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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왜 일본은 조선에서만 위안부를 조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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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3-02 00:59:40

오늘의 짧은 잡담은 우리나라 역사의 비극중 하나인 위안부 이야기입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곳에서 못들어본 이야기들이 좀 있을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여성들을 수만~20만명을 끌고가서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위안소를 차려놓고 성노예로 쓰다가 죽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걸 혹시 왜??? 라고 궁금증을 가져보신 분 계십니까?

왜 위안부 피해여성들은 대부분 한국인이고, 중국인이나 동남아 인들은 적은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중국 현지에는 중국 여자들이 있을 테고, 동남아 현지에는 동남아 여자들이 있을 텐데, 뭐하러 한국에서 여자들을 납치/유인해서 필리핀까지 데리고 가느냔 말이죠. 

그냥 현지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아니면 현지에서 여자들을 납치해다가 위안소를 차리면 될텐데, 왜 우리나라 여자들을 끌고가야 했느냐.

 

멀리서 사람을 잡아다가 끌고오려면 돈이 들고 수송비가 듭니다. 보급선이 길어지는 것이죠.

저는 이게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캐 본적이 있습니다.

일본쪽에 문헌이 있더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본 군의관들의 보고서때문이었습니다. 

 

 

1939년 상해파견군 제14병참병원 외과병동에 근무하던 군의관 소위 아소 테츠오(⿇⽣徹男)는 '화류병의 적극적 예방법(花柳病の積極的予防法)' 이라는 보고서를 씁니다. 계기는 당시에 일본군이 중국에 진출한 이후 각지에서 강간을 하거나 매춘부를 사면서 성병이 도니까, 성병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태파악을 위해 (인근 중국 초등학교에 설치되어 있던) 육군오락소를 방문해서 거기에 있던 위안부들을 검진했습니다. 북큐슈에서 온 일본인 매춘부 20명과 조선에서 끌려온 젊은 여자들 80여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병 검사를 한 후, 아소 군의관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냅니다.

 

일본에서 온 여자들은 매춘을 직업으로 하던 나이든 여성들이었으며 전원 성병이 있거나, 성병이 의심되는 반면에, 조선에서 끌고 온 여자들은 육체적으로 무구하거나 (처녀였거나) 성병이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군의관들이 모여 회의를 한 후, 창부의 질을 개선할 것을 건의합니다. 

성병 예방대책으로써, 일본의 매춘부들을 쓰지말고, 조선에서 성경험 없는 어린 여자들을 데려오는 것을 보고서에서 건의한 것입니다. 

장교들은 성병이 적은 이유는, 남경, 한커우 등지의 일본장교들이 드나드는 클럽이 조선여인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도 보고를 했습니다. 

 

 

"命令にいわく『麻生軍医は近く開設せらるる陸軍娯楽所の為目下其美路沙□(さん)小学校に待機中の女子百余名の身体検査を行う可し』


ただちに私たち一行,軍医兵隊それに福民病院の看護婦二名を加えた名にて出かけたこれが「日支事変」以降「大東亜戦」を通じて兵站司令部の仕事として慰安所管理の嚆矢となった。
当時軍の輸送規定には兵隊軍馬の項はあっても婦女子の項はなかったのではなはだ失礼なことには物資輸送の項に該当させたりなど今から考えると妙なことであった
彼女ら「皇軍兵士」の慰問使として朝鮮および北九州の各地より募集せられた連中であった. 興味あることには朝鮮婦人の方は年齢も若く肉体的にも無垢を思わせる者がたくさんいたが北九州関係の分は既往にその道の商売をしていた者が大部分で後者の中には鼠蹊径部に大きな切開の蹊瘢を有する者もしばしばあった。(p41)"

 

"されば戦地へ送り込まれる娼婦は年若き者を必要とす。而して小官某地にて検徽中屡々見し如き両鼠蹊部に横痃手術の瘢痕を有し明らかに既往花柳病の烙印をおされし、アバズレ女の類は敢えて一考を与へたし。此れ皇軍将兵への贈り物として、実に如何はしき物(ママ)なればなり。"

 

어째서 조선인 위안부는 늘어나게 되었는가 - 고노 담화를 지키는 시민의 모임

どのようにして、朝鮮人慰安婦が増えて行ったか?

https://blogs.yahoo.co.jp/kounodanwawomamoru/65390467.html

 

 

화류병의 적극적 예방법 (花柳病の積極的予防法)

 제11군 제14병참병원  (第11軍第14兵站病院)

육군 군의 소위 아소 테츠오  (陸軍軍医少尉 麻生徹男) 

 

 2. 창부

 

작년 1월 소관 상해 근무중에, 1일 명령에 따라 새로 오지에 진출하는 창부들의 검진을 행했습니다. 

