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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스포츠) 길고 굵게 이런저런 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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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5-20 11:00:35

 

 

 1. 내 시선에서 더 라스트 댄스 ep. 1의 주인공은 제리 크라우스 단장이다. 분명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못생기고, 키도 작고, 뚱뚱한 한 남자가, 미남에 키도 크고 잘빠진 MJ와 필 잭슨에게 엄청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모습이 꽤나 노골적으로 노출됐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빅3를 유지한 팀들 중, 세계화가 본격화가 된 90년대 이후로 팀 내 최소 한 명 이상 슈퍼스타의 몸값 후려치기 없이 주전부터 벤치까지 충실한 전력을 구축했던 팀이 단 하나라도 있는지를. 00년대 후반 보스턴의 빅3는 몸값을 후려쳤다. 10년대 초반 마이애미의 빅3도 시가(市價)보다 낮은 계약을 맺었더랬다. 샌안 왕조가 20년 이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던컨, 마누, 파커 빅3의 몸값 후려치기였다. 근래 골스는 슈퍼스타 듀란트가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벤치 레벨이 왜 G리그 수준으로 급락했던가. 커리, 탐슨, 그린이 시가에 따르는 연봉을 받으면서 벤치에 신경을 쓸 여력이 완전히 사라진 탓이다.

 분명 제리 크라우스 단장은 MJ 이후 성공적인 팀을 꾸리는 데 실패했다. 단언컨대 그 실패로 전날의 성공까지 무위로 돌려선 안 된다. 기존 황제와 아이들의 한계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MJ의 짝으로 젊은 피펜, 그랜트, 훗날 로드맨까지 영입했던 1등 공신은 바로 크라우스이다. MJ에게 팀원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 젠 마스터 필 잭슨을 감독으로 선택한 것도 바로 그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바, 조던과 피펜이 시가의 몸값을 받았다면, 과연 불스의 멤버 수준이 ‘그대로’였을지 생각해야만 한다. 리그 최고의 식스맨 중 한 명이었던 쿠코치는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또 SG MJ/SF 피펜과 함께 PG로 뛰면서 불스가 리그 최고의 질식 백코트 수비진영을 구축할 수 있게끔 한 론 하퍼에게 3m/4m 이상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구단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선수/코치진만의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법이다. 거대한 세상과 일기토를 벌여 승리를 거두는 영웅서사시는 현실이 아닌 그저 신화나 소설에서나 존재한다. 스포츠판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매니지먼트는 실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더 라스트 댄스의 감독 제이슨 헤히르는 지난 17년 작고한 제리 크라우스 단장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에고 강한 운동선수인 조던이나 피펜, 그리고 1차 3연패 당시 빅3 중 한 명이었던 그랜트, 2차 3연패 당시 빅3 중 한 명이었던 로드맨, 아니 조던 era 시카고 불스 멤버 전원은 우승에 있어서 어느 슈퍼스타의 몸값 희생으로 두터운 스쿼드가 가능했단 측면의 중요성을, 그러니까 우승을 가능케 한 요소 중 황제의 존재만큼이나 성공적 매니지먼트가 필요했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이슨 헤히르의 시선은 달랐던 것 같다. 제리 크라우스의 생전 인터뷰 영상을 굳이 많이 실었던 것을 보자면 말이다. 특히 피펜의 저연봉 장기계약과 계약 말기 역대 최고의 2인자인 자신에게 돈으로 보상을 해주길 거부했던 구단과 그로 인한 불만 폭발, 이 문제에 대한 당시 단장으로서의 변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제리 크라우스 단장이 생존해있었다면, 그래서 더 라스트 댄스 제작팀과 인터뷰를 했으면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날리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MJ, 특히 피펜을 저연봉 계약으로 묶어두지 않았다면, 만일 그들의 실력에 합당한 시가 그대로의 연봉을 지불했다면, 당신들은 시카고 불스가 2회에 걸친 3연패 업적을 달성해낼 수 있었을 거라 믿고 있는가?”

