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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MBC특별기획 드라마 분노의 왕국(1992)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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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9 12:16:07

얼마 전 mbc아카이브의 개별 이용이 아니고는 입수하기 힘들었던 드라마 [분노의 왕국]의 초반 회차를 구하게 됐다. 지금은 막장 드라마의 대모로 악명(?) 높지만 그만큼이나 숱한 인기작을 양산한 작가 문영남의 등단작이자 장편 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한 mbc특별기획 [분노의 왕국]은 현재 그 어떤 형태로도 VOD서비스를 하지 않는 작품이다. 온라인상에서 검색되는 유일한 영상은 방영 당시 화제를 모았던 변영훈, 김희애의 일본 신혼여행 혼욕 온천 장면 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X3PCSuSlQ0&t=15s  

 

그나마 이것도 2017년 10월 11일에 유튜브에 게시된 것으로 영상을 올린 유튜버의 개인 비디오 녹화 자료에서 추출됐다. 영상을 게시한 유튜버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녹화본이라고 한다.

 

mbc특별기획 16부작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은 1992년 본 방송 때는 제대로 보질 못했고 예전에 지역 유선 방송 편성표로 방영되는걸 우연히 보게 되면서 15회, 16회는 비디오로 녹화도 해놨다. 녹화분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방영 당시 논란을 일으킨 1회의 일왕 즉위식 저격 장면은 유선 방송 편성표로도 놓치고 말았지만 유년 시절이 그려지는 초반부터 볼 수는 있었다. 녹화를 뜬 15회에서는 14회까지의 줄거리 요약분이 들어있어서 자료 가치가 있었다. 

 

비록 현대를 배경으로 현존하는 실제 일왕을 즉위식 때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만다는 과격한 설정으로 떠들석했던 문제의 1회와 초반 회차는 유선 방송 재방송으로도 못 봤지만 전체 줄기를 요약한 15회와 마지막회인 16회라도 녹화를 한다면 분명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15회, 16회는 유선 방송 재방송 편성표를 확인한 뒤 시간 맞춰 녹화를 했다. 비디오 녹화는 19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초반에 했던 것 같다.

 

15회, 16회 비디오 녹화분은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영상 파일로 변환시키는 비용도 부담스럽고 업체에 맡기는 과정도 성가셔서 소장 방식을 달리하진 않았다. 작년 여름에 업체를 한번 알아보다가 오랜만에 비디오를 연결시켜서 다시 한번 봤다. 보다가 업체에 맡기는 문제는 접어두었다. 전체 회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15회, 16회만 영상 파일로 변환시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녹화를 뜬지도 20년은 됐고 비디오테이프 특성상 변질될 위험이 있어서 자료가 아깝긴 했지만 영상 파일로까지 15회, 16회를 갖게 된다면 없는 회차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클 것이다.

 

방법이 없는건 아니었다. 돈을 투자하면 굳이 비디오 변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16부작 월화 미니시리즈였던 [분노의 왕국]의 전체 회차를 가질 수 있다. 이럴 때 방송국 영상사업부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mbc아카이브에서 일대일 맞춤형을 신청하면 회당 33,000원에 dvd로 변환시켜서 택배로 보내준다. 다른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그럼 한번 계산을 해보자. 16x33,000=528,000원!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이 산정된다. 52,800원도 아니고 528,000원이라니.

 

4K로 복원한 미니시리즈 블루레이 박스세트 가격도 이 정도는 아니지만 현재로써 [분노의 왕국]을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그나마 [분노의 왕국]이 16부작 미니시리즈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유튜브에 방송국 허락없이 녹화 자료가 불법으로 공유되는 것도 아니고 mbc VOD 목록에 올라와 있지도 않다. 케이블 재방송으로도 보기 쉽지 않다.

 

[분노의 왕국]이 방영 당시의 높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망한 드라마도 잘만 뽑아내는 mbc해피타임 명작극장에서조차도 요약본을 방송하지 않은 것은 일왕 암살 시도라는 민감한 설정 탓일 것이다. [분노의 왕국]의 일왕 암살 배경은 실제로 일왕 즉위식이 각종 테러의 위협 속에서 화려하게 치루어진 1990년 11월 12일이다. 현존하는 일왕의 즉위식 자료 영상을 합성해서 만든 것이니 양국의 외교 관계나 정치적 문제 등으로 복기시키는게 껄끄러웠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방영 후 이렇게 묻히기도 쉽지 않다. 정보 공유가 지금처럼 발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던 옛날이니까 가능했던 기획이지 오히려 요즘 같으면 이런 위험한 발상의 위사물을 그려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분노의 왕국]은 방영 당시 일왕 저격 장면으로 일본측에서 공식적인 항의를 보내왔고 드라마 방영 중단을 요구했다. 주일한국대사관과 mbc도쿄 지국에는 드라마에 불만을 가진 일본인들이 찾아와 시위와 난동을 일으켰으며 일본 방송국들은 문제의 일왕 암살 장면을 연일 보여주면서 일본 국민 감정을 부추겼다. 방영 당시 과격한 설정과 묘사 방식으로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방송국 측에선 지금 봐도 논란이 될 작품을 굳이 들쑤셔서 대립된 상황을 야기시키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시청하기에 나쁘지 않은 화질로 28년 전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mbc는 이 작품을 묵혀두었다.    

