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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직접 겪은 성추행 2차가해 경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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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6 23:09:50

 그다지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일이라 혹시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 같은 부대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 이 글을 다른 사이트에 링크하거나 퍼가지는 말아주세요.

 몇년 전 군대에서 직접 겪은 경험담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만, 제 가치관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2차가해라는 개념 자체를 못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써봅니다.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렇게 풀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용이 조금 길 수 있습니다. 조금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시사정치에 어울리는 것 같아 시사정치 카테고리로 작성합니다.

 

 디피분들은 나이대가 꽤 있으시니 대체 군대에서 무슨 성추행이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제가 직접 말하기도 뭣하지만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어요. 그러니 지금 트라우마도 없이 멀쩡히 잘 생활하고 있는 거겠고요. 진짜 심한 성추행이나 성범죄의 후유증은 정말 비교도 안되게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어떤 사건이었냐 하면, 제가 자대배치받고 일주일도 안된 이등병일 때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여단본부 통신대에 배치되었는데, 다음날 군단 전투력평가(이름은 확실치 않네요)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평가 과목중 하나에 경계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평가기준 중 하나에 포박이 있었습니다. 군필분들은 뭔지 다 아시겠죠. 저희 통신대에는 또라이로 통하는 XX반장(중사)이 있었습니다. 쓸데없이 병사들 갈구고 욕하는 간부였는데요. 여튼 얘가 갑자기 저보고 행정반에 와보라고 합니다. 행정반에 가니 저희 중대원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자기가 포박 시범을 보여줄테니 다른 병사들이 이걸 보고 내일 군단평가 잘 받으라고 합니다. 저는 짬도 안찼으니 포박이 뭔지 몰라서 그냥 하라는대로 했죠. 걔가 밧줄을 가져와서 제 발목과 손목, 가슴, 목을 묶더군요. 생각보다 꽉 조여서 아프고 당황스러웠습니다만 뭐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그러다가 제 무릎 뒤를 본인 무릎으로 쳐서 바닥에 넘어뜨리며 꽉 묶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다음이 문제였는데요. 넘어트리고 제 등 위에 올라타서 성행위 흉내를 내며 "아 이걸 여자한테 해야되는데~" 이런 소리를 한거죠. 

 

사실 저는 그때 당시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냥 속으로 '아 얘는 진성 ㄸㄹㅇ ㅅㄲ구나 ㅈ같네..'정도였어요. 옛날 기준으로 이런건 예삿일도 아니었을거라 짐작합니다만 요즘 군대 분위기에서는 이건 충분히 문제될 소지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생활관으로 돌아오자, 선임들이 저보고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실제로 별생각 없기도 했고, 안괜찮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연히 괜찮다 했죠. 저는 그러고 끝인 줄 알았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저희 여단의 여단장이 교체되었고 지휘관 교체 후 으레 있는 일인 마음의 편지 설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부대 분위기에 꽤 만족하고 있어서 별다른 말을 쓰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그 때의 사건을 마음의 편지에 적은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세네명이 썼다고 합니다. 평소 XX반장을 증오하던 선임들이 보복성으로 쓴거죠. 부대는 한바탕 난리가 났고 저는 순식간에 관심병사가 되었습니다. 저희 분과 반장, 행정보급관, 중대장이 시도때도 없이 뭐 힘든 일 없냐 물어보고 자살생각 하면 안된다느니 이런 소리를 하더라구요. 심지어 여단장님 관사에 초대받아서 사모님이 차려주신 저녁을 중대장, 행정보급관과 함께 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밥이 넘어가질 않더라구요ㅋㅋ

 

 저희 부대에서는 지휘관 바뀌자마자 이런 사건 터지면 시끄러우니까 좋게좋게 덮으려고 했나 봅니다. 지원과장(소령)이 저에게 와서 이거 크게 벌려봤자 제대로 된 처벌도 힘들고 너만 더 피곤해진다-이런 으레 피해자들이라면 들을법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 실제로 커지지 않길 원했다는 것이고요. 전 자대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등병인데 더이상 군생활 적응하는 데에 지장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제 의사가 그렇다고 해도, 협박아닌 협박식으로 이런 회유를 들으니 매우 불쾌하더군요. 그나마 다행인건 중대장님이 깨어있으신 분이라 너 의지대로 하면 된다며 제 편을 들어주신 거였죠.