 

 2-1. 현대의 젊은 전문가들조차, 108년 역사를 자랑하는 산투스 FC가 브라질 국내 리그에서 거둔 총8회의 우승 중 펠레 era에 6차례 우승을 했단 사실을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 또 62/63 두 시즌에 걸쳐 ‘주대회/리그우승/남미 챔스 우승+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팀과 격돌한 대륙간 컵 우승’이라는, 그러니까 브라질의 축구팀으로서 한 해에 모을 수 있는 모든 우승 트로피를 싹쓸이했음을 아는 이도 거의 없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남미 최고의 스포츠 주간지이자 월간지 중 하나로 평가받던, 창간 약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El Gráfico誌(종이판은 수익성이 떨어져 2년 전부터 온라인판만 나오는 중)에서 남미와 유럽의 축구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역대 최고의 팀을 뽑는 폴을 실시한 바가 있다. 여기서 62/63시즌의 산토스 FC가 역대 1위로 선정됐다. 사실 그 원동력은 펠레era를 실시간으로 경험한 전문가들이 생존해있었고, 세기말까지만 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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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는 거의 모르면서 현재만을 경험한 이들이 현재를 띄우기 위해 선대를 폄훼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수영 종목에서 팬츠만으로 기록이 좌지우지되는 걸 생각해보자. 스포츠에 있어서 도구란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한들 지나치는 법이 없다. 슈마허의 재림이란 평가를 듣던 페텔이 레드불에서 페라리로 옮긴 이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비단 F-1처럼 사람의 기량보다 머신의 성능이 더 중요시될 여지가 있는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펠레era로 돌아가 보자. 흙 반 잔디 반, 그나마 고르게 평평하지도 못한 그라운드의 상태 하나. 현대 축구화에 비해 무게가 무려 두 배 이상인 축구화, 비라도 내려 물에 젖게 될 때 그 무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경우 둘. 실제 1950년대 중반이 지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가 전성기를 보낼 때 축구화의 무게는 500g에 달했다. 현재 축구화의 무게는 200g 이하다. 재미난 건 그 무거운 축구화가 물에 젖으면 무게가 무려 1kg까지 나갔단 사실이다. 1970 멕시코 월드컵 이전까지의 축구공을 보면 완벽한 구체와 거리가 꽤나 멀단 점 셋. 이를 첫 번째 요소와 결합시켜보자. 둘의 결합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공이 땅에 닿을 때 마찰에너지가 더 커지고, 그 에너지만큼 불규칙 바운드가 더 크게 일어난다.’

 이 셋만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요즘 축구 선수들과 달리 잔디도 아니고 그렇다고 클레이도 아닌, 잔디 반 클레이 반인 게다가 울퉁불퉁한 표면의 그라운드에서 땀 흡수가 거의 안 되는 유니폼을 입고 뛰는데, 가뜩이나 공은 돌덩이처럼 딱딱해 컨트롤이 어려운데 형태까지도 제대로 된 구형도 아닌지라 불규칙 바운드가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비까지 내려 축구화는 전투화(1.3kg)가 돼버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메시는 일명 팬텀 드리블을, 지단은 마르세유턴을, 호나우지뉴는 플립플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일단 잘 쓸 수도 없을뿐더러 드리블 성공 확률 자체가 반토막 이하로 떨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선수의 업적을 평가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그 시대 그 선수가 얼마나 뛰어난 성취를 이뤄냈는가를 봐야만 한단 소리다. 과거의 선수를 평가하고자 한다면 현재와는 다른 여러 변수를 합리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까 꽤나 많은 공부가 필요하단 뜻이고 말이다.

 남미의 챔스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펠레 era 이후 산토스 FC가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 무려 48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여담으로 그 주역이자 영웅은 바로 19세의 네이마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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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피트 샘프러스를 마지막으로, 시대를 지배한 서브 앤 발리어가 자취를 감춘 이유는 올라운드 플레이어 페더러가 등장해서가 아니다. 나달이나 조코비치가 압도적인 리턴 및 스트로크 그리고 네트 플레이를 통해 서브 앤 발리어들의 무기를 원천봉쇄했기 때문도 아니다.