그때 피검자들은 반도의 여자 80여명, 내지(일본) 여자 20명으로서, 반도인으로서 화류병이 의심되는 자는 극히 소수였지만, 일본인의 대부분은 현재 급성증상을 보이거나 질환으로 의심되는 자들이었고, 연령도 태반이 20세를 넘겨서 그중엔 40세도 있고 기왕에 매춘업에 수년간 종사해온 자들로 보였습니다.

반도인은 어리고 연령이 낮아서 초심자(처녀)로 보이는 자가 많은 것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창부의 질은 어릴 수록 양호합니다. 즉...

 

전장에 보내는 창부는 어린 여자가 필요합니다.

황군 장병들에게 보내는 선물로서 실로 어떠한 물건(여자)를 보낼 것인가의 문제이므로,

검진을 한 소견으로서는, 전장에 보낼 창부는 내지 여자들은 충분한 도태를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2 娼婦


昨年1月目小官上海郊外勤務中、1日命令により、新に奥地へ進出する娼婦の検黴を行ひたり。

この時の被験者は半島婦人80名余、内地婦人20名にして、半島人の内花柳病の疑ひある者は極めて少数なりしも、内地人の大部分は現に急性症状こそなきも甚だ如何はしき者のみにして、年齢も殆ど20歳を過ぎ中には40歳に、なりなんとする者ありて既往に売す淫嫁業を数年経来し者のみなりき。

半島人の若年齢且つ初心なる者多きと興味ある対象を為せり。

そは後者の内には今次事変に際し応募せし、未教育補充とも言ふ可きが交り居りし為めならん。 

一般に娼婦の質は若年齢程良好なるものなり。即ち…(ミュウヘンの検査) "

 

"されば戦地へ送り込まれる娼婦は年若き者を必要とす。

而して小官某地にて検黴中屡々見し如き両鼠蹊部に横痃手術の瘢痕を有し明らかに既往花柳病の烙印をおされし、アバズレ女の類は敢へて一考を与へたし。

此れ皇軍将兵への贈り物として、実に如何はしき物なればなり。

如何に検黴を行ふとは言へ、一応戦地へ送り込む娼婦は、内地最終の港湾に於いて、充分なる淘汰を必要とす。

まして内地を喰ひつめたが如き女を戦地へ鞍変へさす如きは、言語同断の沙汰と言ふ可し。 "

 

 

 

 

이리하여,

산부인과 전공의사의 의학적 견해(?)에 근거하여 

(아소 테츠오는 큐슈 제국대 의학부 산부인과 전공출신이었습니다),

 

성병감염률이 낮고 성적으로 무구한 조선의 여성이 위안부로 좋다. 특히 어리고 건강할 수록 좋다는 건의에 따라 14~20세 사이 우리나라 여성들을 집중적으로 잡아간 것입니다.

 

조선이 여자들의 정조 관념이 강해서 성병이 적다는 게 이렇게 이용당한 거였죠.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여성들을 섹스 상대로 데려가게 된 이유도 저거였구요.  

 

(저는 이것도 의문이었어요. 왜 18~29세 여성들이 아니라, 아직 채 성장이 끝나지도 않은 14-20세 여성들을 대거 잡아갔는지...  발육도 안된 14세를 상대로 섹스를 하면 좋아?  라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저 일본군 군의관 보고서로 한큐에 의문들이 다 풀렸습니다. 

어린 여자애들을 데려오라고 군의관들이 건의보고서를 올린 겁니다)

 


 

 

의사라는 딱지를 달고서 집단으로 모여 쓰레기 같은 발상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아소 테츠오는 진성으로 인간 쓰레기였다고 생각하는 게, 저게 그냥 냉정하게 감정배제한 채, 일본군으로서 의학적으로만 보다 보니까 생긴 업무상 잘못이 아닙니다. 

