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리뷰] 드래곤 퀘스트 11 (스포일러 없음)
*이 게임은 지금까지 나왔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와 비교해도 그렇고, 다른 그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스토리와 캐릭터 설정이 중요한 게임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조금이라도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적지 않으려 합니다. 댓글 주실 분들도 (이미 플레이하셨다면 아시겠지만) 예민한 내용은 꼭 스포일러 경고를 켜고 적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그럼에도 댓글에 원치 않는 내용이 담길 수 있으니 플레이하지 않으신 분은 가급적 댓글을 보지 않으시길 권해 드립니다!)
**아래 리뷰는 PS4 한국어 버전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룰루아빠입니다.
얼마 전 PS 스토어 설날 세일 때 게임 추천 글을 올리면서 드래곤 퀘스트 11을 추천해 드렸지요. 엔딩 먼저 보고 며칠 후 다시 플래티넘 작업 조금 해서 완성한 기념으로 간단한 리뷰를 올려 봅니다.
0. 개요
드퀘 11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무나도 드래곤 퀘스트다운 드래곤 퀘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날 세일 게임 추천 때 제가 드퀘 11을 드퀘 8과 비슷한 감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 것 같아요. 드퀘 8은 당시 드래곤 퀘스트라는 게임의 핵심적인 시스템을 최대한 간직하면서 당시로서는 최신 콘솔이었던 플스2 하드웨어의 장점을 살려 시각적인 면에서 상당한 발전을 보인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나왔던 드퀘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11을 끝낸 후에는 11이 시리즈 최애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시스템적인 면보다 스토리가 큰 역할을 합니다.
1. 스토리 및 분량
이 게임의 스토리는 놀랍습니다. 음, 어쩌죠.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가 없네요. 이 게임이 영화라고 하면 시놉시스는 별거 없습니다. 용사가 있다. 마왕이 있다. 용사가 마왕을 때려잡는다. 드퀘 5, 드퀘 8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겠죠. 사실 이 큰 줄기는 어느 드퀘에 갖다 붙여도 똑같은 얘깁니다. 하지만 드퀘 11의 스토리는 놀랍습니다. 용사가 마왕 때려잡는 얘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직접 플레이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다행히 그 어떤 스포일러도 미리 접하지 않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지금 제 손가락이 얼마나 근질근질하는지는 엔딩 보신 분만 알 수 있습니다.
제 기준에서 드퀘11은 분명 이전작들의 이야기를 뛰어넘었습니다. 후속작에서도 같은 업적을 해내는 건... 웬만한 이야기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임 분량은 꽤 되는 편입니다. 일직선으로 진행해서 엔딩을 보기까지는 대략 70시간, 각종 수집 요소 및 플래티넘 작업까지 하면 100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저는 마지막 세이브에 찍힌 시간이 99시간 45분이었습니다. 참고로 드퀘 11은 다른 게임에 비해 플래티넘 찍기가 쉬운 편입니다.
2. 그래픽
게임 내 그래픽은 보통, 좋게 봐 주면 보통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될 때의 무비는 괜찮습니다. 다만, 용사가 마왕 때려잡는 유치한 컨셉의 판타지 게임이기 때문에 그래픽이 그저 그래도 납득이 됩니다. 저는 파판도 3부터 6까지 몇 번씩 반복 플레이했던 올드팬이지만 언젠가부터 실사처럼 방향을 튼 파판에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게임 그 자체만으로도 괴리가 너무 컸던 거죠. 드퀘는 차세대에서도 한결같은 분위기의 드퀘여서 마음 편히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볼 때부터 익숙한 토리야마 아키라의 캐릭터 디자인도 질리지 않는데, 어쩌면 이 디자인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형태의 그래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사운드
BGM은 보통 이하...라고 조심스레 평해 봅니다. 작곡이 나쁜 건 아닌데(시리즈 내내 이어오는 곡이 많으므로) 아쉽게도 편곡이 좋지 못합니다. 스토리는 ‘용사가 마왕 때려잡는다’라는 테마를 잘 변주했는데, BGM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다만 오프닝의 오케스트라 편곡은 무척 훌륭합니다.