 

서울여대 국문과를 나와 고등학교 국사 교사를 지낸 문영남은 1991년 봄에 [분노의 왕국]으로 mbc 창사 30주년 기념 제1회 mbc문학상을 수상하고 방송 작가로 활동 영역을 옮겼다. 문영남은 [분노의 왕국]으로 등단하기 이전에도 공모전에 응모했었다.

1991년판 - 1991년 5월 31일자로 신원문화사에서 발간(정가 4,000원)

mbc창사 30주면 기념 1천만원 고료 제1회 mbc문학상 당선작

  

[분노의 왕국]은 mbc가 제정한 문학상에서 당선된 작품을 16부작 미니시리즈로 각색한 것이다. 방송국이 문학상을 만들었다는게 지금 보면 희한하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방송국들은 드라마를 제작할 때 소설 각색에 의존했다. 웬만한 작품들은 다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원작의 인기와 무관하게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같은 작품이 드라마와 영화로 각색되는 기간도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극장은 단막극으로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각색했고 sbs는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아예 소설극장이란 이름으로 주말연속극을 편성했다.

 

웬만한 국내 소설들이 다 드라마로 각색되다 보니 외국 작품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변영훈의 유작 중 한편인 [세상은 내게]는 영국의 여류 작가 메이브 하란의 [세상은 내게 모든것을 가지라 한다]를 각색한 작품이었다. 변영훈이 [세상은 내게]에 출연하기 직전에 참여한 kbs미니시리즈 [희망]은 드라마로 각색되기 전에는 판매 부수가 너무 부진해서 원작자인 양귀자를 비관시켰던 [잘가라, 밤이여]를 각색한 것이다. [잘가라 밤이여]는 조소혜 극본으로 드라마화가 되면서 이후 드라마 제목을 따라서 [희망]으로 제목이 개작되었다.

 

소설 각색물에 의존하던 이 시기를 잘 반영시킨 작품이 [분노의 왕국] 후속작으로 방영된 [질투]이다. 극중 최진실 엄마로 나온 김창숙은 인기 없는 소설가인데 어느 날 별로 잘 팔리지도 않은 그녀의 작품이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각색에도 참여한다. 이때는 [질투]에서 그려진 것처럼 소설 원작자도 드라마 각색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다.

 

[분노의 왕국]은 방송국 드라마가 소설 각색에 의존하던 시절에 날이 갈수록 치솟는 소설 판권료에 부담을 느끼고 방송국이 드라마 재료를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낸 문학상에서 뽑힌 과도기의 산물이다. 드라마 대본이 필요하다면 극본상을 만들면 되는데 이 당시만 해도 소설 각색에 의존했기 때문에 극본상까진 생각이 뻗치지 못한 것이다.

 

하일지는 1991년에 영화로 제작된 [경마장 가는 길]의 각색도 맡으면서 원작료와 각색료를 더해 3천 3백만원을 받았다. 그 당시 업계 최고 대우였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소설 판권에 지불하는 금액이 부담스러워진 방송국은 소설 판권 따오는 일로 괜한 출혈 경쟁을 하느니 차라리 명목도 그럴싸한 문학상을 만들어 수상 조건으로 드라마 판권을 걸고서 미리미리 드라마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 나은 방향으로 보였을 것이다. 원작 판권료로 나가는 돈이나 문학상 고료로 1천만을 내거는 것이나 돈 나가는건 똑같았다. 당시 방송국 드라마는 잘 팔리지도 않은 외국 소설까지 싹싹 긁어모아 현지화 시키는데 골몰했다. 무명 작가의 문학상 수상작을 각색하는 것에서 위험 부담은 별로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mbc가 1천만원 고료를 걸고 만든 문학상의 1회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이 문영남의 [분노의 왕국]이다. 문영남은 이 작품으로 등단했고 드라마 각색도 맡았다. 문영남의 장편 드라마 데뷔작이다. 드라마 작가로 첫 활동은 1991년 9월 8일 방영된 단막극 [검은 양복]이다. [검은 양복]은 채희문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 kbs1의 'TV 문예극장'을 통해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에서의 열연으로 변영훈은 1991년 kbs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변영훈은 1990년 kbs연기대상에서 [울밑에 선 봉선화]로 신인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당시 수상자는 정승호.

 

단막극 [검은 양복]은 1989년 kbs공채탈랜트 출신인 변영훈의 첫 주연작이고 미니시리즈 [분노의 왕국]은 장편드라마 첫 주연작이다. 문영남에게나 변영훈에게나 두 작품은 의미가 있다. 작가와 배우는 함께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변영훈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처음 두 작품을 연속으로 함께 한 문영남과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변영훈이 [검은 양복] 이후에 출연한 드라마가 [분노의 왕국]이었다. 문영남도 [검은 양복] 각색 이후 들어간 작품이 자신의 소설을 각색한 [분노의 왕국]이다.   

