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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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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역사] 메이지 유신에 대한 간략한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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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13:42:34
어렸을 적에 바람의 검심이라는 만화를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는데, 
그때부터 일본근대사는 저한테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막말유신]

아무튼 그 과정에 대해 아주 캐쥬얼하게 한 번 요약해보고자 하는데, 그냥 재미로 봐주시고
틀린 점 있으면 지적 부탁 드립니다. 

(1) 서양에 대한 공포감과 흑선(미국의 페리제독)을 둘러싼 갈등
18세기말~19세기초 일본 엘리트 층에 퍼져있는 광범위한 위기감 (서양세력의 동진) / 
외국 선박의 잦은 출현 / 네덜란드가 전하는 정보로 아편전쟁의 결과를 정확히 파악 / 
언젠가 일본도 서양과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2) 개항파 vs 양이파
도쿠가와 막부는 서양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독점적으로 갖고 있었음
따라서 이들은 서양의 위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개항으로 노선을 잡음

반면 양이파들은 주류 엘리트들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다수
이들은 서양에 대해 잘 몰랐고 일종의 변질된 [유학]인 [국학]에 매료됨
다른 한편 현실이 시궁창이라서 일단 전쟁이든 뭐든 한판 갈아엎자는 생각
특히 과거 도요토미 편을 들었던 패전 영주의 가신들 이런 사상을 유포

(3) 귀족세력의 이간질
당시 일본의 신분사회는 크게 무사(막부와 번주들) 계급, 천황을 모시는 귀족계급, 그리고 평민
귀족계층은 몇백년 전부터 실권을 잃었으나 막부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회를 포착
이와쿠라 도모미 등을 위시한 세습귀족(이들은 무사가 아님...)들은 막부의 힘을 약화시키고자 함
본래 쇼군(정이대장군)의 역할은 그 직책이 명시하듯이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
쇼군의 정권이 오랑캐와 화친한다고 하는 것은 "명분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
막부가 천황에게 개항건의서를 제출했을 때 천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쇼군의 건의서를 거부
따라서 지금까지 몇백년 동안 아무 힘이 없었던 조정의 귀족들은 이 빈틈을 이용하고자 함
이들은 과격파들에게 밀지를 내려 반막부 활동을 부추김
"명분상"으로는 아무 힘이 없던 하급무사들은 조정 귀족의 밀지를 빽으로 자기들 활동을 정당화

(4) 유혈 정치적 혼란
대로 (우리나라로 치면 영의정) 이이 나오스케가 불온세력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
이에 많은 영주들 그리고 하급무사들이 앙심을 품음 / 결국 이이 나오스케가 하급무사들에게 암살당함
주류 정치에서 소외된 하급무사들은 나름대로의 암살단을 조직
바람의 검심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들 암살조는 막부의 요인들을 상대로 암살을 계속
이에 막부는 치안대를 조직하여 암살단을 발본색원하고자 하여 [신선조]를 조직
(하지만 신설조는 정부공인 기관이 아니라 사설 자경단....치안의 외주화...-_-;;)

(5) 쵸슈의 존왕양이 활동
도자마 다이묘 (세키하가라에서 패한 영주) 세력인 쵸슈가 존왕양이의 근거지가 됨
가장 과격하고 똘기넘치는 무사들이 쵸슈 출신.이들은 대놓고 도쿠가와 정권에 반기를 듦
정한론 사상의 시초인 요시다 쇼인도 쵸슈 출신 /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켄신을 발탁한 기도 다카요시(카쓰라 코고로)도 쵸슈 출신
당시 일본의 수도 교토에 불을 지르고 천황을 납치해서 반정부세력을 규합할 계획도 실행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적행위)
그런데 이들의 모의는 발각되어 주동자들 다수가 죽임당함 (이케다야 사건)

쵸수는 결국 번 차원에서 대규모 무장봉기를 강행
그러나 거대세력인 사쓰마가 막부편을 들고 선봉에 서서 이들을 진압함 

(6) 사쓰마는 어떤 세력인가?

당시 사쓰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외척세력이었음
사쓰마 당주의 수양딸 아츠히메는 도쿠가와 쇼군의 정실 (우리나라로 치면 중전)
이로 미루어보면 막부와 척을 질 이유가 별로 없었음
하지만 사쓰마는 예전부터 실용주의/기회주의적인 번으로 정평이 났고
사실 쵸슈와 마찬가지로 도자마 다이묘였음

게다가 이들은 굉장히 부유한 세력 /류큐(오키나와)를 사실상의 속국으로 거느리면서 사탕수수 무역으로 큰 이윤을 남김
당시 사쓰마 영주 시마즈 나리아키라도 상당히 깨어있는 사람이라 나름대로 근대화 추진
그는 사쓰마에 유리공장을 건설하고, 자체적으로 네덜란드로부터 증기선도 구입함
증기선을 막부에 진상하면서 일장기를 붙여줌 (일장기도 어떻게 보면 사쓰마가 만든 것)

