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항공모항에 대한 잡생각 몇 가지
1.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3만t급 경항모 추진 기사가 나와서 이러저러한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기사에서 획득 시기, 즉 배치 시기를 2032~2033년쯤으로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르게 배치된다고 해도 그즈음 되겠다는 것이겠죠. 최근 한국의 군사력 증강 드라이브를 보면 이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동북아의 군사력 증강 드라이브를 보면 정말 숨막힐 정도입니다. 어느덧 중국도 항공모합이 두 척입니다. 한국도 1만5000t급 강습상륙함 한 척을 실전배치했고, 곧 한 척이 더 배치될 예정이죠. F-35는 무척 빠른 속도로 배치됐고(박근혜 정부 당시의 갈팡질팡을 생각하면 말이죠), 특히 포병과 미사일 전력의 증강은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입니다. KDDX도 원래 계획보다 더 빠르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3. 이쯤에서 떠올려보자면 미국의(정확히는 미국 민주당의) 윈-윈전략일 실질적 의미를 상실할 즈음부터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이 더 속도를 낸 듯싶습니다. 중동과 동북아의 두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해 승리하겠다는 전략이 불가능함이 90년대 내내, 2000년대 초반 방증되면서 미국 민주당은 일본의 군사적 팽창 정책을 용인, 또는 부추겨왔습니다. 그즈음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 한국의 본격적 군사력 증강도 시작된 것으로 기억됩니다.
4. 한국의 상황에서 군사력의 사용은 두 가지 전략적 목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은 '한 가지'였죠. 대북 전쟁 억지력입니다. 한국의 기존 지도층에게는 오직 대북 억지력 만이 정답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일본에 대한 자격지심+정치적 정통성의 부족은 기존 지도층에게 오직 대북 억지력 만을 유일하게 가능하고, 절실한 전략적 목표로 강제했죠. 사실 그들의 정통성 유지를 위해 대미 동맹은 필수적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해군을 예로 들 때 그들의 전술적 목표는 오직 근해 전투력에서의 대응이었죠. 중.러에 대응하기 위한 억지력은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해 이뤄질 터였고, 이는 미국 민주당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이었습니다.
5. 그런데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부터 부상한 한국의 새로운 지도층은 그들의 새로운 존재 만큼 두 번째 전략적 목표를 그려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시작이었죠. 여러 언론에서 다뤘지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별 군사력 증강 예산 규모를 비교하면 노무현 정권 때 압도적으로 늘었죠. 이때부터 '대양 해군'이란 얘기가 본격화됩니다. 잠수함과 이지스함 전력이 본격적으로 준비되죠. 이 때부터 준비해서 현재의 잠수함 이지스함 전력이 갖춰집니다.
6. 결국 지금의 군사력 증강은 최소 10년 후를 내다본다고 생각합니다. 1번에서 지적했듯이 이른바 '경항모'도 최소 10년 후죠. 이쯤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해군 전력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로 봐서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죠. 그리고 프랑스의 경우, 2010년대 들어 아프리카 중부와 북부 지역에서 군사력 활용이 늘어납니다. 말리와 리비아에 대한 군사력 개입부터 최근 레바논에 대한 개입 의사까지. 다들 잘 아시겠지만 군사력이라는 것은 단지 워게임의 일환이 아닙니다. 이는 세계적 정치ㆍ경제적 경쟁의 다른 표현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력은 넉넉잡아 전 세계 10위권에 듭니다. 트럼프가 '한국은 부자 나라다'라면서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강변하는 이유 중 하나죠. 이는 단지 한반도에서 수동적인 방위비분담금 증액의 문제 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 경제적 영향력 만큼 세계의 군사적 균형의 한 축을 담당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7. 결국 문재인 정부의 군사력 증강 드라이브는 단지 현재의 필요성 때문에 이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세계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한 전략적 고민의 산물일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적 차원에서 항공모함 도입에 대한 결정이 이뤄졌을 것입니다.
0.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저는 이러한 군사력 증강이 딱히 반갑지는 않습니다. 미일중러라는 전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들 사이에 끼인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도 말입니다. 현재의 세계질서가 군사력으로 유지되어야만 한다면 우리의 군사력 증강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는 치킨게임 아닌가 싶습니다. 미소의 군사력 경쟁은 소련의 몰락으로 끝났지만, 만약 그게 실질적인 전쟁으로 이어졌다면 그 결론은 상상하기도 끔찍합니다. 한국 같은 경우는 더하죠. 좁은 국토에서 아무리 군사력을 강화한들 일단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가 입을 피해의 규모는 명약관화합니다. 군사력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 싶은데 참으로 갑값할 따름입니다.
※오늘 처음 알았는데 '시사정치' 카테고리로 글을 쓰면 '익명 댓글'을 거부할 수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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