그 외 각종 이펙트 등은 보통으로, 딱히 거슬리지 않는 수준입니다.
참고로 영문판을 바탕으로 한 한국어판에는 영어 음성이 담겨 있는데, 초반 약간 플레이해 보시고 별로다 싶으시면 옵션에서 음성을 0으로 줄이면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왠지 못 듣겠더라고요.
4. 캐릭터
스토리와 함께 이 게임의 빛나는 장점입니다.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주인공인 용사만 제외하면 모두가 개성 넘치고 사랑스럽습니다(사실 드퀘에서 주인공이 개성 있긴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대사가 없거든요).
사실 드퀘와 같은 게임은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기가 어렵습니다. 벌써 여러번 언급했듯이, 전형적인 일본 RPG의 맥을 따라가는 게임이기 때문에 캐릭터로 뭔가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본작을 평작에서 수작으로 단숨에 올려 준 캐릭터가 바로 실비아입니다. 실비아는 게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오카마입니다(스스로 여성인 듯 행동하나, 게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PC, PC하더니 억지로 하나 끼워넣었나...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제작진에서 이 캐릭터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겠더군요. 게임이 끝날 때쯤에는 저도 모르게 실비아의 팬이 되어 있었습니다. 중간에 나오는 실비아 동료들도 넘 웃기고... 아버지도... 엿튼 스포일러 때문에 더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안 그래도 온 사회가 PC 때문에 예민해져 있는 지금, 여러분도 드퀘 11을 하신다면 이를 돌려 말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실비아의 팬이 되실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꼭 실비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이 게임은 중간에 웃음 포인트가 많습니다. 저도 혼자 실실 쪼개기도 하고 때로는 폭소가 터지기도 했어요.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웃는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데 말이죠.
5. 전투 및 게임 난이도
RPG이니 전투 얘길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드퀘 시스템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 (바다를 제외하고) 랜덤 인카운터가 없다는 점입니다. 필드의 적들은 모두 눈에 보이고, 그러므로 내가 전투를 원하지 않으면 피해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특정 적을 잡아야 한다면 내가 선택해서 잡을 수 있고요.
전투 시스템 자체는 캐릭터 능력치 상승 및 연계 기술 발동을 위한 ‘존 시스템’을 제외하면 딱히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존 시스템도 기존의 텐션 시스템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전통적인 드퀘의 전투 시스템을 계승했으며, 마법이나 특기 등도 비슷합니다. 레벨업에 따라 마법은 자동 습득하지만 스킬은 게이머가 직접 선택하는 방식인데, 따라서 초중반까지는 스킬을 찍는 대로 캐릭터의 전투 스타일이 잡힙니다. 사용하는 무기도 달라지고요. 하지만 스킬은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리셋이 가능하기에 부담없이 막 찍어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게임 난이도가 낮은 편입니다. 제 경우 엔딩 볼 때까지 전멸한 적이 한 번밖에 없을 정도인데, 제가 딱히 뭔가 계산해 가며 전투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그러니 난이도가 낮은 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이런저런 제약 플레이를 통해 하드 모드 비슷하게 진행할 수는 있지만, 제 생각에는 그보다 전투 난이도를 확 올리고 대신 전투에 참여 가능한 캐릭터 수를 넷에서 다섯으로 늘려 주었다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시리즈 전통의 메탈 슬라임류(메탈 슬라임, 외톨이 메탈, 메탈 핸드, 메탈 킹) 레벨업이 드퀘 11에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메탈류 레벨업이 전투 난이도에 비해 습득 XP가 과도하게 높아서 게임이 너무 쉬워집니다. 이 게임의 만렙이 99인데, 메탈 킹 전투로 70에서 99까지 올리는 데 한 시간도 안 걸립니다.
