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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Authenticity의 문제 - 건축물 베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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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8-31 14:53:10

1. 영어로 Authenticit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로 뜻을 찾아보면 originality, genuineness, legitimacy라고 나옵니다.
진짜라는 뜻이지요. 진짜배기, 원본, 그래서 권위가 있고, 타당한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프차에서 이 단어를 몇번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영어학원들이 백인 영어강사를 우대하고 흑인이나 동양인은 고용을 피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 알려지고 있어서, 한국의 인종차별 사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한국인들은 왜 백인강사를 선호하는 것이냐 라고 의문을 던지는 미국인에게 누가 그렇게 댓글을 달더라구요. "Authenticity의 문제가 아닐까? 중국집에 갔는 데 중국인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면, 여긴 진짜구나(authentic) 라고 느끼는 것처럼."
질문자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더군요.

서양에서 진짜 라는 것은 그것만으로 중요하고 권위가 있고, 타당합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사실 서양이 아닌 동양권 사람들도 다들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천에서 중국집을 찾아갈 때 화교가 하는 곳이라고 부연설명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같은 거지요.


2. 그러나 authenticity를 무시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신기하고 드물게 보는 것이고, 예쁘면 베끼고 싶은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가장 흔하고 공통되게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유럽 건물들을 베끼고,
일본에서 유럽 건물들을 베끼고, 중국에서도 유럽 건물, 일본 건물들을 베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authenticity가 없는 곳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영혼이 없습니다. 껍데기일 뿐이지요.

우리나라 남해에 있는 독일마을은 독일에 갔던 간호사, 광부들이 나이들어서 돌아온 곳입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이제 독일식이 되어버린 사람들.
독일식 건물을 짓고 작은 마을을 지어 정착했습니다.

이런 곳은 뿌리가 있고 영혼이 있습니다. 나이든 영혼들이 쉬러 온 곳이지요.

남해의 독일마을
https://www.goethe.de/ins/kr/ko/kul/dos/mig/20378546.html

"고향이 그리워서 돌아왔지만 내가 그리던 고향은 이미 없었다. 내가 변한 만큼 고향도 변했고 시간도 흘렀다. 하지만 그래도 고향의 향취가 남아 있는 조국이 좋았다. 독일과 한국의 중간인 이 곳, 독일인도 한국인도 아닌 바로 나 같은 곳에 머물기로 했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모여, 33채의 주택이 세워졌고, 고요하고 우아한 작은 동네, 독일마을이 만들어졌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나라와 가족을 위해, 또는 나의 미래를 위해 독일행을 결심한 그들. 당시 대한민국 경제발전을 위한 차관을 빌리는 조건으로 간호사 12000여명, 광산 근로자 8000여명이 독일로 파견됐다. 청년 시절부터 30-40년간 인생의 절반을 독일에서 보냈지만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 한구석에 항상 남아 있었다.

정년퇴직 이후 제 2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을 때쯤, 1999년 김두관 당시 남해군수가 독일 각 지역을 다니며 독일마을에 대한 설명회를 했다. 김두관 전 남해군수의 형도 독일로 파견된 광산 근로자 중 한 명으로 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렸던 것이다.

2001년, 남해군은 삼동면 물건리와 동천리, 봉화리 일대 약 90,080 ㎡의 부지에 독일마을을 조성하기로 하고, 택지 분양 및 도로, 상하수도 등의 기반시설을 마련했다. 총 53개의 택지가 분양됐고, 2002년 첫 주택이 건축됐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33채의 주택이 세워졌고, 4채가 진행 중이다. 일부 주택들은 독일에서 설계됐고, 독일에서 들여온 건축자재로 건립됐다. 독일마을은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군청 내 문화관광과가 개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당시 독일마을에 거주하려면 독일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독일 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 또는 독일 국적동포여야 했지만, 현재 10년 간의 규제가 풀려 일반 국내인도 매매가 가능하다."