  

1992년판 - 1992년 3월 1일자로 신원문화사에서 발간(정가 4,000원) 

 

[분노의 왕국]은 제1회 mbc문학상에서 뽑힌 뒤 바로 드라마가 기획됐고 1991년에 단행본으로 발간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신판이 출간됐다. 원작은 1991년판이나 1992년판이나 절판된 상태지만 희귀 도서 대접은 전혀 못 받고 있다. 온라인 중고 서점에서 최하 600원까지 값이 내려갔다. 1천만원 상금이 주어진 공모전에서 상 받은 원작보다 드라마가 낫다는게 중론이다. 파격적인 설정에 비해 풀어나가는 방식은 상당히 허술한 작품이다.     

 

소설과 드라마는 내용이 많이 다르다. 평일 밤 방영되는 미니시리즈 특성상 젊은층을 노리고 주인공 연령대를 낮추면서 갈리는 지점이 발생했다. 원작의 주인공은 80대의 노인으로 순종의 숨겨진 적자인 이호이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호의 아들인 이하연이며 원작에는 없는 이하연의 아내 민재경을 화자로 삼았다. 원작은 이하연이 아버지 이호와 관련된 충격적인 가족사를 알아가면서 일왕 저격과 암살 실패로 인한 비관으로 감옥에서 자살하기까지의 여정을 짚는다.

 

드라마는 일왕 암살에 실패한 이하연을 구하기 위해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인 아내 민재경이 탄원서를 쓰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하연의 비밀스러운 가정사가 드러날수록 비극적으로 감춰진 역사의 이면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드라마는 사형 선고를 받고 법정에서 끌려나가는 이하연의 모습과 이하연의 숨겨진 어린 아들을 왕손으로 모시며 절을 하는 이자응의 모습으로 열린결말을 택한다. 이하연이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긴 했지만 사형을 당한 모습까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가능성을 심어두었다.  

 

드라마는 1992년 2월과 3월에 걸쳐 일본 로케이션을 진행하며 반 사전 제작으로 완성됐다. mbc특별기획으로 선보인 16부작 월화 미니시리즈였다. 방영 기간은 1992년 4월 6일부터 5월 26일까지다. 후속작은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인 [질투]다. [분노의 왕국]은 당시 드라마쪽에선 드물었던 해외 로케이션 작품으로 로케이션 장소는 버블 분위기가 남아 있던 물가 비싼 일본이었다. 일본까지 가서 찍어온만큼 mbc의 야심작이었다.

 

 

 

사운드트랙 목차

1. 분노의 왕국 Title
2. 사랑의 테마
3. 빙점
4. 빙점 피아노 변주곡
5. 폭풍의 바다 
6. 첫번째 데이트 
7. 사랑의 테마 (변주곡)
8. 사랑! 그것 하나만으로도
9. 삶
10. 1910.8.29. (한일합방)
11. 마지막 왕
12. 징조
13. 신주꾸
14. 하연의 첫사랑
15. 빙점 변주곡 1 (변주곡)
16. 추격   
17. 벽
18. 日王 저격
19. 이별그영원함
20. 사랑의 빛깔
21. 소용돌이
22. 빙점, 변주곡 2 
23. 갈등
24. 고뇌
25. 순종의 죽음
26. 절규
27. 복수
28. Title 변주곡

 

연석원 : 작곡, 편곡
변성룡, 김효국, 최태완, 최호승, 이연, 연석원 : 연주자
최태완 : Piano
전형부 : Timpani & Symb
이종만 : Percussion, 진행
연석원 : R-8 Programing
신효범, 김선미, 이정희, 홍성규, 이태균, 이종만 : Chrous

 

대작의 정서를 풍기는 사운드트랙은 각 곡의 흐름이나 목차의 성격이 [여명의 눈동자]와 닮았다. 작품 전반적으로 앞서 방영한 [여명의 눈동자]를 의식한 듯한 흐름이 곳곳에 보인다.   

 

 

 

 

 

 

 

 

 

 

 

 

 

 

 

 

 

 

 

 

오프닝

 

mbc가 창사 30주년을 내세워가며 만든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을 각색한만큼 반 사전 제작 형태나 출연진 선정에서 공을 들였다. 신인이며 주연급으로 검증되지 않은 변영훈을 [분노의 왕국]의 주인공으로 발탁한 것은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약했던 젊은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기용하여 신선하단 반응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대성공한 대작 [여명의 눈동자]의 영향을 받아서였을 것이다.

 

[여명의 눈동자] 이후 공중파의 대작은 젊어졌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한동안 신인급이나 젊은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대작 기획 열풍이 불었다. 주연급으로 검증되지 않은 배우의 잠재된 가능성을 믿고 주인공으로 세운만큼 주인공을 받쳐주는 조연진은 검증된 기성 배우들로 균형을 맞췄다. [분노의 왕국]도 마찬가지다. 최불암, 고두심, 이정길, 송승환, 임채무 등이 분량이 적은 역할로 특별 출연처럼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극이 필요로 할 때만 등장한다. 김희애도 극 중반부 회차에선 안 나온다.

