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예송논쟁이 단순히 쓸데없는 허례허식, 병림픽의 대명사로 많이 쓰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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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5-23 23:52:47
예송논쟁은 그렇게 취급되긴 좀 억울한 면이 있죠. 상복 문제는 표면적 수단에 불과했을 뿐 실상은 왕권 vs 신권의 문제였고, 더 나아가 국왕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당시 임금이던 현종의 아버지는 효종이었고, 효종이 바로 본래 인조 다음의 왕위계승자였던 소현세자가 죽어 옹립된 봉림대군이었죠. 효종은 생전에도 끊임없이 정통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아들인 현종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1,2차 예송에서 서인 측이 끊임없이 언급했던 부분이 "효종은 적장자가 아니다"였으니, 이는 현종의 왕권 문제와도 직결되는 중대사안이었죠.
그리고 예송논쟁이 쓸데없는 논쟁이라 하기엔 전근대 왕조 시대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국왕의 정통성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진 것만 봐도 그렇죠.(모든 유럽국가들이 이 전쟁이 휘말렸고, 식민지까지 동원된 대전쟁) 그에 비하면 예송논쟁은 내전으로 안 번지고 비교적 온건하고 평화로운 해결이 났으니 오히려 다행인 겁니다. 예송논쟁으로 실각한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이 없는 것도 대단한 거... 숙종대의 4대 환국이 더 병림픽이고 후대에 대한 악영향이 더 컸으면 컸지, 예송논쟁은 여기 끼기엔 좀 억울한 측면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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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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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공감합니다.
서인은 장례복제를 통해서 선왕인 효종을 차남으로 대우했고 이는 임금이라 해도
예법에 있어 사대부와 다를바 없다는 선언이었죠.
사대부에 대한 왕권의 우위를 부정했던거죠.
또한 효종과 현종으로 이어지는 왕통의 정통성 문제이기도 했고요.
이는 왕조국가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 할 수 있고 충분히 논쟁이 필요했던 주
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차 예송의 경우 현종과 서인 대신들의 논쟁은 대단히 박진감있게 전개되죠.
상황에 따라서는 서인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이어질수 있었겠지만 현종의 급서
로 흐름이 좀 끊기긴 하죠.
그저 무의미한 뜬구름 잡는 논란정도로 치부할수 없는 중요한 정치사적 의미를 가지
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