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추억소환] 90년대 NBA 스타들(3): SF편
요즘 뭔가 찜찜했는데 생각해보니 90년대 NBA 스타 시리즈를 깜빡 잊고 있었더군요!
급하게 리스트를 불러와서 올립니다. 혹 여러분들의 최애 선수가 빠져있을수도 있지만, 부디 너그럽게 넘겨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랜트 힐
94년 신인왕 동기인 제이슨 키드가 커리어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은 반지를 갖고 은퇴했지만, 그랜트 힐은 데뷔 당시부터 조던의 뒤를 이을거란 기대를 받던 슈퍼스타였습니다.(올스타 투표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죠)
그러나 고질적인 다리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팬들에게는 먹튀 소리까지 들을 만큼 위태로운 커리어를 보냈는데요. 우승도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고통스런 제활을 견뎌내며 결국은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한 불굴의 사나이라 하겠네요.
글렌 라이스
전성기 시절에도 한팀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저니맨이었던 글렌 라이스는, 엄청난 공격력을 가진 폭발적인 선수였지만 항상 처지는 수비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주로 약팀의 득점원 역으로 생명을 이어가던 라이스는, 결국 레이커스에서 롤 플레이어로 우승반지를 얻었네요. 말년에도 팀을 옮겨다녔지만,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시켰던 진성 슈터로 기억됩니다.
글렌 로빈슨
조던이 충격의 첫 은퇴를 선언하고 농구 코트를 떠나있던 시절, 성인 농구를 통틀어 전미에서 유일하게 평균 30득점을 넘긴 선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빅 독이었습니다. 1번픽을 가졌던 밀워키는 주저없이 빅 독을 선택했고, 최초의 1억달러 장기 계약을 배팅한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죠.(물론 욕은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나 득점력만큼 약점(수비마인드)도 뚜렷했던 선수였고, 밀워키 시절 이후에는 팀을 옮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행이라면, 은퇴 직전에 샌안토니오에 합류하여 우승을 맛보고 떠난 점이라 하겠네요.
도미니크 윌킨스
역대급을 다투는 SF 포지션 최강의 덩커이자 동시대의 제왕이었던 조던에게도 도전장을 내밀었던 선수였는데요. 나무랄데 없는 기량에도 불구하고 드림팀에 선발되지 못했고, NBA의 위대한 플레이어 50인에서도 떨어졌습니다. 호크스의 배신(?)으로 팀을 옮기게 된 그는, 셀틱스 시절 이후 그리스로 건너가서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NBA로 돌아와 스퍼스에서 주 득점원으로 뛰기도 했지만 유독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는데요. 이탈리아 리그에서 뛴 후에 말년에는 동생이 뛰던 올랜도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리그를 풍미했던 명 포워드의 퇴장으로선 아쉬움이 남는군요.
래리 존슨
보그스-모닝-존슨으로 이어지는 샬럿의 매력적인 스몰라인업에서는 파워포워드로 뛰었지만, 언더사이즈인데다 부상으로 인한 운동능력 저하로 스몰포워드 스타일로 전향하게 됩니다. 커리어의 후반기를 불태웠던 닉스 시절의 모습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는데요. 컨버스의 '그랜마' 광고와 함께, 3점을 성공시키고 자랑스럽게 그리던 빅 L이 그리워지네요.
로버트 오리
208cm의 장신에 상당한 운동능력, 거기에 정교한 슈팅과 외모까지 다 갖춘 NBA의 엄친아입니다. 게다가 큰 경기의 마지막 순간엔 항상 그의 슛이 경기를 결정지었는데요. 이른바 '오리꽥샷'으로 불리는 빅샷들이 상대팀들을 많이 침몰시켰죠.
휴스턴에서도 올라주원과 함께 백투백 우승에 공헌했으며, 레이커스 시절에는 샤크-코비와 함께 쓰리핏의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말년에 몸담은 스퍼스에서도 큰 경기에서 여지없이 빅샷을 터트리며 두번의 우승을 더 차지했는데요. 그의 우승반지는 7개로 조던보다도 하나 더 많습니다.
션 엘리엇
스퍼스의 깔끔한 SF로 기억되는 프랜차이즈 스타, 션 엘리엇입니다. 전성기에는 로빈슨에 이은 2옵션으로 제몫을 다했는데요. 운동선수로써는 치명적인 신장 질환으로 형의 신장을 이식받고 코트에 복귀했습니다.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이 그냥 운동도 아니고 NBA의 주전으로 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데요. 그런 몸으로도 롤플레이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팀의 우승에 함께했던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라 하겠습니다.
스카티 피펜
빼어난 공격력에 무시무시한 수비력을 갖춘 다재다능한 피펜은, SF라는 포지션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선수로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와 조던의 커리어가 모두 끝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단지 최고의 SF라기보다도 최고의 '동료'가 아니었나 싶네요. 불스 시절에 국한해서라면 말입니다.
크리스 뮬린
전성기를 보낸 워리어스가 만약 지금정도의 주목을 받는 팀이었다면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이 생겼겠지만, 당시의 워리어스는 런 TMC를 주축으로 한 재미있는 공격농구를 하는 팀이었습니다. 그들의 공격력은 한때 경기당 110점을 훌쩍 넘기는 가공할 수치였는데요. 다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원년 드림팀의 멤버였으며, 알콜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제2의 버드로 불리웠을만큼 빼어난 기량을 가졌던 그는, 말년에 인디애나로 팀을 옮겼는데요. 그곳엔 진짜 버드가 감독직을 맡고 있었죠. 버드 아래서 파이널 무대를 밟았지만, 레이커스에게 안타깝게 4-2로 패하면서 뮬린의 커리어도 막을 내렸습니다.
토니 쿠코치
크로아티아 출신의 다재다능한 플레이어이며, 한때 유럽 농구의 조던이라 할만큼 특출난 기량을 뽐냈던 선수입니다. 유고 대표팀에서는 거의 모든 포지션을 넘나들며 팀을 캐리했는데요. 자신의 조국인 크로아티아 대표팀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NBA 스카우터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며 시카고의 제리 크라우스 단장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다만 그때문에 결승전에선 조던과 피펜의 압박수비를 당해야 했죠..)
이윽고 동경하던 불스로 왔지만, 이미 조던이 팀을 떠난 후였습니다. 그래서 조던이 없는 팀을 피펜-그랜트와 함께 55승으로 이끌었죠. 다음해에 돌아온 조던과 함께 리그에 완벽 적응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3연패에 헌신했습니다. 우승의 주역들이 떠나간 불스를 지키다 말년에는 이리저리 팀을 옮겨다녔지만, 이제는 그를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유럽 출신 선수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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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거인(?)은 못생겼다란 편견을 깨준 쿠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