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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아빠, 또 팁 주고 왔어?" (글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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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2-23 16:54:29


코로나바이러스로 이 혼란스런 시국에 저희 가족은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와이프가 걱정이 돼서 취소하고 싶어했는데, 예산 몇 푼 아낀다고 환불불가 상품으로 예약하는 바람에 그냥 예정대로 진행하였습니다. 공항까지 자차로 이동하고 숙소 도착할 때까지 계속 마스크쓰고...
출발하는 날은 확진자가 30명 이하였는데, 어제 늦은 밤 돌아와서 오늘 뉴스 보니 5백명이 넘었네요.

여행지는 말레이지아 코타키나발루였습니다.
거기는 그랩이라는 우버와 같은 서비스가 일반화되었더군요.
택시도 있긴하지만, 저희처럼 어리버리한 여행자나 이용하지, 자동차도 서비스도 그랩이 훨씬 낫기 때문에 사양사업이 되어가더군요. 저희는 처음 공항에서 숙소 갈 때만 택시를 이용했고, 체크인 할 때 리조트 직원이 그랩 이용을 추천해서 그 이후로 그랩만 이용했습니다.

그랩 서비스 이용료는 참 저렴합니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7링깃(약 2,100원) 나와요. 우리나라 택시 타면 15,000원 이상이 나올 거리입니다.
거기다 차도 깨끗하고 운전자들도 대부분 친절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10링깃을 주며 잔돈은 팁이라고 안 받았습니다. 운전자들이 굉장히 기뻐합니다.

한 번은 좀 불친절한 운전자를 만났습니다.
처음 매치해준 차가 너무 늦어 취소했더니 평점이 낮은 운전자가 매칭되었나봅니다.
처음 타자마자 잔돈 있는지 묻더군요. 저희가 첫 손님이라 그런지 잔돈이 없었나봅니다. 그래서 잔돈 없다고하니,난처해하더라구요. 내려야하나해서 어쩔까 물었더니 자기가 중간에 슈퍼마켓에서 잔돈 바꾸겠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차가 좀 막혔고, 운전자는 짜증이 좀 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차 세우고 제 돈을 받아 잔돈을 바꿔왔습니다. 창문으로 보니 마트 같은 곳이라 줄 서 기다리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리고 요금을 제외한 잔돈을 저한테 돌려줍니다.
50링깃을 줬으니 43링깃을 돌려주려고 합니다. 저는 평소대로 40링깃만 달라그러고 나머지는 팁이라고했습니다.
표정이 바뀌더군요. 굉장히 친절하고 유쾌해졌습니다.

그 광경을 뒷좌석에서 지켜본 초6 되는 큰딸이 차에서 내린 후 저한테 뭐라그럽니다.
"아까 그 아저씨 팁 받고 나서 태도가 완전 바꼈어."
"그래."
"아빠는 왜 자꾸 팁을 줘?"
"왜? 아까워?"
"응."
"그거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안 한 해. 그거 포함해도 서울보다 몇 배는 싸."
그래도 못마땅해하는 표정입니다.
"ㅎㅎㅎ 왜? 아무리 싸도 정해진 가격만 받는 게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응."
"그래. 정해진 요금만 줘도 되지. 그런데 그 정해진 가격이 꼭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어. 이 나라는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굉장히 싸. 아빠는 아빠가 내는 요금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큰 서비스를 받았고 거기에 감사 표시를 하고 싶은거야."
"감사하다면,그걸 꼭 돈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인사하면 되지."
"그래. 네 말도 맞는데, 저분들은 팁을 더 좋아할 거야."
"......"

그날 오후에는 반딧불투어를 갔습니다.
봉가완이라는 지역인데, 밀림 사이 강이 흐르고 그 강은 바다와 만납니다.
낮에는 강 따라 정글에서 원숭이를 보고, 해질녘에는 바다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어두워지면 돌아오면서 반딧불을 구경하는 코스입니다.
이 모든 투어가 작은 보트에서 이루어집니다. 승객은 저희 가족 4명, 한국 아가씨들 6명. 같이 탄 한국 아가씨들은 대화 내용을 엿들어보니 대학생들 같습니다. 알바해서 돈을 모아 친구들끼리 여행 온 것 같았구요.
투어 진행자는 놀랍게도 15세 전후로 보이는 현지 소년들입니다. 한명은 보트 앞에서 원숭이들 부르고, 또 한 명은 보트 뒤에서 운전을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 몰래(딸들도 못 보게) 이 소년들에게 팁을 줬습니다. 더 주고 싶은데 가진 잔돈이 4링깃밖에 없어서 2링깃(6백원)씩 줬습니다. 주기 민망한 돈이지만 소년들은 좋아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 아이들을 잘 챙기더군요. 반딧불 잡아서 아이들 손에 몇번이고 쥐어줍니다.