 

이하연의 일왕 암살 동기와 비밀에 쌓였던 비극의 역사 속으로 인도하는 민재경 역은 1991년 mbc연기대상 수상자인 김희애를 섭외했다. 김희애는 당시 최연소 연기대상 수상자였고 mbc는 드라마 왕국으로 명성이 드높았다. 김희애가 드라마 왕국이던 mbc에서 연기대상 수상 이후 출연한 작품이라는 점만으로도 [분노의 왕국]은 야심작으로써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분노의 왕국] 제1회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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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동경이란 한자어로 불리던 때의 일본 도쿄에서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주인공 이하연의 비장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가 사진을 찍는 위치는 일왕의 즉위식이 진행될 장소이다. 실제로 1990년 11월 12일에 거행됐던 아키히토의 일왕 즉위식 때 아키히토를 암살하기 위해 이하연은 니콘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며 사전 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후반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사실 이하연은 민족적 사명감이나 책임감 보다는 객사한 부친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울분에서 촉발된 개인적 원한으로 홧김에 일본으로 건너가 충동적으로 암살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려다 실패한 것이다. 이는 곧 굵직굵직한 초반부 설정을 수습하지 못하는 작가의 한계로 이어진다.

 

[분노의 왕국]은 전개상 구멍이 많은 작품이다. 사전 제작으로 찍어 놓은 초반 일본 로케이션 분량에서조차도 [바람은 불어도] 이후의 문영남표 막장드라마처럼 개연성이 부족하고 허술한 구성이 비죽비죽 솟아나 있다. 초반 주인공의 비극적인 유년시절 모습이 지나고 나면 16부작 호흡도 버거워 무리하게 급강한다. 통속적인 설정들과 인물간의 갈등, 관계 악화가 줄줄이 나오며 설득력이 떨어지는 인물 묘사로 공감이 쉽지 않다.  

 

막장드라마의 대모로 불리는 작가답게 입헌군주국으로 민족의 정체성 확립과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제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받은대로 돌려주고자 현존하는 일왕 저격을 시도한다는 발상은 위사물이 넘쳐나는 지금 보기에도 정말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나 기둥 설정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앙상하고 엉성하며 안일하다. 드라마 회가 거듭될수록 입헌군주국에 대한 염원은 한 개인의 감정만 앞선 부질없는 집착으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해서 극 후반 민재경의 조소처럼 허무맹랑한 망상으로 보일 뿐이다. 이자응은 수소문 끝에 이하연을 알아내고 조카와 결혼시켜 관계를 견고히 유지하면서 이씨종친회에도 데리고 가 왕의 필요성을 설파하지만 대책도 없이 감정만 내세우니 답답할 노릇이다.  

 

극을 지배하는 일왕 암살 묘사는 복수극같은 통쾌함은 있지만 이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화에 대한 민족적 분노와 본능에서 기인한 감정적 동요일 뿐 암살에 이르기까지의 개연성이 너무 약하고 황당할 정도로 준비 과정도 부족해서 아연하다.   

 

현대를 배경으로 아줌마들 취향의 통속극과 치정극, 과장된 인물 설정과 말장난으로 지어낸 등장인물들의 괴상한 이름, 시트콤을 방불케 하는 코미디로 유명한 문영남이 공식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작품이 의아하게도 후손이 없는 순종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설정의 위사물 [분노의 왕국]이란 것은 늘 문영남을 따라다니는 반전의 과거 이력이다. 그러나 [분노의 왕국]이 보여준 독특한 발상과 일왕 암살이란 극단적인 설정을 떼어 놓고 보면 막장드라마의 기운은 장편 데뷔작에서부터 곳곳에서 드러난다. 왕족인 이씨 가문에서 출생의 비밀이 사대에 걸쳐 전개되는 것이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결과만 보더라도 각종 자극적인 설정으로 일단은 시선부터 유도하고 보는 막장드라마의 폭주가 엿보인다. 데뷔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건 없었다. 

 

예전에 유선 방송으로 볼 때도 내용이 너무 엉뚱하게 확장돼서 당황했다. 이를테면 대학 입시에 실패한 이하연의 연애사가 그렇다. 이하연은 음악 다방 DJ로 살면서 소꿉친구 유정과 재회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데다 가난하기까지 한 이하연은 보수적인 부잣집 딸인 유정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시골로 내려가 유정과 동거를 하다가 유정 엄마한테 발각이 되고 강제로 헤어진다. 그 뒤 이하연은 입대를 하고 그 사이 엄마한테 머리까지 깎인 유정은 혼전임신 문제로 집을 나온다. 유정이 아이를 낳고 시골에서 허름한 분식집을 운영하며 궁상맞게 살아가는 전개를 보면서 드라마가 중심을 못잡고 물감 불기하듯 이리저리 번져 흐르는구나 싶었다.