 선후관계는 이렇다. 90년대 말, 남성부 서브 앤 발리어들의 득세로 심지어 그 인기가 여성부의 위협을 받는 수준까지 전락하면서 협회는 전체 테니스판의 파이 축소를 두려워했다. 해서 윔블던 잔디 코트부터 호주/US 등 하드 코트까지 서브 속도를 늦추기 위해 변화를 줬다. 전반적인 마찰력을 높이는 작업이었다. 물리학 법칙에 따라 표면에 닿은 공의 속도는 낮아지고 튀어오르는 정도는 높아졌다. 서브에 강점을 가진 선수에겐 심각한 불이익이, 탑스핀 등 스핀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선수들에겐 큰 이익이 돌아갔다. 여기에 공의 무게까지 늘리면서 선수들 간 스트로크 대결을 장려했다. 대놓고 서브 앤 발리어들을 죽인 것이다.

 그러니까 저 구조적 살생부가 서브 앤 발리어들의 몰락을,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페더러의 시대 개막(다른 빅3는 몰라도 페더러는 특유의 공격적 스타일과 이와 관련된 기량상 과거의 저항력 낮은 코트로 가서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어로 활동을 해도 톱 플레이어어가 됐을 것이다)을, 다시 나달이나 조코비치 같은 베이스라이너들의 시대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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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너무 빠른 펀치여서 눈으로는 보지 못했을 겝니다. 집에서 느린 화면으로 돌려가며 확인해 보시길.’

위대한 무하마드 알리의 최전성기 시절 경기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 하나.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이다. 육안으로는 소니가 다운을 당한 펀치를 보지 못해 여러 의혹이 쏟아진, 일명 팬텀 펀치가 나온 바로 그 경기다.

 알리의 최전성기를 60년대로 봤을 때, 60년대 그가 상대한 최고의 상대 둘을 꼽자면 플로이드 패터슨과 소니 리스턴이다. 커스 다마토 코치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마이크 타이슨의 직속 선배이자 완벽하게 동일한 피커부 스타일을 구사했던 플로이드 패터슨과의 1/2차전은 알리가 그를 링 위에서 완전히 농락한 수준이라 언급할 가치도 없다. 한편 저 둘은 복싱 관련 가장 높은 권위를 인정받는 잡지인 링誌에서 선정한 역대 헤비급 복서 20선에 모두 이름을 올린 주인공들이며, 20위 마이크 타이슨보다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은 선수들이다.

 역대 가장 강력한 주먹 중 한 명인 소니 리스턴의 왼손 잽이 나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자마자 그 거리가 자신을 위협할 수 없음을 빠르게 캐치, 잽을 패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머리를 뒤로 젖히는 방어 기술인 스웨잉을 하려다 곧바로 접고, 소니의 왼손 잽 위로 자신의 오른손 카운터를 날려 상대의 왼쪽 턱 위에 내리꽂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쐈다!’ 이 경기 후 위대한 나르시스트의 입을 통해 나온 시적인 자뻑 멘트였다.

 

 3-2. 괜히 봤다. 기분이 나빠지는 경기가 있다. 무하마드 알리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그렇다. 그저 자신의 스파링 파트너였던 홈즈에게 알리가 엄청나게 맞았단 얘기만 알고 있었을 뿐, 파킨슨 초기 증세가 이미 완연해 말이 어눌하고 손은 덜덜 떨리며 전체적인 움직임까지 눈에 띄게 느려진 상태에서 링 위에 올랐던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경기 후반부, 해설자는 경기를 멈춰주길 호소한다. 눈치 없는 어느 관중들은 알리에게 힘내란 의미로 그 이름을 연호한다. 코칭 스태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주문을 이미 정신을 잃은 자신의 선수에게 목청 높여 주문한다.

 알리의 증세를 이미 알았기에 경기를 그 누구보다 치르기 싫어했던 홈즈였다. 알리가 파산 수준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음도 알았기에, 이 경기를 치러야만 했던 것을 알고 있던 그였다. 경기 후 래리 홈즈가 눈물을 흘린 이유다.

 

 4-1. 타이슨의 펀치력이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갖느냐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은, 적어도 내가 찾아본 바로는 없다. 당대 선수들의 증언, 여러 전문가들의 평가, 맞선 상대의 질과 보여준 퍼포먼스의 질을 종합해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60년대 이전 여러 철권들이 거론이 되지만, 최고 철권 한 명만 꼽으라면 조 루이스라고 의견이 좁혀진다. 이 시대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 패스. 참고로 조 루이스와 어니 세이버스가 최고의 주먹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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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대엔 알 리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버린 소니 리스턴이 으뜸이다.