 

보고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거든요.

 

"군용특수위안소는 향락의 장소가 아니라, 위생적이어야 할 공동변소입니다. 따라서 군은 위안소내에 주류를 금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軍用特殊慰安所は享楽の場所に非ずして衛生的なる共同便所なる故、軍に於ても慰安所内にて酒類の禁止されあるは寧口当然の事なり。"

 

 

성병의 진전을 막기 위해 주류 통제하자는 의견은 이해가 가지만, 공동변소 라는 용어는 의학적이고 냉정한 견해라기 보다는 경멸하고 비하하는 시각이 들어가 있다고 보아야겠죠.  

 

그러니까 위안소를 공동변소(共同便所)라고 부르고, 거기에 쓰이는 여성은 육변기로 취급하면서,

성병 걸린 일본 매춘부들 말고,

순진무구한 조선인 어린 여자애들을 육변기로 써야 한다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당시 아소 테츠오가 썼던 보고서의 원문  

 

 출처: 전쟁과 의학 한국어판 (戦争と医学 韓国語版) (15년 전쟁 60주년 기념 일본의학회 총회 기획전시 전쟁과 의학 실행위원회, 三恵社, 2008, 55p) 

 

 

아소 테츠오 군의관의 이 보고서는 상해 일본군 병참담당부서에서 히트를 칩니다.

 

"군 간부로서 작전밖에 모르는 중견간부들은 최초 이 의견서에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병참담당이었던 우리들은 일독을 하고나서, 이거 잘 썼다. 잘도 조사해줬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냐가와 군사령관도 크게 주목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당시에 (우리들은) 그녀들을 공중변소 라고 생각하는 게 강했습니다만, 병참부서가 없으면 안되는 것처럼 중국에서의 작전도 이거 없으면 안된다. 라고 우려를 한 고급간부들은 이 의견서를 크게 찬성하였습니다"

 

「まず軍幹部というか作戦面しか知らない中堅幹部は、最初この意見書に大した興味を持たなかったようです。しかし兵站担当のわれわれは一読して、よく書いてくれた、調べてくれたと思ったものです。柳川軍司令官も大変に注目されたと聞いていました。

  正直に言って当時、彼女らに対し公衆便所という考えが強かったのですが、兵站部がなくてはならないように、中国戦線でそれがなくてはならぬものであること、より優れたものでならぬことを考えていた高級幹部は、この意見書に大いに賛意を強くしたようです。」 

 

 

아소 테츠오의 보고서를 받아들여 조선인 위안부를 창설한 상해 파견군 참모부장 오카무라 야스지

 

"예전의 전쟁 시대에는 위안부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위안부안 창설자이다.

현재 각 병단은 거의 모두 위안부단을 수행하여 병참의 일 분대가 된 형태이다.

제 6사단 같은 부대는 위안부단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강간죄가 끊이지 않는 상태이다"

출처: EBS 다큐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2015. 3. 1

 

 

이렇게 해서 조선인 여자 십수만명이 일본군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한편 이런 반인륜적 초대형 사고를 친 아소 테츠오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나. 

 

일본 후쿠오카에서 의사 개업해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더 웃긴 것은 이 인간이 기독교였습니다. (전후에 개종한건지 전전 부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본 YMCA 후쿠오카 지부 주사 대행, 일본 기독교단 후쿠오카 중부 교회 주일학교 교장을 했습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9%BA%BB%E7%94%9F%E5%BE%B9%E7%94%B7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자기가 위안부 창시자라고 자랑하고 다녔나 봅니다.   

위안부 1호를 자기손으로 검진했다고 하는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마이니치 신문 기자 千田夏光가 궁금증을 느껴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1973년 책을 출판하게 됩니다. '종군위안부'라고.

 

https://www.amazon.co.jp/%E5%BE%93%E8%BB%8D%E6%85%B0%E5%AE%89%E5%A9%A6-%E3%80%94%E6%AD%A3%E3%80%95-%E8%AC%9B%E8%AB%87%E7%A4%BE%E6%96%87%E5%BA%AB-%E5%8D%83%E7%94%B0-%E5%A4%8F%E5%85%89/dp/406183374X

 

이게 종군위안부를 본격적으로 다룬 일본 최초의 책이라고 하더군요.  