그렇게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승합차에 탔습니다.
그 때 어떤 소년이 헐떡이며 전속력으로 이리로 뛰어옵니다.(보트에서 투어 진행한 소년입니다.)
그리고 저를 부릅니다. 차 문을 여니 저의 핸드폰을 손에 쥐어줍니다. 그리고 휘리릭 사라졌습니다.
보트를 정리하다 제가 깜빡하고 두고 온 핸드폰을 발견하고선 부리나케 뛰어온 모양입니다.
처음엔 어리둥절... 하고 있다가, 1~2분 지나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승합차에서 내려 그 소년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20링깃(6천원)짜리 지폐를 건내며 고맙다고 인사하였습니다.
그 소년은 무슨 복권 당첨된 냥 기뻐하더군요.제 입장에서는 정말 약소한 사례금인데...

차에 돌아오니 딸이 묻습니다.
"아빠 또 팁 주고 왔어?"
"응.그런데 이번에는 팁이라기보다 사례금에 가깝지."
"흠... 그래, 이번 건은 줄 만 하네."

딸과 팁에 대한 얘기를 하며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노동의 가치와 팁 문화의 비합리성과 사람에 대한 예의와 감사...
특히 딸이 생각하는 '정해진 서비스 가격만 지불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한 완벽한 반박을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딸의 생각이 맞는지 제 행동이 맞는지, 사회 전체를 놓고 크게 보면 확신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냥 딸에게 하나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용역을 돈 주고 사는 거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그 노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으면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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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2020-02-23 16:08:55

따님이 생각이 바르고 똑부러지네요. ^^

WR
2020-02-23 16:29:39

ㅎㅎㅎ 네 아빠보다는 똑똑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5
2020-02-23 16:12:01

영어권에는 이에대한 논쟁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인건비가 매우 저렴한 국가에서 여행시 그 나라에서 통용되는 상식적인 수준 이상의 팁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팁이 일반적이지 않은 나라라면 안 주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WR
2020-02-23 16:31:47

흠... 제가 준비없이 여행을 가서 말레이시아가 팁문화가 일반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네. 충분히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6
Updated at 2020-02-23 16:27:18

따님과 Jin3님 두분 다 맞고 틀리고가 아닌 문제라고 봅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전 따님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습성을 생각해볼 때 ..

팁을 받는 횟수가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팁을 안주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해지거든요.

그럼 팁을 줄 형편이 안되는 사람은 정당한 요금을 내고도 상대적인 피해를 봅니다.

 

선의로 한 행동이지만 

서비스 종사자의 기본인 친절을 규정 요금외에 더 돈을 주고 사는 사람들때문에 

정당한 요금을 주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게 되는 거죠.

 

만약 

님이 10링깃의 엑스트라 팁을 주고 친절을 샀는데.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100링깃의 팁을 주었다면 

이제 님이 주는 10링깃으로는 친절을 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10%의 팁이 생활화 된 지역에서는  

10% 이상을 줘야 대우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서비스업에서 프로라면 상관없이 동일하게 대해야하는게 맞지만 