 헤비급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였던 70년대엔 알리나 켄 로턴 등 수많은 선수들의 증언을 종합한 바, 어니 세이버스가 최고의 철권이고 다음이 조지 포먼이며, 론 라일과 켄 로턴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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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노턴이 조지 포먼의 펀치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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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노턴이 어니 세이버스의 펀치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다.

 80/90년대엔 기존 원-투 콤비네이션을 넘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원-투-쓰리 콤비네이션을 작렬시키며 수많은 복싱인들을 경악시킨 타이슨이 으뜸이다. 타이슨의 주먹과 레녹스의 주먹을 모두 경험한 홀리필드의 말을 종합하면, 그래도 타이슨의 주먹이 더 강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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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년대엔 비탈리 클리츠코가 가장 강한 철권으로 꼽히고, 10년대엔 와일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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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여담으로 여기를 떠나 미국에서든 유럽에서든 타이슨을 상대로 2연승한 홀리필드나, 최전성기에 만났어도 어떤 측면에서든 타이슨에게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은 레녹스 루이스나, 이 두 선수를 타이슨보다 강한 이미지로 기억하지 않는단 건 신기한 일이다. 저 Iron man을 높게 평가하는 건 비단 대중의 모습만은 아니다. 현 헤비급 챔피언 중 한 명인 앤서니 조슈아를 포함한 내로라하는 격투기 선수들이 타이슨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결국 복싱 전문지 기자들이나 헤비급에서 타이슨의 위상을 아주 높게는 5-/아주 낮게는 20위 수준으로 본단 말인데, 꽤 재미난 현상이라 하겠다.

 내가 80/90년대 활동한 헤비급 선수 중 레녹스 루이스를 가장 뛰어난 헤비급 복서로 기억하고 있든 말든, 마이크 타이슨보다 타이슨 퓨리가 더 강한 헤비급 복서라 생각하고 있든 말든, 마이크 타이슨의 모습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서려있다.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앵글을 잡기 위해 다마토 시프트를 활용, 공략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사우스포로 자세를 바꾸면서 오른손 어퍼컷을 날린다. 찰나에 완성된, 아름다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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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5-20 02:19:34

정성글은 추천 ~!!

정말 잘 읽었습니다 ^^

WR
2020-05-20 11:01:07

장문의 글 좋게 읽어주셔서 캄사합니다! :-) 

2020-05-20 02:41:26

스포츠의 묘미가 이런거죠.
잘 읽고 추천합니다.

WR
2020-05-20 11:01:43

스포츠가 멈춘 시대에도 뜯어보는 맛은 여전합니다! :-) 

2020-05-20 03:01:00

아닌 밤중에 다 읽고 동영상도 넘 재밌게 봤습니다~스포츠전문 기자보다 더 날카로운듯 합니다

WR
2020-05-20 11:02:33

늦은 시각에 장문의 글을 읽어주시다니,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2020-05-20 05:08:43

 느바가 왕조가 오래가기 힘든게 골스가 참 공감됩니다

그린 탐슨 커리 맥스로 안겨주고 듀란트까지 사실 불가능하죠

벤치는 그냥 처참한 수준...

듀란트 데리고우승하고 리빌딩 했어야 했는데

WR
2020-05-20 11:07:57

전 공정한 경쟁의 장은 일단 투자액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해서 NBA의 징벌적 사치세를 지지하는 스포츠팬인데, NFL식의 엄격한 하드캡 적용은 궁극의 

모습이라 보고 있고요, 00년대부터 NBA에서 다회차 우승을 거둔다는 것의 의미는 그 이전과는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둬야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훨씬 어려워진 것이죠. 징벌적 

사치세가 강화되면서 말입니다. 

말씀처럼 골스는 듀란트가 있었을 때 3연패를 했어야 했죠. 그런 기회는 적어도 현 빅3를 유지하는 한 

다시 올 일 없을 테니까요. ;;;  

2020-05-20 07:58:55

일단 추천 하고 좀 이따가 피씨로 정독합니다. 기대되네요.

WR
2020-05-20 11:08:21

시간 나실 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20-05-20 11:26:59

방금 다 읽었습니다만.. 당시의 선수를 지금 선수와 비교하는건 여러가지 변수를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거에 동의 합니다.  타이슨은 정말 임팩트있는 복서였죠..  ^ ^  서브엔 발리의 대가는 스테판 에드버리 아니던가요?  갑자기 생각나네요..

