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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부끄러운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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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20 09:38:09

이제 예순을 앞두면서 그 동안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고백을 합니다.

젊은 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사실 감추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젊은 날, 사람을 사랑한다라고 말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움으로 남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1985년 말, 모 교도소 독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 옆방에는 소위 막걸리 보안법으로 징역 3년을 받은 털보라는 별명을 가진 저보다 5살이 많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 형은 그야말로 오징어 잡이 어부로 북한에 납북되었다가 "북한에도 쌀밥을 먹더라"는 말 한마디에 징역 3년을 받았고 그 징역을 다 살고 나가서 얼마 되지 않아 징역을 살았던 이유를 말했다가 또 고무찬양죄로 들어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징역을 사는 동안 홀로 계신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면회를 올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던 형은 항소심이 끝나고 형이 확정되어 이감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다시 서글프고 고된 징역이 시작되자 많이 절망하더군요.

그리고 다른 교도소로 떠나기 직전 제게 부탁을 하더군요. 속옷과 신발 한컬레를 사달라구요.

물론 저에게는 그 정도를 사 줄만한 영치금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주지 않았습니다. 

정말 손톱만한 이기심이 작동했던 것이지요. "나도 검사 구형 7년을 받아서 징역을 얼마나 살 지 모르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형은 대답이 없는 저에게 그냥 씩 웃더군요.

그 형이 떠나고 난 뒤 정말 며칠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부끄럽더군요. 그깟 몇 만원이 뭐라고 더구나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징역까지 들어온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싶더군요.

그리고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이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 형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설날이 다가오면서 갑자기 그 형 생각이 나더군요.

어제 아내에게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살면서 정말 부끄러워 숨겼던 이야기 중 하나라구요.

갇힌 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기심이라고 신영복 선생은 말씀하셨지만 제게는 불에 데인 듯 여전히 뜨거운 아픔이기도 합니다.

다시 만날 순 없지만 정말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님의 서명
철학자는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칼 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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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6
2020-01-20 09:37:54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네여. 

 누구나 하나씩의 지옥이 있듯....누구나 하나씩의 비겁함이 있겠죠. 

 부끄럽고 죄스롭고 옹졸하고 정말 이기적이여서 누군가 알게 되면.......두렵기까지한.....

 

이렇게라도 털어 놓으신 용기가 존경스럽습니다.  이제 한 짐 내려 놓으시고 가볍게 걸으세여. 

 

지나 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노래 한번 흥얼거리시구여.  

8
2020-01-20 09:38:17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어야할 이유가 바로 그거죠. 천하에 둘도없는 악법입니다.

6
2020-01-20 09:40:16

그 형님도 이해 하고 계실겁니다  무거운 맘 내려놓으세요...

4
2020-01-20 09:43:51

그 형님도 이해하실거라 믿습니다. 어디선가 좋은 삶을 살고 계시길.

4
2020-01-20 09:44:43

원래 부탁하는 사람보다

부탁 거절하는 사람이 더 미안한 법입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7
2020-01-20 09:45:17

바람62님.
살면서 악몽처럼 따라다니는 기억에 대해 공감합니다.
내가 왜 그랬었는지?
지금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안 그럴 수 있는지.
시대의 험난함을 몸으로 헤쳐오신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말씀과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린 대부분 훨씬 더 비겁하였답니다.

5
2020-01-20 09:46:30

덜덜덜하네요.
쌀밥먹는다고.. 고무찬양죄라고.. 와....

9
2020-01-20 09:52:57

불고지죄도 있습니다. '빨갱이'인걸 알면서도 신고 안하면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로 잡혀들어갑니다. 이조항이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9
2020-01-20 10:22:44

문재인 빨갱이라는 자유당, 대한애국당, 전빤스 목사 등 모두 불고지죄로 처넣어야죠.

빨갱이라면서 왜 신고를 안해.

1
2020-01-20 09:48:14

살면서 마음의 빚을 지지 않아야 하는데 참 어렵죠...

이미 일어난 일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다른 분에게 베푸시며 사는수밖에요~

5
Updated at 2020-01-20 09:50:20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납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박정희 일당들이 나쁜 놈입니다.그 형님도 이해하실 겁니다.

1
2020-01-20 09:51:14

참나... 북한이 그럼,

쌀밥 먹지 무슨 카레밥 먹나...?

9
2020-01-20 09:52:14

절대 부끄러워하지마세요....

그사람을 감방에 보낸 검사나 판사새끼들은 지금도 지들이 잘한거라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고있고...

그사람을 감방에 보낸 공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면서.......

지금도 우리나라 어디 좋은 술집 밥집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음식을 먹고비싼 옷을 입고 다닐테니까요....

그새끼들이 벌을 받지않는이상..........

그럴필요없습니다...

3
2020-01-20 10:03:10

누구나 마음에 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털어놓으셨으니 마음의 짐을 털어버리시고 앞으로 좋은 일 더 많이 하시면서 사세요~

5
Updated at 2020-01-20 19:23:32

 절절한 고해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주제 넘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의 짐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내려 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보는 제 마음도 많이 아프네요.

다가오는 설에는 가족과 따스한 명절 보내십시요. 

1
2020-01-20 10:23:34

딱히 그분에게 피해를 주신것도 아니시니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물론 서운함이야 있었겠지만요.

2
2020-01-20 10:28:06

울컥한 이 느낌은 저에게도 부끄러운 기억이 있기 때문이겠죠. ㅜㅠ

2
2020-01-20 10:33:16

슬픈현대사네요. 그런 정도를 부끄럽다고하시면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다 죽어야지요. 인간이란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라고 누군가 얘기했던거 같은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같지않은 것들이 하도 많아서 이 세상이 이런 것이겠지요.

바람62님 정도만 실천하면서 살 수 있어도 이 세상은 낙원이 되었을 겁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사셔도 될 것 같습니다.

1
2020-01-20 12:13:47

"곳간에서 인심난다" 

뭐든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감정도 물질도 아끼는 시간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이때는 무었이든 소비를 최대한 억제하는 시기라 

무의식적으로 지출이 한번 걸림돌에 걸리신거라고 생각되네요

1
2020-01-20 12:57:26

진심으로 한 참회는 그 업장을 녹입니다. _()_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0161240 

2
2020-01-20 14:49:33

세상은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정말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뻔뻔하게 안하고, 어쩌면 아무일도 아닐수 있는일에 평생을 괴로워 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1
2020-01-20 15:14:28

옛말에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려운데 어찌 다른 사람 생각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이제 그만 내려 놓으세요~

2
2020-01-20 16:18:26

저도 살면서 가장 큰 후회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절박한 도움요청을 거절했던 일들입니다. 지나고 보면 그거 없다고 크게 힘든 일도 아니었을텐데 싶어요.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안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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