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부끄러운 고백
이제 예순을 앞두면서 그 동안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고백을 합니다.
젊은 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사실 감추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젊은 날, 사람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움으로 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5년 말, 모 교도소 독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 옆방에는 소위 막걸리 보안법으로 징역 3년을 받은 털보라는 별명을 가진 저보다 5살이 많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 형은 그야말로 오징어 잡이 어부로 북한에 납북되었다가 "북한에도 쌀밥을 먹더라"는 말 한마디에 징역 3년을 받았고 그 징역을 다 살고 나가서 얼마 되지 않아 징역을 살았던 이유를 말했다가 또 고무찬양죄로 들어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징역을 사는 동안 홀로 계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면회를 올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던 형은 항소심이 끝나고 형이 확정되어 이감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다시 서글프고 고된 징역이 시작되자 많이 절망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교도소로 떠나기 직전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속옷과 신발 한컬레를 사달라구요.
물론 저에게는 그 정도를 사 줄만한 영치금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손톱만한 이기심이 작동했던 것이지요. "나도 검사 구형 7년을 받아서 징역을 얼마나 살 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형은 대답이 없는 저에게 그냥 씩 웃더군요.
그 형이 떠나고 난 뒤 정말 며칠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부끄럽더군요. 그깟 몇 만원이 뭐라고 더구나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징역까지 들어온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싶더군요.
그리고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이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 형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설날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그 형 생각이 나더군요.
어제 아내에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살면서 정말 부끄러워 숨겼던 이야기 중 하나라구요.
갇힌 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기심이라고 신영복 선생은 말씀하셨지만 제게는 불에 데인 듯 여전히 뜨거운 아픔이기도 합니다.
다시 만날 순 없지만 정말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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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네여.
누구나 하나씩의 지옥이 있듯....누구나 하나씩의 비겁함이 있겠죠.
부끄럽고 죄스롭고 옹졸하고 정말 이기적이여서 누군가 알게 되면.......두렵기까지한.....
이렇게라도 털어 놓으신 용기가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한 짐 내려 놓으시고 가볍게 걸으세여.
지나 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노래 한번 흥얼거리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