 

해방이 된 후 상해에서 독립운동가로 살다가 귀국한 순종의 아들 이호가 국민들에게나 이씨종친회에서나 왕족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자 비관하여 자살을 기도했다가 술집 작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이후 술집 작부와 살림을 차린다는 설정이나 결혼식 전날 윤간당한 여동생에 대한 복수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장남이 밀항을 하고 이후 가족과는 인연을 싹 끊은채 미국 가서 흑인과 결혼해서 산다는 무책임한 설정,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술집 작부로 살다가 동생에게 들통이 나고 비난을 당하자 비관 자살하는 누이의 기구한 삶, 남편의 과거를 알고 충격에 유산을 하는 민재경, 이하연의 사생아를 낳고 분식집을 하며 초라하게 살다가 민재경과 대면하게 된 유정의 현재, 왕족인 이씨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유정이 학교 다닐 때까지 혼자 키운 아이를 기어코 데려와 왕손으로 모시는 이자응의 집념 등 중간중간 뜨악한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다만 일본 내에서도 1990년 11월 12일 열린 아키히토 일왕 즉위식은 전후 헌법으로 폐지된 일왕의 신격화 의식을 부활시키는 것이라 각종 논란과 테러 위협에 시달렸다. 문영남은 여기에서 위사물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순종의 숨겨진 후손이 민족의 이름으로 일본에 준엄한 심판을 내리겠다는 사명감이나 목숨 걸고 과거 독립운동가들처럼 총부리를 겨눈다는 위사물의 설정 하나는 독특하고 짜릿했다. [분노의 왕국]은 기막힌 발상 하나가 극 전체에 어느 정도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현재 시점은 1990년 11월 도쿄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방영 약 두 달 전에 도쿄 로케이션으로 초반 회차의 부분부분을 찍어왔다. 국내 외 모든 언론이 기사화를 꺼려서 밝혀지지 않았던 한국 왕손의 일왕 저격 사건을 그린 위사물인만큼 실제 일왕 즉위식이 있었던 1990년 11월로 시기를 잡았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위사물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에도 불구하고 발상을 실현시킨 용기가 더 돋보였으며 기본 설정이 워낙에 파격적이어서 신선하단 반응도 많았다.  

 

촬영지가 실제 도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퇴폐 문화로 유명한 일본 도쿄의 유흥가 풍경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1992년 방영된 드라마치곤 상당한 수위로 스트립댄서의 모습을 비춘다. 일본 유흥가를 상징하는 변태적인 관음증의 세계를 통해 일본 로케이션물의 특징을 잡았다. 이 당시 해외 로케이션물이 그랬듯 내부 장면 대부분은 국내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특별 출연한 최불암은 전쟁 때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로 나온다. 이하연이 일왕 암살에 사용할 총을 마련해주는 일종의 브로커인데 이하연과 친분이 있었던건 아니다. 최불암은 야쿠자와도 연결이 돼 있긴 하지만 현재는 잡일이나 하며 하루살이로 버티는 50대 폐인이다. 이하연과 브로커가 접선하는 장소가 관음증을 자극하는 스트립바라는 것도 웃기고 그렇게 중요한 일을 거지 행색에 정체가 의심스러운 폐인이게 의뢰를 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이하연이 얼마나 충동적으로 일본행을 택하고 암살을 계획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원래 이하연은 15회에서 뉴욕타임스 기자로 활동하는 아내 민재경과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가 이호의 사망 소식과 시신 확인으로 충격을 받고 선로를 바꾼 것이다.     

 

1회 내내 변영훈이 입고 나오는 바바리코트는 변영훈이 결혼 선물로 받은 개인 옷이다.   

 

 

 

최불암 브로커에게 총을 받고 숙소에서 사격 연습을 하는 이하연. 사격 연습을 하는 이하연의 슬픈 표정 속에 고통으로 얼룩진 콩가루 가족사가 살짝 드러난다. 이하연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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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뭔가 엄청난 일을 겪은 듯 보이는 이하연 

 

한줄기 눈물로 왜 그가 일본까지 와서 브로커를 통해 불법으로 총을 구한 뒤 누군가를 향해 사격 연습을 해야 하는지를 의문스럽게 깔아둔다.  

 

 

새로운 인물 등장. 임채무가 연기한 이만도는 이하연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는 이자응의 양자이다.  

 

 

 

 

 

이만도는 양부인 이자응이 구하던 순종의 증표를 찾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증표의 실체를 본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이하연 뿐이다. 일본에 두 가지 모양으로 떠돌고 있다는 증표는 누구도 본 사람이 없어 진위를 파악할 수가 없다.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순종의 특별한 증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만도. 일본어를 무척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임채무의 탁월한 발음이 빛나는 장면.   

 

 

이하연이 찾은 일본의 경매장에 전시된 미술품은 하나로미술관에서 협찬을 받았다.   

 

 

 

일본의 경매장에서 순종이 남긴 특별한 증표를 발견한 이하연. 그러나 이 증표가 순종이 남긴 증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하연 뿐이다.  

 

극의 과거 묘사에서 순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편의상 이호를 연기한 이정길이 대사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순종 역까지 1인 2역을 담당했다.   

 

일본 몰래 왕세자를 낳은 왕비. 몰래 낳은 왕세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궁녀가 신생아의 입을 막았고 성별이 드러나도록 신체 기관을 정면으로 비추었다.   

 

일본 옷을 입은 이 사람이 왜 할복을 하는지는 1회만 봐서는 알 수 없다. 2회에서도 정체가 풀리지 않는다.  

