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아빠, 또 팁 주고 왔어?" (글이 길어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이 혼란스런 시국에 저희 가족은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와이프가 걱정이 돼서 취소하고 싶어했는데, 예산 몇 푼 아낀다고 환불불가 상품으로 예약하는 바람에 그냥 예정대로 진행하였습니다. 공항까지 자차로 이동하고 숙소 도착할 때까지 계속 마스크쓰고...
출발하는 날은 확진자가 30명 이하였는데, 어제 늦은 밤 돌아와서 오늘 뉴스 보니 5백명이 넘었네요.
여행지는 말레이지아 코타키나발루였습니다.
거기는 그랩이라는 우버와 같은 서비스가 일반화되었더군요.
택시도 있긴하지만, 저희처럼 어리버리한 여행자나 이용하지, 자동차도 서비스도 그랩이 훨씬 낫기 때문에 사양사업이 되어가더군요. 저희는 처음 공항에서 숙소 갈 때만 택시를 이용했고, 체크인 할 때 리조트 직원이 그랩 이용을 추천해서 그 이후로 그랩만 이용했습니다.
그랩 서비스 이용료는 참 저렴합니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7링깃(약 2,100원) 나와요. 우리나라 택시 타면 15,000원 이상이 나올 거리입니다.
거기다 차도 깨끗하고 운전자들도 대부분 친절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10링깃을 주며 잔돈은 팁이라고 안 받았습니다. 운전자들이 굉장히 기뻐합니다.
한 번은 좀 불친절한 운전자를 만났습니다.
처음 매치해준 차가 너무 늦어 취소했더니 평점이 낮은 운전자가 매칭되었나봅니다.
처음 타자마자 잔돈 있는지 묻더군요. 저희가 첫 손님이라 그런지 잔돈이 없었나봅니다. 그래서 잔돈 없다고하니,난처해하더라구요. 내려야하나해서 어쩔까 물었더니 자기가 중간에 슈퍼마켓에서 잔돈 바꾸겠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차가 좀 막혔고, 운전자는 짜증이 좀 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 중간에 차 세우고 제 돈을 받아 잔돈을 바꿔왔습니다. 창문으로 보니 마트 같은 곳이라 줄 서 기다리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리고 요금을 제외한 잔돈을 저한테 돌려줍니다.
50링깃을 줬으니 43링깃을 돌려주려고 합니다. 저는 평소대로 40링깃만 달라그러고 나머지는 팁이라고했습니다.
표정이 바뀌더군요. 굉장히 친절하고 유쾌해졌습니다.
그 광경을 뒷좌석에서 지켜본 초6 되는 큰딸이 차에서 내린 후 저한테 뭐라그럽니다.
"아까 그 아저씨 팁 받고 나서 태도가 완전 바꼈어."
"그래."
"아빠는 왜 자꾸 팁을 줘?"
"왜? 아까워?"
"응."
"그거 우리나라 돈으로 천원도 안 한 해. 그거 포함해도 서울보다 몇 배는 싸."
그래도 못마땅해하는 표정입니다.
"ㅎㅎㅎ 왜? 아무리 싸도 정해진 가격만 받는 게 정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응."
"그래. 정해진 요금만 줘도 되지. 그런데 그 정해진 가격이 꼭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어. 이 나라는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 굉장히 싸. 아빠는 아빠가 내는 요금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큰 서비스를 받았고 거기에 감사 표시를 하고 싶은거야."
"감사하다면,그걸 꼭 돈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인사하면 되지."
"그래. 네 말도 맞는데, 저분들은 팁을 더 좋아할 거야."
"......"
그날 오후에는 반딧불투어를 갔습니다.
봉가완이라는 지역인데, 밀림 사이 강이 흐르고 그 강은 바다와 만납니다.
낮에는 강 따라 정글에서 원숭이를 보고, 해질녘에는 바다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어두워지면 돌아오면서 반딧불을 구경하는 코스입니다.
이 모든 투어가 작은 보트에서 이루어집니다. 승객은 저희 가족 4명, 한국 아가씨들 6명. 같이 탄 한국 아가씨들은 대화 내용을 엿들어보니 대학생들 같습니다. 알바해서 돈을 모아 친구들끼리 여행 온 것 같았구요.
투어 진행자는 놀랍게도 15세 전후로 보이는 현지 소년들입니다. 한명은 보트 앞에서 원숭이들 부르고, 또 한 명은 보트 뒤에서 운전을 합니다.
저는 이번에도 다른 사람들 몰래(딸들도 못 보게) 이 소년들에게 팁을 줬습니다. 더 주고 싶은데 가진 잔돈이 4링깃밖에 없어서 2링깃(6백원)씩 줬습니다. 주기 민망한 돈이지만 소년들은 좋아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우리 아이들을 잘 챙기더군요. 반딧불 잡아서 아이들 손에 몇번이고 쥐어줍니다.
그렇게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승합차에 탔습니다.
그 때 어떤 소년이 헐떡이며 전속력으로 이리로 뛰어옵니다.(보트에서 투어 진행한 소년입니다.)
그리고 저를 부릅니다. 차 문을 여니 저의 핸드폰을 손에 쥐어줍니다. 그리고 휘리릭 사라졌습니다.
보트를 정리하다 제가 깜빡하고 두고 온 핸드폰을 발견하고선 부리나케 뛰어온 모양입니다.
처음엔 어리둥절... 하고 있다가, 1~2분 지나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승합차에서 내려 그 소년을 찾으러 갔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20링깃(6천원)짜리 지폐를 건내며 고맙다고 인사하였습니다.
그 소년은 무슨 복권 당첨된 냥 기뻐하더군요.제 입장에서는 정말 약소한 사례금인데...
차에 돌아오니 딸이 묻습니다.
"아빠 또 팁 주고 왔어?"
"응.그런데 이번에는 팁이라기보다 사례금에 가깝지."
"흠... 그래, 이번 건은 줄 만 하네."
딸과 팁에 대한 얘기를 하며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노동의 가치와 팁 문화의 비합리성과 사람에 대한 예의와 감사...
특히 딸이 생각하는 '정해진 서비스 가격만 지불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대한 완벽한 반박을 생각해낼 수 없었습니다.
딸의 생각이 맞는지 제 행동이 맞는지, 사회 전체를 놓고 크게 보면 확신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냥 딸에게 하나만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용역을 돈 주고 사는 거라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그 노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으면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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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이 생각이 바르고 똑부러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