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추억소환] 박철순 이야기
처음으로 쓰는 스포츠 관련 글입니다. 비록 프로야구 글이지만 전~혀 정치적인 의도는 없으니 그저 추억으로 편안하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프로야구 기록중에 불멸의 기록들이 몇가지 있죠. "너구리" 장명부의 30승, 백인천의 4할, 그리고 박철순의 "22연승"입니다.
사실 박철순 투수는 전성기가 1982년 외에 없었어요. 원년에 자신의 몸을 갈아넣으면서 베어스의 우승을 만들었을 따름이죠. 1982년 이후로는 항상 연봉에 비해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밀워키 브루어스의 주목을 받은것은 사실이지만, 메이저 리그를 약속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외국 진출이 역사가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한국 프로야구의 원년이 된 1982년, OB 베어스는 우승권으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 프랜차이즈를 시작했었죠. 훗날 수많은 대전팬들이 한화 이글스가 있음에도 불구, 당시의 베어스에게 불만을 토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베어스는 3년을 버텨주면 서울 입성을 허락한다는 계약을 앞둔 상황이었죠. 그래서 한화 이글스 파크의 첫 주인은 팀 이글스가 아니라 베어스였기도 합니다.
(이젠 노후화되어 새 구장을 바라는 대전 시민들이 많기도 하죠)
프로야구의 원년, 서울 연고지를 먼저 보장받았던 MBC 청룡은 1차 드래프트에서 김재박과 이해창이라는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합니다. 그에 비해 베어스는 박철순이라는 투수 한명을 영입하는데 그쳤죠. 물론 서울권과 충청권 선수들의 풀 차이는 있겠지만, 어차피 서울 라이벌이 될 두 팀의 드래프트로써는 아쉬운 느낌을 버릴 수 없네요.
(MBC의 간판 타자, 김재박)
1982년 박철순은 현대야구의 투수들이 만들수 있는 모든 기록들을 새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22연승의 기록에는 김영덕 감독과 김성근 투수코치의 배려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원년 최고의 스타 투수였지만, 그의 기록에는 224.2 이닝이라는 한 시즌 팀의 30%에 가까운 이닝을 혼자 소화한 흔적이 남아 있었죠. 이후로도 부상은 그의 커리어를 괴롭혔고, 1995년에 이르기까지 먹튀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사정을 아는 베어스 팬들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이었죠)
원년 우승 이후, 긴 침체기를 보내던 베어스 구단에는 1994년 항명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같은해 한지붕 두가족 구단인 트윈스는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베어스의 분위기는 흉흉했죠. 그리고 1995년, 누구도 베어스의 우승을 점치지는 못했을 겁니다. 새로 영입된 김인식 감독을 제외하곤 말이죠.
투수를 갈아넣는 것으로 유명한 김인식 감독은 지금에는 킬인식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우승에 목말랐던 베어스 팬들에게는 구세주와 다름없는 존재뎠습니다. 팬들은 망가진 팀 분위기를 추스리고 어떻게든 다잡아 주겠지 정도의 바람이었는데, 떡하니 우승을 해버린 최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요래 던지란 말이여, 안그럼 다쳐!!)
1995년의 주역들은, 서울 홈런왕으로 무려 25(?!)개의 홈런을 쳤던 김상호와 안경 에이스로 유명한 김상진 선수였습니다. 김상호는 25 홈런과 101 타점으로 홈런-타점 2관왕을, 그리고 김상진 투수는 17승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었죠. 이런 동료들의 뒷받침 아래, 박철순은 원년 이후 가장 많은 승수인 9승을 기록했습니다. 구단 관계자는 그렇다치고, 팬들에게는 굉장히 감격스러운 한 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1995년 잠실에 계셨던 분들은 9회에 박철순을 연호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원년 우승의 주역이자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박철순은, 그렇게 1996년 은퇴식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항상 그라운드를 떠날 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더군요. 비록 우울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였던 그라운드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흠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히 한밭 야구장에서 그가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 믿고 말이죠.
공군 출신의 박철순은 사실 연대 법학과에 입학만 했지 학교 생활에는 추억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공군 선임이었던 이종도와 에이스 남우식이 그의 멘탈과 기술을 깨우쳐 주었다고 하네요. 훗날 공군 기지를 찾아서, 그가 감격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니 군 시절이 그에게는 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이더군요.
물론 베어스의 팬이 아닌 다른 팀의 팬들에게는 이 글이 그냥 수많은 야구글 증의 하나로 남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밤에 올렸다가는 괜한 추억팔이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낮에 올리는 글이거든요. 다만 프로야구의 시작을 장식했던 영웅들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올립니다.
(2015년 스리랑카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박철순의 모습입니다.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 11회 아시안컵에서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안겨 주었다는군요)
저는 원년부터 베어스의 팬이지만, 굳이 박철순을 미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에 밝히지는 않았지만, 박철순의 인간적 과오도 적지 않죠. 하지만 지금의 프로야구가 있게 한 최고 공신중의 하나임에는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스타들을 잡지 못하고 타팀에 빼앗겨야 했던 베어스 팬으로는 더욱 그렇고 말이죠. 비록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앞으로도 프로야구가 오래 사랑받기를 바라며 글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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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원년 OB팬으로서..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