있지만 백인 음악의 요소가 만만찮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울, 펑크(funk), 재즈 등 대표적인 흑인 음악과 록, 팝, 발라드 같은 백인 음악이 그의 음악에 하나로 녹아있다. 말하자면 흑백 음악의 통합을 이뤄낸 것. 마이클 잭슨이 인종과 성별을 불문하고 대중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다.
제임스 브라운에게 소울의 다이내믹한 창법을, 스티비 원더에게 펑크의 놀라운 리듬을, 퀸시 존스에게 재즈의 다채로운 편곡을 전수받은 마이클은 동시에 비틀즈와 존 레논, 폴 매카트니, 그리고 여타 백인 뮤지션들에게 록의 파워와 팝의 풍부한 멜로디, 발라드의 섬세한 감수성을 체득했다. 이 모든걸 뭉뚱그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완성시켰고, 대중들은 전례없던 인종 대화합의 음악에 거부할 수 없이 빨려들어갔다.
예를 들면 [Off The Wall]에 수록된 'Don't Stop Till You Get Enough'에서는 펑크의 흥겨운 댄스 리듬 아래 재즈적 악기 편성이 훌륭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다. 'She's Out Of My Life'의 절제된 감정 처리는 웬만한 백인 발라드 가수들을 가뿐하게 물리친다. 'Human Nature'에서의 꿈결같은 팝 멜로디는 또 어떤가? [Thriller](1983)부터는 앨범마다 적어도 한 곡 이상은 백인 기타리스트의 기타 솔로를 포함시키면서 록 팬들마저 끌어들인다. 그 유명한 'Beat It'의 에디 밴 헤일런, 'Black Or White'의 슬래시 등이 자신들의 필살기인 헤비 솔로 연주를 들려줘 인기를 더했다.
1987년 작 [Bad]부터는 음악뿐 아니라 피부색으로도 흑백 통합을 꾀했다. 앨범 발표와 함께 거의 백인의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성형수술의 결과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었고, 마이클 잭슨은 한동안 줄기찬 언론 보도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1993년 2월 10일, 자신의 꿈 동산인 네버랜드(Neverland)에서 방송했던 [오프라 윈프리 쇼] 인터뷰에서 ‘나는 현재 색소가 파괴되는 피부병을 앓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Bad] 이후 일련의 앨범들에는 예전의 활기 찼던 리듬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두 번째, 모호한 정체성. 과연 어른이냐 아이냐. 1958년 8월 29일생인 그는 올해로 43살이며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렇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한참이 지났을 때까지도 그는 어른 아닌 어린이 같은 생활을 했다. 집에 애완견과장난감을 한가득 쌓아놓고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를 생활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아예 한 골짜기에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동산, 네버랜드를 만들어 그곳에서 은둔하며 지냈다. 어찌 보면 소아병이나 성장이 멈추는 병을 앓는 환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불행했던 성장과정을 보면 마이클 잭슨을 다소나마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가수로 데뷔한 때는 겨우 5살 때. 그 어린 나이에 형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 활동을 해나갔다. 그를 옥죄었던 건 음악보다는 아버지의 철저한 통제와 억압이었다. 그로 인해 친구는 물론 그 어떤 외부와도 단절된 채 어린 시절을 공연 무대 아니면 방구석에서 홀로 보냈다. [오프라 윈프리 쇼] 인터뷰에서 그는 ‘여덟살 때부터 외로움에 울곤 했다. 자라면서 난 그 어떤친구도 갖지 못했다. 난 어둠 속에서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날 괴롭히곤 했다’며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밖으로 나가 남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게다. 어릴 적 기억은 평생을 지배한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의 영향권을 벗어났지만 뇌리에는 어두운 방 안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스타라는 허울이 남에게 다가가는 데 더 큰 방해 요소가 되었다. 결국 그의 선택은 자신이 누려보지 못한 '제대로 된' 어린이의 세상을 누리는 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또 아이처럼 살아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늘졌던 마이클의 어린 시절은 음악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만큼이나 양극화되었다. 'Rock With You'처럼 마냥 밝고 즐거운 곡이 있는가 하면, 'Thriller'처럼 불안과 공포로 뒤범벅된 곡도 있다. 어린이에 관한 희망적? 구원의 메시지를 들려준 'Heal The World'가 있는 반면 쇼 비즈니스를 향한 무정부주의적 분노를 토한 'Scream'도 있다.
한편 그의 어린 시절을 자신이 직접 들려주는 곡은 'Childhood'. 고통스럽던 어린 시절을 울먹이듯 노래하는 이 곡은 앨범 [HIStory]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이미지는 앨범 속지 안에 있는 마이클 잭슨이 직접 그린 삽화 속에 잘 형상화되어있다. 마이크를 쥐고 정말이지 너무나도 가엾게 방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있는 어린 그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과 함께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날 심판하기 전에 날 사랑하려고 노력해보세요. 마음 속으로 날 바라보세요. 내 어린 시절을 본 적이 있나요?’

