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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추억소환] 박철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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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9-12 13:03:31

 

 처음으로 쓰는 스포츠 관련 글입니다. 비록 프로야구 글이지만 전~혀 정치적인 의도는 없으니 그저 추억으로 편안하게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프로야구 기록중에 불멸의 기록들이 몇가지 있죠. "너구리" 장명부의 30승, 백인천의 4할, 그리고 박철순의 "22연승"입니다.

 

 사실 박철순 투수는 전성기가 1982년 외에 없었어요. 원년에 자신의 몸을 갈아넣으면서 베어스의 우승을 만들었을 따름이죠. 1982년 이후로는 항상 연봉에 비해 이렇다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밀워키 브루어스의 주목을 받은것은 사실이지만, 메이저 리그를 약속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의 외국 진출이 역사가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한국 프로야구의 원년이 된 1982년, OB 베어스는 우승권으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 프랜차이즈를 시작했었죠. 훗날 수많은 대전팬들이 한화 이글스가 있음에도 불구, 당시의 베어스에게 불만을 토했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베어스는 3년을 버텨주면 서울 입성을 허락한다는 계약을 앞둔 상황이었죠. 그래서 한화 이글스 파크의 첫 주인은 팀 이글스가 아니라 베어스였기도 합니다.

 

  (이젠 노후화되어 새 구장을 바라는 대전 시민들이 많기도 하죠)

 

 프로야구의  원년, 서울 연고지를 먼저 보장받았던 MBC 청룡은 1차 드래프트에서 김재박과 이해창이라는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합니다. 그에 비해 베어스는 박철순이라는 투수 한명을 영입하는데 그쳤죠. 물론 서울권과 충청권 선수들의 풀 차이는 있겠지만, 어차피 서울 라이벌이 될 두 팀의 드래프트로써는 아쉬운 느낌을 버릴 수 없네요. 

 

 (MBC의 간판 타자, 김재박)

 

 1982년 박철순은 현대야구의 투수들이 만들수 있는 모든 기록들을 새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는데요, 사실 22연승의 기록에는 김영덕 감독과 김성근 투수코치의 배려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원년 최고의 스타 투수였지만, 그의 기록에는 224.2 이닝이라는 한 시즌 팀의 30%에 가까운 이닝을 혼자 소화한 흔적이 남아 있었죠. 이후로도 부상은 그의 커리어를 괴롭혔고, 1995년에 이르기까지 먹튀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사정을 아는 베어스 팬들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이었죠)

 

 원년 우승 이후, 긴 침체기를 보내던 베어스 구단에는 1994년 항명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같은해 한지붕 두가족 구단인 트윈스는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베어스의 분위기는 흉흉했죠. 그리고 1995년, 누구도 베어스의 우승을 점치지는 못했을 겁니다. 새로 영입된 김인식 감독을 제외하곤 말이죠.

 

 투수를 갈아넣는 것으로 유명한 김인식 감독은 지금에는 킬인식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우승에 목말랐던 베어스 팬들에게는 구세주와 다름없는 존재뎠습니다. 팬들은 망가진 팀 분위기를 추스리고 어떻게든 다잡아 주겠지 정도의 바람이었는데, 떡하니 우승을 해버린 최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죠. 

 

 (요래 던지란 말이여, 안그럼 다쳐!!)

 

 1995년의 주역들은, 서울 홈런왕으로 무려 25(?!)개의 홈런을 쳤던 김상호와 안경 에이스로 유명한 김상진 선수였습니다. 김상호는 25 홈런과 101 타점으로 홈런-타점 2관왕을, 그리고 김상진 투수는 17승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었죠. 이런 동료들의 뒷받침 아래, 박철순은 원년 이후 가장 많은 승수인 9승을 기록했습니다. 구단 관계자는 그렇다치고, 팬들에게는 굉장히 감격스러운 한 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1995년 잠실에 계셨던 분들은 9회에 박철순을 연호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원년 우승의 주역이자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박철순은, 그렇게 1996년 은퇴식을 마지막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항상 그라운드를 떠날 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더군요. 비록 우울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였던 그라운드에 경의를 표하는 것을 흠잡고 싶지는 않습니다. 특히 한밭 야구장에서 그가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 믿고 말이죠. 


  

 공군 출신의 박철순은 사실 연대 법학과에 입학만 했지 학교 생활에는 추억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공군 선임이었던 이종도와 에이스 남우식이 그의 멘탈과 기술을 깨우쳐 주었다고 하네요. 훗날 공군 기지를 찾아서, 그가 감격스럽게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니 군 시절이 그에게는 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이더군요. 

 

 물론 베어스의 팬이 아닌 다른 팀의 팬들에게는 이 글이 그냥 수많은 야구글 증의 하나로 남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밤에 올렸다가는 괜한 추억팔이가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낮에 올리는 글이거든요. 다만 프로야구의 시작을 장식했던 영웅들을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올립니다. 

