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착잡한 마음...
엊그제 점심 먹고 출근하려고 집에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제 첫 직장 사수였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89년에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어리버리한 초짜 신입을 잘 이끌어줬던 선배였고 죽도 잘 맞았던 지라 제가 회사를 그만 둔 뒤로도 가끔 연락하고 만나기도 했는데, 최근 몇년 동안 서로 전혀 연락을 못했고 저도 잘 계시려니 하며 살았습니다.
첫 직장에 대한 얘기를 12년 전에 당시 시사게시판에 쓴 적이 있네요.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3312574&sca=&sfl=wr_name%2C1&stx=guyver&sop=and&spt=-320394&scrap_mode=
이 선배는 당시 회사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의 외도로 일찌감치 이혼한 뒤 몇년 후 재혼하실 때 제가 공항까지 픽업해 드린 적도 있습니다.
통화를 하며 근황을 물으니 별로 좋지 못하다는 대답을 하시더군요.
깜짝 놀라 무슨 일이시냐고 물으니 전립선암 4기랍니다.
주소를 알려달라 하고는 점심 먹고 달려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날씬하던 얼굴이 퉁퉁 부은 것처럼 보였고 벌써 3번 마치고 4회째 들어간다는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도 완전히 밀어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운영하던 회사도 정리하면서 데리고 일하던 직원들도 원청 회사로 다 취직시켜 주고, 본인은 집 근처에 방2개 짜리 다세대 주택 하나를 전세로 얻어 개인 사무실로 쓰며 낮에는 거기서 시간을 보낸답니다.
암을 발견한 게 늦어서 이미 3기를 지나 4기에 접어 들었는데 이게 골반 쪽 뼈로 전이되어 있는 상태더군요.
뼈가 약해진 상태인데 얼마전에는 다리도 부러져서 반 깁스에 목발을 짚고 다닙니다.
뼈에 좋은 약이든 보조제든 먹고 싶어도 뼈에 전이된 암을 키울까봐 아무것도 못먹고 그저 견디고 있었습니다.
엎친데 덮친다고 모시고 사는 92세 노모는 4~5년 전에 치매까지 오셨다네요.
너무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습니다.
딱 1명 연락하고 지내는 제 유일한 초등학교 동창 놈도 오래 전에 인후암으로 항암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암이 생겨나 뼈로 전이되어 지금 다시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선배마저 암이라니...
몇년 전에는 아는 동생놈 하나도 암으로 떠나 보낸지라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9138989&sca=&sfl=wr_name%2C1&stx=guyver&sop=and&spt=-797890&scrap_mode=
사무실 나가는 걸 미루고 오후 내내 선배와 같이 있었습니다.
다행이라 해야할 지 그 선배는 예전과 다름없는 쾌활함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낮에 나와있는 그 개인 사무실에서 간간히 들어오는 일거리도 처리하고 유투브로 암 치료에 대한 정보도 꾸준히 찾아 보면서 나름대로 대처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개구충제 얘기를 꺼냈더니 최근에 포르투갈에서 200개를 직구해서 복용하기 시작했다는군요.
저라면 이미 무너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야 저에게 연락을 한 선배가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상태에서 내 생각을 떠올려 연락했다는 게 고맙기도 했지만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자꾸 아픈 사람들과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창창한 젊은 나이에...
선배와 헤어져 다 저녁에 사무실로 향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항암치료든 개구충제든 꼭 효과가 있어서 다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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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이 멋진 분이시네요. Guyver님도 화이팅 하세요.
가족관련 유투브 보다가 와서 저도 슬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