 

일본에서는 넷우익들과 종군위안부를 부정하는 아베쪽 우익 정치인들이 필사적으로 헐뜯고 부정하는 서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알려져있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책인 것 같습니다). 

 

 

아소 테츠오가 1989년에 80세로 죽자, 이후 그의 딸 天児都 (역시 의사입니다)가 

이건 자기 아버지를 음훼한 것이며, 거짓말이 잔뜩 들어있는 책이다.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 매춘부들이었다 는 주장을 펴며, 우익 잡지에 열심히 기고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본 종군위안부의 실체- 2005년 1월호 정론 지에 실린  天児都의 기고문

http://www4.airnet.ne.jp/kawamura/enigma/2005/2005-01-16-onoda_ianhunoshoutai.html

 

종군위안부 책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아소 테츠오의 딸 天児都입니다.

 

군의관이었던 우리 아빠를 누가 위안부 강제연행 책임자라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 天児都 인터뷰

【天児都】軍医の父を誰が慰安婦強制連行責任者に仕立て上げたのか?[桜H26/6/16]

https://www.youtube.com/watch?v=ahIU5D8Vtlk

 

이 할망구 주장은 이렇습니다.  

우리 아빠는 군의관이었을 뿐이다. 우리 아빠는 밖에 나가서 사람을 강제연행하고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성병이 걸리면 치료해주는 의사였다. 그리고 지극히 의학적 관점에서 성병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한 것일 뿐이다. 우리 부대내에 조선인 여자들이 젊고 육체적으로 순진무구하고 성병이 없다 라고 보고서를 올린 것이지, 조선인 여자들을 잡아오라 고 보고서를 올린 게 아니지 않느냐 라는 것입니다. 

마이니찌 신문 기자가 우리 아빠의 군의관 보고서를 부풀려서 소설을 쓴 거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그럴싸 하지만, 아소 테츠오의 보고서에서 성병 "예방법"으로,

조선인 여자들이 성병이 없으니 걔네들을 데려와야 한다 라고 쓴 게 사실이거든요. 당연히 보고서를 읽어본 상해 일본군 병참부와 참모부는 조선인 여자애들을 잡아오라는 건의보고서로 이해했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러 놓고는 책임 회피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논리이죠. 본인도 의사라면서, 아버지 쉴드치겠다고 저딴 헛소리를 TV나와서 하고, 신문에, 주간지에 기고문을 쓰다니....   =_=

34
Comments
2
2018-03-01 10:06:55

죽어서 천국가면 저새뀌랑 mb랑 이승만이를 같이 보겠군요.

16
Updated at 2018-03-01 10:27:04

온갖 증언과 증거가 쏟아져도 무슨 핑계를 대서든 인정 안하는 걸 보면 어쩌면 진짜 중요한 건 증거유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런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저런 상대와의 용서와 이해와 화해는 아마도 요원하지 않을까 싶어요.

WR
10
2018-03-01 10:12:12

빙고!

 

위안부 관련해서 자료가 없다고들 하는 데, 공문서들은 많이 폐기처분했지만,

일본사람들이 자신들의 군 경험 자서전, 수필집 등을 내면서 엄청나게 많이 위안부 경험담, 이야기들을 써놓았습니다. 다 실명이죠. 

 

알면서 잡아떼는 겁니다.

3
2018-03-01 10:11:17

찢어죽일者들.

친일매국당과 부역하는자들에게도 제발 분노하고 미투하시길...

3
2018-03-01 10:14:10

후, 육변기가 그런 의미였군요. ㅡㅡ;

WR
4
2018-03-01 10:24:32

네. 일본 AV물에 나오는 용어 "육변기"가 알고보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더군요.  =_=

2
2018-03-01 10:16:41

이런 신발끈 풀어헤치고 수박 씨발라먹을 년놈들!

