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청도, 미나리, 운문사
오래 전 동대구 역 새벽에 출발하는 비둘기호 타고 청도역에 내렸습니다. 운문사에 한 번 가고 싶었는데 대구에 호적 정정 때문 내려갔다 틈이 생겨서 새벽 기차를 탈 수 있었죠.
역에서 내려 시외버스 정류장 걸어가다 한 가게에서 파는 김밥을 샀는데 그 안에 들은 쥐포 졸인 재료가 독특하더군요. 한 줄에 오 백원 했는데 어릴 적 소풍 날 반 동무 나눠먹던 김밥 맛이라 추억이 덧입혀져 오래 기억났습니다.
정작 운문사 기억은 별 게 없네요. 늦은 봄이라 여기저기 핀 꽃들이 예뻤던 사찰 풍경 일부가 잔상처럼 남을 뿐.
운수행각 떠나는 앳된 비구니들이 절 문 밖에 나선 후련함인지 발길 닿는 곳에 대한 설렘인지 모를 수런수런 나누던 수다가 함께 걷던 산문 밖 길을 조용히 채우던 것 빼면, 운문사에 받쳐진 문필가들의 감흥은 글에만 있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아는 것만큼 봐서고 보는 만큼만 느껴서겠죠.
가게에서 사간 음료와 김밥 외엔 달리 먹고 온 게 없던 제게 어머닌 한 소리 하셨습니다.
"아니 청도를 갔음 묵에 미나리 무친 것은 먹고 와야지"
물 맑은 청도 미나리는 피를 맑게 하고 여러모로 좋은데 그 먼 곳을 가서 김밥이나 먹고 오냐던 말씀에, 청도 개울 곳곳 거품 끼어있던데 무슨 맑은 물 하며 퉁명스레 대꾸했더랬죠.
세월 흘러 그때 이미 유명했던 청도 미나린 한재 미나리 상표 달고 온라인에서도 여타 채소에 비해 월등히 비싼 값에 팔렸는데, 이번 코로나19로 또 다른 유명세 떨치며 지역 농민과 상인들에게 어떤 악영향 끼칠까 싶습니다.
체내 피를 맑게 하는 미나리와 불가 수양의 한 축 담당하던 운문사의 고장 청도가 무개념 신천지 교주와 그가 뿌려댄 것들 때문에 저리 휘청이는 게 우연 같기도 하고 필연 같기도 한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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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미나리철이라 미나리에 삼겹살 많이 먹을텐데
저도 코로나전에 한번 가보긴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선 갈수가 없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