 

 여튼 제 의지와 간부들의 의견이 일치했고 여단 내의 주의나 징계, 사과 선에서 끝내기로 했습니다. 이 사과라는 것도 꽤 폭력적이었던게, 상담실에다가 그 가해자 간부와 저 둘만 밀어넣고 강제로 사과를 받게 했다는 거죠. 저는 분명 그 때 일로 별다른 마음의 상처를 입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까 너무 기분이 더럽더라구요. 뭐라 형용하기 힘든 불쾌함이었습니다.

 

 사과같지도 않은 사과를 받고, 저는 그걸로 끝인 줄 알았습니다. 군생활 적응하기도 빠듯한데 더이상 피곤해지긴 싫었죠. 근데 이게 제 뜻대로 되진 않더라구요. 사단본부의 법무장교가 그 시기 즈음에 여성으로 교체가 되었는데, 이 건을 보고받고서는 격노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다시 원칙대로 처리하라고요. 저한테 잘 대해주던 친한 인사팀 부사관한테 들으니, 이게 사단장 귀에까지 들어갔고, 여단장님부터 해서 엄청 깨진 것 같았습니다. 부대 분위기는 더 심각해졌죠.

 

 결국 이 지경까지 오니 어쩔 수 없이 원칙대로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단 법무부서에서 감찰이 왔고, 저는 온갖 부서에 불려다니며 또 다시 진술서를 작성했고 증언을 계속해야 했죠. 솔직하게 사단 법무부서 쪽 장교에게 말도 했었습니다. 저 그때 일 별로 신경도 안쓰고 더이상 피곤해지기 싫은데 그냥 끝내주시면 안되겠냐고. 근데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답니다.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번 터졌을 때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맞는 말이긴 하죠. 여튼 이때쯤 갓 일병을 달았을 때였는데, 사단본부에 불려가서 사단장과 등등 준장성급 간부들 앞에서 증언도 하고 뭐 난리도 아니었네요. 그 부담감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법무장교 말이 최근 군법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이제 민/형사상 처벌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군 내규로 처벌이 가능하다고요. 어찌 보면 이중처벌인거죠. 역시나 제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고소장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이걸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니 부대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연락을 취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냥 끝내자고 했던 이유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게 바로 부모님 때문이었는데... 안그래도 자식 군대 보내고 걱정 많으실텐데 이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근데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연락이 가더라구요. 아버지는 좀 차분히 얘기를 들으셨지만 어머니가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이셔서 여러모로 고생했었습니다. 부대 찾아오셔서 여단장부터 해서 중대장이랑 행정보급관이 사과도 하시고.... 그럴수록 앞으로의 군생활이 창창한 저는 더욱 난감해졌죠.

 

 결국 민사로 처리가 되었는데, 저는 경험도 없고 아무래도 부대 내부에 있다보니 이건 부모님이 맡아서 해주셨습니다. 결국 합의금으로 그때 당시 군 복무기간동안 받을 월급 다 합친것보다 큰 몇백쯤 되는 돈을 받았고(이것도 저는 별로 받고 싶지 않았는데 일정 수준 이상의 합의금이 없으면 강압에 의한 합의로 보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여러모로 요긴하게 사용했네요. 

 

 이후에 역시 군법으로 처벌이 또 이루어져야 했는데,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은 부대에 근무시킬 수는 없기에 그 간부의 예하대대 전출은 확정된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부가 이전에 폭력 등으로 사고를 친게 두건이나 있더군요. 이거까지 합쳐지면 이제 완전 군복을 벗는다는 겁니다. 어차피 중사에서 더 진급하기는 이미 글렀고 딸린 애가 셋인데, 직장까지 잃으면 애들은 어떡하냐고 그 기가 쎄던 행정보급관이 저한테 와서 사정사정을 하더라구요. 제발 얘좀 살려달라고...