그러나 쵸슈정벌에 앞장서면서 쵸슈와 척을 지게 됨

(7) 사카모토 료마
료마는 토사번의 탈번낭인으로 자유로운 영혼
그는 막부의 계몽주의자(?) 카츠 카이슈의 가르침을 받음
일본 최초의 사설 해운회사를 차린 사람

그는 쵸슈와 사쓰마 간의 비밀동맹을 성사시킴
사상적 명분 그리고 행동력을 제공하는 게 쵸슈 / 이를 위한 자금과 물자를 대는 게 사쓰마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정설인데,
과연 료마 한명 때문에 쵸슈와 사쓰마가 동맹을 맺었을지는 의문

(8) 하급무사들이 현실을 깨닫게 됨
존왕양이파들이 지나친 패기로 영국인들을 살해
이에 영국은 쵸슈와 사쓰마를 각각 완전히 패배시킨 적이 있음
이때 존왕양이 사상으로 충만했던 하급무사들이 현실을 깨닫게 됨
이후 이들은 겉으로는 존왕양이를 내세우지만 (막부를 반대할 명분이 이것밖에 없어서....)
실제로는 외국과 손을 잡으면서 막부를 타도하고자 함

(9)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
도쿠가와 정권은 프랑스로부터 고문단을 수용하고, 프랑스로부터 자금 및 무기를 지원받음
반막부세력은 영국에 유학생들을 파견하고, 영국으로부터 암스트롱포 및 최신식 라이플 등을 제공받음

프랑스 입장: 아편전쟁으로 영국이 이미 중국에서 선수쳤기 때문에, 프랑스는 도쿠가와 막부를 구슬려서 동아시아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할 근거지를 마련하고자 함
영국 입장: 프랑스는 숙적으로 반드시 견제해야 함. 도쿠가와 막부가 프랑스랑 친하니까, 이참에 도쿠가와 정권을 반대한 세력이 승리해서 이권을 먼저 회득하는 걸 목표로 삼음

(10) 사쓰마가 막부를 배신하고 쵸슈와 같이 무장봉기
믿었던 외척세력 사쓰마가 배신하여 전황은 막부에게 불리하게 돌아감
병력과 무기는 서로 비슷했지만, 반막부 세력의 라이플이 좀 더 최신식
도쿠가와 쇼군은, 일단 휴전하고 승부수를 던짐 -> 대정봉환
요지는 막부체제를 해체하고 천황에게 정권을 되돌리는 것
다만 수상의 자리는 도쿠가와 가문이 계속 하는 것이 조건 

반막부 세력, 도쿠가와의 강화조건에 반대하여 전투재개
도쿠가와 쇼군 에도(도쿄)로 후퇴하고 농성에 돌입
일본 동북지방에서 막부구원군이 오고 있었고, 전체병력으로 보면 막부 측이 우세하였음
그런데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도쿠가와 쇼군은 반막부세력에게 무혈입성을 허용함
일설에 따르면 쇼군의 측근 카츠 카이슈가 쇼군을 설득했다고 함
지금 일본인끼리 피를 흘리게 되면 서양세력에게 먹힌다는 것이 이유

(11) 메이지정부 (삿쵸정부)의 수립
도쿠가와 쇼군은 퇴위하고 목숨을 부지. 영국은 도쿠가와 쇼군의 생명을 건들지 말것을 당부함
신정부를 세운 쵸슈와 사쓰마의 유력자들은 정부요직을 독점. 그리고 막부잔당을 계속 토벌
신정부 수도를 교토가 아닌 에도로 옮겼는데, 경제적 이유도 있었지만 동북세력 소탕을 위해서이기도 했음
하지만 의외로 최고위직이 아닌 인재등용은 철저히 능력위주로 했는데 대표적 사례가 에노모토 다케아키
그는 네덜란드 유학경험이 있는 막부충신
도쿠가와의 사임 이후에도 그는 끝까지 투쟁하였고 홋카이도까지 후퇴하고 일본 최초의 공화국, 에조공화국을 설립
흥미롭게도 에조공화국 멸망 이후에도 유신정부는 그를 등용하고 그는 훗날 러시아대사, 문부대신 그리고 외무대신까지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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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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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14:31:22

nhk드라마 등에서 양이파의 변신(쇄국-->근대국가)을 뭘 어떻게 설명하려는지 궁금해서 막말시기편 나오면 많이 봤지만, 언제나 그렇듯 행위의 정당성, 당위성 등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더군요.

그런 것보다는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봉건영주들의 투쟁으로 보는게 맞는 것 같아요. 대의 같은 것들이야 어차피 다른나라로 봐도 되는 조각조각난 국가였으니깐...

