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한일전쟁의 가능성 1. 일본의 정신세계_신토
얼마전 정치글은 더 이상 안쓰겠다고 하면서 몇가지 예언을 남겼었죠.
그중 의외로 일본과의 전쟁에 관한 저의 예언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신 분이 많으셨습니다.
사람들중에는 너무 중한 사항을 가볍게 언급하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 같습니다.
불편하셨던 분들에게는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총선이 어느 정도 판세가 정리되자 저는 이제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사라졌어요.
대신 좀 더 큰 세계적 변화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지금 쓰는 글 외에 요즘 몇달간 저를 사로잡은 주제는 일본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나라죠.
또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일견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의외로 일본의 지금 현상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축소지향적이고 밀집지향적이고 겉과 속이 다르며 극단적 수구적인가 현상과 결과를 보여주는 자료는 많지만 왜 그런지 그 근본은 파헤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도 쉽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저 역시 일본에 대해 한 번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럴때는 글 자체가 주는 영감이라는 게 큰 도움이 되죠. 그저 주저리주저리 글로 이 나라에 대해 정리를 하다가 어느 순간 이 논의의 시작이자 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곧 이나라와 전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죠.
우습죠? 21세기 글로벌 경제 시대에 전쟁이라니요.
그것도 세계 경제 3위와 10위가 맞붙는다니요. 엄혹한 냉전시대, 쿠바사태에서도 미소간에도 일어나지 않은 전쟁이 2020년대에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 누구나 비웃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주제를 말한다는 것은 충분히 비웃을만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정신적 배경을 들여다 보고 각 나라의 현재 세계사적 역할과 강점, 단점, 지리적, 시간적 여건을 감안해 봤을 때 의외로 두 나라 사이에 가까운 시기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게 이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내가 방구석에 쳐박혀 있어서 나만의 세계에서 망상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요.
차라리 그러면 좋겠습니다. 제가 망상에 빠져서 비웃음을 당하는 게 실제 전쟁이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다행인 일이니까요.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의 목적은 일본과의 전쟁을 부추기기 위한 게 절대 아닙니다. 분명히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그 나라와의 전쟁(정확하게는 그 나라의 침략)을 대비하는 게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쓰려고 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바로 옆에 위치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이 나라는 가까운 시기이든 먼시기이든 침략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리고 저는 의외로 그 시기가 꽤 가까울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목차로 시리즈로 나누어 게재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글을 쓰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이 글과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1. 일본인의 정신세계-신토
2. 소천하_군국주의 전체국가로서의 일본
3. 망국의 조짐을 보이는 일본의 경제
4. 극우지배와 비판세력의 부재
5. 1경 5천조의 재정적자
6. 비판적 사고가 전무한 일본의 교육과 미디어
7. 다가오는 대재해
8. 국제경찰로서 미국의 역할 축소
9. 한국의 탈일본과 남북경제공동체
10. 전쟁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가
11. 전쟁을 막는 방법은 정녕 없는가
참고로 이 글은 인터넷 게시글입니다. 대부분 정확한 출처가 있으나 따로 게재하지는 않습니다. 관련 단어로 검색하시면 충분히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논리전개상 출판서적에 준하는 치밀함이 결여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논리와 근거를 중요시하지만 그만큼 저만의 영감과 직관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유수의 관련학자들의 주장과 다른 논리나 결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때문에 인터넷에 글을 씁니다.
이 글은 사실 전달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글입니다. 한국인의 눈에 투영된 일본, 한국인인 제가 해석한 일본이지 객관적인 일본의 실체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저의 일본 이해가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거부하셔도 됩니다. 이 글은 이해를 위한 글이지 절대 강요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미리 목차를 정해놨으니 1회 게시글의 소주제에서 벗어나는 내용으로 시리즈 대전제를 부정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각 회의 글은 꽤 깁니다. 그러니 댓글로 다른 의견을 말씀하실때는 부디 글을 충분히 읽고 남기셨으면 합니다.
그럼 들어가보죠.
1. 일본인의 정신세계_신토
어떤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는 교주도 없고 경전도 없고 조직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종교에 속해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마음껏 신을 만들수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무서워 하는 것, 죽은 부모님 누구나 신이 됩니다.
그 신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기분좋게 하면 그들이 뭔가 복을 줄 거라고 여깁니다.
죽으면 그 신들처럼 자신도 신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언제든 기도해도 되지만 특별히 신경 안써도 별 상관없습니다.
이런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 종교가 한 나라 전체의 국교라면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의식 세계를 가지게 될까요?
그 나라 인구가 1억이 넘는다고 하면 또 어떻게 될까요?
일본인 정신세계의 핵심은 바로 신토입니다.
일본의 사실상 국교인 신토를 알아야 일본인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신토의 사찰인 신사가 8만여개이며 이 신사를 관리하는 신관이 또 8만명이 넘습니다.
