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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화내지 말고 슬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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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3 19:03:46

지난 며칠간 이 불편한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고인과 가까운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하는 말들부터, 커뮤니티 곳곳에 올라온 이야기들을 읽었습니다.  세상에 멍청이들이 저리 많았나. 섣부른 말들로 혼란에서 빠져 나가려는 것이었습니다.


비판하는 쪽도 칼을 너무 빨리 뽑았죠. 적절한 시점에 적절히 비판을 했으면 날카로웠을텐데, 간만에 던져진 은전 한닢이 너무 소중해서, 무턱대고 난사를 해대다 기껏 할 수 있었던 것이 반인륜적인 소동이지요. 한칼 하기는 커녕 자중지란만 일으키다 잠잠해졌습니다.


이 추모논쟁. 이게 왜 생기는지, 추모 감정의 작동원리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당연히 개똥철학, 혹은 개똥심리학입니다.


추모논쟁이 왜 생겼나…하면. 슬프지 않기 때문에 논쟁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목격한 바 세상은 그렇게 슬프지 않았습니다. 당위적으로 슬퍼야 하기에 억지로 슬픔을 떠올리는 그런 애매모호한 감정의 편린을 떠다닙니다. 인간의 이성은 혼란을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탈출 기재로 다양한 감정을 선택하고, 분노가 제일 만만합니다. 이 편이나 저 편이나, 서로 욕할 대상을 찾아 욕을 합니다. 다들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슬픔 대신에 분노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 슬픔의 부재가 저는 슬픈 것입니다. 왜 슬픔이 부재하느냐. 박원순이라는 죽음이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박원순이라는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슬픔의 방아쇠가 당겨지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참 밋밋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없었죠.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아 보이는 잔잔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등과 대결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서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실수를 해야 공감대가 생기는데, 인간적으로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대중들에게는 외모도 크게 한몫 했을 것이라 봅니다. 처음에는 탈모 사진을 가지고 자학 개그를 하던 그도, 큰 꿈을 꾸면서는 외모 관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박원순에게 공감하게 된 것은 질 안 좋은 기자의 질 안 좋은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목을 매었나, 투신했나. 자살 취재 윤리를 무시한 질문이고, 그 이전에 참 멍청한 질문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걸 상상하게 만들었죠.  당연히 숙정문 인근에는 투신할 곳이 없습니다. 투신하려면 5층 정도의 높이에, 충격을 분산할 잔가지가 없어야 합니다. 산행 좋아하는 박 시장이 모를리 없습니다. 서울이라는 건축물의 도시엔 뛰어내릴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널린 것이 고층 아파트이고, 한강 다리입니다. 당장 서울 시청부터 17층 높이입니다.


죽음을 마음 먹은 후, 죽음의 방식과 장소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은 택할 수 없었겠지요. 조용히 죽기에 서울은 너무 시끄럽고 눈이 많은 곳입니다. 최종 선택을 한 기준은 ‘죄송함’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유서는 평소 박 시장의 어조로 적혀 있었습니다. 모두 안녕이라니. 박원순이나 할 인사였죠.


목 맬 것을 찾는 박원순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이제 의미 없을 넥타이 같은 것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리고 죽을 도구를 들고갈 가방이 필요했겠지요. 마지막 모습은 등산 가방을 맨 모습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짐이 생을 끊을 도구라니, 삶은 얼마나 무겁고 또 가볍습니까. 


이제 목을 맬 나무를 택해야 하는데, 산에 나무가 많아도 목맬 나무는 흔하지 않습니다. 부러지지 않을 적당한 높이의 가지가 있는, 확실히 죽을 수 있는 나무를 찾았을 것입니다. 우중산책을 하면서 그럴 나무를 찾아봅니다. 그리고 가지 위로 넥타이를 던졌겠지요. 한번에 될리 있겠습니까. 멀리 인기척이 들리면 숨어 앉아, 옛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평소에 그 많은 전화번호도 의미가 없었으니 오직 딸에게만 연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울기는 했어도 많이 울지는 않았을 겁니다. 선택한 삶의 철학, 방식이 올가미가 되었으니 땀흘려 죽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을 겁니다. 


죽음의 시간은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습니다. 정적들이 조롱하기에는 참 처연한 일입니다. 유사이래 민주당 후보라고는 당선된 적 없는 곳에 사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친구분들과 박원순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경남 노인들 보기에는 그도 그저 삶의 짐이 무거웠던 불쌍한 사람인 것이지요. 


불쌍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도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랑받을만 했으나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 참 불쌍한 사람. 그로 인해 피해 입은 분도 불쌍한 분입니다. 조속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만 화내고 그저 슬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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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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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3 19:14:21

 지난 번 글도 그렇지만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는 글 입니다.

 

저도 일단은 애도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의 평온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2
2020-07-13 19:19:50

글후반부는 후벼파는 듯 너무 괴롭군요.

그런데 그 질문 한 사람 기자도 아니고 아마 유튜버였을 겁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보수 유튜버

특히 돌아서 가는 형사과장 뒤에다 대고 "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웃음이 나오십니까?" 일갈하는

장면은 실소가 나오게 했죠. (사람은 우스워서가 아니라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도 웃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지. 그냥 자극적인 그림 얻으려는 거겠죠 

1
2020-07-13 19:54:41

 슬프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5
2020-07-13 19:56:33

열라 쿨한척하면서
굉장히 자극적인 글을 쓰네요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기사화되지도 않은 부분을 휘갈겨 썼네요
님이 가세연하고 다른게 뭘까 생각해봅니다

1
2020-07-13 19:57:52

냉혹한 글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글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20-07-13 20:19:02

눈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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