“그럼 메탈 슬라임과 메탈 킹을 안 잡으면 되잖아?”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는데요, 이게 그렇지 않은 게... 이 게임에서 가장 재미있는 전투가 메탈류 전투거든요. 해 보신 분은 알지만 메탈류를 때려잡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청량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재미로 찾아서 하게 됩니다. 그런데 XP 습득량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그것도 몇 번 못 싸워요... 아쉽...
6. 그래서 제 점수는요...
적은 내용을 쭉 보니 단점이 많네요. 그런데 단점이 많은 게임이라 추천하지 않는다면 굳이 리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드퀘 11, 강추합니다. 요즘 게임 속 극한의 리얼리즘 추구에 지친 당신에게, 남의 집에서 뭐 하나 호주머니에 집어넣을 때마다 “도둑이야!” 소리 들릴까 노심초사하며 눈치 보는 데 지친 당신에게, 백팩에 뭐 하나 담을 때마다 무게 계산하고 버릴 거 골라내느라 짜증난 당신에게,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용사가 되어 마왕을 때려잡고 싶은 당신에게, 드퀘 11을 추천합니다.
만일 아직까지도 이 게임이 본인에게 맞을지 어떨지 확신이 없는 분에게 제가 판별법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후회없는 구입을 위해 아래 영상을 한번 봐 주세요.
영상을 보고난 후에 든 감상에 따라 추천 여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오, 피가 끓는다! - 추천
*덤덤하다 – 비추
*뭐야, 유치해. X라 잼없겠다 – 비추
*뭐야, 유치해. 너무 뻔하잖아. 음, 근데 뭐지 가슴 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내 심장을 간지럽히는 이 정체 모를 감정은? 뭘까, 모르겠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유치하고 뻔한 영상의 무언가가... - 추천
마지막으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실 여러분께 노파심에 당부 말씀을 드리면,
부디 스포일러를 피하세요. 공략 찾아보지 마시고(특히 영상 공략과 텍스트로 구구절절 다 설명해 놓은 공략) 그냥 하셔요. 말씀드렸다시피 게임 난이도가 무척 낮으므로 공략을 찾아봐야 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서브퀘스트 및 각종 수집요소에 대한 공략은 필요할 수 있으니, 정 답답하시면 아래 모에카님의 블로그 공략만 보세요. 스토리가 거의 없는 공략입니다.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realkoon&from=postList&categoryNo=39
이 외에 참고하면 좋은 팁은 카지노 관련 팁과 소재 아이템 출처 정도입니다. 어떤 공략은 길찾기에서부터 누가 나오네, 그래서 어떻게 됐네, 보스는 HP가 얼마에 뭐에 약하네 다 적어두었는데, 이런 공략을 보는 건 이 게임의 재미를 다 포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른 게임은 몰라도 이 게임의 경우 특히 스토리를 적어 놓은 공략은 게이머의 재미를 강탈하는 공략입니다. 마치 식스센스나 유주얼서스펙트를 보면서 결말 다 나와 있는 리뷰를 펼쳐놓고 보는 거랑 똑같습니다. 나무위키의 캐릭터 설명도 스포일러가 있으니 보지 마세요. 스킬 찍는 거 때문에 공략 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찍어도 다 깹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귀찮아서 공략을 잘 안 찾아보고 필요할 때만 검색하는 편인데, 이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나서야 이게 얼마나 잘한 짓인지 알게 됐습니다.
맺으며.
저도 엘더스크롤의 방대함을 좋아하고, 갓 오브 워의 시네마틱 연출에 감탄하며, 레드 데드 리뎀션 플레이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HP/MP라는 단순한 파라미터에 용사의 검과 용사의 방패를 든 용사가 되어 마왕을 때려잡고 싶은 작은 꿈 역시 간직하고 있습니다.
뻔한 스토리에 뻔한 전투, 뻔한 배경의 게임이지만 강추할 수 있는 건, 시리즈가 이어지며 이러한 뻔함조차 장인의 경지에 다다랐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드래곤 퀘스트 11는 저 같은 올드 게이머의 가슴 속 깊은 어딘가에 치석처럼 굳어 있던 감정을 자극하는 게임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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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로 완전판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