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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 산소적응 메커니즘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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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01 02:46:15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세포가 가용한 산소량 변화를 감지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발견한 공로”로  그렉 세멘자 교수, 윌리엄 캘린 교수, 그리고 피터 래트클리프교수 3명에게 돌아갔습니다. 기여도도 각각 1/3씩입니다. 노벨상 위원회가 밝힌 수상업적 요약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늘 조심스럽습니다. 오류가 있으면 언제든 알려 주십시요.)


생명체가 산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왔습니다. 왜 필요한지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가 먹은  음식은 체내에서 저장되어 있다가, 호흡한 산소와 결합해서 에너지(ATP)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분자레벨에서 제어되는 연소반응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생성된 에너지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기능에 70% 이상 사용되고, 나머지는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서로 싸우거나 하는 데에 쓰입니다.

  

체내 산소농도는 늘 변화하며, 신체 내부의 조직별로도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 무리하게 운동하신 분들은 근육 내 산소농도의 결핍을 체험하셨을 겁니다. ^^  좀 안좋은 예로는, 종양이나 감염이 있는 조직도 산소농도가 낮아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산소농도에 따라, 몸도 늘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고산지대에 올라가면 체내에 EPO라는 호르몬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EPO는 erythropoietin의 약어로, 적혈구 생산(erythropoiesis) 촉진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의학용어는 죄다 이상할까요..) 주로 콩팥에서 생산되는 이 호르몬은 꽤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어서, 이미 1989년에 합성 EPO가 빈혈치료제(Epogen)로 FDA의 승인까지 받았습니다. 골수에서 생산되는 적혈구의 양이 이처럼 호르몬에 의해 제어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으나, 호르몬이 어떻게 제어되는지는 최근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습니다.


박사과정 시절부터 줄곧 빈혈과 저산소증(Hypoxia)을 연구해 온 미국의 그렉 세멘자 교수는, 학위 후 유전자 변형 쥐를 가지고 실험하면서 EPO 생성량이 저산소증일 때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연구하였는데, EPO생성 유전자 바로 옆에 있는 DNA 염기서열이, 저산소증에 대해 반응하는 기전과 관련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1992년에 세멘자 교수는 EPO를 생산하는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단백질을 확인하고 Hypoxia-inducible factor, 즉 HIF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말로 하면, ‘저산소증에 의해 유도되는 인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인자는 두개의 단백질이 서로 엉켜있는 형태로 구성되는데, 그중 HIF-1alpha라는 단백질이 산소와 반응하는 물질이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다른 하나는 HIF-1beta라는 이름이 붙었었으나, 나중에 ARNT라는 이름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 단백질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HIF는 산소가 부족해지면 DNA의 특정 부분과 결합하여 EPO 생성 유전자를 발현시킵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피터 레트클리프 교수도 EPO 유전자가 산소농도에 따라 조절되는 기전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신장과 관련된 연구를 해온 레트클리프 교수는 “어떻게” 신장이 혈액내 산소농도가 부족한 것을 알아내고 EPO 생산을 늘리는지 궁금해 했고, 세멘자 교수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기전에 관여하는 HIF 관련 유전인자를 알아냈습니다.


그렇다면 HIF는 어떻게 조절되는 것이냐? 또다른 유전인자가 HIF를 조절하는 또다른 물질을 만들고… 이런 건 아닙니다.

일단 HIF-1alpha는 이른바 유비퀴틴-프로테아좀(ubiquitin-proteasome)이라는 과정을 통해 분해된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프로테아좀은 세포내의 단백질 청소부로, 필요없는 단백질에 유비퀴틴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이 무시무시한 해결사가 알아서 파괴해 버리는데, 이 과정에서 산소가 관여하는 것까지는 확인이 되었습니다만, 자세한 경로는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두둥), 전혀 다른 분야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바로 '암'입니다.


미국의 윌리엄 켈린 교수는 암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VHL(Von Hippel-Lindau disease)과 같은 유전성 암 질환의 기전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1995년 논문에서 VHL에 관여하는 VHL suppressor gene(VHL을 억제하는 유전자)을 밝히고, 이 유전자가 생산하는 단백질(pVHL)이, 암세포가 종양을 생성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또한 몇몇 가계도를 조사해서, 암에 걸릴 확률과 변형된 VHL 유전자와의 관계도 밝혔습니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비정상적인 pVHL이 생성되는데, 이 경우 혈관, 림프, 망막 등 다양한 기관에 암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VHL 유전자가 변형된 세포들에서, 앞서 등장했던 HIF 생성량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것은 EPO 생산을 촉진하는 HIF인자와, VHL종양 생성과정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또한 이 pVHL 생김새가, 다른 단백질에 유비퀴틴 딱지를 붙이는 능력자들과 닮았다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출생의 비밀이랄까요. 암을 막는 착한 애인줄로만 알았는데, 단백질 청소부들한테 먹잇감을 던져주는 살벌한 녀석일 수도 있다는 거죠. 