 

 (2015년 스리랑카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박철순의 모습입니다.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 11회 아시안컵에서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안겨 주었다는군요)

 

 저는 원년부터 베어스의 팬이지만, 굳이 박철순을 미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에 밝히지는 않았지만, 박철순의 인간적 과오도 적지 않죠. 하지만 지금의 프로야구가 있게 한 최고 공신중의 하나임에는 틀림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스타들을 잡지 못하고 타팀에 빼앗겨야 했던 베어스 팬으로는 더욱 그렇고 말이죠. 비록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앞으로도 프로야구가 오래 사랑받기를 바라며 글 올립니다.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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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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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2 13:05:40

저도 원년 OB팬으로서.. 잘 읽었습니다.. ^^

WR
2018-09-12 13:07:17

원년 팬을 직접 뵙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지금은 머리도 벗겨지고 많이 마르셨던데요, 그래도 박철순이라는 이름은 베어스 팬에게 영원할것이라 믿습니다.

1
2018-09-12 13:06:34

95년 우승때 경기장엔 못갔지만 TV로 보는데 9회 2아웃 마지막 타자때 정말 구장 떠나가라 할 정도로 관중들이 박철순을 연호하던 장면을 봤지요. 저도 박철순이 나와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주길 매우 기대했었는데...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는 불펜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김인식 감독도 끝내 권명철 선수로 경기를 끝냈죠.

 

2018-09-12 13:07:58

점수가 여유가 있었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그게 아쉽긴 합니다.

WR
2018-09-12 13:09:28

그때의 권명철이 지금 투수코치로 베어스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죠.

 

이강철 코치가 한용덕 코치 이후 수석 코치를 맡았더군요.

 

물론 선수시절 명품 슬라이더는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1
2018-09-12 13:07:53

믿고보는 시리즈물!
언제나 감사합니다~ 뼈를 갈아넣는 그 아픔과 열매의 맛은 아는 사람만 알겠죠~

WR
1
2018-09-12 13:11:16

그래도 원년 우승의 기쁨이 컸던지, 투수로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박철순을 그대로 데리고 간 것은 두산 구단의 나름 의리였다고 봅니다.

 

물론 내쳤다간 팬들에게 구단이 개박살 났겠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박철순인데!!!

1
2018-09-12 13:19:46

그것이 당시의 한국사회의 통념이었다고 봅니다

WR
2
2018-09-12 13:22:13

IMF 이전까지의 기업 문화는 이제는...

 

그래도 다른걸 떠나서 엉망 진창이 된 두산이 여지껏 베어스를 포기 못하는 데에는 선대부터의 강한 자부심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1
2018-09-12 13:08:46

1995년 우승 당시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박철순 선수의 이름을 외쳤던 1인 입니다 ㅠㅠ

WR
2018-09-12 13:13:18

아아... 저도 입석으로 내야 맨 꼭대기에서 박철순을 외쳤던 1인입니다.

 

82년 이후 계속 부침을 거듭하던 팀의 우승이라 믿겨지지 않기도 했고 말이죠.

 

95년 한국 시리즈는 제게 최고의 파이널 시리즈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
2018-09-12 13:09:56

1995년 김상진 선수 대단했죠. 3게임 연속 포함 8완봉을 했으니까요. 선동렬 감독과 함께 공동 기록입니다. 그런데 엘지 야생마랑 붙어서 세번 다 졌죠. 기억에 이상하게 엘지만 만나면 잘 안풀렸던거 같아요. 시즌초에는 정말 무서운 야구 천재 박준태한테 홈런 맞고 ㄷㄷㄷ

1
2018-09-12 13:12:39

그때 김상진과 이상훈이 라이벌이었다고 봐야죠. 팬들도 계속 둘을 비교했고.

둘의 대결에서는 이상훈이 이겼지만, 팀 우승은 베어스가 하게 된것도 참 묘한 결과구요.

김상진 돌직구 정말 끝내줬었는데...

WR
1
2018-09-12 13:14:51

연습생 신화의 원조가 타자는 장종훈 투수는 김상진인것 같아요.

 

안경쓰고 나와서 배트맨이라는 별명도 있었던것 같네요^^;;

 

절대 피해가지 않는 정면승부로 기억됩니다. 

2018-09-12 13:29:37

아침에 구렁이 응가를 보고 기분이 좋았는데

삽님이 저랑 같은 구단을 응원했다니.....

초큼 기분이 다운되었지만

극뽁.해야지요.

 

글은 잘 읽었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WR
2018-09-12 13:30:47

1
2018-09-12 13:31:14

아잉~맛나겠당 

WR
2018-09-12 13:32:24

헐..

 

앙님 윈! 저는 최소한 존엄성은 지키고 살려구요.