사람 맘이란게 어디 그런가요... 

~~~~~~~ 

오히려 핸드폰을 찾아준 사례금은  좀 짠 것 같습니다.

 

WR
1
2020-02-23 16:34:07

그러게요.
사례금이 좀 작았어요. 그런데 소년에게 너무 큰 돈을 주기도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딸의 판정승이군요.ㅎㅎ
감사합니다. ^^

2
2020-02-23 16:18:54

따님이 친절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아빠가 팁 줬나?’ 할지도 ㅎ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WR
2020-02-23 16:28:35

ㅋㅋㅋㅋㅋ
시크하고 냉정한 아이라 진짜 그럴지도요. ^^

4
2020-02-23 16:20:42

안주어도 되는팁
기준가에 오바된팁으로 한국인은 팁잘준다로
소문나 오히려 기준가팁을 주었을때 짜네
하는소리릴들을수 있기도 하지만
오히려.패키지시 정해진팁도 안주어
가이드가 미안해하는경우도 있죠.
내팁으로 인해 상대가 밝아진다면
좋은거죠
경우와 상황에 맞게 잘하신거 같네요
투어소년이나 핸드폰찾아준 소년한테는
저같으면 더주었을듯^^
글 잘읽었습니다

WR
2020-02-23 16:27:35

앗!
핸드폰 들고 뛰어온 소년이 바로 보트에서 투어 진행한 소년이었어요. 동일 인물. ㅎ
제가 본문에 그 애기를 빼먹었네요. ^^;;

2
2020-02-23 16:40:42

곳간에서 인심나고, 인심이 후해서 나쁠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팁을 받는 곳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어 대리운전이나 고기를 잘라주는 식당 이용 시 팁을 주는 편입니다. 폭염 시 주유소 자동세차 이용하고 물기제거하는 직원에게 주기도 했는데 좀 어색하기는 합니다.ㅎㅎ

본문 내용이 휴가의 여유로움 속에 일어난 따님과의 에피소드여서 입가에 미소를 띄며 편안하게 읽혀졌습니다.^^

WR
Updated at 2020-02-23 16:58:47

네, 저도 친절하신 분들께 챙겨드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사후에 드립니다.
참치집 가서 잘 챙겨달라고 1~2만원 팁 내는 관행도 마음에 안 들어 잘 안 따릅니다. 다만 친절하셨던 종업원분께는 계산하고 나갈 때 그 정도 금액 드려요.

2
2020-02-23 17:13:24

제 생각입니다만, 물가가 싸다고 팁을 남발하면 결국 한국인만 호구가 된다고 봅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등외에 아시아권에선 애초에 팁문화가 없었는데

한국인이 외국 나가서 팁을 남발하니 공항 입출국때도 한국인은 특별히 더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요.

기타 운송수단등 서비스때도 팁이 없는 국가인데도 대놓고 팁을 요구하거나 

당연하다는듯이 거스름돈을 안줄려고 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런게 쌓이면 

해당지역 물가까지 올라가지 않나 싶습니다.

WR
2020-02-23 18:29:38

우리나라 사람들이 팁을 잘 주는 편인가요?
저는 결혼 전, 그러니까 15년 전쯤, 태국 여행갈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팁에 인색하다는 예기를 여행 커뮤니티에서 많이 봤었거든요.

캄보디아 여행 간 직장동료가 구걸하는 한 아이에게 약간의 돈을 줬더니, 갑자기 아이들이 우루루루 몰려왔다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

2020-02-23 20:16:42

네.. 태국은 기본적으로 팁문화 없습니다.  팁이 있다고 주장하는글들 보면

뭐할땐 얼마 뭐할땐 얼마 팁을 메뉴판처럼 써놓은글도 있고

바트 싼데 팁이 아깝냐.  팁 전에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태국인도 팁줄때가 있다

태국은 팁 비슷한 베푸는 문화가 있네 하는데....

그런식으로 따지면 한국도 팁문화가 있는 국가입니다.

1
2020-02-23 17:42:45

부녀간의 대화가 매우 솔직하고 생동감 넘칩니다 머지않아 닥쳐올? 사춘기의 파도도 그 대화로 잘 헤쳐 나가게되실듯

WR
1
2020-02-23 18:33:58

하하하~
육아 선배님이시군요.
네, 말씀하신대로 딸아이가 현재 사춘기 초기입니다.
요즘은 사진도 잘 안 찍으려 그러고, 엄마 아빠 잔소리에 반항도 잘 하고, 아빠 목소리 크고 시끄럽다고 타박주고 그럽니다.

언젠가 한 번은 거쳐갈 일이니까 딸아이에게 서운해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2
2020-02-23 17:49:48

따님이 논리적인 사고 뿐 아니라 아빠의 사람을 아끼는 마음도 닮아 갈겁니다.

WR
2020-02-23 18:35:04

아이고~
덕담 감사합니다. ^^

1
2020-02-23 20:11:56

저는 미국에 출장이 잦아서 팁에 관해서는 많이 관대한 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택시를 탈때도 어지간하면 잔돈 받지 않습니다.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서로 나쁠 건 없죠.
강요한 팁은 문제지만 어지간한 선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WR
2020-02-23 22:03:00

네, 팁이 서로 기분 좋게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죠.
말씀대로 강요된 팁은 나쁘구요.

2020-02-23 20:45:28

따님이 jin3님을 닮아 사려가 깊나봅니다..

WR
2020-02-23 22:04:45

에고, 아닙니다.
실제보다 훨씬 잘 봐주신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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