 

 

폐인인 최불암 브로커가 어떻게 이하연의 동선을 파악했는지 이하연이 구경하고 있는 경매장까지 쫓아왔고 경매장을 빠져 나온 이하연을 뒤쫓아 술값을 벌 수 있는 일을 마련하기 위해 구걸을 한다. 이하연이 있던 경매장은 아무나 입장할 수 없는 경매장이고 입장할 때 방명록 같은 책자에 서명도 해야 하는데 최불암은 술 냄새 풀풀 풍기며 거지 복장을 하고도 수십억대가 오가는 경매장을 용케 통과했다. 인물의 동선이나 극의 전개 방식이나 구멍이 엄청나게 많고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난데없는 인물 등장과 사건 전개로 개연성과는 담쌓고 가는 전형적인 막장드라마 같다.   

 

변영훈은 길용우의 섭외로 최불암이 운영했던 현대예술극장에서 연기력을 키우고자 연극 [윈저와 바람둥이 부인들]에 한달간 출연했는데 이때의 인연으로 1991년 12월 8일에 올렸던 결혼식 주례를 최불암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최불암의 해외 출장으로 주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최불암은 변영훈이 연극을 할 때 변영훈을 무척 잘 대해줬다고 한다.  

 

 

 

이하연이 일본에서 머무는 호텔 내부는 서울에 있는 라마다올림피아호텔에서 찍었다. 변영훈이 입고 있는 양복은 변영훈이 결혼 예복으로 받은 개인 옷이다.  

 

변영훈은 [분노의 왕국]의 대본을 받고 신혼초에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스페인제 모형 권총으로 사격 자세를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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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도는 문화재 수집에 열정적인 야쿠자가 개입한 경매장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며 양부인 이자응이 그토록 손에 넣으려고 애를 썼던 순종의 증표를 얻는데 성공한다. 이사 전문 배우 박영지가 야쿠자로 등장한 경매장에서 임채무와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어떤 여자가 무언의 신호를 보내며 경매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대체 어떤 방법으로 순종이 남긴 진짜 증표를 빼돌릴 수 있었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경매가를 올려 놓으면서 눈빛으로 신호만 주고 받았을 뿐인데 그 뒤 급히 경매장을 빠져 나온 임채무에게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가 물건을 떡하니 건넨다. 설정만 있을 뿐 제대로 수습을 못한 장면 중 하나.     

 

 

 

경매장에서 80만불에 낙찰 받은 조선의 유물이 가짜라는 것을으로 파악한 야쿠자는 부하들을 보내 이만도를 추적한다. 야쿠자가 어떻게 그 짧은 시간동안 수십년간 누구도 구분하지 못했고 오로지 이하연만 진품 여부를 가릴 수 있었던 순종의 특별한 증표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는지 역시도 알 길이 없다. 그걸 알기 위해 이만도는 별로 사이가 좋지도 않았던 이하연을 만나러 이하연이 머무는 일본 호텔 숙소까지 찾아갔는데 말이다. 야쿠자 두목의 진품 여부를 가려낼 수 있는 신기어린 감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하지 못한 채 극은 1992년엔 시도하기 힘들었던 해외 로케이션물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 카체이싱 연출에 집중했다. 다만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새벽에 촬영을 한 것인지 도쿄가 배경인데도 카체이싱 내내 도로를 달리는 차가 거의 없다.  

 

 

이만도를 잡은 야쿠자는 이만도가 미스테리한 일본 여자와 도모해서 빼돌린 증표를 갈취하고 협박한다.  

 

야쿠자 협박으로 강제 출국하게 된 이만도 

 

야쿠자들 여러명이 들러 붙어 곤죽이 되게 맞았는데도 얼굴에 상처 하나 없는건 옥에 티. 일정에 쫓기고 장소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해외 촬영의 후유증이 아닌가 싶다. 당시 물가 비싼 일본에서 짧은 일정동안 최대한 많은 장면을 담아와야 하다 보니 정신없이 찍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못한 제작 구조에서 각 배역이 처한 상황에 맞도록 일일이 분장까지 신경쓰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변영훈의 촬영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의상도 배우들이 준비했던 시절이다.     

 

증표를 야쿠자에게 뺏긴 이만도는 나리타 공항을 통해 일본을 빠져나가면서 잃어버린 증표를 꼭 찾아야 한다며 이하연에게 뒷일을 넘긴다. 

 

 

 

공항에서 우연히 신문을 보게 된 이하연. 다음 날이 일왕 즉위식이란 것을 확인한다. 실제로 아키히토의 일왕 즉위식이 1990년 11월 12일 거행됐기 때문에 엉성한 구성이어도 [분노의 왕국]의 1회 전개는 잘 모르고 보면 속아넘어가기 쉽다. [분노의 왕국]이 1992년 4월 6일 방영된 작품이니 실제 일왕 즉위식과는 고작 1년 6개월의 시간차 밖에 안 난다. 드라마가 실제 일왕 즉위식 영상을 섞어 일왕을 저격하려는 모습을 연출했으니 일본측에서 공식적으로 항의를 할만도 했다.