반면에 그냥 돈벌려고 만들어놓은 마을들도 있습니다.
가평의 스위스마을 에델바이스 같은 곳이 그렇습니다. 그냥 건물 지어놓고 거기서 사진찍으라고 만들어놓은 테마파크이지요.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ssuny777&logNo=220910672110&categoryNo=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이런 곳으로 유명한 데는 일본 나가사키의 하우스텐보스가 있습니다.
일본안에다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베껴서 건물들을 세워놓고는 관광지화한 것이지요. 상업적인 곳입니다.
거기는 그래도 '나가사키가 옛날에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많이 오던 곳이다' 라는 갸날픈 스토리라도 있다고는 할까요.
그 수백년전 네덜란드 상인들의 방문이 현재의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와는 직접 연결고리가 없지만 말입니다.

https://m.huistenbosch.co.kr/community/?mode=view&Type=2&no=1

https://m.huistenbosch.co.kr/upload/1430188157009.jpg


중국인들은 이것을 아주 초거대 규모로도 합니다.
일본 교토를 중국내에 재현한다 라는 목표로, 교토의 건축회사를 불러다가 일본 건축자재로 교토풍 건물 1600채를 짓고 있습니다. 동북3성의 다렌 지방에다가요. 1600채 정도면 마을이 아니라 소도시 규모지요.

「国家最大級」の京都再現プロジェクト、中国で進行中。度肝を抜かれる全貌とは?
https://headlines.yahoo.co.jp/hl?a=20190805-00010000-huffpost-bus_all

https://img.huffingtonpost.com/asset/5d47790f3b00004d00dae481.jpeg?ops=scalefit_630_noupscale

"東京ドーム13個分の面積を超える広大な更地を前に、「国家最大級」と銘打たれたプロジェクトを担当する男性コンサルタントは誇らしげだった。
中国東北部・大連で「京都風情街プロジェクト」と呼ばれる大型の開発計画が進んでいる。
計画を進めているのは「大連樹源科技集団有限公司」。不動産開発から木製工芸品の加工までを幅広く手がけるグループ企業だ。
日本側からは、宿泊事業者で作る「宿泊施設関連協会」と、施設設計やマネジメントを手がける日亜設計集団が提携先として参加している。

2019年4月に行われた3者のパートナーシップ調印式には、大連市の譚成旭市長も出席するなど、現地政府の注目度も高い。
プロジェクトは、国の最高ランクのリゾート地に指定されている大連市の「金石灘(じんしーたん)」地区の64万平方メートルの土地を利用し、別荘や商店など1600の建物を設けるというもの。樹源によると「国家最大級のプロジェクト」だという。
目指すのは「京都の街並み」の再現だ。日本から設計士を招聘し、建材も極力日本産のものにこだわるという。総投資額は60億元(約960億円)にものぼる。"


그러나 여기에 Authenticity가 있을까요? 중국땅에다가 일본인들이 일본식으로 설계하고 일본 자재로 지은 일본식 건물이지만, 여기에 authenticity가 있을까요?

우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이것은 나아진 점은 있네요. 예전에는 아예 시멘트, 철골로 유럽마을이라고 베껴서 지어놓고 이름만 같다붙여서, 우리들이 중국을 비웃었는 데, 이번에는 본토 회사를 불러다가 짓는 거니까 말입니다. 껍데기뿐이지만, 껍데기에 신경을 썼다고나 할까요. ㅎㅎ


중국의 놀라운 유럽 짝퉁 도시 11곳
https://m.blog.naver.com/tjems2238/220005408970

상하이 교외에 있는 유럽마을들
https://photohistory.tistory.com/m/6881

그러나 짝퉁은 짝퉁일 뿐입니다.
authenticity는 물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스토리와 진심에서 나옵니다.
칭따오 맥주는 중국 맥주이지만, 우리는 짝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서구 열강이 중국을 침략해서 치외법권 지역(조계)를 만들어놓고 살 적에, 독일인들이 중국의 청도 지방 조계에서 살고 있었고, 그때 독일 맥주공장을 만들어 놓은 게 있었습니다. 이제 독일인들은 떠났지만, 중국 인부들은 그 독일공장에서 계속 맥주를 만들어냈고 그게 칭따오 맥주의 시발점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이고, 이야기이고, 좋건 싫건 사람들이 살아온 진짜 삶입니다.
저는 삶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짝퉁에는 삶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살지 않습니다.
삶이 없으니까 영혼도 없는 겁니다.




