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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슬픔과 분노, 냉정 그 사이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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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0 03:23:49

 박원순 시장이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유가족 분들에게도 애도를 전합니다.

 

아직 저는 슬퍼해야 할지, 분노해야 할지 감정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어디선가 우리에게 시장의 죽음이라는 현실과 그 과정, 그들이 정한 의미를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몇번의 연습과 시행착오 끝에 거한 실전을 치뤄낸 자들의 성취감과 환호가 느껴집니다.

그것은 관객들에겐 너무 어색하고 무리한 설정의 인과관계이며 개연성 부족과 작위성으로 보입니다. 

이미 죽었다는 오보들, 시신이 서울대 병원으로 오고 있다며 병원앞에서 진을 친 기레기들의 난장판, 오늘 하루 박시장의 동선이 너무 가려져 있고 마지막 cctv 화면이라며 보이는 영상속의 인물까지 이 엄중한 비극에서 보이는 모습들은 모두 인생은 아름다워 마지막 장면에서 로베르도 베니니가 아들을 향해 보여준 슬랩스틱 장면처럼 잔인하고 어색하고 부자연스럽습니다. 

 

제가 이 뉴스의 흐름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든 느낌은 너무 낮익어서 새롭게 보이려고 이것저것 짜깁기 한 것 같은 클리셰, 또는 역사의 고고한 흐름을 억지로 뒤집으려는 무리한 반전입니다. 

대권을 목표로 하는 3선 서울 시장이 성추행 고소 당한 다음날 유명을 달리했다는 뉴스는 그 이전 부산 시장, 충남 지사 케이스와 자살한 전 대통령과 국회의원 사례를 조합해서 업그레이드판으로 치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여기에는 박시장이 변호사 출신이라는 것과 오랜 시간 서울시장이자 대권주자로서 자신을 지켜왔다는 사실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아들 병역비리 관련해서 강용석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기억한다면 전 비서에게서 성추행 고소를 당하고 다음 날 그 수치심을 못이겨서 자살했을 것이라고 확정해서 쏟아지는 기사들이 오히려 더 비이성적으로 보입니다. 그런 수준의 개연성이라면 차라리 그 반대편에 선 평범한 시민들의 의심-시장을 미투 관련 자살 위장으로 공작하고 그렇게 도덕성을 흡집낸 상태에서 민주당에게 부산처럼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말라고 강요하면서 부동산 폭등 책임론과 아파트 공급확대 재개발 이슈로 몰고 가면서(둔촌주공재건축에 관한 잡음이 갑자기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서울 시장을 잡고 곧바로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여권 후보들의 도덕성을 공격하고 그렇게 판 전체를 혼탁하게 만들면서 정치혐오증을 유발하고 대권을 가로채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음모론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집니다. 

 

이제 곧바로 박시장의 죽음을 정해진 테마에 맞춰 확정하려는 언론들과 댓글부대의 작업들이 있겠지요. 그것을 또 받아서 여당과 대통령을 공격하려는 미통당과 미투 재림의 주문을 외우며 대안임을 자처하고 나설 어느 당이 있을 것이고요. 마치 현재 조국 전장관과 김경수 전지사가 이미 범죄자라고 확정하고 자기들의 주장을 시작하는 현재 댓글작업을 보면서 받을 현재 민주당 지지자들의 자존심 상처와 분노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 내일부터 정치인들에게 끊이지 않은 성추행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식의 르뽀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지 모르죠.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들은 허튼 시도로 폄하될테고요. 경찰이 진실을 밝혀낼까요? 기자? 검찰? 