이들을 신사본청이라는 기관에서 관리합니다. 일본은 정교분리국가이며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인은 거의 100% 이 신토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즉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기본적으로 신토는 믿는다는 거지요. 그래서 일본인들 중에 신토는 종교가 아니라 그냥 일본인의 생활양식이며 문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게 중요합니다. 종교의 의미가 희미한 종교, 그럼에도 모두 그 안에 속해 있는 종교로서 신토 말이죠.
신토는 일본의 민족종교입니다. 일본인들은 신토의 주신(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예가 바로 천황이라고 믿습니다. 현재 일왕 나루히토는 126대 천황이며 그 조상으로 올라올라가면 아마테라스가 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건국설화 창조주의 후예를 자신들의 군주로 섬기고 있고 살아있는 군주를 신의 후손으로 모시는 종교를 전 국민이 믿는 원시적 제정일치 사회입니다.
이 신토와 천황의 존재는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자민당 정권이 거의 70년 넘게 일본을 지배할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막부통치라는 일본 특유의 정치체제와도 연결이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2챕터에서 설명하도록 하고 일단 여기서는 이 신토라는 종교가 다른 종교와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고 그게 현재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도록 하죠.
신토의 핵심은 애니미즘입니다. 즉 세상 만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죠.
종교학에서는 경전과 교리, 그리고 전체 신도를 총괄하는 조직의 유무와 정교함 수준에 따라 상위종교 하위종교로 구분합니다. 그래서 토테미즘, 샤머니즘, 애니미즘은 하위 종교로 구분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주에 의한 경전이 없고 교리는 구전설화 수준으로 빈약하며 그래서 신도들을 규합하는 조직을 만드는데도 한계가 있고 그래서 확장력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애니미즘이라는 하위종교를 국교로 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일본인의 사고체계가 굉장히 특이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앞으로 이 개념은 일본을 설명할 때 안티테제로서 계속 나올 것입니다)에 맞지 않는것입니다.
신도의 특징이 국가단위의 보편적인 종교가 되었을 때 위험한 면이 몇가지가 있는데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무교회주의자로서 근대기독교 사상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일본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자서전에서 신토와 관계해서 어린 시절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학교에 가다 비가 와서 뛰어가는 도중에 길가에 신단이 있으면 멈춰서서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안그러면 그 신단의 신이 화가 나서 자신의 길에 뭔가 해꼬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는 길에 몇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 오고 가는 길마다 그 신단에 멈춰서 기도를 했어야 합니다. 그는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하고서 온갖 신에게 기도하지 않게 되서 너무 편해졌다고 말합니다.
신토에선 신이 얼마나 많은지 표현하기 위해 800만위 제신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게 정말 800만 신이 있다는 게 아니라 거의 세상을 채울만큼 끝도 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 끝없는 신들을 기쁘게 해줘야 자신이 잘 살 수 있다는 게 신토의 핵심사상입니다.
이런 신토가 일본에서 발전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빈번한 자연재해때문이죠.
일본에선 지진, 화산, 태풍을 3대 재난으로 꼽습니다. 지진은 도카이, 난카이, 도난카이 3대 대지진이 있고 여전히 활화산인 후지산이 있지요. 세계 진도 6이상의 강진중 18.5%가 일본에서 터집니다. 이런 위력적이고 빈번한 자연재해가 그들의 애니미즘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카미라고 불리는 신토의 신들은 자연의 구성요소인 경우도 많지만 주로 그들의 조상입니다.
이 조상신이라는 개념은 종교로서 신도들에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끼칩니다. 좋은 것은 친근한 신이라는 점이고 안 좋은 것은 무능한 신이라는 것입니다. 친근한 신이기 때문에 죄를 묻거나 벌을 주지 않습니다. 무능하기 때문에 그 능력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나도 될 수 있는 신은 자연재해를 막아줄 수도 나를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빈번하고 막강한 자연재해는 그들에게 강력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동시에 너무 많은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이 죽어서 정령이 되었다는 식의 교리를 생각해 내니 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니까 두 가지 방향으로 의식이 흘러가는데 질보다 양이라고 일단 약한 신이라도 최대한 많은 신을 동원하면 어떻게 잘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결론과 그럼에도 결국은 막지 못할 것이라는 허무와 불안의 감정이 쌓입니다. 이게 그들이 800만의 신을 믿어도 공허와 불안을 노래하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두번째, 모든 사람이 죽으면 정령이 된다는 사상은 생명경시풍조를 만듭니다.
대재해가 터지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의식의 변화가 생명경시 풍조입니다. 당장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유럽에서 수천명 수만명이 죽어나가자 그 숫자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일본의 대지진, 화산, 태풍은 과거 방재시스템이 전무했던 시절 더욱 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그 수많은 사망자들을 처리하면서 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이 죽으면 정령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신토의 신에는 묘한 특성이 있는데 그들이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이 무능한 체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이 무능하다는 것은 그들의 현실에 대한 반영이듯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들의 궁극적인 소망일 것입니다.