 

3
2019-11-22 14:37:28

막부가 서양에 대한 정보가 많아서 개항을 했다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막부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들이닥치자 허둥지둥 굴욕적인 개항을 했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형식적이나마 천황의 칙서조차 받지 못한 상태로 개항을 해버린거죠.

 

일본이 서양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은 양이파들이 개항파로 돌아서는 과정 이후라고 봐야죠. 

유신지사들이 서양에 대적하기위해 힘을 키우는 와중에도, 막부 잔당들은 과거로 되돌리려고 전쟁까지 벌였으니까요. 

 

양이파들을 '현실이 시궁창이어서 전쟁이고 뭐든 한판 갈아 엎자는'정도의 개념없는 부류로 인식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양이파들 대부분이 하급무사였고, 막부에 의해 유지되던 봉건적인 신분제도 - 상급무사에 의해 차별받는 존재로서 - 에 저항하려는 의식있는 부류로 보는 것이 정확할것 같고요, 이는 매우 근대적인 의식의 발로였죠. 물론 그들 역시 일반인들에 비해 우월하다는 계급의식은 버리지 못했고, 이는 현대의 일본을 발목잡고 있는 근본의식이 되기도 합니다.

WR
Updated at 2019-11-22 14:43:16

막부는 서양세력의 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받고 있었고, 페리가 오기도 전에 함대의 수와 이름까지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서양사절단을 보낸 것도 막부였습니다. 그리고 천황의 칙서가 없이도 개항하려고 했던 것은 천황이 요구한 양이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했던 것이죠. 막부는 줄곧 존왕양이파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촌놈으로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이는 견해가 아니라 역사학계가 인정하는 정설입니다. 

2
2019-11-22 14:42:52

막부말과 유신시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배신과 야망이 드러나죠. 

양이파가 개항파가 되는 과정, 유신3걸중 두명의 사츠마출신인 사이고와 오쿠보가 세이난 전투에서는 반란군과 정부군으로 만나게 되는과정, 조슈번 출신인 이토히로부미가 사츠마 출신인 오쿠보 도시미치의 힘을 빌어 정부를 장악해가는 과정,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고향이면서 막부의 최측근 번이었던 미토번이 존왕양이의 사상적 배경이 된 것...

 

이런 복잡한 과정들을 개항파, 양이파... 정도로 단순화하면 해석에 오류가 생긴다는 생각도 들고요.  

WR
2019-11-22 14:46:20

물론 세부적 사항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면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개화파 중에서도 김옥균노선이나 윤치호 노선 또는 김홍집 등 다양했던 것처럼 말이죠. 미토번과 국학의 발흥 또한 주요하게 다루면 좋겠으나, 서술의 단순화를 위해 최대한 러프하게 구분을 지은 것입니다. 한편 양이파가 개항파가 되어가는 과정은 영국의 포격 사건이 주효했었지요. 

1
2019-11-22 14:52:33

윗 리플과 별도로 사카모토 료마는 대중적 인기만큼 흥미로운 인물임은 분명하죠. 

일본 국민들에게 역사적 인물 인기투표하면 아마도 부동의 1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삿쵸동맹과 이후의 대정봉환, 메이지유신까지... 그의 원맨쇼로 보지 않는 것이 정설인것 같습니다. 

사츠마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의 역할도 당연히 컷고요,

료마 암살당시 같이 피습 당한 (며칠 버티다 죽긴 했지만요) 나카오카 신타로 같은 인물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WR
2019-11-22 15:07:28

맞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삿쵸동맹을 이끈 근본적 원동력은 무엇일지 몹시 궁금하더군요. 마치 한국으로 치면 민주당과 자한당을 연합시킬만한 어떤 획기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Updated at 2019-11-22 15:22:29

민주당과 자한당이라기 보다는 자한당과 바미당 정도로 봅니다. 

공동의 적이 있었고, 나름(!)의 애국심 - 통일 일본에 대한 - 도 있었겠죠. 

번체제의 공동정부 개념의 국가로는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설수 없었고요. 

일본의 굴욕적 개항 당시 금1을 은1과 맞교환 할정도로 불균형한 굴욕적 무역구조는 일단 해결해야 한거죠.

 

막부의 권한을 왕에게 돌려주고, 결국은 민주체제를 도입한 것까지는 인정하는데...

갑들에게 빼앗긴 국부를 되찾기위해, 갑과 싸우지 않고... 을을 만들어서 갑질한 것,  

막부에게 돌려받은 권력을 최종적으로 국민들에게 온전히 돌아가는 시스템은 아직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

메이지유신이후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재벌을 만들고 활용하면서 결과적으로 왜곡된 경제시스템을 구축한 점과 그 시스템을 활용해서 전쟁에 활용한 점... 등이 일본이 가진 근본적 문제와 한계라고 봅니다.

2019-11-22 15:57:35

일본은 이렇게 근대화를 서두를때 우리조선은 민란과 부정부패로 나라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는

상화이었는데 일본과 비교가 되서 서글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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