 

 

이만도가 입수하는데 실패한 증표를 비밀리에 빼돌리기 위해 냉랭하게 대했던 최불암 브로커에게 접근하는 이하연. 대체 최불암을 뭘 믿고 그 중요한 일을 거금의 현금을 줘가며 맡겼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대체 무슨 수를 써서 하루만에 야쿠자에게 뺏긴 증표를 손에 넣었는지도 알 수 없다. 최불암이 야쿠자 세계와 관계가 있는 인물로는 나오지만 퇴물일 뿐이라서 야쿠자의 공간에 침입하여 증표를 훔쳐서 이하연이 부탁한 일을 처리한다는건 인물의 행동으로 봤을 땐 무리수다. 이하연이 돈이 궁한 최불암에게 많은 돈을 뭉텅이로 지불하긴 했지만 폐인인 최불암이 목숨을 걸 정도의 액수는 또 아니다. 

 

[분노의 왕국] 1회는 빠른 전개에서 반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미스테리한 위사물의 장르적 재미도 주고 카체이싱에 경매사기극, 복선과 암시 등의 영화같은 장치로 극적 속도감도 붙지만 문영남답게 이야기의 전환 방식이 대책없고 황당하다. 과정이 생략된채 결과 위주로 반전이 펼쳐지는 통에 구성 곳곳에서 의아함을 자아낸다. 재미는 있지만 삼류 스릴러처럼 미스테리의 수습 방식이 조잡하다. 반 사전 제작 형태로 진행된 드라마의 1회부터 구성이 말썽인 작품이다.   

 

 

 

일왕 암살을 시도하기 직전 참담한 이하연은 별거중인 아내 민재경의 자동응답기에 음성메시지로 증표를 숨긴 사물함 위치를 알려준다. 비극적인 가족사에 대한 분노와 울분,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화로 민족혼을 앗아버렸다는 것에서 오는 분개, 개인적 복수심과 민족적 원한이 얽혀든 상태다.

 

이하연이 일왕 저격을 결정한 것에는 일본에 오기 전 길에서 떠돌다 아사하다시피한 아버지 이호의 죽음에 대한 분노가 결정적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왕손임에도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하고 길에서 죽었는데 일본은 전후 폐지됐던 일왕의 즉위식을 각국의 주요 인사들까지 초대해 대대적으로 재현시킨다는 것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느낀 것이다. 그는 목숨을 잃을 각오로 아내를 뒤로한 채 일본행을 택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 문제의 일왕 암살 장면은 1990년 11월 12일에 있었던 실제 일왕 즉위식 자료 영상과 mbc정동 야외 세트에서 찍은 촬영분을 섞은 것이다.   

 

변영훈의 저격 장면은 mbc정동 야외 세트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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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그치고 만 이하연의 암살 시도. 독립운동가의 모습처럼 멋있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렇게 먼 거리에서 조준을 한다는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하연이 자신있게 먼 거리에서 일왕을 저격한 이유는 1회 후반에서 밝혀진다.  

 

결정적인 장면을 1회에 넣은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회는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위사물 설정이나 일왕 암살 묘사가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놀랍고 충격적이며 통쾌하고 재밌다는 반응으로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드라마의 선동적인 성격으로 일본측이 공식 항의를 보내는 등 난리가 나면서 노이즈마케팅에도 성공했다. 드라마의 인기로 변영훈과 김희애는 방영 기간에 럭키 자연퐁 광고도 찍었다.  

 

문제는 비록 엉성하긴 해도 속도감이 높았던 초반의 호흡이 극 중반도 못가 풀려버리면서 화제성을 지속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청률은 양호했던 편이지만 1, 2회가 일으킨 폭발력에 비하면 김새는 전개로 초반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별거중인 남편 이하연이 일본에서 일왕 암살 저격으로 현장에서 체포됐다는 것은 전혀 모른채 그저 남편이 경매 사기 혐의로 누명을 썼다고 판단, 법정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미국에 있다가 일본으로 온 아내 민재경. 김희애는 1회 시작 40분만에 등장한다. 방영 당시만 해도 김희애는 노숙한 이미지가 강해서 실제 변영훈보다 5살이 어렸음에도 변영훈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얘기도 들었다.   

 

  

주일한국대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는 민재경. 주일한국대사관 직원이 자꾸 이하연과의 관계를 묻는 유도 질문을 해서 심기가 불편하다.

 

 

김희애 등장 후 중반부에 깔아둔 복선을 풀어내기 위해 최불암 브로커가 이하연의 지시를 받고 그 중요한 증표를 역사 안 사물함에 감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요한 장면인데 너무 손쉽게 처리했다.  

 

 

 

이하연은 매제지간인 이만도가 부탁한 증표 사수를 완수하기 위해 신분이 정확하지도 않은 최불암 브로커에게 덜컥 일을 맡기고 최불암은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을 처리하다가 결국 붙잡힌다. 전개상 너무 게으른 해결책이다. 막장의 기운이 풍긴다.     

 

 

 

 

 

 

결국 덜미가 붙잡힌 최불암 브로커. 저렇게 위험한 일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선금을 받고 처리했다는 것이 잘 납득이 되질 않는다.  

 

이하연의 약력을 읊는 주일한국대사관 직원

"이하연, 1958년 속초 출생. 한국재단이사로 재직. 뉴욕타임스 기자인 민재경씨와 결혼. 슬하에 자녀가 없고 현재 별거중. 전과 기록 없음. 이것이 저희가 알고 있는 전붑니다. 뭐 특기할만한 것이 있다면은 고교 시절에 전국사격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두 번 수상했다는 것."     