WR
2020-05-20 11:37:00

여러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 시대, 과거의 선수를 평가하는 건 뭐랄까, 말에 책임감이 하나도 없는 행위라 할까요? 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서브 앤 발리의 대가야 사실 90년대 이전 시대를 지배했던 남자 선수들 중 상당수가 이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말씀해주신 스테판 에드버리도 당연히 들어가겠지만 사실 전 경기를 접하지 못해 잘 모르는 레전드이기도 하고, 페더러 이전 테니스판의 황제로 자리매김했던 인물이 피트 샘프러스이고 제가 테니스를 어느 정도 인식하며 볼 때 판을 지배하고 있던 익숙한 영웅이기도 하기에 이 거인을 사례로 들었던 것이랍니다. 

여담이지만 코트의 재질이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뀌지 않았다면, 서브 앤 발리어들에게 사형을 내리지 않았다면, 과연 광속 서버 앤디 로딕의 커리어는 어떻게 됐을까요? 종종 궁금했던 가정이랍니다. ㅋㅋ 

2020-05-20 11:40:08

저는 영화 배우 마크 윌버그 볼때마다 에드버리 생각이 나서요.  ^ ^ 당시 영국에서 살고 있어서 윔블던 위주로 봤던 시기라서 이반 렌들은 죽어라고 윔블던 못 이겨서 안달이였는데.. 에드버리는 정말 서브 엔 벨리 하나로 윔들던을 2번 이기는거보고..잔디 코트에는 정말 서브엔 발리가 짱이구나.. 하던 생각이 드네요.

WR
2020-05-20 15:29:03

지금도 공이 가장 빠르고 가장 낮게 바운스가 되는 윔블던인데, 당시를 생각하면 뭐.. 잘 모르는 90년대 초반 이전의 테니스계이지만, 제가 아는 90년대 초중반 이후로 대입시켜보면 수비 위주, 특히 리터너들에겐 재앙과도 같은 코트로 다가왔겠죠. 피트의 시대, 아니 서브 앤 발리어의 시대를 생각하면, 애거시 유형의 선수가 윔블던을 위시한 잔디 코트에서 승리를 거두는 일 자체가 말 그대로 일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요즘엔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어가 종말을 고해서 그런지 몰라도, 페더러가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로 점수를 얻을 때 보면 그 심플한 미학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단 말이죠. 사실 남발되면 이보다 더 재미없고 단조로운 패턴도 없는데 말입니다. ㅋㅋㅋ 

2020-05-20 09:21:42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있다가 정독하겠습니다. 

WR
2020-05-20 11:08:37

늘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 

2020-05-20 09:40:16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만. 

샌안 팬 입장에서 타 빅3와 스카우팅과 팀웍을 기반으로 한 빅3를 같은 선상에서 몸값 후려치기로 비교한 건 아쉽네요. 다른 팀과 달리 여기 빅3와 그 이전의 제독, 션 엘리엇부터 맷 보너 같이 오래 뛴 선수들은 샌안에 눌러앉을만큼 전 가정적인 문화가 유니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돈보다 팀문화라는 걸 만든 마지막 구단이자 그런 가정적인 조직문화로 가장 성공한 스몰마켓 구단이 샌안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좋아하다보니~ 

 

WR
2020-05-20 11:15:46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거두절미하고 결론적인 모습만 언급한 것입니다. 

도머 님 말씀처럼 슈퍼스타들의 몸값 후려치기는 샌안의 경우처럼 가족애적 마인드가 기본이 된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물이었죠. 과거 르브론 제임스가 주축이 된 마이애미 빅3처럼 우승을 거두기 위해 리그의 슈퍼스타들이 몸값을 내리면서까지 이합집산한 경우가 아니라, 스몰마킷 프랜차이즈들로서 젊음을 팀에 헌신했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단 점도. 

근래 계약 이전 골스의 기존 빅3 커리/탐슨/그린도 그러한 모습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듀란트의 영입이라든지 주전/벤치 두터운 스쿼드 확보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시가에 맞는 몸값을 찾아가면서 앞선 팀 전력 극강화는 이제 꿈에서나 가능한 것이 됐고 말이죠. 