6
2018-03-01 10:19:45

1. 일본이 조선에서만 위안부를 조달했다구요? 그렇지 않을 텐데요? 다음은 나무위키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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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거기서도 한국인들)이 위안부 피해자가 한국에만 있다고 여기지만 현실은 다르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한국(남북한 모두), 중국,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캄보디아, 심지어는 당시 주권국이었던 태국이나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식민통치하고 있던 네덜란드, 미국, 영국, 프랑스  출신 등 여러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강제로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래서 일본군에 잡힌 적국 포로나 점령지 주민 여성들은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다. 한국, 대만 등 일본제국의 일부였던 지역은 민간업자가 취업사기, 인신매매 등으로 데리고 간 경우가  절대다수다. 전자의 경우(적국 여성), 식민지당국민 외에 타국 여성들의 위안부 편성은 모집방법과 운영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나  명령하달 자료가 부족하여 군수뇌부에서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관리한 것이라기 보다는 병사나 장교등 군 개개인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납치  및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한국 출신이 아닌 위안부 피해자들도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그런데다가 일본군은 일본 현지인이 아닌 모두를 물건으로 봤다. 더욱 웃기는 일은, 당시 법률로 일본 영토였던 오키나와도 본토에게 무시를 받았다. 더더군다나 징병검사에서 떨어지거나, 식민지에서 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일본 현지인도 차별받았다. 실제로 저들은 비국민(非國民)이라는 멸칭까지 듣고, 정부와 같은 일본 현지인에게 온갖 탄압을 받았다. 이때 일본 제국은 골육상잔도 서슴지 않았다.

이웃 나라 위안부의 경우 홍콩에는 중국인 외에 영국인 위안부들도 여럿 있었다. 일본이 1941년 홍콩을 점령한 후 중국계든 영국계든 여자들을 헌병 풀어 닥치는 데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홍콩의 경우는 다행히 어느 정도 보상을 받았다.


참고로 두 중국, 즉 대만중국은 둘 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중국은 모택동이 "우리가 이겼으니까 됐다"는 지랄병(...)이 걸려서, 대만은 큰소리 치기엔 자기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

나무위키의 내용이 전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 내용으로 보아서 일본이 조선에서"" 위안부를 조달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위안부는 20만 이었나?

20만은 주로 한국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서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별하지 않고 합친 숫자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 부분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위안부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전쟁 범죄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비난은 잘못하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실에만 기초해서 비난해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1
2018-03-01 10:28:54

부끄럽지만 이 기회에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도 알게 되엇네여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2
2018-03-01 11:11:34

별 말씀을 다... 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를 아시는 것만으로도 신남연님은 정말 이쪽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아시는 편이라고 하겠습니다.

5
2018-03-01 11:46:26

이글 어디에 조선에서만이라고 써있나요?
빨간색으로 강조까지 하셔서 굳이 댓글 답니다.

"왜 위안부 피해여성들은 대부분 한국인이고, 중국인이나 동남아 인들은 적은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시나몬님은 학식도 깊으신 것 같고 글도 잘 쓰시는데
유난히 매향인님의 글은 오독하시는 경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2
2018-03-01 11:53:31

아... 제목을 보지않았는데 제목을 그렇게 뽑아서 쓰셨네요.

올라온 글을 마구잡이로 읽다보니 제가 실수했습니다.

WR
12
Updated at 2018-03-01 14:28:36

/지유아빠

 

또 시나몬롤이 나타나서 뭐라뭐라 헛소리를 한 모양인데, 신경쓰지 마세요. 저 사람은 저에 대한 트집잡기가 목적이지 사안에 대해 무슨 지식이나 독창적 시각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게 아닙니다.

 

 

제가 글 제목에 '왜 일본은 조선에서만 위안부를 조달을 했는가' 라고 쓴 이유는, 

 

글의 서론부에도 적었습니다만, 일본이 위안소를 만들 때, 현지 여자들을 데려다가 위안소를 만들면 쉬운데, 왜 멀리 조선에서"만" 조달해 왔느냐는 의문때문이었습니다. 동남아 위안소를 채우기 위해 멀리서 조달을 해올꺼면 중국에서도 조달을 했었어야죠.

조선인구보다 중국인구가 많은 건 상식아니겠습니까? 근데 왜 조선에서만 조달해서 넣었을까... 

 

일본군은 위안소를

현지에서 조달한 여자들 + 조선에서 데려온 여자들로 채웠습니다. 