 

 사정을 제가 봐줄 이유야 전혀 없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애초에 그다지 큰 처벌을 원치 않았고 합의금 받은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남았다고 생각하기에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써주었습니다. 덕분에 그 간부는 예하대대로 전출가고 감봉 6개월로 끝났죠. 하지만 이런 상사의 선처 부탁 또한 실제 성범죄 사건에서는 매우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처사일겁니다. 이걸 거절했을 때의 부담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 될테니까요.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여단 내부에서 사건을 종결시키려 했을 때는 괜찮았지만, 사단에서 감찰이 오고 그 난리가 나다 보니 결국 건물 전체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저희 통신대가 아닌 본부중대와 위에 층에 있던 다른 대대 아저씨들에게까지 소문이 다 났더군요. 아직 짬찌(짬이 덜찼다는 은어입니다 예전에도 썼는지는 모르겠네요)였던 저는 결국 지나가던 본부중대 선임들, 타중대 아저씨들에게까지 "너 XX반장한테 성추행당했냐? 뭐 당한거야?" 이딴 소리를 몇 주 가까이 듣고 다녀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성추행 행위 그 자체보다 일련의 대응들, 주변의 대응, 이런 모든 2차가해들이 너무나도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한창 저때가 페미니즘이 이슈가 되던 시기였는데, 주변 여성인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도 듣고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실 논리적으로는 납득을 해도 감정적으로 공감이 되지는 않는 부분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직접 당사자가 되어보니 알겠더라구요. 이 때 있었던 몇달간의 사건들이 제 가치관이 변화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글의 처음에도 이미 썼던 이야기입니다만, 결국 이 글을 왜 쓰게 되었냐 하면 2차가해라는 개념자체를 못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입니다. 저 또한 예전에는 그랬으니까요. 이 경험담이 조금이나마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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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7-16 22:53:46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짜 심한 2차가해로 당시 참 심란하셨겠습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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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23:01:05

사실 제 경우에는 그럴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최소한 너가 꼬셨지 않냐 이런 소리는 안나왔었으니, 그런 경우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당시엔 여러모로 힘들었네요... 그래도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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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23:02:46

잘 읽었습니다. 비슷한 경험이 두 번 있어서인지 남일 같지 않네요. 절대 퍼가지 말라고 맨 앞으로 옮겨서 첫 줄에 표기를 해주심이 좋겠습니다. 적당한 시간 후에는 삭제하는 것도 생각해보십시오. 매우 민감한 프라이버시를 담고 있고, 혹시라도 이걸 기억하는 주변 사람들이 볼 수 있거든요.

WR
1
2020-07-16 23:05:09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대가 크진 않았다 보니 디피 안에서만이라면 괜찮을 것도 같습니다만, 며칠 뒤에 삭제하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네요.

2020-07-16 23:07:09

세상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남성-남성 케이스는 흔치도 않아서 더 좁죠.

2020-07-16 23:13:32

마음고생 크셨겠습니다,
상황이 머릿속에 그냥 그려지네요,
생각해볼만한
깊은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020-07-16 23:15:59

글만 읽어도 피곤해지는데 당사자는 오죽할까요. 고생 많으셨어요.

2020-07-17 04:03:40

 여러모로 힘든 일을 겪으셨는데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런 일도 있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내어 글 써주신데 대해 감사하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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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7 08:01:05

이래서 성폭력은 그냥 첨부터 신고 자체를 하지말라고들 회유를 많이 하죠...

저도 직장 상사놈 새끼들 신고 할까 고민 많이 했습니다만 이후 상황이 많이 그려지니까요(보나마나 저만 화냥년으로 몰렸을테죠).

저는 평생 제 온 힘을 다해 저주할겁니다. 제 영혼을 짓밟은 그 새끼들과 그 새끼들이 벌어온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산 그 가족들을. 특히 그놈들은 딸년들 꼭 지 애비들같은 상사를 만나서 저랑 똑같이 당하길 빌고 또 빕니다. 그것만이 정의고 복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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