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스포츠) 러시아에서 나온 김연아의 후계자 #2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전 스포츠 얘기하면서 주니어 레벨의 선수를 언급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생애에서 2차 성징이 일어나기 전은 찰나에 불과하고, 어린 시절 뛰어난 재능을 보유했던 상당수 아이들이 2차 성징 이후 성장의 문제와 발육의 한계로 인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경우를 종목불문 너무 쉽게 또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비스 레벨(novice)을 넘어오자마자 주니어 레벨을 석권해버렸던 재능(당시 13세, 현 14세)에 대해 작품 하나를 통해 짧게나마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만큼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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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 소개를 해드린 알료나 코스토르나야의 경우는 17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있지만 마치 과거 17세의 김연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미 스케이터로서 거의 완성이 된 재능이고, 크게 남아있는 문제라곤 길겐 18세까지는 이어질 성장통을 잘 극복해내는 거 하나입니다. 아, 저 어마어마한 비거리를 보시길. 정말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나요?
카밀라 발리예바의 경우는 다릅니다. 대략 작년부터 2차 성징이 시작됐으니 매일 변화하는 몸을 피겨에 잘 적응시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14세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선수답게 아직 부족한 점이 보입니다.
가장 크게 지적되는 문제점은 특히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말미에 소개할 영상(삽입한 gif 영상은 4-2 콤비네이션입니다. 역시나 다리가 덜컹거립니다)에선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장면을 보시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토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축발 자체의 흔들림도 아직은 심한 편이라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해설자는 앞선 연결 점프에 대해 “잘 수행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자세히 보시면 트리플 토루프 랜딩에서 몸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 넘어질 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리예바가 몸의 중심이 뒤로 이동한 순간 아주 빨리 몸을 앞으로 기울여 위기를 벗어난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장점은 이제 막 나비스를 벗어난 선수임에도 대단히 빠른 속도로 빙판을 지친단 것입니다. 어려서 몸이 가벼운 관계로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뛸 수 있는 선수일 수도 있단 관계로, 쿼드러플까지 뛰어내는 점프 머신이란 점을 언급하진 않겠습니다만, 이미 확보한 속도로 보건대 성장기만 잘 극복해낸다면 점프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은 꽤 낮아지지 않을까 예상을 해봅니다. 빠른 스피드를 유지한 상태에서 이나바우어에 이어 트리플 루프를 소화해내는 걸 보자면 무리를 해서 쿼드러플을 뛸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다는.
스핀의 귀재입니다. 이건 이미 주니어 레벨을 아득히 넘어섰고, 성인 레벨에 가서도 최고 레벨을 받아내고도 넉넉한 수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긴 팔과 무지막지하게 긴 다리를 뛰어난 유연성과 의외로 강한 힘을 통해 잘 컨트롤해내면서 표현력을 극대화합니다. 잘 성장하면, 아마도 그녀가 가진 긴 선의 아름다움이 발레의 우아함과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흡사 발레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란 반응을 끌어내고 있고요.
표정연기도 일품인데, 생긴 게 반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 어린 나이에 우수에 찬 분위기를 자아내는 걸 보자면 ‘재능은 재능이다’란 말이 절로 터져 나옵니다. 종합하면 ‘작품의 해석 능력이 탁월하다’인데, 이 지점에 대해선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갈음하도록 하겠습니다.
카밀라 발리예바의 쇼트 프로그램 제목은 ‘공 굴리는 소녀(Girl on the ball)’입니다. 발리예바가 보여주는 시작과 끝 부분의 기이한 포즈는 위대한 화가 피카소의 동명의 작품에서 따왔습니다. 공 굴리는 소녀에 대한 예술사가들의 해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곡예사를 보라. 공 굴리는 소녀의 연약함과 성급함은 큐브 위에 앉은 근육질 남성의 힘과 정확히 대비가 된다. 다시 컬러풀하게 채색된 앞선 대상들과 흐릿한 색채의 배경도 대조가 된다. 이들 대조/대비는 피카소의 삶을 반영하는 장치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희망차보이지만, 그 한편엔 고난과 역경이 서려있단 것이다.’
발리예바의 공 굴리는 소녀에도 그러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나비스 쇼트 프로그램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프로그램을 주니어 1년차에서도 쓰기로 투트베리제 사단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카밀라가 부상을 입었다는 것. 프리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을 뛰기로 돼있었는데, 쿼드점프가 말을 안 듣게 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주니어 라이벌이자 당시 14세(현 15세)의 미국 선수 알리사 리우가 대회에서 쿼드러플을 성공시키기 시작했고, 고난도 점프에 대단히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현 시대의 채점 특성을 염두에 둘 때 그것이 발리예바에게 얼마나 큰 중압감을 안겼을지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카밀라 발리예바와 코치진은 롱 프로그램에서 쿼드러플을 더블 악셀로 바꾸기로 결정내립니다. 비점프 요소에 있어서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박이었습니다. 대성공. 발리예바는 이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니어 1년 동안 전 많은 걸 배웠습니다. 예컨대 어떤 기술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컨디션으로 대회를 치르는 경우, 경쟁에서 정말 필요로 할 때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는 방법 말이죠.’
늘 고민을 달고 사는 이 어린 소녀가 만들어낸 공 굴리는 소녀는 시공간을 넘어 피카소의 손녀인 다이아나(Diana Widmaier Picasso)의 눈에 띄게 됩니다. 카밀라 발리예바의 공연에 큰 인상을 받고 멋진 해석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며, 급기야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에 저 어린 재능을 초대하는 메시지까지 보냈습니다. 자, 발리예바가 공 굴리는 소녀로 더 인정을 받을 무언가가 이 세상천지에 더 남아있을까요?
여담으로 저 쉼 없이 빡빡한 프로그램을 카밀라 발리예바에게 소화하게끔 주문한 에테리 투트베리제 사단도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키워낸 또 한 명의 엘리트 선수에 대한 자신감의 표출이겠죠. 안무를 보자면 투트베리제 코치가 발리예바를 알료나 코스토르나야와 마찬가지로 토털패키지로 보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을 했군요.
이제 카밀라 발리예바의 공연을 보실 차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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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된 친구가 더 김연아에 가까운것 같아요. 비거리와 스핀 정말 대단하네요. 성장통을 잘 극복해서 멋진 선수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궁금한데 axl18님은 정말 다양한 스포츠의 최신 뉴스에도 깊이를 가지고 계신데, 스포츠 잡지 혹은 기사를 구독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