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다스뵈이다의 형식미
김어준 지지를 종교에 빗대면 비꼬는 것 같고, 그 지지자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오랜 시간 형식과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귀결된 제 나름의 과정이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종교 의식에 거부감이 없습니다.
저는 철 들면서 무신론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냥 심드렁한 무신론도 아니고 스캡틱한 무신론자죠. 그럼에도 가톨릭 미사는 좋아합니다. 크리스마스 자정 미사는 직접 참여합니다. 믿음과 형식이 분리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저는 천주교의 전통을 존중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이 구절을 들으면서, 8살 나이로 돌아가 눈내린 성당과 젊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떠올릴 때도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당연히 안 믿지만, 어머니가 외우던 기도 구절이 아름다운 것은 현실이니까요.
그러니까, 김어준 지지자가 광신적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니라, 김어준 신앙이 정말 컬트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종교에 빗대는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에도 광신자가 있고, 이단이 있듯 모두가 광신자가 아니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스뵈이다를 재구성해볼까요.
게스트가 등장할 땐 박수 시간이 있습니다. 예능이나 시트콤에서는 웃음 소리 효과음을 더빙해서 내보냅니다. 다 가짜라는 것은 알지만, 그게 기능합니다. 회사 행사에서 회장님에게 치는 박수를 아끼는 사람도, 다스뵈이다에 출연하는 생전 처음보는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박수는 거부감 느끼지 않겠죠.
김어준은 정해진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어디서 이런 박수를 받아보았는가.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니라.
그러면 참배객들은 더 큰 박수를 치며 화답합니다. 저는 흥미롭게 게스트의 반응을 살펴 봅니다. 억지 박수 받는 것에 거부감을 보인 것은 유시민이 유일했습니다. 표정을 보면, 이 땡같은 연극을 집어 치우라 하는 것 같았지만, 그저 저에게 이런 박수 치지 마세요 라고 담백하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들도 생각이 없어서 그런 말 안 하는 게 아닐 겁니다. 박수를 못 받아들임은 권능에 대한 도전 아니겠습니까. 못 이기는 척, 박수를 즐기는 척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김어준은 기적같은 박수 울림을 다시 강조하며 말씀 전례가 이어집니다.
김어준은 다시금 자기가 왜 불렀는지 당신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상기시키며 자신의 권능을 과시합니다. 말하라. 입 달린 자여. 그러면 게스트는 얼마나 열심히 준비해 왔는지 우물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지요. 그러면 김어준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 말은 아무도 못 알아 듣었나니, 내 입으로 다시 알림이로다.
그리고 김어준 버전으로 고쳐서 다시 설명합니다. 이렇게 요지를 설명하고 나면 게스트에게 약간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이때 부터 게스트가 하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재치있고, 재미있는 말입니다. 왜냐. 김어준이 게스트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 마다 박장대소를 하거든요. 웃음소리도 정해져 있습니다.
우~하하하하아하아 끄어끄어.
‘끄어’는 지정한 재미의 정도에 따라, 붙는 횟수가 조절됩니다. 너무 많이 붙을 땐 본인도 민망한지 시선을 아래로 떨구기도 합니다. 그렇게 게스트는 ‘엄청나게 재미있는’이라는 딱지가 붙은 말들을 하는데, 사실 무슨 말을 하든 상관은 없습니다. 이미 요지는 김어준이 다 정리해서 설명한 상태입니다. 이걸 이동형 같은 후발 주자들이 많이 차용하는데… 형식이 좀 다르지요. 이동형이 한 마디 할 때 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배꼽을 잡고 울듯이 웃습니다. 밥벌이의 고단함이겠죠.
그리고 게스트가 나갈 때 권능을 다시 과시합니다.
네 말은 다 들었나니,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로다.
그러면 게스트는 뿅 사라집니다. 김어준이 있으라 하면 있고, 없으라 하면 없는 것입니다. 섭외라는 권능을 재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이여 내게 오너라.
이런 과정을 처음 보는 이들은 황당하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낯선 종교의 예배 과정은 이질적이지 않습니까. 이디오피아 정교회의 예배 의식은 가톨릭보다 강강수월래에 가깝습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런 관점을 가지고 나서 부터는 다스뵈이다를 즐겨 봅니다. 시사 프로그램으로 이해하고 볼 때 생기는 거부감들은 종교에 대한 존중으로 바뀌었습니다. 종교 의식에서 나온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김어준이 있으라 해서 섭외된 복된 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끄어끄어끄어 웃음소리가 들릴 때 같이 웃어주는 그 형식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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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으면 반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몇 줄 읽다가 도저히 봐주기 힘들어 포기합니다.
글 쓰는 건 자유지만, 참 거시기하네요.
p.s. 똑같은 형식의 글을 시리즈로 쓰고 있어서 했던 얘기지만 또 합니다.
"본인은 어그로가 아니라 하겠지만, 어그로가 딴 게 어그로가 아니에요.
가만히 있는 사람 옆구리 쿡쿡 찌르면서 "너, 이래도 발끈 안 할래?"
이런 게 어그로고, 이글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