1
2018-09-12 13:36:21

 

 

06년도 잠실에서 박철순님 사인회에서 한장 찍었던 사진입니다. 후배가 KBO 관계자라 덕아웃에 계신 뒷모습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습니다. 추억 소환 감사합니다. 전 박철순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WR
2018-09-12 13:38:20

지금은 저 모습보다 머리가 더 빠지시고 앙상해지셨어요..ㅠㅠ

 

그렇지만 누구나 베어스 팬이라면 올타임 에이스 자리는 항상 박철순을 위해 비워놓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중한 사진 감사드려요! 

2
Updated at 2018-09-12 14:13:38

저도 원년 베어스 팬입니다. 지금도 박철순 마킹된 올드 유니폼을 가지고 있죠 ㅎㅎ OB맥주에 받은 박철순 사인 캔을 아직도 뜯지 않고 갖고 있는데 세월의 흔적이 장난 아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wRX8OPrQAH0 이 영상만 보면 눈물이 납니다.

WR
2018-09-12 14:17:40

말년 박철순이 등판할때 를러나오던 마이웨이... 그리고 머리 위에서 내리꽂는듯한 그의 투구폼까지 모든 것을 담은 영상이네요,

 

지금은 두산베어스지만 저도 웬지 OB 시절이 기억에 남아서 아직도 두산이란 이름이 어색하긴 합니다.^^;;

멋진 영상 감사드리고 눈물나게 잘 봤습니다!!!

1
2018-09-12 14:56:08

저도 원년 OB팬으로서 글 잘 읽었습니다^^

 

원년 우승할때 코리안시리즈 보려고 동대문 야구장에 저녁 경기를 아침 9시부터 줄서서 본 기억이 나네요~

WR
2018-09-12 14:59:19

동대문 야구장을 기억하시는 원년 팬을 여기서 뵙습니다.

 

가끔 동대문 지나갈때 DDP는 제겐 그냥 흉물입니다. 차라리 그곳에 돔구장을 지었으면 백만배 좋았으리라 믿는 야구팬입니다. 

1
2018-09-12 15:13:25

저도 원년 OB 팬으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옛날 대전 구장은 외야에 좌석이 없이 그냥 흙언덕이었죠. 어릴 때 텔레비젼에서 그걸 보고 약간 놀랐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2년에 아버지와 함께 동대문 야구장 (당시에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이라고 불렸죠) 에 가서 야간 경기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동대문 운동장 주변의 가게에서 풍겨오던 매캐한 생선굽는 냄새와 사람들의 땀냄새도 아직 기억이 나네요.

 

안타까운게 박철순 선수 이후에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제대로 대우를 받은 선수가 없다는 거죠. 그나마 두산에서 은퇴식을 한 홍성흔 선수도 롯데에 가서 전성기를 누렸기 때문에 영구결번은 안 될 것 같습니다. 김현수 선수가 영구결번을 하기를 바랬는데 팀에서도 안 잡고 LG로 가버리고, 기대는 안 했지만 니퍼트 선수도 KT로 가버리고..... 양의지 선수라도 남아줘서 영구결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만 또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쩝.  

WR
Updated at 2018-09-12 15:52:05

장문의 정성 댓글 먼저 감사드립니다.

 

저도 원년 베어스 팬이라 감상에 젖어서 글 남겼지만, 두산이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무덤인것은 맞습니다. 박철순 이후 그 누구도 깔끔한 은퇴를 맞이한 적이 없는것 같네요. 김동주는 개인사가 지저분했고 홍성흔은 자기가 입을 털었던 역사가 있기에 힘들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요. 

 

개인적으로는 그간의 자린고비 행보가 의지를 잡기위한 의지로 읽혔습니다. 부디 내년엔 의지를 품고 새로운 왕조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네요. 

1
2018-09-12 16:33:16

 원년팬으로서 95년우승때 만년꼴찌팀을 10년간 응원한 보람에 감개가 무량했었습니다. 

 

지금 두산팀은 베어스같지가 않아요. 언젠가 OB베어스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지고 한국프로야구에는 관심을 꺼버렸습니다.

WR
2018-09-12 17:01:45

모기업에 대한 감정을 덜어내고 보면, 베어스는 그래도 3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가는 프랜차이즈이기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팀 운영을 비롯한 전반적인 것들은 맘에 들지 않지만 올해도 리그의 압도적인 1위를 찍고 있기도 하구요.

 

박철순 시대를 사랑하지만, 지금의 잘나가는 베어스도 팬으로써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모기업이 불안하기에 언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언제까지나 베어스의 이름만은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09-12 18:33:51

두산이 매각하고 OB가 다시 샀으면 좋겠어요 예전 유니폼만 보면 가슴이 터질것 같습니다.

1
2018-09-12 22:37:37

21번 박철순. 제 마음의 우상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요즘 허리는 좀 괜찮으신가....모르겠네요.

WR
2018-09-13 10:10:26

최근에 방송 나오신 걸 보았는데 거동에는 큰 불편이 없으신것 같더군요.

 

다만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약간 말이 많아지셨..

 

무슨 예능 이런데 나오는건 반대이지만, 좀더 얼굴을 자주 보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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