자, 종합해 봅시다. EPO란 넘은 적혈구 생산을 늘리는 호르몬입니다(일해라 골수!!). HIF란 넘은 EPO 생산을 늘리는 물질입니다(일해라 콩팥!!). 왠지 모르나 HIF는 산소가 부족하면 양이 늘어납니다.  pVHL라는 단백질에 문제가 생기면 암이 발생하는데, 이 때 종양에는 산소농도에 상관없이 HIF가 넘쳐납니다. 그리고 pVHL 단백질은 다른 단백질에 유비퀴틴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능력이 있을것 같이 보이는데, 딱지가 붙은 단백질은 보통 프로테아좀이라는 청소부에 의해 가수분해(proteolysis)를 당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이번 노벨상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이 1999년, 레트클리프 교수팀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바로 이 pVHL이 HIF-1alpha에 유비퀴틴 단백질을 붙여서 프로테아좀에 의해 분해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소농도가 정상이면 HIF-1alpha가 분해되어 버리니까 HIF가 완전체(alpha-beta 크로스~~)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EPO 생성을 유도 못하고, 그래서 적혈구 양이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유지됩니다.

 

그런데 왜 산소가 부족하면 HIF는 분해되지 않는 걸까요? 산소농도에 따라 조절되는 이유는 2001년에 켈린 교수팀과 레트클리프 교수팀이 동시에 보고합니다. 간단히 원리를 설명하면,

HIF-1alpha의 주변에 산소가 있으면 HIF-1alpha 특정위치와 반응이 일어나 OH- 기 2개를 형성하게 되는데(hydroxylation), 이런 화학반응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pVHL이 HIF-1alpha를 알아보고  딱지를 붙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프로테아좀이 딱지붙은 HIF-1alpha를 냠냠..하는 스토리죠.


즉, 산소농도에 따라 몸이 적응하는, “산소 → HIF 조절 → EPO 조절 → 적혈구 조절”의 전체 과정을 유전자 발현 및 화학반응 수준까지 상세하게 밝힌 것이 노벨상 수상 사유입니다.


HIF의 역할은 적혈구 생산량 조절에 그치지 않습니다. 산소가 부족할 때 HIF는 해당(解糖)과정 (영어로 glycolysis)이라고 부르는, 산소 없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반응의 효소도 만들어냅니다. (산소가 부족해도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니까요.) 또한, 손상된 조직의 재생성이나 치료에도 관여하며, 배아(embryo)가 태아(fetus)로 자랄 때 각 조직의 분화에도 기여합니다. HIF인자가 없는 포유류는 태어나지 못하고 사산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건 도대체 어떻게 실험을... ) 특히 배아에서 혈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HIF 기전에 문제가 생기면 혈관기형이 발생하거나 EPO 레벨이 낮아서 빈혈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EPO를 생산하는 신장에 문제가 생겨도 빈혈이 발생합니다.

반대로, 제어되지 못한 HIF는 무한정 혈관을 생성하고, 여기에 적혈구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공급하여 조직을 성장시킵니다. 암이 자라는 거죠. 정상적인 pVHL은 HIF를 적절히 파괴하도록 하여  암을 막습니다.


사람의 몸이 (사실 모든 포유류의 몸이) 산소농도에 따라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이해하게 됨으로서, 새로운 약물들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적응기전을 활성화하는 빈혈 치료제는 물론, 연골세포나 조직 재생성 같은 효과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적응기전을 제어하여, 암이나 고혈압, 심장마비와 같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빈혈, 신부전, 그리고 유전성 암을 연구하던 3명의 의사이자 과학자가, 오랜 연구 끝에 한 지점에서 만났습니다. 신체가 산소농도에 따라 적응하는 중요한 기전을 밝혔고, 이로부터 수많은 발견들과 치료법, 신약들이 앞으로 계속 만들어질 것입니다.


님의 서명
Busy, busy, busy,

is what we Bokononists whisper whenever we think of how complicated and unpredictable the machinery of life really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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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1-01 01:52:48

좋은 글 감사합니다

WR
2019-11-01 02:02:40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좋은 주말 되십쇼!

2019-11-01 03:10:54

현재 암분야를 공부하고 있지만 잘 모르던 분야였는데 쉽게 써주신 덕분에 더 많이 배우게 되네요.

리뷰논문 한편읽은거 같은 기분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WR
2019-11-01 07:25:43

아이쿠,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연구 하세요.

2019-11-01 05:00:42

"...이렇게 생성된 에너지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기능에 70% 이상 사용되고, 나머지는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서로 싸우거나 하는 데에 쓰입니다..."

아, 좋아요. 아~주 좋아요. 프차에 재밌는 시리즈가 하나 더 생겼네요. 아, 씐나요!

WR
1
2019-11-01 07:26:24

캄삼다~

2019-11-01 05:26:56

지구의 역사에 산소만큼 의미 있는 게 있을지요~

WR
2019-11-01 07:28:22

그렇지요. 생명의 근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11-01 08:28:27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드리고 갑니다.

WR
2019-11-01 08:34:38

감사합니다.

2019-11-01 08:36:43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WR
2019-11-01 09:58:20

고맙습니다.

3
2019-11-01 10:12:38

다시 꺼내보는 짤 ㅠㅠ

WR
2019-11-01 16:37:50

이해하신 바가 맞다니까요!

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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