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못웃기면맞는다
ID/PW 찾기 회원가입
육개장의 추억
 
16
  1462
Updated at 2020-02-27 22:27:11

감기 기운에 누워서 퍼져 있자니, 칼칼한 육개장의 흐물흐물한 토란대가 떠올랐습니다. 이 동네에는 육개장 파는 곳이 없죠. 제대로된 육개장 말입니다. 그래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비비고 레토르트 팩에 얌생이처럼 쪼매 든 것 말고, 뜨끈하고 든든한 육개장을 끓여 보자. 


국밥의 기본 룰이 있죠. 많이 끓이면 많이 끓일 수록 맛있다. 그래서 들통에 한가득 재료를 들이부었습니다. 마지막 숙주 한 박스를 채워 넣으니 딱 5미리 차이로 넘치지 않더군요. 

50인분은 나올테니, 비비고 육개장으로 환산하면 50x₩3300… 16만 5천원치입니다. 배송비 2500원은 쿠폰으로 해결했다 칩시다. 맛도 비비고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일일일식이니 소분해서 얼려두면 세 달 가겠죠. 

비주얼은 어머니에게 승인받았습니다. 당연히 맛도 있습니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제대로된 국밥이거든요. 그리운 맛이라 이런저런 추억의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육개장의 추억이란 장례식 기억들 아니겠습니까. 여러 장례식에서 여러 육개장을 먹었습니다. 떠나는 이가 마지막으로 사 주는 든든한 국밥이죠.


그 육개장 중에서도… 세월호 유가족에게 얻어먹던 육개장이 생각나는 겁니다. 그 분들에게 뭘 얻어먹고 다니냐 싶지만서도, 그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그 분들이 있던 곳들은 우르르 몰려가 밥 사 먹을 수 없는 곳들이죠. 그 분들은 제대로 끝까지 싸우려는 마음이었던지라, 밥 챙겨 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챙겨 드셨습니다.


한번은 단원고 건물이었는데… 세월호 교실 철수 문제로 항의하러 모인 자리였나 봅니다. 저는 지금은 없는 친구가 가자고 해서 따라갔죠. 이것저것 소리 높여 항의하다 소강 상태가 되자, 한 쪽에선 밥솥이 나오고, 한쪽에선 국통이 나왔습니다. 제 앞에도 육개장이 한 그릇 딱 놓였습니다. 그때 먹었던 육개장은 죄송하지만, 참 맛이 없었습니다. 


봄날 그 생각을 하다 문득 그분들은 지금 이 코로나 19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걸 생각하지 않을까요.


한 때는 남의 일. 남의 사정, 심하게는 남 자식의 교통사고였는데… 지금은 온 국민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라, 요구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언론도 코로나 19로 사망한 이의 사망 보험금이 얼마나 되는지 보도하지 않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남 자식이 죽는 일보다, 내가 마스크 못 사는 일이 더 가까운 법이지요. 그렇다고 시니컬하게만 바라볼 것도 아닙니다. 세상의 스탠다드가 어느새 바뀌었습니다.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고, 국민은 당연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되는 당연한 과정. 이렇게 오는 과정에 그 분들의 노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걸 시사정치로 해야 하나, 프차로 해야 하나 어떻게 할까요.

10
Comments
1
Updated at 2020-02-27 22:36:17

프차죠..좋은 글입니다..

1
2020-02-27 22:29:27

 김치볶음밥이 할 줄 아는 유일한 요리인 저로선 [분도]님이 참 대단해 보입니다.

2020-02-27 22:30:21

이화수.
육대장.
육개장 프랜차이즈는 많지만,
먹어보니 별루더군요.
값은 9천원.제길.

육개장은 요즘 장례식장 가면 제일 흔한 메뉴죠.

2020-02-27 22:31:31

육개장 엄청 좋아합니다. 사진 보니 숙주와 고사리 듬뿍 들어간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침이 고이네요.

2020-02-27 22:42:02

육개장 참 좋은 음식이죠. 그런데 제대로 하는 곳이 드물어요.

2
Updated at 2020-02-28 09:25:31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단원고에서 드신 육개장이 맛이 없었다는 부분에서, 어울리지도 않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분들 진짜 살기위해 먹느라, 맛도 모르고 그냥 드셨겠다는 생각에.. 그냥 좀 짠하네요.

2020-02-27 22:47:10

비비고가 그럴싸하게 만들긴 했는데 아무래도 맘에 한참 안찰 수 밖에요.

2020-02-27 22:49:29

안매우면 저 조금만..ㅋㅋ

2020-02-27 22:58:48

저희도 육개장 한번씩 끓이면 들통에 한 통 가득 끓이는데 며칠동안 먹는 중에도 계속 끓여서 뒤에 먹을수록 진국으로 변하죠

2020-02-28 04:31:27

한밤에 한성칼국수집 육개장이 생각나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