그의 마지막 모호함인 성별 문제. 사실 이 부분은 사람들이 그리 크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의 노래나 목소리를 들어 보라. 트랜스젠더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여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모든 걸 파괴해버릴 듯한 강력한 보컬이 그렇지만 여성스런 보컬도 그에 못잖은 마이클 잭슨의 특징이다. 이 미스터리는 그가 좋아했고 영향받았던 여성을 찾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해 닮고 싶어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슈프림스(Supremes) 출신의 최고의 흑인 여가수 다이애나 로스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에서 함께 공연한 이후 줄곧 마이클 잭슨은 다이애나 로스의 모든 면을 닮고자 열망했다. 그녀의 보컬은 물론 심지어는 그녀의 얼굴 모습까지도. 원래 워낙 미성에 여린 보컬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여성스런 스타일로 노래했고 이미지도 점차 여성화해갔다. 눈썰미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Off The Wall] 시절의 그의 얼굴과 [Bad] 이후의 얼굴이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건 성형수술의 결과인데, 그 모델이 다이애나 로스였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다이애나 로스는 그의 삶과 노래를 오랫동안 지배한 셈이다.

oimusic 2001년 11월 고영탁

마이클 조셉 잭슨(Michael Joseph Jackson)은 '58년 8월 29일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조(Joe)와 캐더린(Catherine) 잭슨 부부의 9남매 중 다섯 번째로 태어났다.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어머니와 팔콘스(The Falcons)-You're so fine이라는 히트곡을 불렀던 그 팔콘스가 아니라 무명의 로컬 밴드였다-라는 그룹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유아 시절부터 음악적 끼를 보였다. 아티스트로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대신하여 그의 형제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대중음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60년대 중반부터 저메인, 티토, 재키로 이루어진 이들의 형제 그룹은 아버지의 뜻대로 당시에 유행했던 여러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여기에 말론이 가세하여 '잭슨 포'라는 이름으로 폭넓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메이저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65년 어린 마이클의 천부적인 끼와 보컬 솜씨를 알아차린 아버지가 그를 리드 보컬로 내세워 '잭슨 파이브'를 탄생시키면서부터였다. '69년 잭슨 파이브는 우연한 기회에 슈퍼스타인 다이애나 로스를 만나는 행운을 잡는다. 그리고 그녀의 후원에 힘입어 모타운과 계약했고, 그들은 곧 모타운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75년에 잭슨 파이브는 에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이 때 마이클 잭슨은 변성기를 맞게 된다. 이후 상당 기간 방황을 하던 마이클은 결국 솔로로서의 홀로서기를 결정했고,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79년, 그의 프로듀싱으로 성인으로서의 첫 솔로 앨범 OFF THE WALL가 발표되는데, 이 앨범에는 퀸시 존스 뿐만 아니라 데이빗 포스터와 패티 오스틴(Patti Austin), 그리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등을 포함한 최고의 뮤지션들이 참가해 앨범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주었다. 3년 후인 '82년은 마이클 잭슨에게 있어서나 팝 뮤직 계에 있어서 영원히 기억되어질 시기로 역시 퀸시 존슨의 프로듀싱으로 탄생한 두 번째 앨범 THRILLER가 발표된 해이다. 그는 앨범 THRILLER의 거의 전곡(수록곡 9곡 중 7곡)을 Top 10과 No.1에 등극시켰다. 