죽음이 왜 괴로울까요?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부분의 종교는 그들에게 내세를 약속합니다. 이 내세에 대한 조건이 심오할 수록 종교가 더 강한 확장력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많은 다양한 죽음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위로해 줄 수 있으니까요.
또한 내세에 대한 사상이 강력해지면 현실에 대한 죽은자들의 간섭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위 종교들은 죽은자들이 신이 되어서 현실에 개입한다는 교리를 금지합니다. 그래야 신이 더 강력하고 위대해 질 수 있고 따라서 신에 대한 믿음과 헌신도 강력해지기 때문이죠.
신토가 종교도 아니고 문화도 아닌 애매모호할 정도로 일본인들 사이에 신앙심이 희미한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신토의 이 카미란 신의 존재는 다른 면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은 이런 교리때문에 일본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오히려 동경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즉 그들의 무의식에는 고통스럽게 사느니 영광스럽게 죽어서 영원한 신이 되고 싶은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이게 그들의 전통적인 생명경시 풍조의 근본 원인입니다.
일본 영화를 보면 가족이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비도 그렇고 피와 뼈도 그렇고 나라야마 부시코도 그렇고 극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에서는 끝도 없지요. 그때 공통적으로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좋은 곳으로 보내줬다.
이 대사는 일본인들의 생사관의 핵심을 보여주는 한마디입니다.
그들의 무의식속에는 죽음을 초월하는 나의 위대함 이런 개념, 또 고통스런 세상을 떠나게 해 줄 수 있는 남은 자로서의 자비, 이런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복을 하고 순사(주인이나 주군이 죽으면 따라 자결하는 풍습, 근대에까지 이어져 무려 1989년 히로히토 사망때도 있었습니다) 를 하고 마비키(세금때문에 어린 자식을 죽이는 풍습, 에도시대 해마다 7~8만이 희생되었으며 20세기 초반까지도 유지되었습니다)를 하고 병자, 노인, 유아를 버리는 행위가 만연했습니다.
이런 생명경시풍조는 일본 전국시대의 장기간 대규모 전란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며 일본이 천년 이상 군국주의를 유지하고 2차 세계대전에서 카미카제나 참수경주, 밀리환초 식인학살 들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일본과의 전쟁 위험성을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중 하나도 바로 이 신토의 영향으로 일본인들 안에 만연해 있는 이 생명경시풍조 때문입니다.
이런 생명경시풍조는 지금도 일본의 문화와 사회현상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일본이 라이프링크라는 사회단체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자살방지정책을 실행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이전까지 일본의 자살률은 세계최고 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노인층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과 달리(한국이 노인층 자살률이 높은 것은 경제난과 기존 가정관의 붕괴탓이 크겠죠. 이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겠습니다) 일본은 10대~30대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만연한 살인과 죽음, 시신훼손 표현에 대한 관대함 역시 이런 사회적 배경도 무시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향으로 일본 청소년 범죄는 상상력이 가미된 잔인성을 보여주죠. 이것은 어른 조직폭력을 동경하는 한국 청소년 범죄와는 표현양상이 매우 다릅니다(물론 청소년 범죄는 사회의 다양한 면이 반영됩니다. 저는 표현만 말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전공투 이후 애니메이션과 만화에서 클라이맥스마다 주구장창 "살아라!" 라는 대사를 말하는 거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세번째, 경전의 부재는 선악의 개념을 말살합니다.
일본 사회와 문화의 특징중 하나는 선악의 모호함입니다.
이것 역시 신토의 특징에서 연유된 바가 큽니다.
일본인은 겉으로 표현과 속의 진심이 다른 것을 동경하는 습성이 있지요.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츤데레, 반대로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사실은 굉장한 실력자라는, 착한 얼굴의 악인, 악한 얼굴의 선인, 혼네와 다테마에, 미즈노 슌페이나 무토 마사토시 같이 앞에서 혼을 빼놓을 듯 좋다고 하면서 뒤에서 욕을 하는 이런 모든 것에는 일본 문화 자체에 옳고 그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에는 신토의 카미가 인간들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 주는데 흥미가 없는 것도 분명 한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종교가 문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의 통합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법률제정 이전 시대부터 신의 이름으로 규율을 정해주는 기능이 종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토에는 놀랍게도 이런 역할이나 기능이 전혀 없습니다.
옳고 그름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기여를 말하는 것이지요. 공동체에 이익이 되는 개인의 행동이나 자세를 옳다고 하고 반대로 공동체에 해를 입히는 개인을 그르다고 합니다.
