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추억소환] 90년대 극장가 맛집들(1)
얼마전에 광역버스 1005-1번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0월 28일에 운행을 중단하였다니 아직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셈인데요. 성남에서 서울시내까지 한번에 연결해주었던 추억의 노선이기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성남시 맨 끝에서(오리) 출발하여 광화문을 거쳐 서울역까지 가는 노선이었는데요. 제가 대학생이었던 1995년에 개통했기에 탈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특히 종로 근처에서 모임을 갖거나 중앙시네마에서 영화를 본 후에는 1005-1번 심야 버스를 타고 귀가한 적이 많았죠.
(이 출구로 나오면)
(이런 분식을 파는 식당이 나옵니다)
중앙시네마에서 을지로 지하보도 입구 살짝 못미쳐서 분식집이 있었는데요.(지금은 가보질 않아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야에도 영업을 하면서 국수, 라면, 김밥과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중앙시네마에서 영화나 시사회를 보고 난 후에 거기서 한잔을 기울이다가 전철이 끊긴 시간에도 1005-1을 기다리면서 부른 배를 흐뭇해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중앙시네마에서 시네코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포장마차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낙원상가와 허리우드 극장이 있죠. 그 바로 근처에 있던 해장국집, 기억하시나요?
(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찾으시는 집입니다. 추억의 소주 반병도 가능하더군요.)
무한도전에 2천원 해장국집으로 나와서 유명세를 탔나 본데요. 제가 처음으로 찾았을 때는 천원인가 천오백원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술을 팔기는 하지만 보통은 근처에서 밤새 마시고 새벽에 찾곤 했죠. 전철 첫차를 기다리면서 들이키던 국물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해장국집에서 종로3가 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여기저기 전집과 홍어집이 눈에 들어오고요. 종로3가역 6번 출구 근처 골목으로 들어가면, 갈매기살로 유명한 고깃집들이 나타납니다.
(낙원상가 바로 근처의 전집들)
여기서 대낮부터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 하다가 결국 귀가를 못하고 어딘가의 여인숙에서 잠을 청한적도 많았습니다. 시내 이곳저곳에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셈이죠.
(갈매기살 골목 입구 모습)
(혹시 제가 찍히지 않았을까 두려웠는데 다행히 블러처리가 되어있군요.)
바로 근처에 피카디리와 단성사 극장이 있기에 강의 끝나고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자연스레 앉았던 야외 테이블이 기억납니다. 겨울에는 외투를 맡아주셨죠.(고기냄새 방지용) 비교적 저렴한 가격도 좋지만, 워낙에 분위기가 좋은 골목이라 자주 찾았던 기억입니다. 방송을 탄 뒤로 한동안 찾지 않았는데요. 겨울이 곧 다가오고 있으니만큼,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맘이 간절하네요.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서울극장쪽으로 건너가면, 또 유명한 골목이 나타납니다.
(아.. 정겨운 굴보쌈 간판이 뙇!)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조그만 뒷골목을 찾으면, 골목 안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보쌈집을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 푸짐한 굴보쌈에 소주 한잔 기울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죠.
무척 더웠던 올 여름에 방송을 자주 타서 모두에게 친숙한 "노가리골목"을 다들 잘 아실겁니다. 서울극장에서 을지로 3가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청계천을 지나 넓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이젠 기업형으로 영업하는 노가리 골목 호프집들이 손님들을 반깁니다.
(자동차는 못 지나가고 배달 오토바이와 행인들 정도만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골목은 골뱅이가 원조죠!)
남들이 맥주 마실 때, 저는 골뱅이에 소주를 마시고 계란말이로 매운맛을 달래주면 그저 행복했습니다. 술꾼들이 근처 구멍가게에서 술을 사고 간단한 안주를 찾다가, 골뱅이 통조림을 발견한데서 유래했다는 골뱅이 무침은, 그저 가게에서 캔을 따서 대충 파랑 고춧가루랑 마늘만 썰어넣고 무쳐서(대구포는 주는 가게도 있고 없는 가게도 있더군요)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간편 안주였죠. 그렇지만 돌아서면 생각나는 묘한 중독성이 일품이었습니다.
서울극장에서 을지로 3가 역을 지나 명보극장으로 내려가다 보면, 횡단보도가 있는 사거리에 오모리 김치찌개와 옛날 손짜장집이 있었습니다.
(맛집까지는 몰라도 평타는 치는 집이기에 부담없이 찾을수 있었죠)
석촌역 근처 오모리 찌개와 손짜장집은 아직 영업을 하던데, 여기는 어떤지 모르겠네요. 다만 송파구 본점은 주차장이 있는데 비해서 이곳은 주차가 힘드니 대중교통으로 찾아주세요~
그리고 길건너 인쇄골목 초입에는 해물된장으로 유명한 집이 있는데요.
(1989년에 개점했다는데요. 당시엔 별 느낌이 없었지만 이제는 30년이 흘렀군요.)
이곳에서 된장 뚝배기를 시키면 큰 냉면사발에 야채와 계란 프라이를 같이 주었습니다. 바로 공기밥과 된장국을 넣어서 쓱쓱 비벼 먹으면 꿀맛이었죠.
(요런 식으로 말입니다)
충무로로 내려와 대한극장쪽으로 가다 보면, 커다란 사진에 주방장이 면을 치고 있는 모습을 걸어놓은 중화요리집이 있습니다. 이미 방송을 많이 타서 유명해진 "동회루" 인데요. 간단하게 짜장 짬뽕 탕수육 정도 시키고 둘이서 이과두주 각 1병씩 곁들이는게 좋았습니다.
(사진이 제법 오래되었으니 실제 주방장은 나이가 많이 드셨을 듯 하네요)
맛은 뛰어나지도 나쁘지도 않은 무난한 정도로 기억됩니다만, 면발의 굵기가 서로 달라서 다채롭게 씹히는 식감은 기억이 납니다. 바로 큰길가에 있으니 찾기가 편해서 종종 갔었는데요. 이제 대한극장도 예전의 최신식 시설은 아니다보니 <옥자> 이후로는 가보질 못했네요. 대한극장을 지나서 동국대 후문 쪽으로 올라가서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집을 비롯해서 몇몇 곳을 가보았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곳은 없군요.
오랜만에 시내 극장가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사진들을 찾아보면서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 술생각이 간절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원래 강남 극장가도 소개할까 했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다른 곳을 주제로 다시 올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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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굴보쌈 비쥬얼은 저를 미쳐버리게 만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