또한 이 앨범은 무려 37주 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머물렀다. '83년 마이클 잭슨은 이 앨범으로 제 2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무려 8개 부문의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또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루머들이 공식적으로 두드러져 나오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는데, 이후 그를 둘러싼 루머들과 관련하여 마이클 잭슨과의 인터뷰를 가졌던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쇼의 시청률은 현재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85년 마이클 잭슨은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앨범 USA FOR AFRICA에서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와 공동으로 We are the world를 작곡하여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87년 마이클 잭슨은 세 번째 정규 앨범인 BAD를 발표하였으며 여기에서 I just can't stop loving you와 Bad 그리고 The way you make me heel과 같은 히트곡을 제조했다. 또한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에 의해서 제작된 17분 분량의 뮤직 비디오로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88년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자서전인 [문워크(Moonwalk)]를 발간했다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고소를 당하는 볼썽사나운 일도 경험한다.
'91년 마이클 잭슨은 뉴 잭 스윙의 창시자인 테디 라일리의 프로듀싱으로 앨범 DANGEROUS를 발표한다. 당시 120만 달러를 쏟아 부어 화제가 되었던 뮤직 비디오 Black or white는 MTV를 통하여 [King Of Pop]이라는 칭호를 받았다(하지만 마이클 잭슨은 '93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King Of Pop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94년 가을 마이클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Lisa Marie Presley)와 결혼했다. 그리고 '95년 마이클 잭슨은 처음으로 자신의 솔로 더블 앨범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1을 발표했는데, 이는 15곡의 지난 히트 싱글들과 15곡의 새로운 싱글들로 채워져 있었다. 앨범에서 첫 싱글로 커트된 Scream의 뮤직 비디오는 그의 여동생인 재닛 잭슨(Janet Jackson)과의 듀엣 곡으로 4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는데, 이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인 뮤직 비디오로 기록되고 있다.

gmv 1999년 06월 이기원




- 韓信 kyunii -
10
Comments
WR
2004-11-10 23:50:42

그나저나 브리트니 이번 베스트앨범도 이렇게 (DVD+CD) 합본 패키지로 나와야되는데......
얼마전에 제가 이곳에 소식을 올린 후 아직 정보가 없네요.

2004-11-11 00:21:31

DVD 따로 발매 됩니다. CD 한정판은 디지팩에 보너스 CD가 있습니다.

2004-11-10 23:50:53

저거 때문에 지금 고민중입니다. 저거 지르면 정말 이번달 말에 너구리 한박스 더 사야합니다.

2004-11-11 10:29:40

너구리 한박스..^^ 그럼 지금도 의식주를 너구리로...

2004-11-10 23:50:53

비용!!!!

2004-11-10 23:51:55

달관했음..-_-v

2004-11-10 23:57:01

이것 정도는 달관해서 지나쳐도 무방할 듯... 마이클 잭슨 뮤비모음집 한장 정도는 땡기긴 하는데 워낙 그 사람이 요즘 추하게 보여서... 지나치렵니다...

2004-11-11 00:14:22

음 이번 박스셋은...몇장 안드려온다고 하네요...그리고 이번 수입이 올해 마지막이랍니다!!!

2004-11-11 09:05:43

정말요? 음...............

2004-11-11 09:05:09

마이클잭슨건 거의다 있는데... 이걸 질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중입니다..으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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