일본은 근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핵심을 알기 위해서 그들의 화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의 중요성 뭐 이런게 일본인들에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건 그들이 스스로를 미화하기 위해서 강조하는 거고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그들 정신 세계의 핵심은 생존입니다.
재해와 전쟁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도망갈 곳없는 섬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에 대한 눈치는 있을 지언정 진정한 존중과 애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악 개념도 희미하지요.
그렇습니다. 전쟁과 재난에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모든 게 허용되고 이해됩니다. 이게 일본인들의 근본적인 무의식입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게 잠재적인 전쟁이자 재난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생존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 자존심이나 체면따위 집어 던지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도게자를 하고, 뒤에서 배신하고, 따돌리고 괴롭히고 죽이고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거리낌도 없는 것은 바로 빈약한 공동체 의식 때문이며 신토는 이런 그들의 정신세계의 반영이자 또 근본 원인이 됩니다.
공동체 의식의 핵심은 뭘까요?
바로 후손에 대한 배려입니다. 어떤 사회든지 고차원의 사회일수록 보육과 교육, 아동 복지에 힘을 씁니다. 그것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의 기여에 의해 더욱 오래 존속하고 번영되기를 원하는 책임과 소망이며 이런 이유때문에 고차원의 사회일수록 어린이의 죽음과 고통에 민감하고 괴로워합니다.
반대로 재해와 전쟁, 가난이 만연한 사회일수록 어린이는 귀찮고 불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내전지대에 소년병이 있고 동남아에 어린이 노동이 만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일본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일본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매우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비키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현대 일본 청소년의 자살과 폭력, 성매매 문제와도 연결되는 이유입니다.
이런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결여는 그대로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으로 악순환됩니다. 엄청난 수의 노인학대와 선생님에 대한 폭행, 젊은층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무관심과 과격한 범죄양상, 역시 그들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의 온전한 반응이겠지요. 저는 이런 사회현상에는 어쩌면 과거 마비키의 악몽이 젊은이들의 디엔에이에 새겨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적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이 아기들을 조직적으로 죽였던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지금 기성세대들도 그냥 보일리가 없겠죠.
이 모든 게 공동체 의식의 부족의 결과이며 그 근본 이유에는 신토라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며 생명경시사상을 내재한 국교의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물론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있기는 있습니다. 다만 위에서 설명한 대로 현실에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판타지의 형태로 왜곡되어 있을 뿐이죠.
대표적인 게 일본 점프계열 소년만화입니다.
강력한 적이 있고 열심히 수련해서 그와 대결해서 싸워 이기면...? 그 다음 그와 친구가 됩니다!!!
이전의 악당이 이제는 친구가 되서 그를 도와 함께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간다는 이러한 개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말그대로 현실도피적이며 순진무구한 발상이죠. 어린애들 주먹다짐 하고서 화해한 뒤 더 친해진다는 이런 수준의 생각으로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는 게 일본 대중문화의 주류입니다. 일본 외의 그 어떤 대중문화에서도 이런 류의 스토리 구조는 찾아보기 힘들죠. 권선징악이라는 보편적인 윤리관에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토에선 이게 가능합니다. 신토의 신은 선악을 가리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배트맨이 조커를 이기자 조커가 배트맨의 친구가 되어서 베인을 함께 무찌른다 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가능하다 이거죠.
그런데 이게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그게 바로 일본 식민주의, 바로 대동아 공영권의 핵심입니다.
신토의 사상 아래 생사의 경계도 없고 선과 악의 구분도 없이 그저 자신의 목적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그게 죽음 이후라도) 하나가 될 거라는(모두 같은 신이 될 거라는) 그 믿음이 현실에서 조선을 정복하면 조선은 일본의 친구가 되어서 아시아를 정복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라는 믿음이 되었고 더 나아가 아시아 전체를 정복하면 아시아 전체는 일본의 친구가 되어서 서구 열방의 아시아 침략을 막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는 신념으로 확장되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에게 죽을 때 그에 대해서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아시아 전체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런 비틀린 공동체 개념은 그들의 전국시대부터 이후 막부통치, 2차 세계대전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으며 오랫동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의해 길러진 현재 극우 세력들에 의해서도 현실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핵심 사상입니다.
다음 게시물에서는 이런 신토사상을 바탕으로 그리고 섬이라는 특성에 의해서 일본의 세계관과 정치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ps. 여러 이유로 다른 사이트에 본문을 전체, 또는 일부 퍼가는 것은 거절합니다. 필요하시다면 dp로 링크만 걸어주세요.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가 피겠구나 하고.
글쓰기 |
지난번에 제가 댓글로, 어릴적 자란 동네가 같은 곳이라고 반가움을 표했는데요..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혹시 대학생들 논술 가르치신적 없으신가요? '운명'이란 것과 '숙명'이란 것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글을 보면서 계속 느낀건데, 제가 아는 어떤 분을 떠올리게 하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