필리핀은 필리핀 현지 충원한 여자들 + 조선에서 데려온 여자들

중국은 중국 현지 충원한 여자들 + 조선에서 데려온 여자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왜 필리핀 위안소에서는 중국 위안부가 없었느냐는 의문이 들더라구요. 

왜 중국 위안소에는 동남아 위안부가 없었던 걸까 라는 의문도요.


우리가 교과서와 뉴스에서 보는 미군이 찍었다는 일본군 위안소 사진에는, 사진 장소가 동남아인데도 동남아 여자가 없고, 끌려온 조선 여자들이 사진을 찍히고 있었습니다. 왜일까. 이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파고 들어가게 된 계기였습니다. 

2
Updated at 2018-03-01 13:09:36

일단 인터넷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호칭인 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아도 님이 얼마나 기본적인 자세가 안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읽어보지도 않고 헛소리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님이 얼마나 학자(라는 말을 아직 쓸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로서의 기본 자세가 안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네요.

제가 보기엔 이 댓글에 대해서 반론을 펼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1
2018-03-01 13:24:14

아. 그런 뜻이셨군요.
저도 글을 허투루 읽었나봅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2
Updated at 2018-03-01 13:44:58

참고로 이분의 글은 계속 바뀌더군요. 아마도 본문도 제 댓글 이후에 꽤 바뀌었을 겁니다.

1
2018-03-01 10:21:37

글 읽는 내내 정말 울분을 터뜨리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 엳ㅎ야야노잡ㄴ나ㅏㄴ(심한욕)

1
2018-03-01 10:24:47

와 좋은글 이네요.

2
2018-03-01 10:25:28

변소... 육변기 일본 19금물에 나오는 용어가 여기서 유래가 되었군요. 참 대단한 것들이네요.

1
2018-03-01 10:47:20

하여튼 개자식들이네요..

3
2018-03-01 10:47:54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이런자료조차도 인정으루못받는건지 그간 우리외교부가 이런자료를 활용안한건지 의문이네요.

WR
11
2018-03-01 10:48:47

자료는 많습니다. 일본이 인정을 안할 뿐이죠.

 

5
2018-03-01 10:53:42

우리나라부터 고등학교 이상은 저 사실을 순화, 가감 애둘러서 표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교육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이 위안부지 성노예... 아니 저것들 표현대로면 변소... 화장실 취급한 거잖아요. 허구한날 교과서나 방송에서도 위안부 어쩌고 짤막하게 나올 뿐 저런 실상은 안 알려주더만요.

WR
9
Updated at 2018-03-01 11:01:54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당한 이야기들은, 우리나라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들이 아주 많이 순화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일본 애들이야 우리나라 교과서가 반일 교육이라느니, 날조라느니 주장하고 외교활동을 펼치지만, 

일본어를 아셔서 일본쪽 자료 보거나 들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추악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1
2018-03-01 10:55:37

 저시기 일본은 완전 미쳐있던 국가였죠. 일본 살지만 저때 일본에 대해선 어떤 말로도 쉴드가 안됩니다.

8
2018-03-01 10:55:40

예전 TV영상 보니...도조 히데키 딸도 자기 아버지는 억울하게 사형당했다고 한국까지 와서 쇼 하더니...저 할망구도 똑같네요.

1
2018-03-01 11:08:04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갑니다

13
2018-03-01 11:50:42

글쓴분이 좋은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데 표현에서 좀 과장이 있다고 글쓴분이 말하는 사실이 틀린 것처럼 말하는 의견이 보여서 안타깝네요.

제목에서 '조선에서만' 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글 내용에선 '대부분'이라는 표현을 쓰고 조선인만 위안부로 쓰였다고는 쓰지 않았는데 글쓴 분이 그렇게 주장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표현을 과장했다고 지적할 수는 있어도 말이죠.