2020-05-20 10:43:38

1- 자도 동감합니다.
저는 농구 영상보다 서브컨텐츠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제 징벌적 사치세로 인해서 사치세를 4년부터 살인적으로 높아지죠.
그래서 휴스턴이 올해 카펠라를 코빙턴으로 트레이드 했을 정도로요.
개인적으로 슈퍼스타 에라에 라인업을 완성하고 사치세 지붕과 동시에 3년 연속 우승하는게 아니라면 왕조가 불가능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징벌적 사치세를 감당한 여러 팀들이 있지만 이들도 결국은 한두해의 수익을 포기하며 기록을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죠.

실제로 시카고 혹은 그전 레이커스, 보스천 완조들은 샐러리캡제도가 자리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WR
2020-05-20 11:27:51

정확히 움훼풰훼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마지막 문단까지요. 80년대 레이커스, 보스턴 왕조의 선수 면면을 보자면, 2010년대엔 구성이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죠. 근래 골든 스테이트처럼 사치세를 감수하면서까지 선수단 유지를 위해 구단주가 무리를 한다면 가능해겠지만, 이 케이스조차 슈퍼스타 중 누군가는 시가보다 낮은 연봉을 받고 있었단 사실. 때문에 최소 21세기에 다회차 우승하는 것과 그 이전 시대 다회차 우승하는 것의 난도 및 의미는 구분이 돼야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 샐러리캡과 엄격한 징벌적 사치세 조합은 슈퍼팀이 다년 간 유지가 되는 걸 제도적으로 막아내게 됐으니까요. 결국 말씀처럼 슈퍼스타 era에 물이 들어온 후 넘치기 전 4-5년 동안 무조건 우승을 거둬야만 하는...

여담이지만 축구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전 스포츠팬으로서 그나마 가장 공정한 경쟁을 위해 NFL처럼 엄격한 하드캡을 도입하는 걸 바랍니다. 자본의 집중을 통한 재능의 집중은 필연적으로 우승을 돈으로 사는 확률을 기하급수로 높이기 때문이니까요. 생각해보면 자본과 재능의 초집중화가 가능한 축구판을 보자면 포르투가 우승을 한 후 16년 동안 거대 자본과 결탁한 소수의 클럽만이 돌아가며 우승을 거두는 중이죠. 심지어 월드컵조차 현 후진국인 구식민지 국가로부터, 대개 아프리카 대륙, 자원을 빼온 현 선진국 구 유럽 열강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요. 프랑스와 벨기에 대표팀 명단을 보자면, 사실 이건 클럽 운영 방식과 다를 바 하나도 없다고 할까요? 제가 올드한 시선을 가진 스포츠팬이라 그런 것이겠지만, 클럽이든 월드컵이든 축구에서의 우승에 대해 21세기 들어 점점 더 회의적인 생각만 갖고 있답니다. NFL식 하드캡 도입이 시기상조고 언감생심이라면, NBA식의 샐러리캡+징벌적 사치세만이라도 하루 빨리 도입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쩝. 

2020-05-20 16:37:55

 정말 잘봤습니다. 

 테니스 코트 관련해서는 요즘 보면 코트특성상 차이가 있는게 맞나 싶기도 해서.. 윔블던정도라도 샘프라스 시대의 잔디로 바꿔서 특성을 좀 살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US와 호주도 좀 차이를 두고요. 

 

WR
2020-05-20 21:34:44

긴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게 하드 코트 기준, 일례로 US오픈 관계자에게 '공 속도가 더 느려진 거 아닌가'란 질문을 던졌더니, 돌아온 답변이 '기록상 동일하다'란 식이더라고요. 다만 호주 오픈에서 조코비치가 압도적으로 날아다니는 반면, US오픈에서 나달이 꽤나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주는 걸 보자면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지 않나 싶습니다. 잔디 코트의 속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느려졌다곤 하지만, 메이저대회 중 공이 여전히 가장 빠르고 바운드도 가장 낮게 되는 곳이 윔블던이기도 하고요. 코트별 보다 확실한 특성을 위해 말씀처럼 윔블던 코트라도 90년대의 것으로 돌린다면, 당장 함박웃음을 짓게 될 선수는 페더러가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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