 

결국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의 책임은 또다시 깨어있는 시민의 냉정함과 집단지성, 아니면 길고 긴 역사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시민의 반응이 옳았는지 어리석었는지 역시 그날의 역사가 판단하겠죠. 다시 진실을 향한 긴 투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세월호, 박근혜 5촌의 죽음 등 21세기 사방에 뱀처럼 도사린 수많은 불가사의들의 숨겨진 진실과 동일한 무게일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정하는 것은 미루려고 합니다. 그가 정말 마지막 유혹을 넘어서지 못한, 연정과 성추행 또는 친밀감 표현을 구분도 잘 못하는 중년남자에 불과했었는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역사에 거스르는 세력에 의해 목숨을 강탈당한 것인지가 합당하게 밝혀질 때까지 말이죠. 그때 그의 죽음의 진정한 원인과 의미에 대해 논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앞으로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과 온갖 혼란한 소리가 기다리고 있다 할 지라도 냉정을 유지하고 그날을 기다리려 합니다.  

 

그럼에도 가슴이 쓰릴 정도로 안타깝고 괴롭습니다. 

건전하고 체계적인 시민사회를 향한 그의 오랜 노력과 서울시와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열정을 기억할 때 최소한 앞으로 20년 이상 활용할 수 있었을 그의 열정과 식견, 지혜, 경륜이 사라진 지금 그것이 얼마나 국가적 손해인지 생각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처럼 아깝고 괴롭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진정한 민주국가의 완성을 향한 길은 여전히 피의 길이며 가시밭임을 절감하며 총선 승리로 이제 더 거스를 수 없는 궤도에 올랐다고 안심했던 제 자신을 책망합니다. 아마 유시민 이사장도 곧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우리의 소중한 동지와 선각자들의 손실 속에서도 더 강력한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저는 상호차단이나 글가리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dp에만 글을 씁니다. 되도 않는 댓글로 원글의 의도를 훼손하거나 평범한 시민의 합리적 의심까지 훈계조로 조롱하거나 비난하며 현 상황을 자신 유리한 대로 해석하려는 사람에게 제 글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와 같은 심정으로 현 사태를 마주하는 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글을 쓸 뿐입니다. 이후 박시장 죽음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결과가 나오면 그때는 제가 알아서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 결정할 것입니다. 방금 몇 분 상호차단하고서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댓글 남깁니다. 

님의 서명
가시 투성이 삶의 온 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가 피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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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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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0 02:39:29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네요. 거기에 한가지가 더 계속 밑바닥에서 치밀어 오르기까지 해요. 바로 "배신감" 이라는 단어요.

 

그래도 일단은 슬퍼하며, 애도하려고 합니다. 고인이 되셔서 정확하게 밝히기가 어렵게 되었지만 제대로된 확인은 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9
2020-07-10 02:42:29

돌아가신 지 하루도 되지 않았습니다. 증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면 이상한 음모론은 집어넣어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9
2020-07-10 03:14:30

영상에 비친 박시장님의 마지막 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리도 쓸쓸하게 했는지...
애도하는 마음도 참 쓸쓸합니다...
▶◀

15
2020-07-10 06:22:53

광화문 촛불 시위 때 많은 부분이 박원순 시장의 행정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지나가면서 얼핏 보았던 박원순 시장은 경박하지도 과격하지도 않은 차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마이너스 재산신고액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권도전을 며칠 전까지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은데

참 갑작스럽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6
2020-07-10 06:58:40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만에 하나 기레기들의 미투 보도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왜 부끄러움의 몫은 정의로운 사람들의 몫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곧 알게되더군요. 부끄러움이란 정의로운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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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0 10:03:39

마지막 유혹을 넘어서지 못한, 연정과 성추행 또는 친밀감 표현을 구분도 잘 못하는 중년남자요 ?

 

행정가로서의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음모론에 의한 게 아니라 성추행에 대한 수치심으로 인한 자살이라면

권력을 이용한 아래 직원에 대한 성추행을

마지막 유혹을 넘어서지 못한 연정과 친밀감으로 묘사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2020-07-10 10:14:49

큰일이 벌어진 현시점에서 생각해 볼만한 글이라서 추천 합니다. 급류에 휩쓸린 기분 이었는데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20-07-10 13:05:23

너무 허무하고 황망해서 말이 안나오네요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07-10 21:41: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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