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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정치]  임정법통론 대한민국 건국 년도 논란으로 본 수구세력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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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14 03:16:51

문) 다음중 임정법통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이는 누구인가?

1. 김구

2. 여운형

3. 이승만

4. 김규식

5. 안창호

 

 

정답은 3번 이승만

 

 우리는 우리 정신을 헌법에 작정할 생각이 있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 우리가 헌법 전문에 써 넣을 것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민족으로서 기미년 3.1 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재건을 하기로 함." 이렇게 해 넣었으면 해서 여기에 제의하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제헌 과정에서 이렇게 발언하며 3.1운동으로 궐기하고 대한민국정부를 선포했다는 것을 헌법의 전문에 명시하자고 주장합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초대정부 선포 기념식에서도 건국 30년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죠.

단 여기서 30년이라는 것은 상하이임시정부 직전 3.1운동 직후에 설립된 한성임시정부 부터를 말합니다.

왜냐? 이 한성임시정부의 초대 집정관총재로 선임된 것이 이승만이었거든요. 이당시 미국에 있던 이승만은 이 소식을 전해듣자 마자 president라고 적힌 명함을 만들어 돌렸다고 합니다. 이 한성임시정부와 몇개의 단체가 다시 연합하여 설립된 것이 상하이 임시정부 였고 이승만은 여기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그럼 이 임정법통론을 가장 강하게 부정했던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박헌영 허헌등의 남로당 세력과 여운형을 위시한 중도 사회주의 세력이었습니다. 수구세력들이 좋아하는 단어를 빌리자면 바로 빨갱이들이 되겠네요. 이상론자에 가까웠던 여운형은 일제치하 당시 활동한 독립운동단체가 상하이 임시정부만 있는 것이 아니며 특정세력에게 정당성을 주기보다 모든 세력을 규합하여 정부를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사고 때문에 해방직후부터 그가 수없는 테러를 당하고 종국에는 암살로 최후를 마치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두와 손을 잡기를 원했던 이상주의자는 아이러니 하게도 모두의 적이 되었던거죠.

임정부터 해방 초기 까지 이승만과 함께 했던 김구는 초기에는 임정법통론을 지지하다가 후에 반대로 돌아섰습니다. 그가 반대한 이유는 남북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이승만과 정적관계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구 역시 정확히는 임정에 대한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이승만 세력이 주도한 대한민국 정부가 임정의 법통을 계승할 만한 자격이 없다는게

주된 논지였습니다.

 

여기서 또하나 임정법통론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임정법통론은 단순히 건국년도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이후 현재까지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인 반공 이라는 것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것이자 동시에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정통성과도 관계가 있는 겁니다.

즉 대한민국의 역사는 3.1운동과 그로 인해 설립된 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으며 따라서 그 법통을 계승하지 못한 북한은 국가로서 인정할수가 없는 반헌법적 단체에 불과하다는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핵심이 되기 때문이죠.

 

 

 

이런 식으로 밖에 임시정부법통론을 부정할수 밖에 없는 수구세력의 주장은 그야말로 궤변의 극치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역사를 논하는것 조차 시간낭비이고 자신들이 반세기 넘게 유일하게 내세운 정당성인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 조차 부정하는 것입니다.

 

독립운동의 역사도 부정하고 헌법도 부정하고 자신들이 국부라고 떠받들던 이승만의 주장도 부정하며

반세기 넘게 내세울수 있었던 유일한 이데올로기인 반공의 근간이 되는 논리마저 부정하는 수구세력의 주장은 이제 그들에게는 반공조차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채 남은건 오로지 부일매국의 역사에 금칠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다는걸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지켜야 할 유일한 역사는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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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과 남은 것 사이, 그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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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5
2020-08-14 03:56:10

음.. 계속 죽.. 저렇게 해 주면 좋겠어요.. 

정당이면 뭔가 쭉 밀고 나가는게 있어야 되니.. 

믿는 그대로 죽.. 밀로 나가서. .지옥 끝까지 갔으면.. 하는 바람이 

3
2020-08-14 06:10:50

이승만이 자기 정당성을 주장한 근거가 임정이었는데... 나중에 모든 주적이 왜놈에서 빨갱이로 둔갑하면서 수구보수들이 임정을 버리게 된게 아닌가 싶어요

3
Updated at 2020-08-14 07:29:53

요즘 우리나라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다룬 책을 읽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승만이란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하더군요

미주지역 이주가 1903년 하와이로의 농업이민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909년에는 대한인국민회 등 여러 단체들이 결성되어 상호부조와 민족운동을 하면서 임시정부도 지원했다죠 그때 박용만이 이끌던 하와이의 대한인국민회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던 이승만은 민찬호 등의 지지자를 규합하여 1921년 대한인동지회를 만들었으며 이미 학교와 교회는 자신의 주도로 기존의 곳과 분리시킴으로 교민사회에 고통을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24년 로스엔젤레스로 가서 장로-감리 연합형태의 연합교회 형태로 유지되던 한인교회 사회를 또다시 분열시켰다죠

이승만은 가는 곳 마다 판을 깨는 사람.. 정말 다마네기 빌런이네요

2020-08-14 08:51:26

이승만 장로님이죠~ 장로님 덕에 서북청년단도 미쳐날뛰고 그랬네요 ㅎㅎ

2020-08-14 08:54:07

그렇죠 그건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구요

2020-08-14 09:43:56

 남은건 오로지 부일매국의 역사에 금칠하는 것만 남은 쓰레기들.......이제 몰아내야죠

2020-08-14 09:57:50

 ㅎㅎ 재밌는 역사적 사실이네요~ 임정을 부정한게 소위 빨갱이들이였다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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