그리고 글쓴분이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인이 20만명이라고 확실히 주장한 것이 아니라 수만~20만 사이라고 언급했는데도 '20만명이 아닌데?'라는 반응은 의도적인 오독이거나 독해능력이 부족하거나 실수일 것 같은데 실수였으면 좋겠습니다만 평소의 행동을 보면... 어쨌거나 누구는 나무위키 글에서만 가져와서 근거로 일침놓고 글쓴 분은 아예 원어 자료까지 가져오는데 자료 선별 수준이 확실히 다르다는 건 알겠네요

 

 

2
Updated at 2018-03-01 13:48:12

본글을 수정했나 봅니다. 제가 읽었을 때는 20만이라고 했습니다. 차마 제목까지 바꾸지는 못하겠죠.

아무리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얘기해도 사실을 지적하는 것에는 반응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자신의 뜻에만 맞는 자료는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 재판에서 변호인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가져올까요? 그렇다고 재판에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그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본업에 바빠서요. 그리고 지금 논문 발표하는 거 아니잖아요?

WR
11
Updated at 2018-03-01 12:44:20

참고로 부연해서 조금 쓰자면,

 

일본 군의관들이 중국 현지의 위안소에 

중국 현지의 어린 소녀들을 쓰자는 이야기를 안하고, 조선에서 어린 소녀들을 조달해다가 쓰자고 한 데에는, 조선이 유달리 정조관념이 강한 게 동양 3국에서도 유명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은 유교의 창시국이지만, 유학의 교리와 논리는 신사계급이라든가 상층부에서 주로 교육되고 통용되었습니다. 중국의 평민이나 서민들 (예를 들어 소작농 계급들)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 정조관념 같은 것들이 조선만큼 강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실상은 펄벅 여사가 묘사한 '대지'의 왕룽 일가 같은 것에 가까웠죠.

 

일본에서도 조선의 정조관념이 강한 것은 유명해서,

1930년대 종군위안부를 모집할 때도 성병 우려가 없다고 조선의 어린 처녀들을 납치해갔고,

숫처녀의 처녀를 가져가면 전쟁에서 부상을 입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조선에서 온 처녀 위안부는 장교에게 먼저 상납을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전지에서 군 수뇌부는 "군대에서의 위안부는 장병의 의지를 고취시켜, 성전 완수 상, 없어서는 안되는 병기"라고 평가되고 있었고, "숫처녀의 처음 손님이 되면 전쟁에서 부상을 입지 않는다"며 미경험자는 우선 장교에게 보내지고, 일반 병사도 생환의 부적으로서 위안부의 음모를 뽑아갔다고 몇명인가 증언하고 있어 할 말을 잃었다."  

 

from "매매춘과 일본문학" by 오카노 유키게, 와타나베 스미코,하세가와 게이

 

 

나중에 해방이 된 다음에도 조선에 가면 처녀들이 많다는 소문이 일본에 돌아서,

1950~1980년대까지도 일본의 기업가들이 조선에 가면 처녀를 품을 수 있다고 기생관광을 왔었습니다.

 

이게 골때리는 부분인 데, 통상적으로 기생관광이라 하면 기생이나 콜걸을 불러다가 품는 것이고,

성적 서비스를 하는 직업여성이니까 당연히 처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 기업가들이 한국에 와서 요구하는 것은 처녀들이었습니다. 

'처녀를 품으면 기분이 좋다,' '처녀를 품으면 사업운이 풀린다' 면서 돈을 줄테니 처녀를 데려오라고 한국 브로커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한국) 여자들은 정조관념이 강해서 처녀를 구하기 쉽다 라는 인식이 일본에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2
2018-03-01 12:51:29

가족들과 아이 캔 스픽을 보면서 엄청 울었습니다.

 

어떤 익명이 제게 25년전 폭행으로 지금 껏 이룬 것을 포기 할 수 있냐고, 그러면 인정하겠다고 물어보셨는데

제가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포기해야 한다면 포기 할 수 있다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아베(짐승)처럼 살지는 말아야죠. 

1
2018-03-01 14:31:22

저도 매우 의아했었는데 자세히 적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천벌을 받을 놈들이 넘쳐 납니다.

1
2018-03-01 17:24:18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1
2018-03-01 22:19:20

정말.. 피가 끓고.. 한편으론 슬픔이 북받치네요.. 

많은 할말이 있지만..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기분입니다.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용들.. 알려주셔서 (그 지키지 못한 무구한 가치들에 대해) 새삼 죄스럽고.. 다시금 깊은 되새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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