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클리앙펌/페이스북펌] 그때 우리는 반포자이를 왜 안샀을까? ( 김원장 기자 )
후배가 갑자기 아파트를 사겠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는 반포자이를 왜 안샀을까?
반포 자이,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뚝섬 갤러리아포레, 그리고 도곡동 타워팰리스. 서울을 대표하는 주택들이다. 한 채에 3,40억원을 넘는다. 이들 아파트들은 모두 분양 당시 미분양이 극심했다. 우리는 왜 그때는 사지 않고, 지금은 모두 이들 아파트를 사려고 할까.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다시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럴싸하게 말하자면 행동경제학이라고 할까...)
2008년 분양된 반포자이는 그중 566가구가 일반분양됐다. 절반 이상이 안팔렸다. 이듬해 GS건설은 156채를 부동산 투자신탁에 통매각한다. 매각 대금은 1405억 원쯤... 1채당 8~9억 원을 받은 셈이다. 지금은 2~30억원이 넘으니 GS건설 입장에선 땅을 칠 일이다.
이 무렵 안팔리는 새아파트를 팔기위해 건설사들은 앞다퉈 해외의 교민들까지 모시고 왔다. 그때와 지금, 부동산 시장은, 우리는 뭐가 뭐가 달라졌을까?
첨부/
래미안 퍼스티지/ “래미안을 찾은 해외교포반문단 환영 현수막”/2009년
1.집값이 오른다는 가장 흔한 논리적 근거는 수요는 늘었는데, (정부 규제로) 공급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서울은 통계청 기준 430만 가구가 산다. 어떤 해는 줄고 어떤 해는 늘어난다. 많게는 한해 5-6만 가구가 늘어난다. 그런데 서울의 인구 수는 해마다 줄어든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가구 수는 늘어나는 것은 점차 1-2인 가구로 재편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서울의 가구수가 설령 5만가구나 늘어난다고 해도,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2인 이상 가구는 ‘최대한 많이 잡아도’ 해마다 3~4만 가구 정도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서울의 아파트는 해마다 2만~4만 가구 가량 순증한다(어떤 사람은 서울 주택의 수가 재개발 멸실로 줄어든다고 하는데, 재개발 재건축으로 신규주택 수가 줄어드는 사업장은 없다). 그러니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주장은 조금만 맞는 이야기다. 사실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집주인들이 집을 잘 팔지 않으면서, 기존 주택의 매물이 줄어든 것이 훨씬 더 큰 이유다. 결국 (집주인들의) 마음의 문제다.
2.누구는 금리가 낮아지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져서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가격의 근본에 ‘금리’가 있다. 하지만 금리는 2008년 이후에도 급격하게 떨어졌다. 5%를 넘었던 기준금리는 2009년이 지나면서 2%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그때는 왜 집값이 오르지 않았을까. 서울의 아파트가격은 2014년까지 계속 급락했다. 그때도 대출 이자율이 반 토막 났는데 우리는 왜 아파트를 안샀을까.
3.집값이 오르는 진짜 이유는, 우리 마음이 갑자기 사고 싶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부동산 시장에 과연 합리적으로 접근할까?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10년전 32평이 10억원 정도였다. 지금은 30억 원이다.
“지금 온갖 과학적 근거를 대면서 서울의 아파트 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왜 그때는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사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때 합리적으로 시장에 접근하지 않았던 우리는 갑자기 10년이 지나 이제 합리적으로 변할 것일까? 인간은 과연 시장에 합리적으로 대응할까? 이마트에서 트리트먼트를 하나 더 준다고 해서 엘라스틴 샴푸를 하나 더 구입한 당신은 합리적인가? 지구인은 왜 1,000만원을 내고 에르메스 핸드백을 살까? 스타벅스 서머래디백에 농협 로고가 붙어있어도 우리는 그 가방을 위해 줄을 설까?
우리는 그닥 합리적이지 않다. 합리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려고 노력할 뿐. 분명한 것은 우리는 남이 하면 따라 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한 동물이다. 게다가 나의 행복은 남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은 매일 아리팍(반포 아크로리버파크)이 또 2억 원 올랐다고 중계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원하는 비싼 것에 눈길이 간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의 보석상 제임스 아사엘(James Assael)은 폴리네시아 인근의 흑진주를 수확해 판매했다. 회색빛이 도는 밝은 진주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검은 진주에 눈길하나 주지 않았다. 하지만 몇해 뒤 맨해튼 5번가의 고급 보석상에 루비와 에메랄드와 함께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의 흑진주가 진열됐다. 그러자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저 검은 빛의 아름다운 진주를 살 수 있을까요?’
어떤 언론은 서울의 집이 계속 줄어들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간다. 지금 못사면 영원히 내집 마련을 못할 것 같다. “서울 아파트 오늘이 제일 싸다”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그 사이 친구는 결국 청약시장에 뛰어들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것이 곧 사라질 것이라도 믿게 만들면 되요!”
집값이 어떻게 될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질녁에야 날아오른다. 헤겔은 모든 일들이 지나봐야 해석이 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사실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10억짜리인지 30억 짜리인지 잘 모른다. 우리는 단순히 사람들이 그 아파트를 사겠다고 줄을 서자, 나도 따라 줄을 서고 싶은건 아닐까? 전문가들은 집값이 오를 합리적 이유를 10가지 과학적 근거로 설명한다. 어느날 집값이 내리면 그 전문가들은 다시 1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집값이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는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시장을 이해한다. 집값은 진짜 왜 오를까? 시장엔 늘 이유가 존재하고 우리는 혹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이유들을 재조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디다스 이지부스트 런닝화의 가격은 50만원 쯤이다. 1년에 단 하루 8월 1일 하루 30%가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된다고 가정하자. 소비자들의 줄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과거의 가격을 모르고 오늘 35만원에 판매된다면 소비자들의 줄이 이어질까? 만약 지난 가격을 모르고 오늘 그 아파트를 그 가격에 판다면 과연 우리가 그 가격에 구입할까?’
4.주택공급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계속 서울의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자고 한다. 나는 그 주장이 일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나 늘리면 될까?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종을 상향해 50층까지 허용하고 1,000가구 정도를 추가로 공급하면 이제 강남에 살겠다는 우리 국민들의 수요가 좀 줄어들까. 잠실5단지를 바로옆 롯데월드타워(123층)만큼 높게 지으면 서울의 주택 공급에 숨통이 좀 트일까? 집을 향한 우리의 욕망이 좀 잦아들까? 비로소 집값이 잡힐까?
내가 태어난 1971년, 한국에선 102만 명이 태어났다. 올해는 32만명이 태어난다. 시간이 지나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는 인구가 1/3 급감하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 집을 구입할까? 평택의 시흥의 천안의 제천의 군산의 안동의 아파트들은 어떻게 될까?
5.집값은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 시장경제가 만들어지고 지금껏 오르기만 한 자산이 어디 있을까? 많이 오르다, 많이 내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또 오른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 우리 마음은 너무 부지런하다.
앗, 누군가 저걸 사기위해 뛰기 시작했다. 나도 뛰어야 하는 걸까? 다들 뛰어간다. 빨리 쫓아가야지. 나만 뒤쳐지는 건 아니겠지? 여보 서둘러야되! 그런데, 저 사람들 어디를 향해 가는 거지?
------------------------
김원장 기자가 이제 태국 방콕으로 간다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글쓰기 |
좋은 기사입니다. 추천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