3. 오늘 저는 authenticity를 무시하는, 가장 끔찍한 사례를 DP에서 보았습니다.
연수현우아범님이 올려주신 소식이었습니다.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0525508&page=1

https://dvdprime.com/g2/data/file/comm/1567205156_9QW6aDcE_IMG_20190831_074324.jpg

"잠실주공5단지 소유주들 원하는대로 재건축 안해준다고 프랜카드걸고 노동자코스프레한다고 망루까지 설치했어요."



....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농성을 베끼고 싶었나 봅니다.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거기서 농성한 것은 거기가 자기 일터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기로 매일 출퇴근했고, 그 높고 외로운 곳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며 매일 혼자서 일하다가 내려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농성하던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강남 아파트 주인이 왜 지네 아파트 옥상에다가 망루를 설치하는 겁니까. 그것도 꼴랑 2층 짜리.
내려오면 바로 자기집이겠구만.


저 망루에 삶이 있습니까?
저는 회의적으로 봅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위한 욕망은 있겠네요.


강남 아파트 재건축 소유자들의 망루 농성 건축물을 보면서,
authenticity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14
Comments
15
2019-08-31 09:27:49

저도 이렇게 멋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도 제가 찍은 사진이 좋은 글에 한 부분이 되었네요..^^

WR
2
Updated at 2019-08-31 10:01:49

좋은 글과 사진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연수현우아범님의 글을 보고 생각나서 쓴 잡담입니다. 원문 글쓴이의 칭찬은 과분하네요. ;;;

3
2019-08-31 09:29:04

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지만, 추천드립니다.

10
2019-08-31 09:31:33

바로 저 망루가 우리나라 부동산신화 authenticity를 상징하는것 아닐까요?
authenticity가 하나도 없는 바로 저지경이 authenticity를 획득하게 된거죠. 이 지구 어디서 저런걸 보겠습니까.

6
2019-08-31 09:32:08

영혼이 없다는 말 너무 공감입니다.

1
Updated at 2019-08-31 09:49:44

글의 전반적인 맥락은 이해하고 동의하지만 잠5단지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입니다.

저분들은 행정독재의 피해자입니다. 재건축단지부자들이라서 폄하되선 안됩니다.

노동자의타워크레인이나 낡은주공아파트소유주나 터전입니다. 일터나 집터냐의 차이겠죠.

변두리 다세대빌라촌에서 집주인이 망루를 세웠다면 인정해주는것인가요?

막강 김앤장급의 변호사군단을 고용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망루를 세워 투쟁? 할수 밖에

없는 행정독재가 있습니다. 

WR
26
Updated at 2019-08-31 09:59:06

본인들 재산권 행사를 위해서 농성을 할려면, 자기들 사정에 맞게 authentic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예를 들자면
저는 중국이 마을을 짓는다고 해서 비웃는 게 아닙니다.
중국이 지어도 지들 사정에 맞게 authentic하면 지으면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줍니다.
중국이 서양 짝퉁, 일본 짝퉁을 하는 게 문제이지, 중국이라서 문제인 게 아닙니다.

잠실5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재건축을 위해 농성하고 싶다면,
타워크레인 짝퉁을 지을 게 아니라, 자기들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서 authentic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중국인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짝퉁 짓을 하는 게 싫은 거고,
강남아파트 주인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짝퉁 짓을 하는 게 싫은 겁니다.

1
2019-08-31 10:11:24

좋은 글 감사합니다.

3
2019-08-31 11:01:40

매향인님은 dp의 보물입니다.

WR
1
Updated at 2019-08-31 11:50:42

아닙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가 썼던 글 때문에 상처받은 DP인을 보고,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1
Updated at 2019-08-31 15:38:10

노동자는 자기의 일터(삶)를 지키기위해 고공농성을 하는데...

좋은 글 고맙습니다.

2019-08-31 19:50:23

 늘 감사히 님의 저작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2019-09-01 03:45:22

추천 드립니다

2019-09-01 14:58:22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늘 응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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