 

고교 시절 전국사격대회에 나가서 두 번 최우수상을 받은 실력을 믿고 그 먼거리에서 권총 하나로 일왕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이하연. 뭐 이런 코미디 같은 설정이 있는지. 1회를 방영 약 28년만에 처음 본건데 이 장면에서 저절로 웃음이 나와 버렸다. 문영남답다. 이렇게 심각한 장면에서 예상치 못한 주인공의 전사를 진지하게 밝혀내다니 의도치 않은 코미디가 되어 버렸다. 이하연의 군생활 묘사에서도 훈련 중 사격하는 모습이 등장하긴 한다.   

 

이하연의 사격 실력이 드러나는 코미디같은 전사 보다는 이 장면에서 변영훈의 실제 삶과 겹치는 대사 때문에 기분이 묘했다. 변영훈은 연예지 포토뮤직 기자와 결혼했었고 결혼 2년도 안 돼 별거에 들어갔다. [분노의 왕국]에서 이하연과 기자인 민재경은 결혼한지 2년도 안 된 상태에서 별거한 것으로 그려진다.  

 

 

사무실에 와서도 주일한국대사관 직원은 이하연과 민재경의 사생활과 관련된 유도 질문을 해대서 민재경은 폭발한다. 주일한국대사관 직원은 이하연의 진짜 죄목은 일왕 암살 미수였다는 것을 밝힌다. 깜짝 놀란 민재경.

 

이 장면도 황당하다. 아무리 시대 배경이 정보의 공유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던 1990년이라지만 민재경이 비행기 타고 미국에서 일본까지 오는 시간이 있고 민재경은 무려 뉴욕타임스 기자이다. 정체가 불분명한 한국인의 일왕 암살 미수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져 봤자 좋을게 없다는 판단으로 일본측에선 기사화를 하지 않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대체 현장의 목격자가 몇명인데 이하연이 잡혀 들어가고 민재경이 일본으로 오기까지 암살 미수 사건을 전혀 모를 수 있는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드디어 진실을 파악하고 아연실색하는 민재경. 김희애 연기는 이때나 지금이나 감정적으로 굉장히 풍부하다. 드라마틱한 장점이 있는 동시에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억양이 느글느글하기도 하다. 변영훈은 초반 회차에선 감정 처리나 발성이 부족할 때도 있지만 몰락한 조선왕조의 후예가 겪는 고난과 비극의 정서를 우수어린 표정으로 드러내 무리수를 둔 전개에서도 오로지 배역이 처한 감정 자체로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 [분노의 왕국]이 장편 드라마 첫 주연작이자 출세작인데 신인의 연기로 제법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변영훈은 드라마가 후반으로 갈수록 연기가 더 좋아진다. mbc정동 야외 세트에서 찍은 일왕 저격 장면이 [분노의 왕국]의 첫 촬영이었다. 변영훈의 귀티나는 외모도 왕손으로 설정된 배역과 잘 맞는다.

 

크레딧이 다 오르고 나면 '이 드라마는 실화가 아닙니다'란 안내문이 뜬다. 엉성한 구성이긴 하지만 안내문이 없다면 헷갈릴 소지는 있었다.

 

문영남은 비록 파격적인 발상을 수습하지 못하고 엉성한 고리로 장편 데뷔작에서부터 막장의 기운을 곳곳에 풍겼지만 막장 드라마로 숱한 인기작을 양산한 작가답게 파격적인 설정 하나에 꽂혀 과격한 추진력으로 극의 집중력을 끌어 올리는데는 성공했다. 발상 하나는 정말 대단했다. 이런 위험한 발상의 극을 문학상 대회로 가려내 드라마로 만든 mbc의 도전도 용감했다.

 

이상 1회 해설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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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1-19 08:54:45 (122.*.*.170)

방영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소설책도 읽었고 드라마도 보았죠. 당시에는 꽤 재미있었는데 (당시 역사 소설이 유행했는데 역사소설류 중에서는 좀 특이한 내용이긴 했죠) 이렇게 보니까 허술한 부분도 많군요. 말씀하신대로 후반으로 갈수록 드라마가 엉망이 되어서 마지막 3-4회 정도는 "이거 책에서 읽은 내용이니까 똑같겠지 뭐" 라며 시청에서 이탈한 기억이 나네요ㅋㅋㅋ

어린 나이에 읽은 소설책의 주제는 왕조 부활이었는데(민족과 국가의 결집의 상징으로서) 나름 충격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받은 것은 같습니다.

늘 올려주시는 해박한 해설 재밌게 읽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1-19 09:33:35

기획, 연출, 출연진 빵빵하네요

2020-01-19 11:26:46

엄청난 정성글이네요~~^^

2020-01-19 12:32:26 (211.*.*.193)

정성스럽게 쓰신 글 잘봤습니다.
처음보는(제목도 몰랐던) 드라마인데 글쓴이의 필력이 좋아서 차근차근 잘봤습니다.
추천!

2020-01-24 22:47:54

결론: 김희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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